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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른 곳에 ㅣ 밀란 쿤데라 전집 3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역시 밀란 쿤데라 소설은 ‘이념’과 ‘섹스’의 문학이다. 이 두 개념은 ‘권력’이라는 교차로에서 서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므로 밀란 쿤데라 소설은 정치적으로 해석됨이 당연하지 않을까?
주인공 야로밀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 언정 [농담]의 루드비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토마시처럼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이며, 여자 - 정확히 말해서 ‘여자의 육체’ - 에 탐닉하는 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야로밀은 좀 다른 구석이 있다. 그는 다른 소설의 주인공들보다 심한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고 수컷 본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강하다. 야로밀은 자신의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과장된 남자다움의 자의식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찌질한 어린이 - 밀란 쿤데라는 집단적 이념의 광기에 휘둘리는 젊은이들을 의미할 때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번역본에서) 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야로밀도 그림으로, 그 다음에는 문학으로(시) 초현실주의적 예술적 재능을 보이며 주위에서 기대와 자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성장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천재 소년이었다. 하지만 야로밀은 공산주의 혁명이 가져온 격동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낙관적인 시대 정신에 도취되어 교조적주의자로 변절(?)하게 되며 대학생 여자 친구와 그 이후 빨간 머리 점원 아가씨와의 섹스라는 구체적 행위를 통하여 상대방을 자기 의지 대로 조정하고자 하는 ‘권력’ 관계에 탐닉하게 된다. 그는 문학적으로도 어린 시절 천재성을 인정 받았던 초현실주의를 부르주아 예술로 매도한 채, 공산주의 이념에 전도되어 예술적 가치가 전혀 없는 단지 민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시 창작에만 몰두 하면서 자신의 천재성을 소모하게 된다. 깊은 곳까지 곪아 버린 야로밀의 비뚤어진 자의식은 급기야는 여자 친구에 대한 질투심으로 완전히 터져 보리고 결국에는 여자 친구 오빠의 밀입국 시도를 경찰 친구에게 밀고 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역설적이게도 소설이 후반부로 넘어 가면서 야로밀에 대해 증오보다는 동정과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나는 밀란 쿤데라가 지금 시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잔인성과 순진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그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빠진 젊은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야로밀에 대한 연민 또는 용서는 그의 죽음으로 가능한 것이지 만약 결말과 다르게 그가 죽지 않았다면 [농담]의 제네마크 처럼 젊은이들에게 겉만 번지르한 새 포장으로 위장한 ‘이념’ 상품을 팔고 있는 속물적 지식인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삶은 다른 곳에]에서 야로밀 만큼 비중이 크고 그의 인생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주는 인물
임에는 틀림 없으나 매력이 있거나 개성이 있는 입체적인 인물은 아니다. 또한 밀란 쿤데라가 야로밀 이외의 모든
주위 인물을 이름없이 직업 (화가), 관계 (어머니), 외모 (빨간머리), 신분 (대학생)로만 지칭했던 것이 다른 인물을
패스(?)하는 그럴듯한 변명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솔직히 고백 하건데 ‘자비에’ 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P.S. 1949년 체코 프라하와 1968 프랑스 파리 시위대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삶은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