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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 2009 제9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2009 황순원 문학상은 2008. 7월부터 2009. 6월까지 발표된 단편을 대상으로 하여 선정된다.
이번에는 최종심에 오른 10편의 작품중에서 박민규의 <근처>가 선정되었다.
무슨무슨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것은 언제나 그 기분이 남다르다. 한 작가의 작품만을 묶은 것이 아닌 한 해에 가장 우수하다고 인정받아 선별된 작품들이 골고루 실린 것이니 회로 친다면 모듬회라고나 할까. 한 때는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상으로 거론되는 작품들을 거의 훑어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잊고 지냈다. 이번에 2009 황순원문학상 작품집을 계기로 책꽂이를 샅샅이 살펴 보니 2001 제1회 황순원문학상 작품집이 버젓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이 9회째인 황순원문학상은 마춤맞게 나를 독자로 하여 쓰여졌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박민규의 <근처>를 읽으면서 난 지난 추석의 만남을 떠올렸다.
모처럼 초등학교 시절 동창생 12명이 모였던 그 자리.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둑한 뱃살, 몇 개의 주름, 그리고 군데군데 흰머리를 훈장처럼 온 몸에 달고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즐거워했던 그 자리는 그러나 마냥 즐겁기간 했던 시간은 아니었다. 두 명의 친구가 암과의 투병중이라는 말, 그 중에 남자 동창생은 박민규의 <근처>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싱글인 채 위암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순임'은 아니었지만, 정말 그 동창생을 두 팔 가득히 껴안아주었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추억할 거리가 많아지는 나이의 우리에겐 나의 포옹이 그와 나, 모두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고 믿는다.
작가는 딱 나와 같은 연배이다. 이 상을 수상하고 한 인터뷰에 이런 말이 있었다.
"문화라는 게 유행이 아닌데, 너무 빨리 변해서 요새는 마치 유행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소설은 그림으로 치면 석고 데상과 같은 거랄까요.가장 기본적인 툴로 쓴 거죠.음악으로 치면 클래식인데, 만약 나이 든 양반들 다 돌아가시면 앞으로 이런 소설을 누가 쓸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뭔가 지킬 것도 많지 않을까, 늙은이들 얘기하는 작가도 있어야죠, 모두가 판타지 쓸 때."
박민규,라는 작가가 요즘 세대에게 매우 많이 어필하는 작가라고 알고 있었다. 기회가 닿지 않은 탓도 있지만, 바로 그 점이 그의 작품을 욕심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는데, 막상 그의 인터뷰를 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나는 아직 늙은이도 아니고, 요즘 감성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사람도 아니지만, <근처>같은 류의 소설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주인공 호연은 시골동창들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후, 서울에서 성공한 회사원이다. 사십대 초반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일에 바져서 살다가 어느날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고향으로 내려 온다. 이미 살기 위한 어떤 시도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병은 깊었지만,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호연은 하루하루를 고향마을에서 살아가는 친구들과의 만남과 지난 삶을 반추하는 시간, 그리고 무심심한 시간으로 보낸다.
'나는 혼자다. 혼자인 것이다. 찾아 나설 아내도 없다. 설사 네 명의 자식이 있다 해도 나는 혼자일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문득 혼자서 혼자를 위로하는 순간이다. 삶도 죽음도 간단하고 식상하다. 이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이 세계가 누구의 것도 아니란 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는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이쪽은 죽음...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누구인가 ?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에서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39p-
그 혼자였던 시간속에서 동창생 순임의 손길이 잠깐의 위안과 무료함속에 기쁨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허나 그것도 잠시. 다시 담담히 자신에게 주어진 냉정한 삶과 마주하는 호연.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삶속에서는 혼자일 수 밖에 없음을 알아가는 시간의 연속선, 그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외로워하지도 그렇다고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타인을 부러워하지도 말 일이다. 삶은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주어진 신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수상작 <근처>에 대한 단상이 너무 길었으나, 이 외에도 후보작들의 작품들 또한, 좋았다.
여성들이 깊이 공감할 강영숙의 <그린란드>, 차별과 상실의 아픔을 그린 김경욱의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또 다른 죽음을 얘기를 다룬 김숨의 <간과 쓸개>, 소통의 오해를 다룬 김애란의 <너의 여름은 어떠니>, 제목과 소재 모두 인상적인 김중혁의 <C1+y=:[8]:>, 오랜만에 접한 은희경의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외국어학원을 꼬집은 전성태의 <이미테이션>등은 우리나라의 현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되어 주었다.
10편의 단편들을 만나는 시간들은 참 알찼다. 우리 문단의 현재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더불어 나의 현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소설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을 이 작품집은 충분히 해 주었고, 그 역할은 이제 2010년 황순원문학상 작품집을 기다리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