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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매트 타이비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는 좋은 책이다. 방대한 자료와 현장 인터뷰에 기초한 탄탄한 기획 취재가 인상적이다. 특히 장점은 저자가 발로 뛰어 취재한 사건의 현장감이다. 솔직히 나는 우리 나라 기자들이 쓴 현장감 있는 저널리즘을 경험 해 본 적이 없다. 진보, 보수에 상관 없이 그들의 저서들은 대부분 시중에 떠도는 "~카더라" 통신에서 크게 벗어 나지 못하는 음모론이나, 아니면 일방적 자기 주장이나 연설과 별 반 다르지 않다. 만약에 내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 하시는 분이 계시면 좋은 책 한권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현재 미국 자본주의 문제의 핵심은 바로 '불공정함'이다. 법과 정책은 '가진자' 들에게 관대하고 '못가진자' 들에게는 엄격하고 무자비하다. 클린턴 정부 시절 급격한 금융 서비스에 대한 신용 완화와 전반적인 경제 규제 완화는 부의 부유층 집중을 심화시킨 반면 빈곤층의 복지 부정 수급에 대한 단속과 처벌은 강화되었고 빈곤층의 삶은 더욱 힘들어 졌다. "샌디에이고에서는 1달러를 속이는 건 범죄이지만, 월스트리트에서 1백만 달러를 속이는 건 그냥 훌륭한 사업 수완일 뿐이다" 라는 말을 사회적 푸념만으로 치부하기에는 현실적 인식이 정확하고 설득적이다. 또한 미국 행정부와 사법부는 월스트리로 대표되는 투자 은행들의 부도덕한 탐욕이 가져온 2008년 금융 위기의 책임을 합의금이라는 명목하에 형사적 처벌을 면제해 주고 사법적 정의는 슬그머니 포기해 버린다.
미국 행정부화 사법부는 탐욕에 눈이 먼 투자 은행의 명확한 범죄 행위가 모두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에 경제와 고용에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핑계로 유온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궁극적으로는 기소유예 및 불기소 처분으로 봉합해 버렸다. 하지만 다시 한번 미국 정부가 유색인종, 불법 이민자, 빈민 계층의 생계형 범죄나 폭행, 절도와 같은 사소한 일탈에는 과도한 사법적 잣대를 들이 대는 이중적 모습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불공정함' 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현재와 같은 심각한 수준의 불공정함이 개선 되지 않을 경우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 할 것이다. 나는 지금 행동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의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을 읽고 있는 데, 여러 실험에 참가한 피실험자들이 상대방의 불공정한 또는 불균형적인 이익을 인지했을 경우, 자신의 이익의 일부를 희생하면서까지 '공정함' 을 실현하고자 하는 공통된 행동 패턴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전체 1만원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3천원을 제안할 경우, 상대방의 제안이 불공정하지만 내가 그 제안을 수락하면 나에게도 3천원 만큼의 이익이 되므로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제안자들의 불공정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상대방도 어떤 이익도 취할 수 없는 경우의 수, 즉 상대방의 제안을 거절한다.
아직 2016년 한 해가 다 가지는 않았지만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는 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서 분명히 다서 손가락 안에 드는 책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이런 행운이 다시 나를 찾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