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와아,,,엄청나군...

다른 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그저, 놀라움에 입만 떡 벌어질 뿐.

글자를 알고 난 후부터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에도 곧장 집으로 귀가하지 않고  학교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서 지내곤 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질 때쯤이면 그때서야 공기가 다른 것을 눈치채고 창문을 넘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책에 빠져있느라 도서실 담당선생님이 문을 잠그는 것도 몰랐음)

한 날은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다가 도서실 서가에 도로 꽂아두고 나올려니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책의 모양이 이쁘기도 했지만 내용 또한 두고두고 읽고 싶은 마음에 가슴에 품은 채로 생애 처음으로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 당시의 사회분위기는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던 시절이었기에 그다지 양심에 가책도 느끼지 않은 채, 그저 그 책에 내 손에 들어왔다는 기쁨만이 생생할 뿐이었다. 간혹 부모님이 책을 사주시기는 했지만, 나의 책욕심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이웃 친구집에 놀러라도 가게 되면 내 시선은 언제나 책꽂이를 향하곤 했다. 다른 친구들은 여러가지 놀이로 즐거울 때, 나는 오로지 집에 오기 전까지 책을 읽어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책으로 가득찬 개인도서관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꾼 것은.

<한국의 책쟁이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야말로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책에 미친 사람 28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한겨레신문에 기획기사로 싣던 것을 묶은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 책에서 소개되는 책쟁이들은 서로 심취해 있는 분야만 다를 뿐, 책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랑의 깊이는 가히 독자의 상상을 초월한다.

첫페이지에 소개되는 옛인물인 이덕무의 책사랑에서부터, 집안 재산을 탕진한 최한기의 후예들은 현대에까지 이어져 있기에 책에 미친 그들이 존재함으로 그나마 이 세상이 살 만하다고 저자는 결론을 짓고 있다.

책무게로 인해 방고래가 꺼질 것을 걱정한 문.사.철 위주로 책을 수집한 김중렬님은 내가 재직하고 있는 직장의 교수이셨는데, 한문에 조예가 깊으시고 서예솜씨가 출중하신 줄로만 알았지, 이런 깊은 책에 대한 애착이 있으신 줄은 미처 몰랐었다. 재직당시에 가깝게 뵙지 못한 것이 잠시 아쉬웠었다.

(책에서 한문학과 교수라고 명기되어 있었는데..이는 오기다.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셨음)

중견기업체 이사의 책사랑. 그의 책사랑은 "지식욕으로 포장된 소유욕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지만 나는 알겠다. 지극한 겸손의 말임을.

책쟁이들의 수집형태, 수집계기, 수집방향에 따라 저자는 꿈꾸는 자들의 지혜, 사람을 읽다 책을 살다, 배움의 즐거움, 진리를 찾아서, 사회를 생각한다,의 네 단락으로 나누어 실어 놓았다.

이는 단순히 책을 읽고 모으는 행위만이 아닌 책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안에서 사회속에서 실천해내는 충실히 진짜 삶을 살아내는 모습으로 확장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여러 책쟁이들 중에서 특히나 나를 사로잡았던 분은 화봉책박물관 관장이신 여승구님이다. 그에게 있어서 책은 자신을 꾸며주는 장식이 아닌 책이 그를 지배하는 주인이었다. 죽기 전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건강관리까지 철저한 그의 책박물관 꿈이 꼭 이루어지길 나 또한 기도하게 되었다.

한국어사전 독립운동하는 국어학자 박형익님 또한 그 이름 석자와 사전 사랑, 잊지 않으련다.

한글날 공휴일 지정까지 폐지되는 나라에서 사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그 분의 말씀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저자는 28명의 책쟁이들을 찾기 위해 두가지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서대문구 홍제동 대양서점이라는 30년 넘은 헌책방에서 잠복하여..만나게 된 책쟁이들인데, 명지대 이상보교수, 전 장서가협회장 이석범씨, 중간상 김창기씨.등

또 하나는 인터넷 헌책방 동아리인 '숨책'에서 건져올린 책귀신들은 상서우체국장 조희봉씨, 논술강사인 정윤식씨, 만화책 마니아 박지수씨 등이다.

책쟁이들의 공통점은 서재 공개를 꺼린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서재를 곧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서재주인과의 내면의 대화를 거친 책들은 자신들의 지적 편력이자 곧 분신이기 때문이어서 쉽게 내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에게는 책 외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점이다. 수입의 상당한 부분을 책구입에 쓰고 여가에는 그 책을 읽은 데 할애하다 보니 다른 취미를 가질 시간이 없기는 없을 터.

 

'어느 것은 보는 재미, 어느 것은 읽는 재미, 어느 것은 만지는 재미'라는 한 책방 주인의 말이 요즘 나도 점점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미처 못 읽은 책이 점점 책 재미에 해당한다고 자위해도 될려나 모르겠다.물론, 책쟁이들의 깊이에는 어림없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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