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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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

 

[세계는 평평하다]고 떠들어 대는 토머스 L. 프리드먼, 그리고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의 힘을 믿는 순진한 독자들에게 장 지글러는 이념이나 사상에 기댄 선동적인 혁명가가 아닌, 인본주의적 사회학자로서 자신을 경험을 차분하게 독자들에게 들려 준다. “세계는 기아와 빈곤으로 인하여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과 행복 할 권리가 심하게 침해 받고 있으며 이는 부유한 북반구의 세계 지상주의자들과 다국적 기업들의 가난한 남반구 국가들의 과도한 재화 독점과 불공평한 부채 때문이다.”

 

장 지글러의 글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양심적인 지식인지를 금 새 알 아 볼 수 있다. 그가 종종 보여주는 저열한 자본주의 거대 다국적 기업에 대한 분노와 적의도 어디까지나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만과 사랑에 다름 아니다.

 

또한 장 지글러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좌파 지식인이다. 물론 그를 좌파 지식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모호 할 수도 있지만 그의 모국 스위스에서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경력을 볼 때 큰 무리는 아닐 듯싶다. 그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제국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이슬람권의 성전주의자들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얼핏 보면 그를 이도 저도 아닌 양비론자라고 혼동할 수도 있지만 자국에서도 진정한 공감을 받지 못하는 테러리스트들이 사라지지 않고 연명할 수 있는 자양분은 다름 아닌 서구 제국들의 구조적 폭력이라고 진단하는 부분에서 이런 불필요한 오해는 사라지게 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논리에 신뢰감과 타당성을 주기 위해 통계 수치를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영리한 학자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하는 원인은 부당하고 과도한 대외 부채 때문이다. 지금도 빈곤과 기아에서 벗어 나지 못한 나라

들의 공통점은 과도한 부채로 인하여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활 개선과 의료, 교육 서비스에 투자 될 자본이 채권국으로 유출되

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며 부채는 단지 채권국의 탐욕스런 다국적 기업들의 이윤 보장과 이에 결탁한 채무국 권력

집단의 부패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 장 지글러에게 세계 지상주의자들은 그다지 영양분이 없는 국가의 외채는 탕

감해 주기를 거부하면서, 부자나라(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의 부채는 추악하다 (따라서 갚지 않아도 좋다)’고 말

하는 뻔뻔한 위선자일 뿐이다.

 

그럼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건들을 조목조목 하나하나 따져보자.  

 

장 지글러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 세계2위 채무국이자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던 브라질에서 노동자 출신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주도하는 혁명적 실험에 대해 비판적 지지는 현 시점에서 성공 그 이상이다. 연임 이후 퇴임을 바로 앞두고 그에 대한 브라질

국민들의 지지도는 87% 였고 지금의 그의 정치적 후계자인 지우마 후세포 대통령이 그의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몬산토의 유전자 변형 구호 식품을 거부하는 잠비아 입장을 지지했던 장 지글러는 미국의 분노를 사게 되는 데 이 부분

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물론 미국이 기아 국가들에게 구호 식품을 지원 하는 것이 전적으로 인도주의적 차원이 아닌 자국의 잉

여 농산물을 사들이는 일종의 보조금 지원 정책의 근본적 동기가 숨어 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양심

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용기는 대중의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만 지원국에게만 순수한 동기와 수혜자들을 100프로 만족하는 절차

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유구로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적 실험이나 저항의 시도 없이 처음부터 무작정 현실과

타협하는 작금의 현황은 장 지글러 같은 융통성 없고 때로는 대책 없는 원칙주의자 아니 이상주의자들을 그립게 한다.

 

마지막으로 1차 농산품 수출에 의존하는 대부부분의 가난한 국가들을 더욱 가난하게 하는 것은 다국적 식품 기업들의 경제적 동기에서 강제 된 수출위주 집약적 농업 때문이다.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건설의 첫 번째 동기는 값싼 식량 자원 및 천연 자원의 확보에 있었다. 예를 들어 커피가 유럽 세계로 전해 지면서 기호 식품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안정된 공급량에 의한 가격 안정을 위해 아프리카, 남미의 농업 구조는 외세에 의해 커피 농장 (라티푼티움) 위주로 인위적으로 개편 되었고 당사국은 식량 주권을 상실한 채 정작 자신들의 소비생활과는 전혀 상관 없는 작물 재배로 오히려 넓은 경작지를 갖고도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든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하여 미국형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환상은 완전히 깨졌고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세계 지상

주의자들의 탐욕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민중들의 분노는 작년 월가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 는 대대적인 시위로

폭발하였다. 안타깝게도 시위대는 모멘텀을 잃으면서 흐지부지 흩어져 버렸지만 99% 보통 사람들의 1% 거대 금융 자본의

탐욕과 부패에 대한 반발은 다시 한번 장 지글러의 다시 연대만이 희망이다 만이 실천적 대안임을 입증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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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를 다 읽었다. [빼앗긴 대지의 꿈],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함께 세계의 빈곤과 기아에 대한 그의 3부작을 마무리 지었다. 지금 당장 리뷰를 하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고 주말에 좀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 책을 되새김질하고 싶어 요즘 되지도 않게 일어나는 글쓰기 욕심을 잠시 미뤘다. 

 

하지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 나는 장 지글러 만큼 인도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전문성이 탁월한 지식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단언컨데 그의 책은 현 시대의 청소녀들과 젊은이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이다. 

 

P.S: 어는 진보 성향의 유명 경제학자 한 명이 자신의 스테디 셀러를 절판하면서 그 이유을 부조리한 사회에 행동하지 않는 젊은이에 대한 깊은 실망으로 들었다는 신문기사를 최근에 우연히 보게 되었다. 참 뭐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기사를 보고, 지식인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중/민중에 대한 선민의식에는 진보나 보수나 별 다름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제학자가 쟝 지글러의 한 저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니...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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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의 ‘How to Read’ 16권 전집을 드디어 구매했다. 알라딘에서 품절이라서 인터파크에서 구매했는데 일단 뿌듯하다. (고맙게도 알라딘에서 정보를 얻었다.) 내가 16권을 모두 읽을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저 번처럼 오늘 내일 미루다가 50% 할인 행사를 완전히 놓칠까 봐 눈 딱 감고 신용 카드를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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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 전집 5
밀란 쿤데라 지음, 백선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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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전집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일단 지르고 본 6권 중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삶은 다른 곳에], 그리고 이 번의 [웃음과 망각의 책]까지 총 4권을 읽었다. [웃음과 망각의 책]은 ‘정치섹스’ (또는 사랑) 라는 일관 된 주제를 철학적 사유와 예술적 은유로써 유려하게 풀어 내는 밀란 쿤데라 소설의 특징이 잘 반영된 소설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총 7부로 구성된 [웃음과 망각의 책]은 각 부마다 다른 등장 인물과 인과성 없는 독립적인 이야기 전개로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적지 않게 당황스럽게 했다. 물로 이는 저자의 의도적인 구성 이었겠지만 나는 작가의 의도를 전혀 해석하지 못했고, 그 결과 다른 작품들에서와 같은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이 책에 대한 리뷰는 다음 기회에 미루고자 한다.

 

솔직히 말해서 밀란 쿤데라 소설 4권을 연속적으로 읽다 보니 그의 소설들 간의 상호 연계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점도 있었지만 오히려 비슷한 내용들로 머리 속이 뒤죽박죽 엉켜 버리는 단점도 있어 당분간은 그의 소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물론 곧 다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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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전집 3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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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밀란 쿤데라 소설은 이념섹스의 문학이다. 이 두 개념은 권력이라는 교차로에서 서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므로 밀란 쿤데라 소설은 정치적으로 해석됨이 당연하지 않을까? 

 

주인공 야로밀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 언정 [농담]의 루드비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토마시처럼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이며, 여자 - 정확히 말해서 여자의 육체’ - 탐닉하는 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야로밀은 좀 다른 구석이 있다. 그는 다른 소설의 주인공들보다 심한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고 수컷 본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강하다. 야로밀은 자신의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과장된 남자다움의 자의식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찌질한 어린이 - 밀란 쿤데라는 집단적 이념의 광기에 휘둘리는 젊은이들을 의미할 때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번역본에서) 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야로밀도 그림으로, 그 다음에는 문학으로() 초현실주의적 예술적 재능을 보이며 주위에서 기대와 자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성장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천재 소년이었다하지만 야로밀은 공산주의 혁명이 가져온 격동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낙관적인 시대 정신에 도취되어 교조적주의자로 변절(?)하게 되며 대학생 여자 친구와 그 이후 빨간 머리 점원 아가씨와의 섹스라는 구체적 행위를 통하여 상대방을 자기 의지 대로 조정하고자 하는 권력관계에 탐닉하게 된다. 그는 문학적으로도 어린 시절 천재성을 인정 받았던 초현실주의를 부르주아 예술로 매도한 채, 공산주의 이념에 전도되어 예술적 가치가 전혀 없는 단지 민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시 창작에만 몰두 하면서 자신의 천재성을 소모하게 된다. 깊은 곳까지 곪아 버린 야로밀의 비뚤어진 자의식은 급기야는 여자 친구에 대한 질투심으로 완전히 터져 보리고 결국에는 여자 친구 오빠의 밀입국 시도를 경찰 친구에게 밀고 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역설적이게도 소설이 후반부로 넘어 가면서 야로밀에 대해 증오보다는 동정과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나는 밀란 쿤데라가 지금 시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잔인성과 순진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그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빠진 젊은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야로밀에 대한 연민 또는 용서는 그의 죽음으로 가능한 것이지 만약 결말과 다르게 그가 죽지 않았다면 [농담]의 제네마크 처럼 젊은이들에게 겉만 번지르한 새 포장으로 위장한 이념’ 상품을 팔고 있는 속물적 지식인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삶은 다른 곳에]에서 야로밀 만큼 비중이 크고 그의 인생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주는 인물

임에는 틀림 없으나 매력이 있거나 개성이 있는 입체적인 인물은 아니다. 또한 밀란 쿤데라가 야로밀 이외의 모든

주위 인물을 이름없이 직업 (화가), 관계 (어머니), 외모 (빨간머리), 신분 (대학생)로만 지칭했던 것이 다른 인물을

패스(?)하는 그럴듯한 변명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솔직히 고백 하건데 자비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P.S. 1949년 체코 프라하와 1968 프랑스 파리 시위대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삶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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