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목가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8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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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를 읽는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고 하니 소설 속 스위드 (시모어) 만큼이나 혼란 스럽고 절망 스럽다. 우리는 무당이 저쪽은 광대가 나라를 다스리니 내가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으로 얻어진 모든 믿음이 무너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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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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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테판 츠바이크'  라는 이름에 어느 순간부터 끌리기 시작했다. 이 분의 책을 한번도 읽어 보지 못했지만 다른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름인 걸로 봐서 꽤 괜찮은 작가가 아닐까 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읽자고 마음 먹고 나면 이 분의 책들이 대부분이 전기 작품이라 지루하지 않을 까 걱정이 되서 주저하곤 했는데 마침 [어제의 세계]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가 아닌 본인의 이야기라고 하니 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절대 쉬운 책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맘에 든다. 이 책은 한 개인에 대한 신변 잡기 글이 아니다. 츄바이크는 1881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942년 브라질에서 사망했다. 태어나고 죽은 해도 심상치 않고 장소는 더더욱 흥미롭다. 츄바이크는 유럽이 왕정, 제국의 근대의 끝자락에서 민주, 공화정의 현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제국주의와 국가사회주의 재앙인 양대 세계 대전으로 좌절하고 좌초하는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것도 범인이 아닌 천재로서, 거기다 유대인으로서 말이다.

 

츠바이크는 어린 시절 근대 유럽 왕정 시대를 평범하기 그지 없는 수준 낮은 세계로 치부하면서 자신들만의 - 빈에 거주하는 유대인 천재들 - 예술적 교양과 문학적 소양을 고양시키는데만 열중 했다. 하지만 여러 유럽 지식인, 문학인들과 교류 하면서 청년 시절의 치기와 열정을 작별하고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성찰한 후에 보다 깊은 학문의 세계로 매진 하게 된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에서 유럽의 분열과 탐욕을 경험하고 2차 세계 대전 직전 유럽의 폭력과 광기 - 물론 독일 나치, 히틀러 - 그리고 부질없는 희망과 무지 - 영국, 오스트리아와 같은 유럽 국가들 - 에 실망한 나머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버리고 일본이 진주만 폭격 직 후 부인과 함께 타국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책에서 슈테탄 츠바이크는 절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참여 문학인이나 진보적 사상가가 아니다. 그는 단지 순수 학문의 열정과 창조의 희열을 추구 했던 천재였고 예술인 었다. 예민한 감수성과 순수한 영혼의 소지자였기 때문에 자신과 자신의 국가, 그리고 유럽, 세계 전체에 들여오는 국가사회주의의 폭력과 공포를 감당 할 수 없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삶과 그가 만난 여러 작가, 화가, 음악가, 지위자등의 예술인과의 교류 보다는 그가 살 아온 유럽의 시대 상황과 역사가 더 흥미롭고 인상 적이 었다. 나의 단편적인 생각의 편린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의 유럽 연합은 양대 세계 대전의 역사적 경험의 반성과 성찰에서 만들어진 정치 공동체이어야 한다. 단순히 영국의 탈퇴 문제를 경제적 문제로만 국한되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유럽은 개별 강대국들의 탐욕과 욕망으로 두 번 씩이나 페허가 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유럽 연합이라는 정치적 공동체를 유지해야만 한다.     

 

둘째, 지금의 독일 주도의 유럽 연합은 위험해 보인다. 지금은 독일이 난민 문제에 총대를 메고 있지만 슈테판 츠바이그가 지적하고 있듯이 독일은 질서와 안정을 사랑, 아니 집착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난민 문제로 인한 무질서가 커질 경우 엉뚱한 곳에서 극단적인 우파 - 국가사회주의의 악령이 살아 날 수도 있다 - 의 결집을 가져 올 수 도 있기 때문이다. 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극도의 혼란과 무질서에 등장한 히틀러와 이에 환호한 독일 국민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충분히 과거사를 반성했고 현재는 충분히 극단적인 세력이나 사상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유럽 연합의 모든 주도권을 독일이 가지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내 생각은 전혀 근거 없고 쓸데 없는 생각일 수 있지만 하여튼 난 반대다.

 

셋째, 마지막으로 '국가' '민족' 이라는 는 매우 위험한 단어다. 과거 독재 국가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욕망을 위한 폭력과 억압의 면죄부로 '국가'와 '민족'을 앞세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개인) 는 더 이상 국가나 민족의 불명확한 개념의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 슈테판 츠바이크이 삶이 이를 증명한다.

 

넷째, 유태인은 똑똑한 사람이 많다. 물론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섯째, 슈테판 츠바이크는 멋진 이름이지만 너무 어렵다. 한글로 발음하기도 쓰기도 어려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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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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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책 읽다 눈물 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정말 좋은, 아니 훌륭한 책이다.

 

첫째, '죽음' 이라는 민감한 의사로서 가지는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 그리고 독립성의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감동적이었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전 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유한한 생명의 한계를 넘어 설 수는 없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숙명 앞에서 의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의 고민과 성찰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둘째, 단순한 치료 대상으로서의 '환자'가 아닌 '인간'에 대한 따듯한 관점을 가진 의사를 만나게 되서 반갑고, 놀랍고. 존경스럽고, 부럽다. 나는 평생 지들이 모든 걸 알고 있으니 환자는 입 닥치고 있으라는 '권위적인' 의사와. 책에서 처럼 선택지라도 줄 수 있는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정보 제공형' 의사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TV에 나와 얄팍한 의학 지식을 팔아대는 '장사꾼형' 의사들 말고는 만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툴 가완디'는 꼭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다. 물론 저자의 학력을 보니 좋은 대학교는 다 거쳐온 것 같은데, 특히 스팬퍼드 졸업하고. 옥스퍼드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나서, 하버드대에서 의학 박사를 받았다고 하니 평생 독서실에서 죽어라 수능 공부만 하다 의대 간 '평범(?)한 수재"  대한민국 의사들과는 비교가 안되겠으나 철학과 윤리학을 공부한 걸로 봐서 저자의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세째, 완치가 불가능하고 생명 연장이 불투명한 미래 가치 보다는 현재의 고통을 줄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다 편안한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는 현재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완화 치료'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예전에 TV 다큐에서 - 서울대 아동병원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지는 자신이 없다 - 본 완화 치료 의사의 완치가 불가능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어린 환자들 앞에서 의사로서 느끼는 무력감에 괴로워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남은 여생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기 위해 고군 분투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데 '완화 치료' 분야가 하루 빨리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80이 넘어 암치료를 받으시는 어머니가 계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이 반성하고 부끄러웠다. 앞으로 어머니의 삶이 얼마너 더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담당 의사도 모를 것이고 그닥 관심도 없을 것이다.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 지를 생각해 보면 참 한심스럽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인생의 책이다. 저자가 직접 경험하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들은 의사로서의 해박한 지식과 착한 사람이 갖는 따듯한 마음과 시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로서의 뛰어난 글 솜씨가 서로 버무려 져서 오롯이 빛난다.

 

이 책은 나를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 가지 바람만 남았다. 앨리스 할머니, 루 할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분들 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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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 결정적 1%, 사소하지만 치명적 허점을 공략하라
리처드 H.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 / 리더스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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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진화심리학이나 행동 경제학과 같은 책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수학적 이론이나 형이상학적 뜬구름에 집착하는 대신 주제나 소재가 현실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이 책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은 저자 리처드 탈러가 매 장마다 강조하고 있듯이 고전 경제학의 이론 에만 존재하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 '이콘'이 아닌 실수와 오류 투성이인 '인간'의 관점에서 경제적 현상, 선택, 그리고 행동을 설명하려는 행동 경제학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을 진단하는 경제 대중서이다.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책이다. 물론 수학이라면 더하기 기호 하나만 봐도 자동적으로 식은 땀이 나는 원조 식포자로서, 경제학자인 저자가 아무리 쉽게 풀어 썼다고 해도 수학적인 사고 자체가 불가한 나에게는 결코 쉬운 경제한 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애초부터 초등학생이 경제학 개론 리포트를 쓰는 것 만큼이나 무모한 짓이므로 시원하게 접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문화 사대주의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미국 대학 교수들의 끊임없는 연구, 논문 욕심과 집단적 지성에 바탕을 둔 공동 연구 노력은 우리의 천박한 학계와 비교해 봤을 때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서 서로 공통된 관심을 가진 교수들은 끊임없이 서로 교류하고 공동의 관심사를 연구 결과물로 만들어 내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서로를 독려하고 자극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 교수들은... 도데체 뭘 하고 있는지... 부끄러운 우리의 이성과 지성의 모습이다.  쉬운 예를 들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적인 명문대 출신의 석학들은 끊임없이 그들만의 학계를 위한 전문적인 논문은 물론이고 일반인을 위한 대중서 출간도 소흘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소위 명문이라 일컫는 SKY 대학 교수들 중에 몇 년 동안 교정본 한번 내지 않는 본인들 수업에나 쓰이는 교재 말고, 우리가 기억할 만한 책 한권이라도 출판한 저자들이 있는 지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스럽게도 전무하다시피 하다. 어떤 사람들은 교수는 연구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교수 (가르치는 기술) 법도 중요하다고 하겠지만 대학을 나온 한 사람으로서 교수법이 인상적이었던 교수님들이 기억에 없어서 그닥 공감도 가지 않고, 만약 고등교육 수준에도 학원이 있었으면 아마 대다수 학생들은 강의를 대부분 빼먹지 않았을 까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대답이다.

 

나도 언젠가는 우리 학자들 - 특히 강의실에서 똥폼 잡거가 선거철에 TV 나와서 썰 푸는 교수님들 - 이 쓴 이해가 쉬우면서도 유익한 교양 서적을 읽고 싶다. 서점에 먼지만 쌓여 가는 정치학이나 사회학 대중서처럼 솔직히 썰로 풀어 간 것 말고 좀 실험도 하고, 그럴듯한 통계 자료도 제시함으로써 실증적인 근거와 논리적 사고가 결합한, 형식적 완결함과 내용적 충실성을 갖춘 책다운 책을 꼭 만나고 싶다. 혼자서는 절대 안된다. 부탁 하건데 우리 지성계의 똑똑하다는 교수님들. 제발 혼자서 잘난체 하지 마시고 서로 연락도 하고 세미나도 하면서 공통 관심사에 대해 교류하고 연구도 같이 하면서 판을 키워 가심이 어떠 하실지 조심스럽게 제안 드립니다. 물론 안하시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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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매트 타이비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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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는 좋은 책이다. 방대한 자료와 현장 인터뷰에 기초한 탄탄한 기획 취재가 인상적이다. 특히 장점은 저자가 발로 뛰어 취재한 사건의 현장감이다. 솔직히 나는 우리 나라 기자들이 쓴 현장감 있는 저널리즘을 경험 해 본 적이 없다. 진보, 보수에 상관 없이 그들의 저서들은 대부분 시중에 떠도는  "~카더라" 통신에서 크게 벗어 나지 못하는 음모론이나, 아니면 일방적 자기 주장이나 연설과 별 반 다르지 않다. 만약에 내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 하시는 분이 계시면 좋은 책 한권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현재 미국 자본주의 문제의 핵심은 바로 '불공정함'이다. 법과 정책은 '가진자' 들에게 관대하고 '못가진자' 들에게는 엄격하고 무자비하다. 클린턴 정부 시절 급격한 금융 서비스에 대한 신용 완화와 전반적인 경제 규제 완화는 부의 부유층 집중을 심화시킨 반면 빈곤층의 복지 부정 수급에 대한 단속과 처벌은 강화되었고 빈곤층의 삶은 더욱 힘들어 졌다. "샌디에이고에서는 1달러를 속이는 건 범죄이지만, 월스트리트에서 1백만 달러를 속이는 건 그냥 훌륭한 사업 수완일 뿐이다" 라는 말을 사회적 푸념만으로 치부하기에는 현실적 인식이 정확하고 설득적이다. 또한 미국 행정부와 사법부는 월스트리로 대표되는 투자 은행들의 부도덕한 탐욕이 가져온 2008년 금융 위기의 책임을 합의금이라는 명목하에 형사적 처벌을 면제해 주고 사법적 정의는 슬그머니 포기해 버린다.

 

미국 행정부화 사법부는 탐욕에 눈이 먼 투자 은행의 명확한 범죄 행위가 모두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에 경제와 고용에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핑계로 유온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궁극적으로는 기소유예 및 불기소 처분으로  봉합해 버렸다. 하지만 다시 한번 미국 정부가 유색인종, 불법 이민자, 빈민 계층의 생계형 범죄나 폭행, 절도와 같은 사소한 일탈에는 과도한 사법적 잣대를 들이 대는 이중적 모습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불공정함' 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현재와 같은 심각한 수준의 불공정함이 개선 되지 않을 경우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 할 것이다. 나는 지금 행동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의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을 읽고 있는 데, 여러 실험에 참가한 피실험자들이 상대방의 불공정한 또는 불균형적인 이익을 인지했을 경우, 자신의 이익의 일부를 희생하면서까지 '공정함' 을 실현하고자 하는 공통된 행동 패턴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전체 1만원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3천원을 제안할 경우, 상대방의 제안이 불공정하지만 내가 그 제안을 수락하면 나에게도 3천원 만큼의 이익이 되므로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제안자들의 불공정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상대방도 어떤 이익도 취할 수 없는 경우의 수, 즉 상대방의 제안을 거절한다.  

 

아직 2016년 한 해가 다 가지는 않았지만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는 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서 분명히 다서 손가락 안에 드는 책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이런 행운이 다시 나를 찾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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