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그대로 문징이 상당히 피곤하다. 작가의 호흡을 도저히 따라 가지 못할 정도로, 한 문장에 모든것을 채워 넣으려는 과잉이 낳은 참사이다. 주제와 내용은 깊이가 있어 보이는데 작가의 부족한 - 물론 문장 자체는 길고 넘치지만 - 문장력은 내 기준으로는 수준 이하다.

 

참 신기한 것이 소설이 재미 없으니 해설/비평 또한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제빵사, 제약사도 부족해서 돌봄의 미학이라고 비평을 거침없이 몰고 가는데 뭐라고 대거리를 할 기분도 한번에 날려 버리는 대단한(?) 필력에 눈꺼풀이 무거워질 뿐이다.     

 

난 기술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구병모 작가의 '기술자의 언어' 라는 것이 영 입맛에 맞지 않는다. 박식다식하고 문제 의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좋은 소설은 아니다. 문제 의식을 어떻게 그럴싸하게 표현하고 담아내는 기술/기교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기술자의 언어'는 잘 모르겠지만 '기술자의 언어'가 해설에서 처럼 참고문헌 열람실 같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수단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난 다시 말하지만 '기술자의 언어'는 잘 모르겠고 좋은 문장력으로 서사를 속도감 있게 캐릭터를 풍요롭게 하는 '언어의 기술'을 소설에서 만나고 싶을 뿐이다.

 

작가에게 유감은 없지만 구병모 작가의 소설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인 2015-11-2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생각한 그대로가 여기 적혀 있어 놀랐습니다. 빌려서 한 편 읽고 뚜껑을 닫아버렸는데요, 그것이 정말 저만은 아니었군요.

junghoi92 2015-11-26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편만 읽는 건데... 후회하고 있습니다.
 
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유정, 믿고 읽을 수 있는 브랜드임에 틀림 없다. 정유정 작가의 문장력은 군더더기 없이 절정으로 치닫는 속도감과 긴장감이 강점이며 특히 추격이나 도주, 결투와 같은 특정한 설정에서 오롯이 빛을 낸다. 링고가 스타의 복수를 위해 박동해 (자신을 학대했던아버지 박남철이 좋아하는 개를 잔인하게 죽여 자신의 복수심을 채우려는 사이코패스) 와 한기준 (버려진 개들에게 죽음을 당한 아내와 아이의 복수심으로 스타를 죽인 구급대원)을 추격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링고를 쫓는 서재형 (과거 썰매대회에서 자신의 목숨을 위해 썰매개를 늑대의 먹이로 이용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수의사)에 대한 치밀한 서사와 간결한 묘사는 속도감 있는 작가의 문장력과 결합되어 독자들을 압도한다.

 

나는 [28]을 인간의 오만함과 잔인함에 대한 보고서로 읽었다. 우리는 당당히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이 살기 위해서라면 죄책감과 같은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이 태연하게 수천, 수만 마리의 다른 생물체 - 닭, 오리, 돼지, 소 - 들을 산체로 매장해 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생물이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오만함이다. 오만함은 잔인한 결과를 가져온다. 내가 너보다 우수하므로 너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따라야 하며, 이를 부당하게 생각하여 나에게 도전해 온다면 나는 너를 주저없이 처참하게 처단할 것이다. 너무 과장되게 단순화 된 도식일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은 이 도식을 같은 종 - 인간 - 에게도 그대로 적용해 왔다. 이 주제와는 동떨어진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가 잘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 시절 나치즘의 광기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몇몇 미친 나치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내재된 악이 현실화 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당시 독일 국민들은 나치 정권의 유대인 인종 청소나 장애인들의 학살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소설속의 화양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인수 공통 전염병의 확대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자행되는 개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처분과 화양시민들에 대한 잔인한 폭력과 학살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인수 공통 전염병이라는 공포와 광기 앞에서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힘 한번 제대로 못쓰는 무기력한 개념일 뿐이다. '화양 밖의 그들은' 자신들의 안정과 평화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화양안의 그들'에게 행해지는 부당한 폭력과 억압을 대의를 위한 불가피한 작은 희생 정도로 바라볼 뿐이다. 그러므로 '화양 밖의 그들'은 '화양안의 그들'을 애써 무시하고 외면한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종학살, 인종청소까지 자행하는 놈(?)들이니 동물에 대한 자비를 기대할 수는 없다.  내가 소설속의 화양에서 1980년대 광주를 떠올렸다면 나만의 과장된 상상일까? 아니면 내가 좌파나 빨갱이일까? 하지만 미리 말씀 드리지만 나는 국정 교과서 세대다. 그러므로 누구의 논리를 따르자면 난 결코 좌파나 빨갱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소설 [28]의 비평을 보자니 "잔혹한 리얼리티 속에 숨겨진 구원의 상징과 생존을 향한 뜨거운 갈망" 이라고 자극적인 문구가 있는 데 거듭 말하지만 난 구원이라든지 절망속의 희망이라던지 뭐 이런말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단지 나는 정유정 작가의 아래 문장에서 작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인간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그러니 구원이니 생존을 향한 뜨거운 갈망이니 뭐 이런 낯 느꺼운 말은 좀 쓰지 말기로 하자. 다시 말하지만 우리 인간은 오만하고 잔인한 놈들이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아니면 다시 도끼에 찍힌다.      

 

"살아있는 사람과 얼굴을 맞댈수 있고, 함께 일할 수 있고, 드물게 웃기도 하고 나란히 잠들 수 있었으므로. 아직은 혼자가  가 아니라는 걸 확인 할 수 있었으므로, 그녀는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홀로 미쳐가고 싶지 않았다" P3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2
조반니 베르가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주의는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데, 진실주의라.... 음.... 난감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은 작은 행운은 하나도 빠짐없이 비켜가고, 모든 어두운 운명에는 맥없이 무너지는 서양모과나무 느토리 집안의 지지리도 궁상맞고, 지리 멸렬하고, 슬프다 못해 가슴이 답답한 소설이다. 이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은 인간 욕망의 어리석음을 날 것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처음에는 욕설을, 다음에는 연민을, 종국에는 현실의 자신과 이웃의 감정과 행동의 치부를 들킨 것만 같은 수침심을 느끼게 해준다. 누군가는 [말리볼리아가의 사람들]이 어떤 운명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인간의 강한 의지와 희망의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의지, 희망 타령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꼰대들이 만들어낸 환상이자 주술이다. 파드론 느토니 할아버지의 의지와 희망은 인간의 어리석은 집착이 만들어낸 슬픈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가 이 소설에서 배울 점은 분명하다. 우리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소설이 대단히 그리고 대책없이 지루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소설이 주제가 훌륭하고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였다고 해서 문학이고 예술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 내 기억은 '김연수'라 말하는데 요즘 내 상태로 볼때 확신은 서지 않는다. - 문학은 현실을 '대놓고 예기하지 말라'고 했다. 예를 들면 '문학적 표현이란 진부한 말들을 새롭게 표현한다' 라던지 '절망보다 중요한 건 절망의 표정 및 몸짓, 그리고 절망 이후의 행동이다' 와 같은 표현들 처럼 내용에 걸맞는 형식, 곧 문장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도 오랜만에 알라딘 서재에 글을 남겨서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몇 자 끄적거리는게 내 소소한 일상의 하나가 될때 편안함을 느끼게 되니 참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니엘서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4
E. L. 닥터로 지음, 정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해설의 도움없이는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이러 저런 일로 바빠서 책 읽는 것이 자주 중단되다 보니 그런 거라고 변명도 해봤지만 사실 사고력의 부족이 진짜 이유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 자신을 속일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옮긴이의 해설을 다 읽고 나서야 [다니엘서]의 내용에 납득이 가면서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첫째, 역사는 만들어진 허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은 유동적이고 모호하다. 과거에 집착하여 친부모의 결백에 한치의 의심도 허용치 않는 수전은 현실과의 괴리를 메우지 못하고 정신이 미쳐가며 신좌파 스턴리히트의 자기 성찰 없는 과도한 이미지에 집착하여 과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태도는 공허한 냉소와 자기기만일뿐 그가 떠들어 대는 혁명과는 거리가 멀다.  

 

둘째, 아이작슨 부부의 결백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 부분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 다니엘과 수전의 공산주의자인 친부모의 체포와 감금, 그리고 사형에 대한 감정과 행동의 묘사에 감정이입이 되기 보다는 소설의 몰입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문학적 잉여로만 인식했으니.... 창피할 따름이다. 하지만 통괘한 복수의 기대를 저버리는 소설의 결말에 답답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다니엘서]는 2차 세계 대전 후 원자폭탄의 유일한 보유국이었던 강대국 미국이 소련의 공산주의 위협을 과대 평가하면서 이를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던 시기에 국가의 폭력에 희생되는 개인과 공동체의 비참한 현실을 다루지만 [다니엘서]에서 아이작슨 부부 반역죄 사건의 진실은 명료하지 않고 결과는 다중적이고 모호하다. 작가 E. L. 닥터로는 [다니엘서]에서 실제 로젠버그 사건의 역사적 진실과 소설적 허구의 모호한 경계적 관점으로 독자들에게 역사, 정치, 사회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고 분석할 수 있다. 

 

물론 역사적 진실은 정의롭지도 명료하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법적 정의는 소설속에서나 실현되는 명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소설속에서 악을 응징하는 통쾌한 복수나 정의의 실현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 소설은 현실을 판타지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 냉혹함과 비정함이 미덕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의 우파들 - 사실 진정한 우파 이념을 실천하려는 이들에게는 어중이 우파와 같이 묶이는 것이 억울하고 모욕적이겠지만 말이다 - 의 집단적 히스테리를 보자하니 때로는 유치하지만 시원한 사회적 정의의 승리를 소설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P.S. 작가의 다른 작품 [래그타임]을 꼭 읽어 볼 생각이다. 또 답답한 진실에 머리가 멍해지겠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마스 만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11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
토마스 만 지음, 박종대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술이 웬수다. 계속되는 술자리에 흐름이 계속 끊기다 보니 각 단편들 내용과 인물들이 서로 엉켜서 책을 다 읽었는데도 기억은 백화점 세일 난리통 사람들에게 막혀 허우적 되는 것 처럼 좀체럼 잡히지 않는다. 토마스 만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속절없이 허무하게 보내자니 작가에세 빚진 것 같은 미안함이 든다. 하지만 [마의 산]에서 빚을 갚겠다고 허언일 지언정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사실 토마스 만의 주인공들이 너무 심각하고 고루한면이 있고 인물들의 입체적인 사건과 대화보다 무거운 주제에 대해 일장 연설식의 단선적인 서사에 의존하는 점들에 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의 철학적 사유와 진지함에 동의하기 때문에 [마의 산]은 기대가 크다.       

 

마지막으로 이 단편선에서 [토니오 크뢰거]의 한 부분을 인용하고 싶다. 모든 단편들의 주제를 아우르는 작가의 작가론, 소설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몇 자 끄쩍여 부분 인용해 본다.

 

"작가를 정말 작가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것, 살아있는 것, 평범한 것에 대한 시민적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떄문이오... (중간 생략)..... 그 속에는 그리움과 우울한 질투, 약간의 경멸 그리고 순결한 행복이 깃들어 있다오" p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