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마일즈 헬러는 10대 시절 의붓형 바비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친아버지 모리스 헬러와 새어머니 윌라
파크스의 집을 나와 7년 동안 자학에 가까운 떠돌이 생활을 전전하다 플로리다에서 고등학생 소녀 필라
산체스와 사랑에 빠져 다시 한번 삶애 대한 애착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마일스의
순진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마일스는 필라의큰언니 안젤라 로부터 미성년자인 자기 동생과의 사랑 –
물론 섹스가 문제겠지만 – 을 빌미로 금품 요구와 폭력의 협박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자 선택의 여지 없이
감옥행을 피하기 위해 또다시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된다.
마일스의 뉴욕으로의 도피는 아이러니 하게도 파산, 빚, 가압류 등으로 버려진 폐가를 무단 점유하고 있었던
친구들과의 동거로부터 시작된다. 폐가에서의 생활이 역설적인 이유는 플로리다에 마일스의 마지막 직업이
파산, 빚, 가압류 등으로 버려진 폐가들을 청소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폐가에 남아있는 물건들을 죄의식 없이
훔치던 탐욕스러운 동료들과는 다르게 마일스는 주인들이 소중하게 사용했음이 틀림없는 하지만 지금은 쓸모
없이 버려진 물건들을 사진 속에 담으면서 자신의 인생의 패배의 고통과 상처를 곱씹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폐가에서의 생활이 역설적인 궁극적인 이유는 마일스가 “제 아무리 깨끗하게 꼼꼼히 치워도
패배의 악취를 지우지는 못한다” (P9) 와 같았던 버려진 집들이 인생의 낙오자요,패배자들한테는 세상에 대한
저항의 연대의식의 장소요, 저마다의 삶에 대한 욕망을 되살리는 터전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우선 현재의 마일스를 과거의 마일스와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 고리였던 빙 네이선의 최대 고민은 마일스
앞에만 서면 성적으로 흥분되는 당황스러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었지만 제이크 – 앨리스의 옛 남친
- 와 하룻밤 테스트(?)로 자신이 이성애자라는 사실에 안도감(?)과 동시에 마일스에 대한 외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평생 비밀로 간직하기로 다짐한다.
자신의 다소 뚱뚱한 외모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앨리스 버그스트롬은 연인 제이크와의 소원해진 관계를
자신의 외모 떄문 이라 생각하는 나약한 여자이면서,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해]에 대한 박사 논문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있던 다소 폐쇄적이었던 여성이었지만 펜클럽에서전세계적으로 정치적인 이유로 핍박 받는
반체제 작가들을 지원하는 일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고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던 남자친구 제이크와
만남을 정리하면서 – 그들이 헤어진 진짜 이유는 제이크의 성 정체성의 회복(?) 에 있지만 앨리스가 평생
모르는 게 속 편할 것이다. - 저술가로서의 꿈에 더욱더 매진하게 된다.
스무살 가정교사 시절 열여섯 남학생과의 불장난으로 인한 임신 중절과 자살 시도 이후 자신의 신체 일부 –
특히 성기 – 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외설적인 데생에 침잠해 있던 엘런 브라이스에게 삶의 의지를 회복하게
하는 처방약은 다름 아닌 지금은 멋진 성인으로 성장한 그 시절 어린 남학생을 다시 만나 사랑 – 물론 섹스 –
에 빠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좀 뜨악 했지만 뭐 다시 생각해 보면 세 친구 중에 엘런이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정상적인 삶으로의 귀환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세 친구는 이 소설의 조연으로 중요한 갈등의 축은 주인공 마일스 헬러, 아버지 모리스 헬러, 그리고
새어머니 윌라 파크스간의 관계이다. 물론 친어머니 메라-리-스완도 포함시킬 수 있겠지만 내 관점으로
그 여자는 모든 갈등의 원인이 되는 사건, 곧 바비의 죽음과 직접적인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단지 헬러 부자의
관계의 특수성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배경 정도의 인물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특히 마일스와 모리스의 부자 관계, 모리스와 윌라의 부부 관계는 가족에 대한 사랑, 증오, 이해, 화해의 과정을
꾸밈 없이 담담하게, 과장 없이 차분하게 다루고 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는 (모리스) 그녀 (필라)가 얼마나 어린지 듣고 질겁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고
나서 아들이 그 나이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만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의 삶은 중도에 멈추어 제대로
자연스럽게 성장하지 못했다. 겉보기에는 다 자란 성인 남자일지라도 내적 자아는 열여덟 살과 열 아홉 살
어딘가 쯤에 머물러 있다.” (P299)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장으로 모리스의 아들 마일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가
진하게 묻어 있으며 마일스의 모든 행동과 사고가 바비의 죽음 후 집을 나갔을 당시의 나이에 멈추어 있다는
탁월한 문학적 해석을 집약해 주고 있는 문장이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가족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작품이다. 하지만 중요한 다른 주제는 인생은 결코
만만하거나 녹녹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마지막 문장이 [선셋 파크]의 모든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 믿는다.
퇴거 명령을 집행하는 경찰과의 갑작스러운 몸싸움이 경찰 폭행으로 까지 예기치 않게 흘러가면서 간신히
회복했던 것처럼 보였던 마일스의 인생은 다시 한번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328)
역자 송은주씨는 이 문장을 비록 미래에 대하 희망은 걸지 않는 것에는 변함 없지만 과거와는 달리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지금 현재만을 살기로 결심한 마일스의 내적 변화의 새로운 시작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마지막 문장의 마일스는 그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소설
첫머리의 마일스로 다시 돌아가는 첫 시작을 암시한다고 해석하고 싶다.
“7년 동안의 그가 뭔가 이룬 것이 있다면 현재를 사는 것, 지금 여기 말고는 생각하지 않는 이와 같은
능력이었다.” (p10)
역자의 해석과는 반대로 마일스는 폐가를 정리하고 버려진 것들의 사진을 찍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일스가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항상 현재화 하여 자신을 감정의 극단까지 몰아 붙이던 삶으로, 필라와의 사랑,
친구들과의 연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가족과의 재결합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게 허락되는 것처럼 보였던 일상의 행복이 마일스에게 쉽게 열리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도 마일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자신만의 인생의 무게에 눌려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지만
요즘 유행어처럼 희망은 일종의 고문일 수도 있다. 그냥 사는 것 차제가 우리의 삶의 목표일 것이다.
그 어떤 고통과 상처도 무의미하지 않다.
행복은 환상이므로 이제부터라도 행복이 목적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