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최병서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올 초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문화예술계통에서 일하는 후배의 전화였다.

다짜고짜로 그 후배는 자기가 3년 전에 사 놓았던 그림을 당초구입가격의 5배의 가격으로 경매시장에서 팔아 짭짤한 재미를 봤다는 자랑질이었다.

마침 펀드도 해약했던 차, 약간의 목돈이 있었던 나는 금새 솔깃하여 그림 하나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마침맞게 새집으로 이사하여 거실에 걸어둘 그림도 필요했던 차, 고상하게 그림감상도 하면서 몇 년이 지나면 그 그림이 화수분이 되어준다니 마음이 확 쏠리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열심히 후배가 추천한 여러 신진작가중에서 내 취향과 장래성을 고려한 그림을 고르다가 막상 그림가격을 듣고는 내 계획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몇 년을 묵힐 정도로 투자하기에는(더구나 확실하지도 않은) 내가 가지고 있던 금액이 부족했던 것이다. 고상한 사치와 로또같은 그림에 대한 나의 꿈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부서져도 아쉽지 않은 철제장식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림에 대한 것은 보통사람들이 갖는 관심정도는 지속적으로 지녀 왔다. 책꽂이에 꽂기도 불편한 크기의 화집 셋트도 가지고 있고, 천경자, 노은님, 고흐, 모네 등의 책도 읽어봤고, 가끔 외국화가들의 전시회가 열리면 굳이 시간을 내어 서울로 상경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문화적 대중의 흐름이 문자의 시대를 넘어서 비주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에 책의 콘셉트 역시 읽는 것보다 보는 것에 중점을 두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미술관에 간 경제학자]또한 이런 관점에서 시도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사를 움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경제의 힘이었다!

 - 명화 속 경제법칙을 이야기 한

   어느 경제학자의 명화 완 전 정복기

 

예술은 곧 비즈니스이고, 비즈니스는 곧 예술이다

 

- 앤디 워홀 


 

이 책을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는 띠지에 있는 문구다.

 

이 문구를 처음 봤을 때, 갖게 된 느낌은 올 초에 그림을 사고자 했었던 나의 관점과 비슷한 관점에

 

서 쓰여진 책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읽고 보니 미술사의 흐름과 그 흐름을 대표할 만

 

한 그림과 작가에 대한 얘기, 그리고 그림의 특징과 그림에 나타난 사조적 흐름을 경제적 용어로 풀

 

이하여 이해를 도운 책이었다. .

 

쉽게 얘기하자면, 그 장르는 다르지만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에서처럼 축구와 연애의 원리를

 

교차적으로 나열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듯이 이 책은 경제학자 P씨가 세계 여러 나라의 박물관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그림의 기법을 통해서 경제학 분야의 원리를 곁들여서 그림과 경제 두 분야를

 

설명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경제학서이기도 하면서 예술서이며, 이론서이면서

 

동시에 기행문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는 요즘 각광받는 멀티플레이어적인 책인 것이다.

 

이중섭이나 박수근을 말하면서 경제용어인 레몬시장을 설명하고, 고흐의 그림을 통해 독점공급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준다. 고흐가 최후에 산 집, 고흐기념관 안뜰, 자드킨의 고흐 동상 등의 사진을

 

첨부한 경제학자 P씨의 발걸음을 따라서 우리는 작가와 작가가 살았던 시대, 그 시대의 경제적 흐

 

름, 그림의 탄생배경 등을 같이 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자의 권리이자 기꺼운 

 

 의무이다.

 

세잔의 단순함과 몬드리안의 추상성, 마르셀 뒤샹의 파격과 선택의 가치를 알아가는 묘미,

 

콜라주, 포토몽타주 기법들을 사용하여 초현실의 낯설고 기묘한 세계를 표현한 마그리트의 그림은

 

오늘날 비틀스의 음악이나 소설 혹은 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광고와 같은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많

 

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이 되어 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우키요에라는 에도시대의 일본전통채색 목판화가 모네, 고흐 등

 

의 인상파 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는 일본보다 세계속의 일본은

 

훨씬 그 의미와 역할이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한편 그 맛은 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점묘파 화법과 완전경쟁시장, 인상파, 상업미술의 효시 로트렉, 사실주의 화풍과 노동의

 

가치, 큐비즘과 일반균형이론, 뉴요커와 공공재, 결혼 풍속도과 결혼경제학,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

 

팅과 카오스 경제 이론, 비너스 누드화 그리고 인간자본으로서의 아름다움, <러브> 사상의 여백과

 

불확실성 등 새로운 시도로 접하는 명화읽기는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미술이든 경제학이든 간에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것이 아닐까 하는 것과 더불

 

어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을 보이도록 하는 작업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작업이며, 그것이 바로 위대

 

한 예술가나 사상가의 덕목일 것이라고 경제학자 P씨의 생각을 빌어 말하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스페인의 작은 도시 빌바오는 철강산업의 사양으로 회색도시로 전락하자 1억5천만불의 예산을 들여 구겐하임 미술관을 짓는 결단을 내린 결과 연간 백만명에 달하는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고. 영국의 한 때 공업도시로 번창했던 게이츠헤드가 안토니 곰리의  <북쪽나라의 천사>라는 조각상을 통해서 관광의 명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즉 예술이 도시를 살리고 있는 예를 들었다. 이렇듯 경제에서도 문화의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지자체의 상징성도 경제나 상업보다는 문화쪽을 더 유의깊게 들여다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술분야와 경제학 분야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책읽기가 될 것이다. 그 분야에 지식이 부족했던 나의 경우에는 특히 경제학 분야에 대한 설명이 나오면 찬찬히 이해해가면서 읽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완독한 후의 만족감은 남달랐으니까.

군데군데 그림과 경제적 용어를 연결시켜서 설명하느라 억지로 꿰어맞춘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없지는 않으나, 전반적으로 책의 다양한 구성이나 밀고 나가는 흐름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다만, 아쉬운 면이 있다면 예시로 들었던 그림 가운데 아래의 세 개가 편집상 잘려서 나와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약간의 애로가 있었다.(그림을 꼭 찾아서 봐야 한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509,프레스코

 



마네, <올랭피아>, 1863, 캔버스에 유채

 



마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1862,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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