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자란다 - 아라이 연작 소설
아라이 지음, 양춘희 외 옮김 / 아우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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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에 조선족 작가 김영옥님의 <미친녀 - 비나리치는 유혹으로 희떠운 사랑 찾는다>를 아주 놀라운 느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국 내 소수민족작가의 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티베트 출신의 작가 아라이님의 <소년은 자란다>은 여러가지 면에서 <미친녀>라는 작품을 연상케 했다.

제일 눈에 띄는 공통점은 두 작품 모두가 무공해 청정 소설이라는 것이다. 청량한 공기를 흠뻑 마신 듯한 느낌이 소설의 매력적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살아 숨쉬는 언어로 그려낸 소수민족 사람들의 일상은 편안하게 다가오면서도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티베트는 오랜 시간 나의 관심속에 있던 나라였다. 작년즈음인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투쟁을 하던 티베트인들의 기사를 보면서 가슴을 조리곤 했었다. 중국 안에 많은 소수민족들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특히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며 달라이 라마로 상징되던 티베트는 내게 있어서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이상향같은 곳이기도 했다.

티베트와 관련해서 읽은 책으로는 언젠가 특별기획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던 <차마고도>와 나라와 야크를 잃었지만 행복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인도에서 공동체 삶을 꾸려가는 이야기를 담아놓은 <티베트의 아이들>이다.

두 권의 책을 만남으로써 티베트에 대한 나의 애정은 더 깊어졌다. 전혀 세속의 때가 뭍지 않은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보면서 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고, 힘든 세상살이속에서도 지구 위 어느곳에 무릉도원'샹그리라'는 꼭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 일상의 나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 아라이는 단지 티베트는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장소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해주고 있다. 한국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듯, 영국, 일본처럼 티베트도 세상의 한 곳일 뿐이라고 말이다.

<소년은 자란다>는 아라이의 말대로 티베트의 '지촌'이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티베트 인들의 일상적인 삶을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그러나 매우 아름답게 그려놓고 있다. 문명의 발달을 비켜간 그러나 문화혁명이후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맞이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일상적인 생활과 표현을 통해서 우리 눈앞에 펼쳐보이고 있다.

 

내가 꿈꿔왔던 그런 티베트는 아니었지만 <소녀은 자란다>에서 그려지는 '지촌'은 충분히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곳은 한국도 아니요, 일본도 아니요, 더더군다나 미국, 영국은 더 아닌 티베트이었지만, 바로 티베트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롭고도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활불과 박사친구>,<마지막 마부>,<라마승 단바>,<현자 아구둔바>,<소년 시편>,<어떤 사냥>,<소년은 자란다>,<스스로 팔려간 소녀>,<홰나무꽃>,<두 절름발이>,<옛 저울추>,<막다른 길>,<아오파라 마을>등의 단편이 연작소설의 형태로 묶여져 있다.

개인적으로 내 가슴을 두드린 작품은 <활불과 박사친구>,<라마승 단바>,<마지막 마부>,<소년은 자란다>,<홰나무꽃>,<두 절름발이>이다.

그 중에서도 <홰나무꽃>은 고향을 떠나온 주차장관리 노인이 고향마을언어를 쓰는 한 소년에게 하얗고 탐스런 홰나무꽃송이를 넣은 찐빵을 쪄주는 이야기인데, 나도 한번쯤은 노인에게서 찐빵을 얻어먹고 싶어질 만큼 가슴 저리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미사여구없이 아주 담백한 언어로 아름답게 그려놓고 있다.

대체적으로 소설이 말해주는 주제보다는 그 분위기가 가슴에 기억에 더 남는 소설집이다. 책을 읽고 난 뒷맛이 아주 독특한 느낌이다.

저자 아라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로서 <색에 물들다>라는 작품으로 제5회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색에 물들다>라는 작품을 꼭 만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소년은 자란다>는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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