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짚어도 한 참 잘 못 짚었다. 유머, 풍자라니 이 소설에는 가당치도 않는 단어 들이다.

 

김연수의 [원더 보이]는 외친다. 우리는 그대들의 고통에 미안하고 감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는 참지 않을 것이다. 리뷰는 엄두도 나지 않고 솔직히 최근에 읽은 김연수 소설중에 제일 어렵고 공감이 울리지 않는다.

특히 난 우주, 지구 뭐 이런 거대한 지식의 담론에 대한 관심은 커녕 소화할 수 있는 깜냥이 되 지 못한다.

 

내일 다시 복기( )시작이다. 밤 하늘이라도 쳐다 보면 답이 나오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김연수의 [원더보이]의 첫 느낌은 의외였다. 김연수 작가에게 이런 유머 감감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아직 100페이지도 읽지 못했지만 작가가 작심하고 정치적 풍자 소설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등장 인물들의 유머, 특히 권대령의 그 진지함에서 나오는 코미디는 우리의 현실과 그리 멀지 않아 보여 쓴 웃음과 동시에 해장이 덜 된 속쓰림을 가져왔다. 

 

속도감이 있는 소설이라 토요일쯤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원더 보이의 활약성에 기대를 가져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김연수의 [세상의 끝 여자 친구] 리뷰를 쓰는 데 그것도 글이라고 잠을 설쳤더니 (사실은 중간에 한번 19층에서 내려가 담배 2대를 연달아 피기까지 했다, 제대로 작가 놀이 했다)

 

오늘 하루 종일 멍하다. 하지만 나른하고 편안한, 마치 어린 시절 옆집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친구 침대에서 스르르 잠이 든 것처럼, 뭐 그런 싫지 않은 느낌이라는 말이다. 

 

오늘은 회식이 있어서 안되고, 내일은 숙취와 여독으로 역시 건너 뛰어야 할 것 같고, 천상 목요일이나 되야 김연수의 최신작 [원더보이]를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다. 벌써부터 기분이 묘한 게 길에서 우연히 대학 동창을, 나는 알지만 상대방은 내 존재를 전혀 모르는 여자 동창을 만날 것 같은 기분이다. 서로 대충 아는 사이여서 형식적으로 이런 저런 궁금하지도 않은 근황을 물어 보는 것 보다는 이 경우가 가슴이 두근거리던 기억에 '내 가슴이 아직 뛰긴 하는 구나' 라는 안도감으로 기분이 좋을 듯 싶다. 

 

김연수와 안녕을 고하면 다시 밀란 쿤데라의 [불멸] [느림]이 기다리고 있다. 그 이후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은 아닐 것 같다. 소설을 더 읽으면 이 세상에서 과거나 미래로 너무 멀어질 것 같아서 두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먼저 이 글을 쓰기 전에 신형철의 해설을 읽고 나서야 어는 정도 이 단편들을 이해할 수 있었음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한다. 그의 해설이 아니었으면 나는 여기에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거나 그저 인상적인 몇 문장을 옮겨 적는 것으로 이 소설을 이해한 양 허세를 부렸을 것이다.

 

우선 [모두에게 복된 새해 레이먼드 카버에게] 을 읽기 전에는 레이먼드 카버라는 이름에 호기심이 들었고

다 읽고 나서는 이 단편이 레이먼드 카버와 어떤 연결성이 있는 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역시나 나의

구세주(?) 신형철의 해설을 읽고 나서야 이 단편이 김연수가 직접 번역한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에 바치는

오마쥬임을 알 수 있었다. 더 한심한 것은 이 책이 떡하니 내 책장에 꽂혀 있었다는 사실인데 사실 한 번 읽었던

책이라고 해서 그 내용을 다 외우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위로는 커녕 머리속의

지우개에 한없이 자리를 내주고 있는 내 브레인에 다시 한번 경외감을 느꼈을 뿐이다. 그래서 [대성당]다시

한번 읽어 봤는 데 주인공인 가 눈을 감고 아내의 친구 맹인 사실 나는 이 단어가 정치적으로 정당한

(Politically Correct) 표현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문학적 표현이겠지만 일상 생활에서

는 이 단어보다 시각장애인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과 손을 잡고 대성당을 그리는 장면

은 이 단편의 코끼리 그림과 같이 나의 방식이 아닌 상대방의 감각으로 소통하려는 공감의 순간을 감동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그리고 두 소설에서 아내에게 속마음까지 털어 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성 친구(맹인과 사트비

르 싱)가 있다는 설정은 아내와 나의 정서적 거리감을 상징하며 주인공 내가 아내의 남자 친구를 불편해하는

정당한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존재 자체가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아내의 남자 친구와 내가 소통 할

수 있다는 것은 독자에게 주인공 내가 아내에게 다가 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할 수도 (‘대성당’) 있고 아내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 (‘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몬드 카버에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의 끝 여자 친구] 는 공룡과 같은 시기에 살았었다는 메터세쿼이아가 현 시대에 우리와 같이 공존한다는

것은 우리의 좋았던 기억들이 기적적으로 다시 현실로 다가올 지 모른다는, 아픔과 고통을 느낀 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낙관성을 보여주며,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는 과거 극한의 절망과 동시에 완고하고도

멍청한 확신 20대 청춘들이 지금 서른쯤에 바라보는 용산의 불꽃은 두려움, 분노, 그리고 연민이며 이는 기억

을 공유하는 동시대인을 구별하는 암호 같은 것이라고 독자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은 김연수의 모든 소설이 천착하는 소통의 문제로 고통과 슬픔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적이

나 특정한 삶의 순간에 나만이 느꼈다고 생각 했던 뭔가를 또 다른 누군가가 봤으리라고 짐작하는 일은 기이하면

서도 따뜻한 경험임에 틀림 없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달로 간 코미디언역시 소통이 중요한 사건의 원인이

자 해결의 단서로 우리 삶은 보여지고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실제로는 그 중간 중간의 침묵과 암흑의 순간

에 빛과 어둠, 열기와 서늘함, 고독과 슬픔이라는 삶의 진리가 숨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또 한번 엉터리 같은 리뷰이지만 김연수 소설은 이 세상에 가 아닌 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나' 혼자만

아프고 외로운 것은 아님을, 그래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또 살아 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치는 것 같다.

 

뜬금 없는 소리지만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과 같이 수록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꼭 추천하고

싶은 단편이며 같은 선상에서 정이현 작가의 [삼풍백화점]도 같이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도 다시 한번 읽어

보고, 기회가 되면 이 두 작품을 비교해서 예쁜 글 하나 쓸 수 있는 기적(?)이 일어 난다면 올 봄은 행복했다고

기억 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끝내고 나서 오늘은 중단편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다 읽었다.

이제 [원더보이]만 남았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 이 작가 참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한 참혹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지만 끝까지 삶과의 소통을 위해 '사랑'

이라는 낙관성을 버리지 않는 그의 소설에 전폭적인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 된 단편 소설들은 해석이 쉽지 않아 다시 한 번 복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역시

'신형철'이라는 특출한 문학 평론가 - 본인이 김연수의 팬임을 숨기지 않는 - 의 해설은 김연수 문학 세계의

훌륭한 안내서가 될 듯 하다. 두 사람의 글솜씨는 우리 말 아름다움의 앞에 서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