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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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믿고 읽을 수 있는 브랜드임에 틀림 없다. 정유정 작가의 문장력은 군더더기 없이 절정으로 치닫는 속도감과 긴장감이 강점이며 특히 추격이나 도주, 결투와 같은 특정한 설정에서 오롯이 빛을 낸다. 링고가 스타의 복수를 위해 박동해 (자신을 학대했던아버지 박남철이 좋아하는 개를 잔인하게 죽여 자신의 복수심을 채우려는 사이코패스) 와 한기준 (버려진 개들에게 죽음을 당한 아내와 아이의 복수심으로 스타를 죽인 구급대원)을 추격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링고를 쫓는 서재형 (과거 썰매대회에서 자신의 목숨을 위해 썰매개를 늑대의 먹이로 이용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수의사)에 대한 치밀한 서사와 간결한 묘사는 속도감 있는 작가의 문장력과 결합되어 독자들을 압도한다.

 

나는 [28]을 인간의 오만함과 잔인함에 대한 보고서로 읽었다. 우리는 당당히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이 살기 위해서라면 죄책감과 같은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이 태연하게 수천, 수만 마리의 다른 생물체 - 닭, 오리, 돼지, 소 - 들을 산체로 매장해 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생물이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오만함이다. 오만함은 잔인한 결과를 가져온다. 내가 너보다 우수하므로 너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따라야 하며, 이를 부당하게 생각하여 나에게 도전해 온다면 나는 너를 주저없이 처참하게 처단할 것이다. 너무 과장되게 단순화 된 도식일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은 이 도식을 같은 종 - 인간 - 에게도 그대로 적용해 왔다. 이 주제와는 동떨어진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가 잘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 시절 나치즘의 광기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몇몇 미친 나치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내재된 악이 현실화 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당시 독일 국민들은 나치 정권의 유대인 인종 청소나 장애인들의 학살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소설속의 화양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인수 공통 전염병의 확대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자행되는 개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처분과 화양시민들에 대한 잔인한 폭력과 학살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인수 공통 전염병이라는 공포와 광기 앞에서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힘 한번 제대로 못쓰는 무기력한 개념일 뿐이다. '화양 밖의 그들은' 자신들의 안정과 평화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화양안의 그들'에게 행해지는 부당한 폭력과 억압을 대의를 위한 불가피한 작은 희생 정도로 바라볼 뿐이다. 그러므로 '화양 밖의 그들'은 '화양안의 그들'을 애써 무시하고 외면한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종학살, 인종청소까지 자행하는 놈(?)들이니 동물에 대한 자비를 기대할 수는 없다.  내가 소설속의 화양에서 1980년대 광주를 떠올렸다면 나만의 과장된 상상일까? 아니면 내가 좌파나 빨갱이일까? 하지만 미리 말씀 드리지만 나는 국정 교과서 세대다. 그러므로 누구의 논리를 따르자면 난 결코 좌파나 빨갱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소설 [28]의 비평을 보자니 "잔혹한 리얼리티 속에 숨겨진 구원의 상징과 생존을 향한 뜨거운 갈망" 이라고 자극적인 문구가 있는 데 거듭 말하지만 난 구원이라든지 절망속의 희망이라던지 뭐 이런말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단지 나는 정유정 작가의 아래 문장에서 작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인간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그러니 구원이니 생존을 향한 뜨거운 갈망이니 뭐 이런 낯 느꺼운 말은 좀 쓰지 말기로 하자. 다시 말하지만 우리 인간은 오만하고 잔인한 놈들이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아니면 다시 도끼에 찍힌다.      

 

"살아있는 사람과 얼굴을 맞댈수 있고, 함께 일할 수 있고, 드물게 웃기도 하고 나란히 잠들 수 있었으므로. 아직은 혼자가  가 아니라는 걸 확인 할 수 있었으므로, 그녀는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홀로 미쳐가고 싶지 않았다"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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