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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어느 겨울동화 ㅣ 세계문학의 숲 12
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김수용 옮김 / 시공사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하인리히 하이네 (1797-1856), 참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니 하이네는 괴테와 버금가는 독일의 위대한 낭만적 시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풍자, 유머, 위트의 수단으로 그 당시의 봉건적 잔재가 남아 있던 독일 사회를 비판하고, 개인과 언론의 자유를 옹호한 정치적 풍자시를 썼던 이상주의적 사상가로도 유명했다고 하니 다재다능한 지식인음에 틀림 없다. 이러한 하이네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예술적 ‘재능’과 현실정치 참여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책에 수록 된 [독일, 어느 겨울 동화]와 [아타 트롤, 한 여름밤의 꿈] – 물론 그 당시 독일의 급진적인 진보주의 성향의 평론가들로부터 재능은 있지만 성격 (이념)이 결여된 시인이라고 비난 받았다고 하지만 말이다. – 이다.
[아타 트롤, 한 여름밤의 꿈]과 [독일, 어느 겨울 동화]가 쓰여진 1842-1844년 독일은 나폴레옹 몰락 이후 빈 회의 (1814) 체제에서 39개 느슨한 동맹국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 된 ‘하나의 독일’ 즉 독일제국에 대한 민족주의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을 때이다. 나폴레옹은 독재적 정복자임에는 틀림 없었으나 그가 의도 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그의 정복 활동은 서유럽에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권리 정신을 전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프랑스 혁명 이전 구체제로의 회귀를 인위적으로 주도했던 빈 체제는 사회학적으로는 보다 많은 ‘자유’를 요구하는 신흥 부르주아지 계급과 구 봉건 계급 (왕족, 귀족, 교회)과의 충돌을, 지정학적으로는 강력한 ‘통일’ 국가를 꿈꾸는 후진적 봉건 제후 국가 (독일, 이탈리아)와 기존 강대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간의 갈등으로 해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하이네는 후진 봉건 제후 국가의 신흥 부르주아 지식인이라는 완벽한 조합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을 읽어 보면 하이네는 ‘자유’는 강력하게 옹호 했지만 ‘통일’에 대해서는 반동적 복고주의만큼이나 위험한 이데올로기로 치부한다.
자유에 대한 옹호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신화/꿈을 넘나들며 황제, 귀족, 종교에 대한 조롱과 풍자로 끝없이 이어진다. 하이네가 빈 체제의 결정적인 동요를 가져온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 정신에 전도되어 진보적 지식인에 대한 검열과 감시가 강화된 독일을 떠나면서 그는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범유럽적이고 범세계적인 인간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하지만 하이네를 포화 속에도 홀로 깃발을 들고 전진하는 혁명가로 오해하지는 말자. 하이네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촌 여동생을 사랑했고 자연과 꿈과 신화를 동경했던 시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이네가 자유를 옹호하고 숭배했을 망정 유치하고 직설적인 비예술적 경향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이네가 프랑스 망명 시절에 급진적인 혁명론과 인간의 개성을 무시하는 획일화된 사회주의 사상에 회의를 가졌다고 하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급격하고 과격한 진보적 또는 혁명적 이론이나 운동에는 반감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예술가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특징은 [아나 트롤, 한 여름 밤의 꿈]에서 잘 나타나 있는 데 인간을 적대시하는 곰 아나 트롤은 인간의 개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이고 급진적인 공화주의자/사회주의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느낌이 동의와 비판이 섞인 애증의 복합된 감정이라면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과 혐오는 분명하다. 특히 통일에 대한 반감, 정확이 말하자면 통일을 빌미로 타민족과 자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혐오는 [독일, 어는 겨울 동화] 24장에서 강하게 표현 되어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국심을, 그것이 가진 모든 궤양과 함께,
과시하고 다니는 천민 무리들,
그들이 나는 정말 혐오스럽다오.” (p132)
반면 같은 책 12장에서 그는 ‘늑대’로 비유되는 과격한 진보주의자들에게 자신을 변절자로 매도하지 말라고 자신도 같은 동지라고 호소한다.
“나는 양이 아닙니다. 나는 개가 아닙니다.
궁중 고문관도 아니고 대구도 아닙니다.
나는 늑대로 남아 있습니다. 내 심장도
내 이빨도 늑대의 것입니다.” (P69)
처음 첫 장을 넘겼을 때의 내 첫 마디는 “소설이 아니었어?” 였다. 다시 한번 나의 무식함을 확인할 수 있는 발견 이었지만 (이젠 너무 잦아서 발견이라기 보다는 습관에 가깝지만…) 그것보다 난감했던 점은 나는 시를 읽지 않는 다는 거였다. 그냥 책을 덮을까 하다가 그래도 한 번 읽어 봐야 하겠단 생각에 시작한 게 단숨에 해설까지 읽어 버렸다. 시 라는 느낌 보다는 소설이나 희곡을 보는 것 같았고 재미있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시에서 언급되는 독일, 프랑스 역사, 정치, 사회적 배경이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를 찾아 보는 재미도 솔솔 했다. 혁명, 공화국, 나폴레옹, 왕정복고, 다시 혁명, 공화국, 제국으로 반복되는 반동과 전복의 유럽의 역사를 다시 한번 정리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하이네를 하나의 기준으로 정확히 평가 할 수는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너무 재능이 많아서 외롭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보수, 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서운함을 또 한편으로는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끝내 혁명의 선을 넘지 못한 이유를 그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라는 신분적/계급적 한계 보다는 그의 세련되고 우아한 예술적 재능에서 찾고 싶다. 그에게 공산주의/사회주의는 투박하고 촌스러운 프로파간다로 보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