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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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소설을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할 말이 많기 때문에 자기 삶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해서 자전적 에세이로 흐르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허용되지 않는 비약과 비유가 가능한 시가 그래서 본인에게 더 맞다고 생각하는 저자.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의 시집을 나는 내 나이 서른 즈음에 읽었다.

당시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무엇인가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앞으로의 전망도 불투명했던 나와 내 주변의 고만고만한 미혼의 처자들에게 이 책은 거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었다. 시가 주는 매력도 매력이지만, 고운 생머리에 눈동자 까만 시인의 미모가 한 몫을 한 탓이기도 했다. 뭐, 감상은 이 정도이지 않았나 싶다. 최고학벌의 너무나 예쁜 여자가 이렇게나 도발적이면서도 솔직할 수 있다니.하는...

그녀의 시에서 위로를 얻었지만, 그 시집 이후로 나는 저자를 까맣게 잊고 지냈었다.

다만, 아주 가끔 여성잡지나 인터뷰기사 정도로 접한 가십성 기사에서 그녀의 흔적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길을 읽어야 진짜 여행이다>는 신문에 소개된 광고만 보고도 왠지 끌렸었다. 표지에 실린 그녀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동료의식을 느낀 것이다.

61년 호랑이띠, 올해 나이 49살.독신. 저자보다 몇 살 아래이며, 가정을 꾸리고 일상의 반복된 삶에 지쳐 살아가는 나와 그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왜 내가 그녀에게서 동료의식을 느꼈는지를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점차 알아간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어느 한 시절 꿈꾸던 나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녀의 책 속의 나이는 20대와 30대 초반과 40대가 혼재되어 아주 익숙하고도 정겨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주었다.

제목에서 언뜻 느끼기를 여행에세이로 착각하기 쉬우나, 이 책은 그야말로 그냥 산문집이다.

물론, 여행담도 실려 있고, 여행길에서 만난 낯선이들과의 운명적인 교감도 그려져 있다.

그녀의 전공이 말해주고 있듯이, 그림과 관련된 사색의 결과가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되어져 있으며, 문학동네 주변에 대한 언급과 나에게도 친숙한 박남준, 김용택 시인과의 인연도 몇 단락 실려 있다. 그 중에서 몇 꼭지는 이전에 읽어본 느낌이 나서 갸우뚱거렸으나, 작가의 후기에 실린 내용을 보고는 이내 그 의문이 풀렸다.

이 책은 저자가 7년 만에 묶어낸 산문집으로 그 동안 국내의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여행과 관련된 글을 1부에 실었고, 2부에는 문학,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저자의 짧은 단상을 담아 냈다.

특이하게도 미국여행에 대한 글에서는 시카고지역을 여행하면서 지난 1년 동안의 오바마에 대한 그녀의 진한 애정을 그려놓았는데, 읽는 동안 동화된 나도 책꽂이에 비치된 오바마관련 서적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자기만의 감상에 치우친 자전적 에세이를 걱정한 그녀이지만, 막상 <길을 읽어야 진짜 여행이다>는 에세이임에도 그녀의 풍부한 지식과 깨어있는 감성이 조화되어 전혀 질척거리지 않고, 담백하게 읽혀진다.

산문을 관통하는 한가지 주제가 드러나지 않아 언뜻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군데군데 눈에 띄는 거친 표현들이 보여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의견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주 만족스러운 진짜 나자신으로의 여행이었다.

이 가을 호젓하게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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