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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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우스 브로드는 미국 남부 캐롤라이나 주의 한 거리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 거리에는 미국 남부의 최고 상류층만이 살고 있고,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와 품위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두 가지의 말로 압축할 수 있다. 그것은 '친구와의 변치 않는 우정'과 '미국 남부를 관통하는 문화'이다.

미국 남부출신이라는 자부심과 그들만의 개성있는 표현으로 우정을 가꾸고 지켜가는 10명의 굴곡있는 스토리의 전개는 매우 흥미진진하게 두권의 책에 담겨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주제들은 팻 콘로이라는 저자의 문체속에서 더 화려하게 빛을 낸다.

시종일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니면 공격인지, 친화의 표현인지 헷갈리는 그들만의 우정어린 대화는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1969년 블룸스데이에 의도하지 않았으나 거대하고 대항할 수 없는 우연한 힘에 의해 만나게 된 10명의 주인공. 형의 자살로 인해 내면에 깊은 상처를 간직한 레오 킹, 그의 앞집으로 이사온 아빠에 대한 공포와 상처를 지닌 쌍둥이 남매 시바 포와 트레버 포, 고아원에서 만난 나일즈 화이트헤드, 스탈라 화이트헤드 남매, 베티 로베티, 풋볼 코치의 아들이자 동료가 되는 아이크 재퍼슨, 그리고 사우스 브로드 거리의 명망있는 가문 출신의 채드워스 러틀레지와 프레이져 러틀레지 남매, 몰리 허거.

이들은 인종도 다르고, 계급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지만, 여러 이유로 페닌슐라 고등학교에서 만나고 이후 깊은 우정으로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물론, 이들은 깊은 우정을 나누기까지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공유하기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소설은 1969년과 1989년의 찰스턴을 번갈아면서 넘나들며 스토리를 전개한다. 

채드워스와 몰리, 아이크와 베티, 나일즈와 프레이져, 레오와 스탈라는 커서 서로 부부가 되고, 이들은 관계는 서로 인척관계로 얽히게 되어 우정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굳건하게 연결된다.

헐리우드에서 여배우로 이름을 날리는 시바가 찰스턴을 방문하면서 이들의 성장후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채드워스는 명실공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상류층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고, 레오 또한 아침마다 신문을 장식하는 칼럼리스트가 되어 있다. 아이크와 베티는 경찰이 되어 있으며, 특히 아이크는 경찰서장으로 취임한다. 천애고아 산골소년이었던 나일즈도 교육자로서 상류층의 사위로서 그 자리를 잡고 있다. 모임때마다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줬던 트레버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에이즈에 걸린 채 실종된다. 시바는 친구들에게 오빠를 같이 찾자고 부탁하게 되고, 트레버를 찾는 과정에 함께 하면서 이들의 우정은 더 깊어진다. 십대 시절만큼 순수하게 서로의 운명을 하나로 여기며 여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마흔을 앞두고 있던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중간 점검하게 된 것이다. 시바는 헐리우드에 염증을 느껴 고향에 정착하고자 하나, 변태소아성애자이며 전과자인 아버지에게 끔찍하게 살해된다. 채드는 결혼생활의 일탈을 하게 되고, 몰리는 잠시 레오에게 다가온다. 레오는 자신의 상처로 끝없이 방황하는 스탈라와의 결혼으로 인해 본인의 삶까지 고통속으로 내몬다. 그리고 어느날, 스탈라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크와 베티 부부, 프레이져와 나일즈 부부의 모습은 이 모임의 중심을 잡아 준다.

이들은 각자 태어난 출신과 속한 세상이 달랐지만, 서로의 삶과 모습을 인정해주고 긍정해 준다.

채드의 경쟁적인 본성, 베티의 어머니다운 면, 나일즈의 보호자같은 모습, 레오의 신파적인고 감상적인 면, 몰리의 우아하고 배려깊은 모습, 아이크의 위엄있고 듬직한 리더의 모습, 프레이져의 따뜻한 성실한 면, 시바의 여신같은 모습, 트레버의 예술가적인 면 등...

그 안에서 이들의 아름답고 견고한 우정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미국 남부 사우스 브로드 거리에 휴고라는 이름의 허리케인이 불어오고, 이 태풍으로 계급과 인종을 생각하면 결코 한 자리에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자들이 저녁을 함께 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거기에는 페닌슐라 고등학교 출신의 10명의 우정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기에 가능한 사건이었다. 저자는 모든 상처와 아픔을 성숙하게 이겨낸 주인공들의 모습을 찰스턴의 아름다운 배경을 중심으로 매우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삶에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운다. 소설에서 내가 배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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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 2009 제9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2009 황순원 문학상은 2008. 7월부터 2009. 6월까지 발표된 단편을 대상으로 하여 선정된다.

이번에는 최종심에 오른 10편의 작품중에서 박민규의 <근처>가 선정되었다.

무슨무슨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것은 언제나 그 기분이 남다르다. 한 작가의 작품만을 묶은 것이 아닌 한 해에 가장 우수하다고 인정받아 선별된 작품들이 골고루 실린 것이니 회로 친다면 모듬회라고나 할까. 한 때는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상으로 거론되는 작품들을 거의 훑어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잊고 지냈다. 이번에 2009 황순원문학상 작품집을 계기로 책꽂이를 샅샅이 살펴 보니 2001 제1회 황순원문학상 작품집이 버젓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이 9회째인 황순원문학상은 마춤맞게 나를 독자로 하여 쓰여졌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박민규의 <근처>를 읽으면서 난 지난 추석의 만남을 떠올렸다.

모처럼 초등학교 시절 동창생 12명이 모였던 그 자리.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둑한 뱃살, 몇 개의 주름, 그리고 군데군데 흰머리를 훈장처럼 온 몸에 달고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즐거워했던 그 자리는 그러나 마냥 즐겁기간 했던 시간은 아니었다. 두 명의 친구가 암과의 투병중이라는 말, 그 중에 남자 동창생은 박민규의 <근처>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싱글인 채 위암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순임'은 아니었지만, 정말 그 동창생을 두 팔 가득히 껴안아주었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추억할 거리가 많아지는 나이의 우리에겐 나의 포옹이 그와 나, 모두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고 믿는다.

작가는 딱 나와 같은 연배이다. 이 상을 수상하고 한 인터뷰에 이런 말이 있었다.

"문화라는 게 유행이 아닌데, 너무 빨리 변해서 요새는 마치 유행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소설은 그림으로 치면 석고 데상과 같은 거랄까요.가장 기본적인 툴로 쓴 거죠.음악으로 치면 클래식인데, 만약 나이 든 양반들 다 돌아가시면 앞으로 이런 소설을 누가 쓸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뭔가 지킬 것도 많지 않을까, 늙은이들 얘기하는 작가도 있어야죠, 모두가 판타지 쓸 때."

박민규,라는 작가가 요즘 세대에게 매우 많이 어필하는 작가라고 알고 있었다. 기회가 닿지 않은 탓도 있지만, 바로 그 점이 그의 작품을 욕심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는데, 막상 그의 인터뷰를 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나는 아직 늙은이도 아니고, 요즘 감성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사람도 아니지만, <근처>같은 류의 소설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주인공 호연은 시골동창들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후, 서울에서 성공한 회사원이다.  사십대 초반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일에 바져서 살다가 어느날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고향으로 내려 온다. 이미 살기 위한 어떤 시도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병은 깊었지만,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호연은 하루하루를 고향마을에서 살아가는 친구들과의 만남과 지난 삶을 반추하는 시간, 그리고 무심심한 시간으로 보낸다.

'나는 혼자다. 혼자인 것이다. 찾아 나설 아내도 없다. 설사 네 명의 자식이 있다 해도 나는 혼자일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문득 혼자서 혼자를 위로하는 순간이다. 삶도 죽음도 간단하고 식상하다. 이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이 세계가 누구의 것도 아니란 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는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이쪽은 죽음...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누구인가 ?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에서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39p-

그 혼자였던 시간속에서 동창생 순임의 손길이 잠깐의 위안과 무료함속에 기쁨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허나 그것도 잠시. 다시 담담히 자신에게 주어진 냉정한 삶과 마주하는 호연.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삶속에서는 혼자일 수 밖에 없음을 알아가는 시간의 연속선, 그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외로워하지도 그렇다고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타인을 부러워하지도 말 일이다. 삶은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주어진 신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수상작 <근처>에 대한 단상이 너무 길었으나, 이 외에도 후보작들의 작품들 또한, 좋았다.

여성들이 깊이 공감할 강영숙의 <그린란드>, 차별과 상실의 아픔을 그린 김경욱의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또 다른 죽음을 얘기를 다룬 김숨의 <간과 쓸개>, 소통의 오해를 다룬 김애란의 <너의 여름은 어떠니>, 제목과 소재 모두 인상적인 김중혁의 <C1+y=:[8]:>, 오랜만에 접한 은희경의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외국어학원을 꼬집은 전성태의 <이미테이션>등은 우리나라의 현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되어 주었다.

10편의 단편들을 만나는 시간들은 참 알찼다. 우리 문단의 현재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더불어 나의 현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소설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을 이 작품집은 충분히 해 주었고, 그 역할은 이제 2010년 황순원문학상 작품집을 기다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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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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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랄 때는 만화 좋아하는 아이=공부 못하는 아이, 라는 등식이 성립하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양서만을 사주기에도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이기도 했으니 만화책을 만나기란 교육상,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이웃의 친구에게 놀러갔다가 친구의 서울 친척들이 선물로 보내주는 <어깨동무>같은 잡지속에서 만나는 주먹대장, 꺼벙이, 독고탁, 강가딘 류의 만화를 가뭄에 단비처럼 만났을 뿐이었다.
아, 그리고 또 있었다.
관에 근무하시던 아버지 덕택에 집에는 신문이 배달되었는데, 중앙지와 지방지가 각각 1부씩이었고,
4칸으로 구성되어 신문에 실린 쪽만화를 즐겨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고바우'씨인데, 당시 집에서 조선일보를 봤었기에 내 기억을 정확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초등 고학년때 한권으로 제대로 된 두꺼운 만화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미 사춘기 시절을 훌쩍 지나버린 맨 위 서열의 두 오빠가 어디서 사왔는지도 모를 박수동의 고인돌 만화였다.
오빠들이 킥킥거리며 읽고 던져둔 그 만화책을 그야말로 오빠들 몰래 순식간에 읽느라고 얼굴까지 붉히며 가슴은 콩닥거리고,,, 이제 와 돌이켜보니 당시 고인돌만화의 내용이 어린아이가 읽기에는 다소 선정적이어서 더 그랬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 보면 나도 꽤 조숙했다. 고인돌 만화의 내용을 거의 다 이해했으니 말이다.
<내 인생의 만화책>에서는 나의 탄생 이전부터의 만화에서 현재까지의 우리나라 만화 전반에 대한 내용을 통사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으로 발간된 <내 인생의 만화책>은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 만화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우리나라 만화사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1940, 50년대의 코주부에서 시작한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는 당시 시대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면서 다양한 캐릭터가 명멸했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긴 캐릭터들은 여러 단계의 변화를 거치면서 아기공룡 둘리,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이 사회에서 하위문화였던 만화의 지위가 당당히 영상산업의 차원으로 격상하게 된다.
이제 만화 좋아하는 아이는 공부 못하고 문제가 많은 학생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닌, 문화의 한 역할을 담당해내는 만화매니아들로까지 양산되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만화를 학습의 방법으로까지 응용하여 접목해낸 만화학습시리즈물은 아주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출간되어 있고, 또한 그 시장과 인기 매우 높을 것을 볼 때, 참으로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소개되는 만화의 캐릭터들은 만화를 굳이 찾아가며 읽지 않았던 나도 거의 알아볼 만큼 친근하고 유명했던 캐릭터들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이제나 저제나 나올까 중고등시절 심취했던 순정만화의 캐릭터들이 보이지 않은 점이었다.
그래도 나의 삶의 이력속에 점점히 박혀 있던 숨은 보석을 발견한 것마냥 만화사에 거론된 캐릭터와의 뜻밖의 조우는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책을 계기로 한국만화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우리나라 만화관련 산업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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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속삭여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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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떠날 너에게 <런던을 속삭여 줄게>

 

노래가사같기도 하고, 아름다운 시어같기도 한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제목의 여행기이다.

'속삭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달콤하고 왠지 은밀하다.

웅변이라는 말하기의 형태가 대중이라는 많은 수의 청중을 필요로 한다면, 속삭임이라는 말하기의 형태는 눈맞추며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단 하나의 그를 요구한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속삭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사람에게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시작할 때쯤이면 홍수처럼 여행서가 출간되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그런 출판계의 풍경도 점점 사라지는 거 같다.

올 여름에 이미 나는 파리,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그리고 런던까지, 총 4권의 해외여행서를 만나봤다. 그런데, 겨울을 앞두고 있는 이런 쓸쓸한 늦가을에 다시 런던을 말하고 스페인을 얘기하는 책들이 여전히 서점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정혜윤이 속삭여 주는 런던이 굳이 궁금하지도 그렇다고 꼭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큰 외침이 아닌 그 속삭임이 메아리처럼 가슴에 남았다고 해야 할까?

제목이, 그리고 저자의 이름 석자가 내 뇌리에 박혀서 떠나질 않는다. 결국, 난 이 책을 집어들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난 이 책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런던이 아니었다. 그것은 독서광들에게 열렬히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정혜윤의 글솜씨를, 그녀만의 글세계를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컸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제목은 미처 기억하지 못해도 아직 만나보지 못한 정혜윤의 책은 <침대와 책>,<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을 보면, 그녀는 이미 인지도면에서 많이 노출되어 있는 작가임은 틀림이 없다.

과연 남다른 그녀의 인지도와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평범한 런던여행기와는 차별된다.

여행기에서 친절히 말해주는 맛집이라든가, 운송수단 등의 얘기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런던을 얘기해주는 그 안의 숨겨진 우리네 삶의 단면을 속삭여주는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꿈꾸게 하는 그런 독특하고도 그녀만의 섬세한 속삭임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은 그녀의 독서력이었다. 아니,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그녀의 독서력의 흔적을 한 10분의 1쯤 들여다본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렸을 적 꿈이 천일야화에 나오는 세에라자드라는 그녀의 말이 정말 실감이 났다. 그녀가 우리에게 속삭여 주는 런던의 이야기와 그와 연관된 무궁무진한 이야기는 밤이 새도록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이 글을 그녀는 아직 런던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 언젠가는 런던에 갈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들, 런던에 가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 런던에 가지는 못해도 런던을 좀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한다. 그리고 또 고백한다. 어쩌면 런던은 핑계일 수도 있다고. 나와 함께 런던에 가지 못한, 유달리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밤 창가에 날아든 밤새가 그런 것처럼 귀에 대고 속삭여주는 심정으로 썼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정혜윤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는 말이 맞겠다. 사랑이라는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 정혜윤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의 발간은 매우 반가운 선물이 되어줄 거 같다. 그녀만의 독특한 여행기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개인적으로는 그녀만의 향기를 온전히 향휴하기 위해서는 독서에 관한 내공이 좀 더 필요하겠단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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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인디스토리 엮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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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작년 한해는 '미친소'가 만들어낸 바람이 우리나라 전역을 휩쓸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고 올 초에 개봉된 독립영화 한 편이, 정작 기획하고 만든 당사자들도 감히 예측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워낭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온 이 영화속의 등장하는 다 늙어빠진 황소 한 마리가 우리에게 안겨준 것은 '미친소'에게서 받았던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충분히 위로해줄 만한 것이었다.

개봉된 이후, 각종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워낭소리 신드롬'이라고 칭해질 만큼 널리 회자되던 시절에도, 시내영화관에서는 이미 영화가 내려졌고 그 이후에도 미처 보지 못하여 아쉬움이 가득한 사람들을 위한 시민문화회관에서의 무료관람 현수막이 붙어 있을 때도, 일하는 직장의 학생회가 학내시설 문화홀에서 상영한다고 했을 때도 난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 모든 것을 지독한 그리움속에 안타깝게 마주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여전히 목적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군상들 속에서 나 또한 방향도 없이 한없이 밀려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이다. 영화가 이렇게 책으로까지 나올 줄은 몰랐고, 미처 대책을 세우지 못한 나는 속절없이 책의 공격에는 당할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워낭소리>에서 내가 아프게 인지한 것은 '고향'이다. 그것은 현실의 고향이기도 하고, 이상의
고향이이기도 하며, 유년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워낭소리>에서 그려지는 고향은 서로의 탯줄 끊은 자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쩜 그리고 내 어릴 적 고향마을과 흡사하던지..눈물이 난다. 절로...
내남없이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의 모습은 한가지의 형태로 그려진다. 그리고, 고향과 함께 강조되는 것은 '동행'이다. 함께 가는 것.  하나의 생을 완성하는 길에 서로 의지하며 함께 가는 존재의 의미. 그 가치를 말해준다.

 

책에서는 영화 <워낭소리>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뒷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이충렬 감독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그리고 싶었고, 열심히 일만 하며 자식들에게 헌신하던 모습, 우직함, 무뚝뚝함 같은 것들이 소와 닮았다고 생각한 감독은 2000년부터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의 소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의 농촌을 뒤졌고, 드디어 2004년 겨울에 경북 봉화군 산정마을에서 최원균할아버지와 그의 동행 털북숭이 거북이같은 소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와 소의 삶과 죽음, 그리고 노동을 1년 동안 기록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기획안에 대한 문제제기, 제작자 구하기, 의사소통의 어려움, 제작비 여건상의 장비부족, 등등.

그리고 그런 어려움속에서 그들이 표현해낸 것은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 건져올리듯 안타깝게 끌어올린 것은 바로, 이 시대 아버지에 대한 것, 잊혀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다.

 

중간에 제작사도 바뀌고, 방송에 부적합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는 작품이 관객 300만명 동원이라는 기적같은 감동으로 이어진 것은 그만큼 작금의 시대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필요로 하는 각박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다르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흘린 감동의 눈물만큼,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 만큼, 우리의 마음 한켠에 여전히 나란히 손잡고 동행하는 삶을 실천하려 하는 고향하나 갖고 있으리라 믿고 싶어지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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