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의 마지막 키스 역사 속으로 떠나는 비엔나 여행 2
프레더릭 모턴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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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키스' 로 장식된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던 책,<황태자의 마지막 키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이 가을에 어울릴 듯 하여 읽기 시작하였다.

누구나 운명같은 사랑을 꿈꾼다.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 장식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 사랑이 목숨이 되기도 한다.

역사 속으로 떠나는 비엔나 여행이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온 것은 책을 다 읽고 난 후이다.

그때서야 이 책이 처음에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좀 다르게 다가왔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소설의 전개가 펼쳐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루돌프 황태자와 메리라는 17세 소녀와의 만남에서 죽음까지의 사랑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있고, 다른 한 축은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배경과 오스트리아 비엔나 도시의 풍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그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던 서른 살의 황태자가 17세 소녀와의 사랑을 권총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결론을 맺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였다면, 이 책은 이런 나의 자세를 살짝 비웃어 준다.

전체적으로 황태자의 애절하고도 극적인 러브스토리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역사 속으로 떠나는 비엔나 여행'이라는 부제에 더 부합하는 그런 소설의 내용이었다.

유럽황실에 대한 자세한 묘사, 귀족계급, 중산층, 서민들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 주변국과의 외교적인 관계, 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19세기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한몫을 했다. 황태자의 아버지인 프란츠 요제프는 1848년에 황제에 오른 뒤, 1916년에 죽기까지 무려 68년을 통치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내부적으로 여러 민족간의 분열이 잠재되어 있었고, 독일의 압박이 있었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근대의 물결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채 비엔나의 거리는 예술과 고풍스러운 품위의 예절만이 중요시되는 분위기였다. 루돌프는 황제와는 달리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고, 직접 실천하고자 했으나, 황제는 황태자가 황실의 품위를 드러내주는 자리에만 존재해주기를 바랬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속에서도 루돌프의 자리는 없었다. 시민이 원하는, 황제가 원하는 품위있는 꼭두각시로서의 황태자자리만이 주어졌을 뿐. 루돌프는 사적인 삶의 만족을 구할 수 밖에 없었고, 이내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메리 베체라라는 17세 소녀뿐이었던 것이다. 세상 누구보다 특별하고 싶었던 메리는 황태자의 죽음의 권유에 기꺼이 동참하게 되고 이들은 1989년 1월 마이얼링 숲속 별장에서 두 발의 총성과 함께 동반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스러진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인구가 약 820만 정도의 아주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비엔나가 인류의 정신문화에 끼친 영향은 철학, 음악, 미술, 경제학 등에서 아주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표지그림의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 또한, 비엔나에서 활동한 화가이기도 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에 루돌프 황태자가 죽지 않고, 그의 뜻을 펼쳤다면 세계 제1차대전은 막아지지 않았을까.

독특한 문체와 함께 한 비엔나 여행은 매우 매력적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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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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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엄청나군...

다른 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그저, 놀라움에 입만 떡 벌어질 뿐.

글자를 알고 난 후부터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에도 곧장 집으로 귀가하지 않고  학교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서 지내곤 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질 때쯤이면 그때서야 공기가 다른 것을 눈치채고 창문을 넘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책에 빠져있느라 도서실 담당선생님이 문을 잠그는 것도 몰랐음)

한 날은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다가 도서실 서가에 도로 꽂아두고 나올려니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책의 모양이 이쁘기도 했지만 내용 또한 두고두고 읽고 싶은 마음에 가슴에 품은 채로 생애 처음으로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 당시의 사회분위기는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던 시절이었기에 그다지 양심에 가책도 느끼지 않은 채, 그저 그 책에 내 손에 들어왔다는 기쁨만이 생생할 뿐이었다. 간혹 부모님이 책을 사주시기는 했지만, 나의 책욕심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이웃 친구집에 놀러라도 가게 되면 내 시선은 언제나 책꽂이를 향하곤 했다. 다른 친구들은 여러가지 놀이로 즐거울 때, 나는 오로지 집에 오기 전까지 책을 읽어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책으로 가득찬 개인도서관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꾼 것은.

<한국의 책쟁이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야말로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책에 미친 사람 28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한겨레신문에 기획기사로 싣던 것을 묶은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 책에서 소개되는 책쟁이들은 서로 심취해 있는 분야만 다를 뿐, 책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랑의 깊이는 가히 독자의 상상을 초월한다.

첫페이지에 소개되는 옛인물인 이덕무의 책사랑에서부터, 집안 재산을 탕진한 최한기의 후예들은 현대에까지 이어져 있기에 책에 미친 그들이 존재함으로 그나마 이 세상이 살 만하다고 저자는 결론을 짓고 있다.

책무게로 인해 방고래가 꺼질 것을 걱정한 문.사.철 위주로 책을 수집한 김중렬님은 내가 재직하고 있는 직장의 교수이셨는데, 한문에 조예가 깊으시고 서예솜씨가 출중하신 줄로만 알았지, 이런 깊은 책에 대한 애착이 있으신 줄은 미처 몰랐었다. 재직당시에 가깝게 뵙지 못한 것이 잠시 아쉬웠었다.

(책에서 한문학과 교수라고 명기되어 있었는데..이는 오기다.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셨음)

중견기업체 이사의 책사랑. 그의 책사랑은 "지식욕으로 포장된 소유욕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지만 나는 알겠다. 지극한 겸손의 말임을.

책쟁이들의 수집형태, 수집계기, 수집방향에 따라 저자는 꿈꾸는 자들의 지혜, 사람을 읽다 책을 살다, 배움의 즐거움, 진리를 찾아서, 사회를 생각한다,의 네 단락으로 나누어 실어 놓았다.

이는 단순히 책을 읽고 모으는 행위만이 아닌 책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안에서 사회속에서 실천해내는 충실히 진짜 삶을 살아내는 모습으로 확장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여러 책쟁이들 중에서 특히나 나를 사로잡았던 분은 화봉책박물관 관장이신 여승구님이다. 그에게 있어서 책은 자신을 꾸며주는 장식이 아닌 책이 그를 지배하는 주인이었다. 죽기 전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건강관리까지 철저한 그의 책박물관 꿈이 꼭 이루어지길 나 또한 기도하게 되었다.

한국어사전 독립운동하는 국어학자 박형익님 또한 그 이름 석자와 사전 사랑, 잊지 않으련다.

한글날 공휴일 지정까지 폐지되는 나라에서 사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그 분의 말씀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저자는 28명의 책쟁이들을 찾기 위해 두가지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서대문구 홍제동 대양서점이라는 30년 넘은 헌책방에서 잠복하여..만나게 된 책쟁이들인데, 명지대 이상보교수, 전 장서가협회장 이석범씨, 중간상 김창기씨.등

또 하나는 인터넷 헌책방 동아리인 '숨책'에서 건져올린 책귀신들은 상서우체국장 조희봉씨, 논술강사인 정윤식씨, 만화책 마니아 박지수씨 등이다.

책쟁이들의 공통점은 서재 공개를 꺼린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서재를 곧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서재주인과의 내면의 대화를 거친 책들은 자신들의 지적 편력이자 곧 분신이기 때문이어서 쉽게 내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에게는 책 외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점이다. 수입의 상당한 부분을 책구입에 쓰고 여가에는 그 책을 읽은 데 할애하다 보니 다른 취미를 가질 시간이 없기는 없을 터.

 

'어느 것은 보는 재미, 어느 것은 읽는 재미, 어느 것은 만지는 재미'라는 한 책방 주인의 말이 요즘 나도 점점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미처 못 읽은 책이 점점 책 재미에 해당한다고 자위해도 될려나 모르겠다.물론, 책쟁이들의 깊이에는 어림없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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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전설 : 서양편
아침나무 지음, 이창윤 그림 / 삼양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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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전설 동양편을 먼저 읽고 난 후, 서양편을 읽게 되었다.

전설은 그 민족에 내재된 문화를 이야기하고, 그 민족 고유의 가치관을 이야기해준다고 흔히 정의되는데, 과연 동서양의 대표적 전설을 접하고 보니 그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수천년 동안 전해져 오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는 그 민족의 가치관과 사상이 담겨 있기에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근원을 알게 해 줄 뿐 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동양권에 속하고는 있지만 우리나라의 바리데기 신화보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더 가깝게 느끼는 것처럼, 전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기회에 처음 대하는 우리나라 전설을 아주 흥미롭게 만나기도 하였지만, 서양편에서는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전설이 왜 그러한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부터 접해왔던 동화의 모티브를 대체적으로 서양편의 전설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각색되어왔기에 그리 낯설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서양 전설의 중심이 되는 영국의 전설부터 독일, 프랑스, 신비함으로 가득찬 북유럽, 동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전설에서 오세아니아의 전설까지 담아 놓고 있다.

영국전설은 영웅담, 요정들에 관한 전설이 많은데 이는 켈트신화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이끼로 만든 옷'전설은 신데렐라 동화로, '금나무와 은나무'전설은 백설공주 동화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영웅 빌헬름 텔의 사과,라는 저 유명한 얘기는 바로 독일의 전설이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마법사' 전설은 독일의 작은 항구인데, 이 전설 하나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다고 한다. '파우스트 박사의 전설' 또한,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대작으로 다시 태어난다.

프랑스전설은 십자군 원정과 '브르타뉴 설화'로 알려진 켈트족 전설과 이 전설에 뿌리를 둔 액스칼리버의 주인인 아서왕 전설이 대표적이다. '정어리 요정'전설과 '엄지 동자' 전설은 동화로도 다시 각색이 된다.

북유럽 전설에서는 바이킹 전설이 대표적인데, 바이킹이 발견한 땅 빈란드라는 곳이 바로 콜룸부스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하는 아메리카라고 전해진다. 역사속에서 사라져버린 바이킹족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앨프의 전설'은 노르웨이 전설이고, '유령을 업은 소녀' 전설은 스웨덴 전설이다. 덴마크의 '귀신의 술잔' 전설은 우리나라의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동유럽 전설의 대표적인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바로 루마니아의 드라큐라 전설이다. 드라큐라가 원래는 귀족의 아들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백성들에게 생각할 수도 없게 잔인했던 드라큘라는 그 자신 또한 너무도 잔인한 방법으로 죽고 만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드라큘라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숨쉬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며 이후 드라큘라는 흡혈귀로 재탄생하여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다.

러시아의 '마귀할멈, 바바야가', '황금 물고기','이반왕자' 전설은 동화로도 익숙한 전설이다.

북미원주민의 전설은 '하얀 카누', '죽은 자들의 춤' 전설처럼 생과 사에 대한 그들만의 독특한 내세관이 숨어 있고, 또한 동물들을 매우 친근하게 여겨 코요테 전설은 여러가지 내용으로 전해오기도 한다.

라틴 아메리카 전설은 작은 동식물에도 다른 사연이 있다고 믿어 꽃과 벌레에 관한 다양한 전설이 전해진다.

뉴질랜드 전설에서는 우리에게 '연가'로 유명한 '히네모아의 연가' 전설이 전해져 온다.또한, 장난꾸러기 소년 코알라가 또 장난을 치다가 유칼리나무에서만 살아가는 동물 코알라가 되어버린 전설도 전해져 온다.

이렇게 두권의 책을 통해 동서양의 전설을 모두 접해본 시간은 세계 각 국의 다양한 문화를 함께 만나보는 귀하고도 즐거운 시간이 되어 주었다. 그 시간은 흥미진진하면서도 문화적 교양을 쌓는 시간이었으며, 왠지 삶의 이야기가 풍부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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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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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소설을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할 말이 많기 때문에 자기 삶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해서 자전적 에세이로 흐르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허용되지 않는 비약과 비유가 가능한 시가 그래서 본인에게 더 맞다고 생각하는 저자.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의 시집을 나는 내 나이 서른 즈음에 읽었다.

당시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무엇인가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앞으로의 전망도 불투명했던 나와 내 주변의 고만고만한 미혼의 처자들에게 이 책은 거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었다. 시가 주는 매력도 매력이지만, 고운 생머리에 눈동자 까만 시인의 미모가 한 몫을 한 탓이기도 했다. 뭐, 감상은 이 정도이지 않았나 싶다. 최고학벌의 너무나 예쁜 여자가 이렇게나 도발적이면서도 솔직할 수 있다니.하는...

그녀의 시에서 위로를 얻었지만, 그 시집 이후로 나는 저자를 까맣게 잊고 지냈었다.

다만, 아주 가끔 여성잡지나 인터뷰기사 정도로 접한 가십성 기사에서 그녀의 흔적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길을 읽어야 진짜 여행이다>는 신문에 소개된 광고만 보고도 왠지 끌렸었다. 표지에 실린 그녀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동료의식을 느낀 것이다.

61년 호랑이띠, 올해 나이 49살.독신. 저자보다 몇 살 아래이며, 가정을 꾸리고 일상의 반복된 삶에 지쳐 살아가는 나와 그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왜 내가 그녀에게서 동료의식을 느꼈는지를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점차 알아간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어느 한 시절 꿈꾸던 나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녀의 책 속의 나이는 20대와 30대 초반과 40대가 혼재되어 아주 익숙하고도 정겨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주었다.

제목에서 언뜻 느끼기를 여행에세이로 착각하기 쉬우나, 이 책은 그야말로 그냥 산문집이다.

물론, 여행담도 실려 있고, 여행길에서 만난 낯선이들과의 운명적인 교감도 그려져 있다.

그녀의 전공이 말해주고 있듯이, 그림과 관련된 사색의 결과가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되어져 있으며, 문학동네 주변에 대한 언급과 나에게도 친숙한 박남준, 김용택 시인과의 인연도 몇 단락 실려 있다. 그 중에서 몇 꼭지는 이전에 읽어본 느낌이 나서 갸우뚱거렸으나, 작가의 후기에 실린 내용을 보고는 이내 그 의문이 풀렸다.

이 책은 저자가 7년 만에 묶어낸 산문집으로 그 동안 국내의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여행과 관련된 글을 1부에 실었고, 2부에는 문학,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저자의 짧은 단상을 담아 냈다.

특이하게도 미국여행에 대한 글에서는 시카고지역을 여행하면서 지난 1년 동안의 오바마에 대한 그녀의 진한 애정을 그려놓았는데, 읽는 동안 동화된 나도 책꽂이에 비치된 오바마관련 서적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자기만의 감상에 치우친 자전적 에세이를 걱정한 그녀이지만, 막상 <길을 읽어야 진짜 여행이다>는 에세이임에도 그녀의 풍부한 지식과 깨어있는 감성이 조화되어 전혀 질척거리지 않고, 담백하게 읽혀진다.

산문을 관통하는 한가지 주제가 드러나지 않아 언뜻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군데군데 눈에 띄는 거친 표현들이 보여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의견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주 만족스러운 진짜 나자신으로의 여행이었다.

이 가을 호젓하게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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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란다 - 아라이 연작 소설
아라이 지음, 양춘희 외 옮김 / 아우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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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에 조선족 작가 김영옥님의 <미친녀 - 비나리치는 유혹으로 희떠운 사랑 찾는다>를 아주 놀라운 느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국 내 소수민족작가의 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티베트 출신의 작가 아라이님의 <소년은 자란다>은 여러가지 면에서 <미친녀>라는 작품을 연상케 했다.

제일 눈에 띄는 공통점은 두 작품 모두가 무공해 청정 소설이라는 것이다. 청량한 공기를 흠뻑 마신 듯한 느낌이 소설의 매력적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살아 숨쉬는 언어로 그려낸 소수민족 사람들의 일상은 편안하게 다가오면서도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티베트는 오랜 시간 나의 관심속에 있던 나라였다. 작년즈음인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투쟁을 하던 티베트인들의 기사를 보면서 가슴을 조리곤 했었다. 중국 안에 많은 소수민족들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특히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며 달라이 라마로 상징되던 티베트는 내게 있어서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이상향같은 곳이기도 했다.

티베트와 관련해서 읽은 책으로는 언젠가 특별기획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던 <차마고도>와 나라와 야크를 잃었지만 행복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인도에서 공동체 삶을 꾸려가는 이야기를 담아놓은 <티베트의 아이들>이다.

두 권의 책을 만남으로써 티베트에 대한 나의 애정은 더 깊어졌다. 전혀 세속의 때가 뭍지 않은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보면서 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고, 힘든 세상살이속에서도 지구 위 어느곳에 무릉도원'샹그리라'는 꼭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 일상의 나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 아라이는 단지 티베트는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장소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해주고 있다. 한국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듯, 영국, 일본처럼 티베트도 세상의 한 곳일 뿐이라고 말이다.

<소년은 자란다>는 아라이의 말대로 티베트의 '지촌'이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티베트 인들의 일상적인 삶을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그러나 매우 아름답게 그려놓고 있다. 문명의 발달을 비켜간 그러나 문화혁명이후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맞이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일상적인 생활과 표현을 통해서 우리 눈앞에 펼쳐보이고 있다.

 

내가 꿈꿔왔던 그런 티베트는 아니었지만 <소녀은 자란다>에서 그려지는 '지촌'은 충분히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곳은 한국도 아니요, 일본도 아니요, 더더군다나 미국, 영국은 더 아닌 티베트이었지만, 바로 티베트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롭고도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활불과 박사친구>,<마지막 마부>,<라마승 단바>,<현자 아구둔바>,<소년 시편>,<어떤 사냥>,<소년은 자란다>,<스스로 팔려간 소녀>,<홰나무꽃>,<두 절름발이>,<옛 저울추>,<막다른 길>,<아오파라 마을>등의 단편이 연작소설의 형태로 묶여져 있다.

개인적으로 내 가슴을 두드린 작품은 <활불과 박사친구>,<라마승 단바>,<마지막 마부>,<소년은 자란다>,<홰나무꽃>,<두 절름발이>이다.

그 중에서도 <홰나무꽃>은 고향을 떠나온 주차장관리 노인이 고향마을언어를 쓰는 한 소년에게 하얗고 탐스런 홰나무꽃송이를 넣은 찐빵을 쪄주는 이야기인데, 나도 한번쯤은 노인에게서 찐빵을 얻어먹고 싶어질 만큼 가슴 저리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미사여구없이 아주 담백한 언어로 아름답게 그려놓고 있다.

대체적으로 소설이 말해주는 주제보다는 그 분위기가 가슴에 기억에 더 남는 소설집이다. 책을 읽고 난 뒷맛이 아주 독특한 느낌이다.

저자 아라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로서 <색에 물들다>라는 작품으로 제5회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색에 물들다>라는 작품을 꼭 만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소년은 자란다>는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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