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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빗질하는 소리 - 안데스 음악을 찾아서
저문강 지음 / 천권의책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 세상의 모든 만남은 그 형태가 다를지라도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공통점만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저문강님(정희성님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따옴)의 안데스음악과의 만남처럼 나와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와의 만남 또한 그 이전의 세번의 마무침속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모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안데스음악을 하는 남미의 한 청년과 우리나라 출신인 미모의 재원과의 러브스토리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다른 장면은 그 기억이 희미한데, 기차여행을 하면서 다정히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서울 출장길에 만나마 안데스 음악을 하는 그룹을 만나게 되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련하고도 구슬픈 음악소리가 가슴을 헤집었고, 그 음악을 따라가보니 대여섯명의 남자들이 긴머리를 뒤로 땋아내린 뜨렌사머리를 한 채 차밍고와 삼뽀냐를 연주하고 있었다. 마지막 만나은 저자처럼 대전엑스포에서의 만남이었다.
안데스 음악은 식민지 통치하라는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는 음악의 선율상 분명히 공감하는 코드가 있었다. '깊은슬픔'을 썼던 소설가는 인간의 여러 가지 다양한 감정들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감정은 슬픔이라고, 모든 감정은 결국 슬픔으로 귀결된다는 말을 했었다.이 말이 음악에도 통하는 말임을 알겠다. 가장 기본이 되는 운율은 그리고 민족의 음악이 되는 선율은 결국 애조짙은 음악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아리랑'에서 갖게 되는 느낌을 안데스음악을 들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안데스 음악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70년에 사이먼 앤 가펑클이 편곡해 부른 '엘 꼰도르 빠사' 덕분이다. 이 책은 15년간 광고 카피라이터를 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던 저자가 어느 날 안데스 음악에 필이 꽂혀서 안데스 음악의 산실인 남미의 나라 볼리비아, 뻬루, 에꽈도르를 6회에 걸쳐 여행하며 안데스음악을 체험하고 공부한 기록이다.
여행하는 동안, 안데스인들과 다양한 문화적 만남과 그 거리 풍경의 기록, 그리고 마추삐추같은 유명한 유적지, 잉까인들의 신화가 시작된 띠띠까까 호수, 등에 대한 단상 뿐 만 아니라, 곳곳에서 안데스와 어우러지는 안데스의 리듬을 소개해주고 있다. 이국적인 남미의 풍광이 담긴 자연스런 사진들의 적절한 배치, 그리고 일러스트풍의 그림들은 아련한 느낌의 안데스음악을 마치 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에꽈도르 국민구성비는 백인 10%, 흑인 10%, 메스띠소 40%, 인디헤나 40%로 구성되어 있으나, 10%에 해당하는 백인들이 지도층을 차지하고 있으며, 메스띠소가 중간관리자 계급을, 태양을 숭배하던 원주민 인디헤나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급에 위치한다고 한다.
저자는 여행하는 동안 오따발로 인디헤나 전통복에 뜨렌사머리를 한 채 돌아다닐 때, 인디헤나들의 다정하고도 가족적인 눈빛에 반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백인과 한국교민들의 시선이 오히려 불편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안데스 음악이라는 틀을 매개로 하여 여행이라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내용은 안데스음악을 향한 열정적인 저문강님의 마음이 고대로 스며 있어 그 열정만큼이나 남미사람들의 삶에 대한 따스한 이해의 시선이 녹아 있다.
책의 맨 뒷 부분에는 안데스음악에 사용되는 악기, 리듬, 추천음악과 그룹 등에 대한 소개를 유용하게 풀어놓고 있다. 그동안 안데스 음악과 관련된 책을 찾아본 적은 없지만, 이 책 한권으로 충분히 안데스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다 알 수 있다고 보여진다. 안데스음악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기본으로 삼아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안데스음악은 아침이 아닌 저녁의, 화려하고 강렬한 무대보다 소박하고 수수한 무대가 어울리는 음악, 변화무쌍한 도심 번화가보다는 약간 외진 곳, 자연과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이며 감정이 아래로 침잠해 있을 때 제 맛을 낸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해본다. 따라서 젊은이보다 인생의 여러 경험이 풍부한 나이가 든 우리같은 세대에게 더 많은 울림을 주는 거 같다. 저문강님이 마흔 즈음에 안데스 음악계에 뛰어든 이치를, 그 열정을 이해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지구는 하나, 라는 말이 구호처럼 난무하는 요즘 세상이지만, 그 지구라는 별에 깊은 바다가 있어 그리고 높은 산맥이 있어 인간의 자유로운 왕래를 가로막았던 시절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랬었기에 분리된 땅, 그 안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 다른 문화유산을 이렇게 풍성하게 남겨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 안데스음악을 통해서 만난 안데스의 사람들과 그곳의 문화를 만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다행스럽고 또 행복하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기를..안데스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그러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파괴하거나 잃어가고 있는 자연, 순수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달랠 수 있기를...그래서 가치관의 혼란으로 잔뜩 헝클어져 있는 우리의 영혼이 안데스의 선율로 정갈하게 빗질이 되지 않을까 작은 소망하나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