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직관에 묻다 - 논리의 허를 찌르는 직관의 심리학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안의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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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즐겨 쓰고 있는 속담 중에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이 딱 들어맞는 경우가 또 하나 있으니 <생각이 직관에 묻다>에서 말하는 바로 직관이 미치는 영역이다. 직관을 믿고, 정보량이 적은 상황에서 결정하는 것이 정보량이 많고 심사숙고를 한 후 선택한 것보다 좋은 판단을 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설프게 똑똑한 사람보다 무지한 사람의 직관이 훨씬 유리하게 작동하는 결과를 실험을 통해서 보여준다. 즉, 지식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지혜를 최대한 이용해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생각이 직관에 묻다>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수년간 진행한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직관이 충동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것 이상이며, 나름대로 이론적 토대를 갖춘 존재라는 점을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주장한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은 첫째, 직관을 뒷받침하는 감춰진 어림셈법을 설명하는 것, 둘째, 직관이 언제 성공 혹은 실패한 가능성이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쓰여졌다.

 

저자가 정의하는 직관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의식에서 재빨리 떠오르는 것.

2. 우리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들

3. 행동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동기를 수반하는 것.




  흔히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논리보다는 직관에 의존하여 판단하게 될 경우, 우리는 100% 신뢰하지 못하는 시선을 느낀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오히려 논리는 지식에, 직관은 지혜에 비유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식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좀 더 깊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경우,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식보다는 지혜일 경우가 허다하다.

  저자는 불확실성이 짙은 환경에서는 좋은 직관을 따르고 정보를 무시해야 한다, 라고 조언한다. 따라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직을 이끌기 위한, 자녀를 키우기 위한, 주식에 투자하기 위한 최적의 전략이 있을 수 없으며, 만족할 만한 전략이 존재할 뿐이며 거기에는 직관이 그 역할을 지대하게 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들어 직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까닭은 직관에 따른 창의성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매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는 창의적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예측 가능하기에 누구나 모방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기업들은 자신들만의 창의성을 위하여 직관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직관은 그동안 신비스런 존재라서 설명이 불가능 하다고 여겨왔으나, 무의식적인 영역으로 분류한 직관을 의식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직관은 철저하게 실행을 요구하기 때문에 직관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배짱은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스친 직관에 의존하지 않아 후회했었던 선택들이 있었다. 작은 일에서부터 나의 직관을 밀어붙이는 배짱좋은 연습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가져본다. 결코 후회하지 않는 창의적인 나의 미래를 위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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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다르지 않다 인물로 읽는 한국사 (김영사) 5
이이화 지음 / 김영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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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높일 방안을 찾기 위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전화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 결과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18.4%에 불과한 반면 불신한다는 비중은 48.3%로 높았다. 또 ‘기독교(개신교)인들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쪽은 14%인 반면 ‘그렇지 않다’는 쪽이 3.5배에 달하는 50.8%나 됐다.

가톨릭교회와 불교사찰, 개신교회 셋의 신뢰도 조사에선 35.2%가 가톨릭교회를, 31.1%가 불교사찰을 신뢰한다고 답했고, 개신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18%로 크게 낮았다. 특히 자신의 종교를 기독(개신)교라고 답한 이들의 14.1%가 개신교회가 아니라 가톨릭교회를 더 신뢰한다고 응답한 반면 가톨릭 신자들은 1.1%만이 개신교회를 신뢰한다고 꼽았다.

종교별 호감도에선 기독교, 불교, 가톨릭, 유교 가운데 불교가 31.5%로 가장 높았고, 가톨릭은 29.8%, 기독교는 20.6%였다. 그러나 기독교에 호감을 나타낸 응답자의 4분의 3은 기독교인으로, 비기독교인의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는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교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 중 과반수는 비불자들이었다.

이 조사에서 한국 교회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바뀌어야 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2%가 ‘교인과 교회지도자들이 언행일치 면에서 나아져야 한다’고 응답했고, 이어 타종교에 대한 관용(25.8%), 사회봉사(11.9%), 재정 사용의 투명성(11.5%), 교회의 성장제일주의(4.5%), 강압적인 전도(3.8%) 차례였다.

기윤실 정직신뢰성증진운동본부장인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교회가 불신받고 있으며 고립돼 있고,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며 소통의 위기에 처해 있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큰 위기에 있음을 보여준다”며 다원주의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고, 교회는 교인들이 개교회주의를 벗어나 사회와 소통하고 사회를 섬기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겨레신문-




몇 일전에 읽었던 신문기사를 옮겨본다.

이 기사를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신교보다는 가톨릭과 불교에 호감도가 높으며 또한 신뢰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는 그 종교들이 사회와 소통하며 사회에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지도자들이 언행일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종교가 하는 역할이 종교를 가진 자에게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주고 현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볼 때, 위의 내용은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이화님이 쓴 [진리는 다르지 않다]는 “오늘 나의 발자취가 뒷사람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라며 구도의 길에서 나라와 민중을 위해 진리의 불꽃을 밝힌 불교, 천도교, 도교, 천주교, 기독교, 민족종교 등 이 땅위의 24명의 종교가들의 삶과 사상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저자 이이화님은 『주역』의 대가인 야산 이달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린시절부터 한학을 배우고 서라벌예대에서 김주영, 천승세, 이근배, 홍기삼등과 문청시절을 보내다가 한국학에 매력을 느껴 역사가의 길로 방향을 돌려 지금까지 지역갈등과 봉건적 신분질서를 타파하는 글을 주로 썼으며, 이를 통하여 우리 겨레의 고난의 민족사, 백성들의 자취가 짙게 밴 생활사, 압제를 받았던 민중사를 복원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한다. 역사는 재미있고 쉬운 문체로 일반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된 생각인데,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인물을 재평가하는 역사인물 연구에도 정열을 기울여 역사의 현재화와 역사의 대중화를 바탕에 깔고 저술했다.

[진리는 다르지 않다]는 [한국사이야기]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으로 그 성격에 따라 민족과 민중과 함께 한 종교가들을 네 부류로 나눴다.

첫째는 가장 지면을 많이 할애하고 있는 불교 승려와 불교사상가들이다. 원효, 의상, 의천, 도선, 지눌, 무학, 휴정, 유정, 경허등이 거론되고 있는데,.늘 원효에 가려서 제 빛을 못 낸다고 생각했던 의상을 학승이라기보다 실천적 포교승이라고 평한 시선에 마음이 간다. 자주 접했던 인물들이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갔으나, 경허에 대한 부분은 새롭고 처음 접한 부분이 많아서 매우 흥미로왔다. 단순히 기인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경허가 세속적 재주를 많이 지닌 시인이었으며, 명필가였고, 유학과 노장에 해박했을 뿐 만 아니라 학승과 선승을 겸한 스승이었다고 하니 경허만을 다룬 책을 따로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둘째는 도교적 수양으로 삶을 이은 시인과 학자들이다. 정염, 정작, 이지함, 서기, 남사고 등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이지함의 그 유명한 토정비결이 원래의 뜻은 상공업을 천시하는 풍토를 고치고 귀천을 가리는 사회를 꾸짖으며 나태를 막고 근면을 권장하면서 민중들에게 한 가닥 위안을 주려는 동기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박지원의 [허생전]이 바로 이지함을 주인공으로 하여 쓰여졌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또한 처음 들어본 정염, 정작이 바로 간신으로 알려진 정순붕의 아들이었다니..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했다. 흔히 도교의 자세는 세상사는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신선놀음에만 치중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더니 어떤 방식으로든 민중을 위로하고자 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셋째는 천주교와 기독교 신앙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바치며 산 인물들이다.

권철신, 윤지충, 권상연, 김교신, 함석헌 등이 바로 그들이다. 얼마전 전주에 잇는 전동성당을 방문했다가 윤지충과 권상연의 우리나라 첫 순교를 기념하는 기념비를 보았다. 그리고 바로 뒤에 이 책을 만나니 그 느낌이 새로웠다. 함석헌옹이야 너무 유명해서 따로 언급할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익히 알아본 함석헌과 약간 다른 모습이 거론되어서 내가 그동안 너무 피상적으로만 인물들을 알고 있었구나..하는 자각이 들었다.

넷째로는 민족종교를 창립하여 꺼져가는 나라를 구제하려는 종교인들이다. 최제우, 나철, 강증산, 최시형, 손병희 등 이들은 조선 말기 서양세력과 식민지 지배를 받을 시기에 구국을 위해 활동한 지도자들이다. 그 중에도 요즘 강증산은 상생의 논리와 함께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만난 강증산은 그 새로운 조명을 좀 무색하게 하는 면이 있어서 재미가 있었다.




이들 종교인들은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면서도 순수하게 자기네가 믿는 종교에만 빠져 있지도 않았을 뿐 만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민중과 민족을 생각하는 뜨거운 지도자들이었다. 늘 자신들의 발자취를 고민하면서 새로운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는 지금 너무도 어렵고 혼란스러운 현재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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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맛 좀 볼래! - 특성화 대안학교 양업고 성공 교육기 그 10년 동안의 생생한 기록
윤병훈 지음 / 다밋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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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맛 좀 볼래!!

제목이 도발적이어서 눈길이 간다.

어라..대안학교에 관한 책으로 알고 있었는데...옳다구나. 이제 말 안 듣는 ‘문제아’들을 제대로 잡아주는 책이로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든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고는 그 생각을 난 바꿔야만 했다. 책의 뒷부분에 나오지만, 이 제목은 이 책의 저자인 윤병훈 신부님이 ‘문제아’가 아닌 바로 문제아를 만들어 낸 이 사회와 부모에게 주는 일갈이었던 것이다.

문제어른은 있어도 문제아는 없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어른이야 이미 다 자란 성인이니, 나쁜 어른과 좋은 어른으로 구분이 가능하겠지만, 아직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어 자라나고 있는 새싹들에게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고는 넌 안돼!라고만 닫힌 사고를 하는 이 사회와 부모의 자성을 촉구한다.

저자는 특성화 대안학교인 청주 양업고등학교를 개교 당시의일반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다니던 수용의 대안학교에서 2008년 개교 10주년 맞는 이제는 명실공히 교육철학이 분명한 대안교육의 장으로 성장시키기까지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또한, 개인의 성장과 성숙을 가져다주는 희망의 교육의 장을 일기문, 수필, 편지글, 연설문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그려낸 이 책에서 우리는 윤병훈 신부님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 나라의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고민하고 성찰하는 모습까지 엿볼 수 있다.




오래전 나는 가톨릭계통의 여학교를 다녔었다. 한참 호기심 많고 감성이 예민했던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학내외에서 사건을 일으켰다. 물론, 요즘과 같은 입시경쟁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의 우리는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헤어스타일로 획일화된 사고와 행동을 요구받던 시절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내 기억에는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던 학창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도 양업고처럼 아버지같은 신부 교장선생님이 계셨고, 학교 안에는 성모마리아상과 성당이 있어서 작은 고민에도 힘들어했던 우리에게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었다. 수녀님이 담당하셨던 종교시간과 가사시간은 또 얼마나 따뜻한 추억이었는지. 발코니가 딸린 교사에서는 물양동이의 물을 가득 엎어놓고 미끄럼을 타도 지나가시던 선생님이 혼내시기는 커녕 같이 놀아주시던 기억들..우리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매를 맞아본 적도 단체기합을 받았던 기억도 없다. 추억이란 때로는 고통까지도 아름답게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다지만, 설사 몇 번의 혼남이 있었을 지언정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는 학창시절 내내 행복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겠는가

너 맛 좀 볼래!를 읽는 내내 내 기억은 한달음에 25년 전으로 달려가곤 했다.

양업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시간이 흘러 학교를 방문해서 은사님들에게 그 벅찬 감사한 마음을 고백하고, 후배들에게 모교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얘기할 때, 어쩜 그리도 나와 나의 친구들을 닮았는지..얘기가 사적으로 흐른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희망의 메시지, 참된 우정, 노동의 가치 등은 살아가면서 삶속에서 대면하는 많은 고통들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힘을 준다.

나에게 많은 추억과 지혜를 준 학창시절이 있었던 학교는 일반학교였었다. 현 교육제도는 일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일반적인 교육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 상황에서 참된 대안이 되는 학교가 있다면 바로 윤병훈 신부님이 세우신 학교,  원칙은 지키나 규칙은 없는 학교, 양업고등학교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이제 한참 지인의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서고 있다. 오랜만의 만남에도 늘 화제는 자녀교육이 그 중심이다. 곧 방학이 시작될 터인데. 다음 만남에는 이 책을 몇권 가지고서 선물을 해야겠다. 그래서 올 겨울방학은 지인들의 가정이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는 방학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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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기행 2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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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기행 1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지금 창밖은 어둠속으로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다. 그 비는 환영처럼 희미하게 떠오르는 건물의 지붕 위로 내리고, 회색빛 포도를 서서히 적시기도 하며, 거리를 바삐 혹은 한가로이 걷는 행인들의 머리위에도 희미하게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눅눅하고 습한 오래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북쪽으로부터 내려오는 시원의 차가운 공기가 이 도시를 서서히 덮쳐오고 있다. 곧 깊고 어두운 겨울의 바람이 이 도시를 가득 채울 것이다.

지난 일주일동안 후지와라 산야의 눈과 발걸음과 손짓이 되어 그와 함께 여행을 했다. 저어기 서아시아 끝의 이스탄불에서 극동의 한반도와 일본까지. 겨울해협으로 시작한 우리의 여행은 양의 창자로 요리한 수프를 먹던 앙카라를 지나서 정부의 고위관리까지 지낸 핫산이 젤린이란 이름의 여자가 되더니 어느새 나비가 되어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린 그 바다 지중해에 닿는다. 도대체 왜 핫산은 젤린이 된 것일까. 그는 행복했을까. 삶이란 정녕 모호한 부호같다. 결코 누구도 풀지 못하는 비밀처럼. 창밖어둠처럼 어느새 다가와 버린 삶의 종착역. 우리는 그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것일 뿐인가. 흑해는 다행히도 그 이름에 걸맞게 검은 빛깔의 바다였다. 흑해의 바다는 무겁고 차가왔다. 겨울 흑해 위를 떠도는 새의 무리를 세는 것은 인간의 생사를 세는 것만큼 어렵다. 하늘을 덮는 신천옹(알바트로스)의 날개짓을 보면서 인간의 고고함 따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국경이 맞닿는 곳에는 낯선 바람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그러한 그곳에는 토지의 자유와 황폐함이 공존한다. 동양의 재즈가 들리는 도시 캘커타, 개인의 인격은 나와 다른 개인의 인격과 대면했을 때 비로소 뭔가를 느끼고 행동하게 된다. 격정적인 비가 캘커타의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면 이내 뜨거운 태양이 거리를 달군다. 공기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후지와라는 거쳐 지나가는 도시의 사람들과 동일화되어 그 시간을 살아낸다. 도시인들은 그가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가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유일하게 그 사람들과 구분해주는 카메라를 오른손이 아닌 왼손에 항상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행위의 주체가 되는 오른손에 늘 더 많은 관심을 주기 때문에 왼손에 있는 카메라를 보지 못한 채 그를 받아들인다

 

동양기행 2





티벳의 탈속한 땅 위에서 천칭을 들고 있는 투명한 신을 만난다. 그 신이 지금도 행운과 불운의 돌을 가지고 우리네 삶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혀의 혁명을 경험하게 한 그 불현듯이 나타난 하얀 사원은 여전히 서늘한 낫같은 초승달을 머리에 이고 있는지. 여전히 미혹에 휘둘리는 나의 마흔은 언제나 그 한계를 넘고서 평안을 찾을 수 있을까. 버마에서는 황금빛 최면술에 걸려 내가 태어난 별(토성)로의 여행은 편안한 휴식이 되어주었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산골의 부드럽고 연한 분홍색 꽃을 후지와라는 잘 모르나보다. 세상에나!!! 한반도의 국화 무궁화를 모르다니..후지와라는 자살이란 타인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라고 한다. 그럼 나는 그렇게나 이타적인 사람이었던가. 역시 상하이는 다르다. 이곳에서는 후지와라도 그 정체를 들키고 만다. 묵묵히 걷는 무표정한 상하이의 사람들은 눈빛만은 매서워서 금세 그의 발길을 족쇄로 채운다. 보름달이 뜬 바다의 둥근 돼지이야기와 함께 홍콩인들은 두 발 달린 것(아버지, 어머니)과 네 발 달린 것(의자와 책상)을 제외한 모든 것을 먹는 사람들이다.

다시 함박눈이 내린다. 시베리아 한랭기단에 뒤덮인 1980년대 서울의 청량리 거리에도 소리없이 나그네의 발그림자에 치이는 눈이 내린다. 그 거리에서 후지와라는 화내는 듯 우는 목소리,부조리에 대한 원통함과 쓰라림, 가시를 지닌 잡초같은 노래, 판소리를 듣는다.

또한 그 당시 서울에서 후지와라와 함께 본 것은 김이다. 무럭무럭 고단한 일상에도 불구하고 따스하고도 소박한 미래를 꿈꾸게 하던 김은 우리의 거리가 잃은 것 중의 하나다. 여전히 바람에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이 여행의 종착지인 일본의 기이지방에서 후지와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서울의 판소리이기도 하고, 치앙마이의 창녀가 부르는 벼베기 타령이 되기도 했다가, 이스탄불의 나이트클럽에서 집시의 비애를 불렀던 남창의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그와 함께 한 여행은 그러나 여행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 그에 따른 방랑, 곧 긴 시간으로 이어진 우리의 삶 자체를 살아낸 시간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후지와라는 지금까지 알아온 여행기와는 사뭇 다른 여행기를 보여준다.

그의 여행기에는 우리가 외국을 여행할 때 꼭 가야만 하는 유명관광지라든가, 성지순례나 먹거리 중심의 테마가 있는 여행이라든가 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의 발길은 불특정 다수의 행인들, 거리의 사람들, 더 구체적으로는 거리의 여자, 음지에 사는 사람들,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 아니면 그들이 사회를 소외시킨 자들의 삶을 찾아 다닌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그 사람들이 먹는 음식, 쉬는 공간, 그 사람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그 사람들과 호흡하는 자연을 그리고 있다. 몽환적으로, 음울하게, 아련하게, 그러나 너무도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선명한 날것의 사진으로 말이다.

후지와라는 비록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그림을 공부한 사람답게 무척이나 회화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자신의 감정은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오로지 카메라 앵글로만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는 말한다. 그는 단지 '길을 걷는 자'였으며, 그 길에서 마주친 것들을 '보고하는 자'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가 단순히 걸었다고 말한 그 길이 바로 삶의 한가운데였으며, 곧 그 길이 삶을 관통하는 사상의 길이였음을. 창밖으로 문득 시선을 주니 여전히 어둠속으로 비는 내리고 있다. 




아시아 대륙은 인도를 경계로 동과 서로 나눠지고, 그 같은 나눔에 따라 원질마저도 절반으로 나눠지는 건 아닐까.

서아시아의 광물적 세계 - 이슬람세계

동아시아의 식물적 세계 = 힌두, 불교세계

광물을 사람을 죽이고, 식물은 사람을 기른다.

광물은 인간을 강경하게 만들고, 식물은 인간을 부드럽게 만든다

광물은 신비를 배제하고, 식물은 신비를 가꾼다.

광물은 혼돈을 허용하지 않고, 식물은 혼돈을 허용한다.

적대적인 정신과 관용의 정신

일신교와 다신교

우상의 배척과 우상의 숭배

태음력과 태양력(동양기행 1권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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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최병서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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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문화예술계통에서 일하는 후배의 전화였다.

다짜고짜로 그 후배는 자기가 3년 전에 사 놓았던 그림을 당초구입가격의 5배의 가격으로 경매시장에서 팔아 짭짤한 재미를 봤다는 자랑질이었다.

마침 펀드도 해약했던 차, 약간의 목돈이 있었던 나는 금새 솔깃하여 그림 하나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마침맞게 새집으로 이사하여 거실에 걸어둘 그림도 필요했던 차, 고상하게 그림감상도 하면서 몇 년이 지나면 그 그림이 화수분이 되어준다니 마음이 확 쏠리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열심히 후배가 추천한 여러 신진작가중에서 내 취향과 장래성을 고려한 그림을 고르다가 막상 그림가격을 듣고는 내 계획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몇 년을 묵힐 정도로 투자하기에는(더구나 확실하지도 않은) 내가 가지고 있던 금액이 부족했던 것이다. 고상한 사치와 로또같은 그림에 대한 나의 꿈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부서져도 아쉽지 않은 철제장식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림에 대한 것은 보통사람들이 갖는 관심정도는 지속적으로 지녀 왔다. 책꽂이에 꽂기도 불편한 크기의 화집 셋트도 가지고 있고, 천경자, 노은님, 고흐, 모네 등의 책도 읽어봤고, 가끔 외국화가들의 전시회가 열리면 굳이 시간을 내어 서울로 상경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문화적 대중의 흐름이 문자의 시대를 넘어서 비주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에 책의 콘셉트 역시 읽는 것보다 보는 것에 중점을 두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미술관에 간 경제학자]또한 이런 관점에서 시도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사를 움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경제의 힘이었다!

 - 명화 속 경제법칙을 이야기 한

   어느 경제학자의 명화 완 전 정복기

 

예술은 곧 비즈니스이고, 비즈니스는 곧 예술이다

 

- 앤디 워홀 


 

이 책을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는 띠지에 있는 문구다.

 

이 문구를 처음 봤을 때, 갖게 된 느낌은 올 초에 그림을 사고자 했었던 나의 관점과 비슷한 관점에

 

서 쓰여진 책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읽고 보니 미술사의 흐름과 그 흐름을 대표할 만

 

한 그림과 작가에 대한 얘기, 그리고 그림의 특징과 그림에 나타난 사조적 흐름을 경제적 용어로 풀

 

이하여 이해를 도운 책이었다. .

 

쉽게 얘기하자면, 그 장르는 다르지만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에서처럼 축구와 연애의 원리를

 

교차적으로 나열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듯이 이 책은 경제학자 P씨가 세계 여러 나라의 박물관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그림의 기법을 통해서 경제학 분야의 원리를 곁들여서 그림과 경제 두 분야를

 

설명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경제학서이기도 하면서 예술서이며, 이론서이면서

 

동시에 기행문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는 요즘 각광받는 멀티플레이어적인 책인 것이다.

 

이중섭이나 박수근을 말하면서 경제용어인 레몬시장을 설명하고, 고흐의 그림을 통해 독점공급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준다. 고흐가 최후에 산 집, 고흐기념관 안뜰, 자드킨의 고흐 동상 등의 사진을

 

첨부한 경제학자 P씨의 발걸음을 따라서 우리는 작가와 작가가 살았던 시대, 그 시대의 경제적 흐

 

름, 그림의 탄생배경 등을 같이 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자의 권리이자 기꺼운 

 

 의무이다.

 

세잔의 단순함과 몬드리안의 추상성, 마르셀 뒤샹의 파격과 선택의 가치를 알아가는 묘미,

 

콜라주, 포토몽타주 기법들을 사용하여 초현실의 낯설고 기묘한 세계를 표현한 마그리트의 그림은

 

오늘날 비틀스의 음악이나 소설 혹은 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광고와 같은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많

 

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이 되어 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우키요에라는 에도시대의 일본전통채색 목판화가 모네, 고흐 등

 

의 인상파 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는 일본보다 세계속의 일본은

 

훨씬 그 의미와 역할이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한편 그 맛은 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점묘파 화법과 완전경쟁시장, 인상파, 상업미술의 효시 로트렉, 사실주의 화풍과 노동의

 

가치, 큐비즘과 일반균형이론, 뉴요커와 공공재, 결혼 풍속도과 결혼경제학,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

 

팅과 카오스 경제 이론, 비너스 누드화 그리고 인간자본으로서의 아름다움, <러브> 사상의 여백과

 

불확실성 등 새로운 시도로 접하는 명화읽기는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미술이든 경제학이든 간에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것이 아닐까 하는 것과 더불

 

어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을 보이도록 하는 작업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작업이며, 그것이 바로 위대

 

한 예술가나 사상가의 덕목일 것이라고 경제학자 P씨의 생각을 빌어 말하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스페인의 작은 도시 빌바오는 철강산업의 사양으로 회색도시로 전락하자 1억5천만불의 예산을 들여 구겐하임 미술관을 짓는 결단을 내린 결과 연간 백만명에 달하는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고. 영국의 한 때 공업도시로 번창했던 게이츠헤드가 안토니 곰리의  <북쪽나라의 천사>라는 조각상을 통해서 관광의 명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즉 예술이 도시를 살리고 있는 예를 들었다. 이렇듯 경제에서도 문화의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지자체의 상징성도 경제나 상업보다는 문화쪽을 더 유의깊게 들여다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술분야와 경제학 분야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책읽기가 될 것이다. 그 분야에 지식이 부족했던 나의 경우에는 특히 경제학 분야에 대한 설명이 나오면 찬찬히 이해해가면서 읽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완독한 후의 만족감은 남달랐으니까.

군데군데 그림과 경제적 용어를 연결시켜서 설명하느라 억지로 꿰어맞춘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없지는 않으나, 전반적으로 책의 다양한 구성이나 밀고 나가는 흐름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다만, 아쉬운 면이 있다면 예시로 들었던 그림 가운데 아래의 세 개가 편집상 잘려서 나와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약간의 애로가 있었다.(그림을 꼭 찾아서 봐야 한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509,프레스코

 



마네, <올랭피아>, 1863, 캔버스에 유채

 



마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1862,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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