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기행 2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동양기행 1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지금 창밖은 어둠속으로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다. 그 비는 환영처럼 희미하게 떠오르는 건물의 지붕 위로 내리고, 회색빛 포도를 서서히 적시기도 하며, 거리를 바삐 혹은 한가로이 걷는 행인들의 머리위에도 희미하게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눅눅하고 습한 오래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북쪽으로부터 내려오는 시원의 차가운 공기가 이 도시를 서서히 덮쳐오고 있다. 곧 깊고 어두운 겨울의 바람이 이 도시를 가득 채울 것이다.

지난 일주일동안 후지와라 산야의 눈과 발걸음과 손짓이 되어 그와 함께 여행을 했다. 저어기 서아시아 끝의 이스탄불에서 극동의 한반도와 일본까지. 겨울해협으로 시작한 우리의 여행은 양의 창자로 요리한 수프를 먹던 앙카라를 지나서 정부의 고위관리까지 지낸 핫산이 젤린이란 이름의 여자가 되더니 어느새 나비가 되어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린 그 바다 지중해에 닿는다. 도대체 왜 핫산은 젤린이 된 것일까. 그는 행복했을까. 삶이란 정녕 모호한 부호같다. 결코 누구도 풀지 못하는 비밀처럼. 창밖어둠처럼 어느새 다가와 버린 삶의 종착역. 우리는 그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것일 뿐인가. 흑해는 다행히도 그 이름에 걸맞게 검은 빛깔의 바다였다. 흑해의 바다는 무겁고 차가왔다. 겨울 흑해 위를 떠도는 새의 무리를 세는 것은 인간의 생사를 세는 것만큼 어렵다. 하늘을 덮는 신천옹(알바트로스)의 날개짓을 보면서 인간의 고고함 따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국경이 맞닿는 곳에는 낯선 바람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그러한 그곳에는 토지의 자유와 황폐함이 공존한다. 동양의 재즈가 들리는 도시 캘커타, 개인의 인격은 나와 다른 개인의 인격과 대면했을 때 비로소 뭔가를 느끼고 행동하게 된다. 격정적인 비가 캘커타의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면 이내 뜨거운 태양이 거리를 달군다. 공기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후지와라는 거쳐 지나가는 도시의 사람들과 동일화되어 그 시간을 살아낸다. 도시인들은 그가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가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유일하게 그 사람들과 구분해주는 카메라를 오른손이 아닌 왼손에 항상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행위의 주체가 되는 오른손에 늘 더 많은 관심을 주기 때문에 왼손에 있는 카메라를 보지 못한 채 그를 받아들인다

 

동양기행 2





티벳의 탈속한 땅 위에서 천칭을 들고 있는 투명한 신을 만난다. 그 신이 지금도 행운과 불운의 돌을 가지고 우리네 삶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혀의 혁명을 경험하게 한 그 불현듯이 나타난 하얀 사원은 여전히 서늘한 낫같은 초승달을 머리에 이고 있는지. 여전히 미혹에 휘둘리는 나의 마흔은 언제나 그 한계를 넘고서 평안을 찾을 수 있을까. 버마에서는 황금빛 최면술에 걸려 내가 태어난 별(토성)로의 여행은 편안한 휴식이 되어주었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산골의 부드럽고 연한 분홍색 꽃을 후지와라는 잘 모르나보다. 세상에나!!! 한반도의 국화 무궁화를 모르다니..후지와라는 자살이란 타인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라고 한다. 그럼 나는 그렇게나 이타적인 사람이었던가. 역시 상하이는 다르다. 이곳에서는 후지와라도 그 정체를 들키고 만다. 묵묵히 걷는 무표정한 상하이의 사람들은 눈빛만은 매서워서 금세 그의 발길을 족쇄로 채운다. 보름달이 뜬 바다의 둥근 돼지이야기와 함께 홍콩인들은 두 발 달린 것(아버지, 어머니)과 네 발 달린 것(의자와 책상)을 제외한 모든 것을 먹는 사람들이다.

다시 함박눈이 내린다. 시베리아 한랭기단에 뒤덮인 1980년대 서울의 청량리 거리에도 소리없이 나그네의 발그림자에 치이는 눈이 내린다. 그 거리에서 후지와라는 화내는 듯 우는 목소리,부조리에 대한 원통함과 쓰라림, 가시를 지닌 잡초같은 노래, 판소리를 듣는다.

또한 그 당시 서울에서 후지와라와 함께 본 것은 김이다. 무럭무럭 고단한 일상에도 불구하고 따스하고도 소박한 미래를 꿈꾸게 하던 김은 우리의 거리가 잃은 것 중의 하나다. 여전히 바람에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이 여행의 종착지인 일본의 기이지방에서 후지와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서울의 판소리이기도 하고, 치앙마이의 창녀가 부르는 벼베기 타령이 되기도 했다가, 이스탄불의 나이트클럽에서 집시의 비애를 불렀던 남창의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그와 함께 한 여행은 그러나 여행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 그에 따른 방랑, 곧 긴 시간으로 이어진 우리의 삶 자체를 살아낸 시간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후지와라는 지금까지 알아온 여행기와는 사뭇 다른 여행기를 보여준다.

그의 여행기에는 우리가 외국을 여행할 때 꼭 가야만 하는 유명관광지라든가, 성지순례나 먹거리 중심의 테마가 있는 여행이라든가 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의 발길은 불특정 다수의 행인들, 거리의 사람들, 더 구체적으로는 거리의 여자, 음지에 사는 사람들,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 아니면 그들이 사회를 소외시킨 자들의 삶을 찾아 다닌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그 사람들이 먹는 음식, 쉬는 공간, 그 사람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그 사람들과 호흡하는 자연을 그리고 있다. 몽환적으로, 음울하게, 아련하게, 그러나 너무도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선명한 날것의 사진으로 말이다.

후지와라는 비록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그림을 공부한 사람답게 무척이나 회화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자신의 감정은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오로지 카메라 앵글로만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는 말한다. 그는 단지 '길을 걷는 자'였으며, 그 길에서 마주친 것들을 '보고하는 자'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가 단순히 걸었다고 말한 그 길이 바로 삶의 한가운데였으며, 곧 그 길이 삶을 관통하는 사상의 길이였음을. 창밖으로 문득 시선을 주니 여전히 어둠속으로 비는 내리고 있다. 




아시아 대륙은 인도를 경계로 동과 서로 나눠지고, 그 같은 나눔에 따라 원질마저도 절반으로 나눠지는 건 아닐까.

서아시아의 광물적 세계 - 이슬람세계

동아시아의 식물적 세계 = 힌두, 불교세계

광물을 사람을 죽이고, 식물은 사람을 기른다.

광물은 인간을 강경하게 만들고, 식물은 인간을 부드럽게 만든다

광물은 신비를 배제하고, 식물은 신비를 가꾼다.

광물은 혼돈을 허용하지 않고, 식물은 혼돈을 허용한다.

적대적인 정신과 관용의 정신

일신교와 다신교

우상의 배척과 우상의 숭배

태음력과 태양력(동양기행 1권 22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