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인디스토리 엮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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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8년, 작년 한해는 '미친소'가 만들어낸 바람이 우리나라 전역을 휩쓸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고 올 초에 개봉된 독립영화 한 편이, 정작 기획하고 만든 당사자들도 감히 예측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워낭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온 이 영화속의 등장하는 다 늙어빠진 황소 한 마리가 우리에게 안겨준 것은 '미친소'에게서 받았던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충분히 위로해줄 만한 것이었다.

개봉된 이후, 각종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워낭소리 신드롬'이라고 칭해질 만큼 널리 회자되던 시절에도, 시내영화관에서는 이미 영화가 내려졌고 그 이후에도 미처 보지 못하여 아쉬움이 가득한 사람들을 위한 시민문화회관에서의 무료관람 현수막이 붙어 있을 때도, 일하는 직장의 학생회가 학내시설 문화홀에서 상영한다고 했을 때도 난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 모든 것을 지독한 그리움속에 안타깝게 마주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여전히 목적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군상들 속에서 나 또한 방향도 없이 한없이 밀려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이다. 영화가 이렇게 책으로까지 나올 줄은 몰랐고, 미처 대책을 세우지 못한 나는 속절없이 책의 공격에는 당할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워낭소리>에서 내가 아프게 인지한 것은 '고향'이다. 그것은 현실의 고향이기도 하고, 이상의
고향이이기도 하며, 유년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워낭소리>에서 그려지는 고향은 서로의 탯줄 끊은 자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쩜 그리고 내 어릴 적 고향마을과 흡사하던지..눈물이 난다. 절로...
내남없이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의 모습은 한가지의 형태로 그려진다. 그리고, 고향과 함께 강조되는 것은 '동행'이다. 함께 가는 것.  하나의 생을 완성하는 길에 서로 의지하며 함께 가는 존재의 의미. 그 가치를 말해준다.

 

책에서는 영화 <워낭소리>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뒷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이충렬 감독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그리고 싶었고, 열심히 일만 하며 자식들에게 헌신하던 모습, 우직함, 무뚝뚝함 같은 것들이 소와 닮았다고 생각한 감독은 2000년부터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의 소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전국의 농촌을 뒤졌고, 드디어 2004년 겨울에 경북 봉화군 산정마을에서 최원균할아버지와 그의 동행 털북숭이 거북이같은 소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와 소의 삶과 죽음, 그리고 노동을 1년 동안 기록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기획안에 대한 문제제기, 제작자 구하기, 의사소통의 어려움, 제작비 여건상의 장비부족, 등등.

그리고 그런 어려움속에서 그들이 표현해낸 것은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 건져올리듯 안타깝게 끌어올린 것은 바로, 이 시대 아버지에 대한 것, 잊혀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다.

 

중간에 제작사도 바뀌고, 방송에 부적합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는 작품이 관객 300만명 동원이라는 기적같은 감동으로 이어진 것은 그만큼 작금의 시대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필요로 하는 각박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다르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흘린 감동의 눈물만큼,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 만큼, 우리의 마음 한켠에 여전히 나란히 손잡고 동행하는 삶을 실천하려 하는 고향하나 갖고 있으리라 믿고 싶어지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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