닌자걸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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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학교 3학년인 조카는 학원에 다니느라 밤 12시가 다되어야 집에 온단다. 반 아이들이 모두 그렇기 하기 때문에 그렇게 시키지 않으면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사촌언니는 말한다. 이제 겨우 15년 정도 산 아이가 하루에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하지만 이 일은 내 세대 대부분도 경험했고 내 전 세대도 경험했을 일이다.
이 책 <닌자걸스>는 학업에 대한 청소년들의 부담과 심화반이라는 학교 내에서의 차별, 그 속에서 피어나는 그들의 꿈에 대해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렸을 때에 내가 읽은 청소년 소설들은 좀 우울한 내용이 많았다.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열리지  않는 문> 등 내가 고등학생이 되면 저런 일을 겪는 걸까 하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앞서 말한 책들 보다는 <닌자걸스>에 가까웠다. 성적표와 대학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했기에 모든 일들이 재미있었다.

이름과는 영판 다른 외모지만 언젠가 꼭 연기자가 되는 꿈을 꾸는 은비, 꽃미남을 밝히고 작가가 꿈인 지형, 초딩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담한 체구지만 말투만은 성인 못지않게 시니컬한 소울, 백치미를 자랑하는 혜지까지 <닌자걸스>는 개성 강한 네 명의 아이들이 이끌어 간다. 중간 중간 그 아이들의 생활을 어찌나 웃기게 표현했던지 깔깔거리며 읽었다. 
 

<닌자걸스>도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답게 부모의 기대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성격과 꿈들을 골고루 무쳐서 우울한 이야기가 주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꿈과 재능을 깨닫고 그 꿈을 위해 나아가는 강한 모습을 보여 준다. 또 심화반인 ‘모란반’의 차별을 인식하고 ‘모란반’을 폐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우리 때도 그랬지만 공부만이 성공의 길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이들이 백 명이 있다면 재능도 백가지가 있을 텐데 너무 한 가지에만 몰입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쯤이면 학교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하고 재능을 발견하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말은 이렇게  해도 내가 엄마가 되어서 내 아이에게 공부만 강요하는 엄마가 되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아직까지 길을 걷다가 같은 학교 후배들이 지나가면 꼭 내 친구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학창시절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아닐까? 공부 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좀 더 놀고 좀 더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 정말 즐거웠다며 회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어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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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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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으로 농사를 짓지 않은 사람이라도 아는 사실이 있다. 바로 해충이 농작물을 해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농작물에 농약을 쓰는 것은 당연시 되어 왔다. 농약은 생산량과도 직결 되어 있다. 즉, 농약을 쓰지 않음으로써 농작물의 생산량이 줄어들면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생계가 곤란하게 됨은 물론 소비자들은 농작물의 공급부족으로 가격폭등을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요즈음 들어 농약에 대한 폐해가 점점 알려지면서 친환경, 유기농 농작물들이 각광 받고 있다. 가격은 보통 농작물의 몇 배가 되는 것도 있지만 친환경, 유기농 농작물 시장의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 농작물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건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여기, 농작물에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던 30여 년 전부터 무농약을 고집해온 한 사람이 있다. <기적의 사과>의 기무라 아키노리는 모두가 미쳤다고 그를 손가락질 할 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실패의 좌절 속에서 
 

기무라가 처음부터 무농약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대대로 내려온 농가의 차남이었다. 사과밭에서 나온 돈으로 생활의 곤란함도 없었다. 그리고 사과에 농약을 뿌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라온 사람이었다.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 건 결혼을 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아내가 농약에 특히 약한 체질이라 농약을 뿌리면 다음 날 바로 앓아누웠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되는 옥수수로 생업을 바꿔봤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리고 휴식기간에 우연히 발견한 책 <자연농법>이라는 책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하지만 사과 무농약 재배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농약을 안치고 비료를 안주니 사과나무는 점점 엉망이 되어 갔고 생활은 궁핍해져만 갔다. 온종일 해충을 잡고 사과나무에 매달려도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그의 부모님은 사돈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에 아들 기무라와 의절하고 그의 밭은 주위 농가들로 부터 고립되기도 하고 생업이 안 되니 기무라는 카바레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서 까지 그를 붙든 것은 무농약 사과를 재배하겠다는 그의 열정이었다. 오로지 그에겐 그 생각밖에는 없는 듯 했다.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로 돌아가라.

끝없는 절망 속에서 기무라는 절대 포기 하지 않았다. 한 번의 큰 고비가 있었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사과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드디어 나무가 사과열매를 맺을 채비를 한 것이다. 정말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뤄낸 성과였다.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정말 감동하면 말도 표정도 잃어버리는 모양이다. 두 사람은 말 한마디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봄이라 해도 이와키 산기슭에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그 찬바람 때문이었을까, 남편의 눈에도 아내의 눈에도 어렴풋이 눈물이 어려 있었다.              p.200 

그리고 그의 사과는 판매 개시 3분 만에 매진되는 사과, 그 사과로 만든 스프를 먹으려면 1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신화를 이룩했다. 그만큼 자연그대로의 그의 사과는 맛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 맛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기무라는 그의 사과는 인간의 손이 아닌 자연이 키웠다고 말한다. 농약과 비료가 있기 전 상태의 흙과 미생물, 벌레나 새 등 생태계의 고리가 완전해 지면서 그것이 나무를 튼튼하게 하고 맛있는 사과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많은 생물들의 줄다리기가 더 많은 개체의 생물들을 만들어 내면서 밭의 생태계는 그의 땅을 더 탄력 있고 안정감 있게 만들었다.

물론, 이 책을 보고 무농약 재배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넓지 않은 텃밭의 고추나 콩, 깨에도 벌레 때문에 약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진정한 유기농 재배라니 얼마나 귀 솔깃해지는 제안인가.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기무라는 무농약 재배를 위해 끊임없는 관찰과 연구, 실험을 거듭해 왔다. 사과재배에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정말 한 길만을 걸어온 사람인 것이다.

그의 길에 사과가 있었듯이 내 길 위에도 온 힘을 다해 매달릴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보가 되면 좋아” 라는 기무라의 말은 어떤 길에도 통 할 수 있는 명언이다.  

다 읽고 나니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농약이 묻었을 까봐 사과 껍질을 기피하고 깊게 깎아 버렸던 나지만 오늘 만은 껍질 채 달콤한 사과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싶다. 내가 들고 있는 사과도 자연이 만들어낸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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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2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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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거탑>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그 드라마를 보지 못하였다.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닌데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결국 지금까지 이른 것이다. 이번에 <하얀거탑>의 대본작가가 제중원을 소재로 한 소설을 낸다는 소식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의학 드라마를 손대다 보니 그의 관심이 더 확장 되었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곧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된다니, 그의 책을 손에 들면서 <제중원>이 유명해지기 전에 원작을 먼저 본다는 괜한 자부심으로 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이 <하얀거탑>을 얘기할 때 합죽이가 되었던 날 회상하면서)

백정[白丁]이라는 신분은 조선시대 때 고기를 도살하거나 버드나무 가지로 바구니를 만드는 등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하여 멸시받았다. 대표적인 인물로 임꺽정이 있는데 어렸을 때 본 드라마에서 임꺽정의 울분을 생각하니 아직도 가슴이 아파 온다. 조선시대 때 백정은 머리도 옷도 보통 사람처럼 입을 수 없었고 예절 풍습도 남달라 그 신분을 드러내게 했다고 하니 사람으로서 참 치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겠다. 
 

<제중원>의 주인공인 황정도 백정 출신이다. 황정의 모델은 실제인물인 박서양이라 하여 날 놀라게 했는데 엄격한 조선의 신분제도에서 어떻게 백정이 학교에 입학해 의사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박서양이 태어난 시기는 조선말 격변기였다. 양학이 들어오고 서양문물이 밀어 닥치면서 굳건했던 조선의 관습들이 흔들리고 있던 시기였다. 신분보다 능력이 점점 중요시 되던 시기, 이론보다 실용을 우선하여 나아가던 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대대로 백정일 을 해온 소근개(후에, 황정이 됨)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의술에 관심을 갖고 죽음의 위기를 넘어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하면서 훌륭한 의사로 거듭난다는 것이 이야기의 큰 틀이다. 그 속엔 10여 년을 대립할 수밖에 없던 백도양과 황정이 흠모하는 유석란, 격동기의 조선의 정치상황까지 맞물리면서 독자들에게 많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고종, 명성황후, 김옥균이나, 민영익, 선교사였던 알렌, 애비슨 등 우리나라 역사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제중원>은 국사를 좋아하는 내게 다시 한 번 조선말의 흐름과 역사상황에 대해 짚어주어 흥미롭게 읽기도 했다.   
 

하지만 빠른 전개와 영웅스토리의 이야기가 큰 재미없이 전개된다는 것에 조금 실망을 했는데 요즘 사극에서 영웅스토리가 너무 전형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뺐다는 것에 점수를 더 주지만 황정이 걸어온 길이나 위기상황들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은 단면적으로 보아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인물들이 입체적이 되면 내 느낌이 달라질지도.

<허준>, <대장금>, <이제마>의 성공으로 사극에서도 의학이 많이 다뤄지고 있다. <제중원>도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 만큼 큰 성공을 이루리라 생각한다. 책을 다 덮은 지금 어서 빨리 드라마로 만들어진 <제중원>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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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1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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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그 드라마를 보지 못하였다.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닌데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결국 지금까지 이른 것이다. 이번에 <하얀거탑>의 대본작가가 제중원을 소재로 한 소설을 낸다는 소식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의학 드라마를 손대다 보니 그의 관심이 더 확장 되었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곧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된다니, 그의 책을 손에 들면서 <제중원>이 유명해지기 전에 원작을 먼저 본다는 괜한 자부심으로 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이 <하얀거탑>을 얘기할 때 합죽이가 되었던 날 회상하면서)

백정[白丁]이라는 신분은 조선시대 때 고기를 도살하거나 버드나무 가지로 바구니를 만드는 등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하여 멸시받았다. 대표적인 인물로 임꺽정이 있는데 어렸을 때 본 드라마에서 임꺽정의 울분을 생각하니 아직도 가슴이 아파 온다. 조선시대 때 백정은 머리도 옷도 보통 사람처럼 입을 수 없었고 예절 풍습도 남달라 그 신분을 드러내게 했다고 하니 사람으로서 참 치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겠다.

<제중원>의 주인공인 황정도 백정 출신이다. 황정의 모델은 실제인물인 박서양이라 하여 날 놀라게 했는데 엄격한 조선의 신분제도에서 어떻게 백정이 학교에 입학해 의사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박서양이 태어난 시기는 조선말 격변기였다. 양학이 들어오고 서양문물이 밀어 닥치면서 굳건했던 조선의 관습들이 흔들리고 있던 시기였다. 신분보다 능력이 점점 중요시 되던 시기, 이론보다 실용을 우선하여 나아가던 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대대로 백정일 을 해온 소근개(후에, 황정이 됨)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의술에 관심을 갖고 죽음의 위기를 넘어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하면서 훌륭한 의사로 거듭난다는 것이 이야기의 큰 틀이다. 그 속엔 10여 년을 대립할 수밖에 없던 백도양과 황정이 흠모하는 유석란, 격동기의 조선의 정치상황까지 맞물리면서 독자들에게 많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고종, 명성황후, 김옥균이나, 민영익, 선교사였던 알렌, 애비슨 등 우리나라 역사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제중원>은 국사를 좋아하는 내게 다시 한 번 조선말의 흐름과 역사상황에 대해 짚어주어 흥미롭게 읽기도 했다.  

하지만 빠른 전개와 영웅스토리의 이야기가 큰 재미없이 전개된다는 것에 조금 실망을 했는데 요즘 사극에서 영웅스토리가 너무 전형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뺐다는 것에 점수를 더 주지만 황정이 걸어온 길이나 위기상황들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은 단면적으로 보아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인물들이 입체적이 되면 내 느낌이 달라질지도.

<허준>, <대장금>, <이제마>의 성공으로 사극에서도 의학이 많이 다뤄지고 있다. <제중원>도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 만큼 큰 성공을 이루리라 생각한다. 책을 다 덮은 지금 어서 빨리 드라마로 만들어진 <제중원>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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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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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형제들로 인해 언제나 한 걸음 물러나야 했던 아이 오빠 공부시키고 나면 너도 꼭 고등학교 보내주마 하며 미안해하시던 어머니의 표정 지킬 수 없는 약속 줄줄이 태어나 입을 벌리던 동생들 어린 나이에 타지로 가 돈을 벌 수 밖에 없던 운명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10분의 휴식시간에서만 쏘일 수 있던 한낮의 햇살 줄지어 공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들 끊임없이 돌아가던 미싱 분주한 손길 앳된 얼굴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손바닥만한 방에 끼어 자던 여섯 명의 사람들 더운 여름날엔 땀으로 목욕하고 추운 겨울날엔 연탄 값이 아까워 서로의 팔을 붙잡고 온기를 나눴던 그들 적은 월급에서 입을 것 먹을 것 아껴 시골집으로 보내던 돈 딸을 잘 부탁한다는 숙모의 편지 한 통 늘어나는 식구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시절을 겪지 않고 살아왔다. 작가의 나이는 나보다 어머니와 가깝다. 그녀가 열여섯 서울 가는 기차에 올라 직업훈련원에 들어갔을 무렵 어머니는 이미 결혼을 해 언니를 낳았다. 내 주위에 그녀와 같은 연령으로 그녀와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난 계속해서 자문해 본다. 너는 어떻게 할래? 서른일곱 개의 방 서른일곱 개의 인생들 꿈들 그 속에서 너는 어떻게 할래? 고된 일터 나사를 박느라 분주해진 손 적은 월급 피로에 찌든 얼굴들 그들을 사람이 아닌 기계 취급하는 회사의 높으신 분들 그 안에서 넌 어떻게 할래? 라고.

외딴방을 구입한 건 몇 해 전이지만 지금껏 펼쳐 보지 못한 이유는 사실 내가 그녀의 작품을 피했기 때문이다. 자전적 소설이라니 그건 마치 타인의 방에 허락 없이 들어가 예상치 못한 것을 보리라는 예감과도 같았다. 책상 한켠에 놓여 있던 외딴방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내 시선을 한동안 붙들어 놓았다. 이젠 읽을 때가 되었을까. 난 언니가 먼저 읽고 갖다 놓은 외딴방을 들고, 언니의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책을 읽을 결심을 했다. 이번 책은 후유증이 심하지 않나보다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어서 이 무료한 고장을 떠나 도시의 큰 오빠에게 가는 상상을 하는 열여섯의 소녀. 아직은 어리고 부모님 품안에서, 그래도 굶지 않고 자라온 한 소녀가 있었다. 꿈에 그리던 상경을 했지만 조직의 생산부 라인에 들어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적은 월급을 가지고 서른일곱개 중에 하나의 외딴방에서 큰오빠와 외사촌과 살림을 꾸려 나가게 된 소녀. 책은 열여섯에서 열아홉까지의 그녀의 성장과정과 어른이 된 현재 서른둘의 그녀 이야기가 함께 진행 된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전 세대 이야기라 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느낌. 크나큰 아픔. 아마도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세상이 그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누가 이 이야기들을 남의 이야기라고 외면할 수 있을까. 이것은 나의 어머니 이야기이며 나의 언니 이야기이며 나의 친구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와도 같았다.

벗어나지 못한 아픔을 향해 빙빙 돌아가는 동안 깊은 물에 잠겨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책을 읽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런 기분을 느꼈는데 십육 년 동안 그 일들을 마음에만 담아 놓았던 작가는 어땠을까. 언제라도 툭 터질 듯, 어설프게 봉합해버린 그녀의 상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까지 참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이 열아홉에 멈춰버린 어린 그녀가 있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그녀에게 어른이 되기를 요구했고 어른이 된 그녀는 외딴방의 4년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계기는 희재 언니의 죽음. 그로 인한 관계 맺기의 두려움. 책임감. 죄책감들이 그녀 내부에서 회오리 졌지만 그 모든 감정을 묻어둔 채 잊으려고 노력한 채 그녀는 서른을 넘겨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말해버렸다. 그리고 글은 완성 됐다. 가슴 속에 살아온 희재 언니를 보내고 자신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때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이제 알았을까? 그녀에게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이제 내 가슴을 떠나 그녀가 어디로 가는 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소용돌이나 퇴적물이나 정적 속은 아닐 것이다. 내 가슴에 소망스런 다른 이야기들이 이렇게 솟아나고 있으니. (p.405)                                          

읊조리는 듯 때로는 절절하게 외치는 듯 흐르는 그녀의 랩소디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나서 며칠 잠을 설치던 날들 그런 날이 반복되는 건 아닌가 하고. 그리고 작가로서 신경숙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 이유는 그녀의 소설을 읽고 이리도 자신의 아픔처럼 앓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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