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윤용인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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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총수 김어준님의 <건투를 빈다>를 작년에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은 이번에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를 선택하는 데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웃기고 자빠진' 딴지일보의 기자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로서의 경험과 그리고 노매드 Media & Travel 여행컴퍼니 대표로서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그 심리를 분석하며 얻은 자신만의 심리학적인 자료를 2008년부터 칼럼을 통해 각종 일간지와  주간지에 실은 것이 이 책의 모태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역시 딴지일보 출신다운 촌철살인식 문체는 약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 저자 또한 김어준님과 마찬가지로 나와는 동시대의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어서인지 이 책에 표현되는 다양한 감수성과 상황묘사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감나게 다가왔다.

흔히 남성심리학에 대한 대표적인 책을 말해보라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쉽게 떠오른다.

위의 책이 여자라는 대비되는 성을 염두에 둔 채 남성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면,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는 여성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남성들의 고단함과 심리를 더 많이 그려내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남자 심리 일반에 대해서 주로 다루고 있고, 후반부로 가서는 성인 남자의 심리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특히, 중년남자의 심리변화에 대한 부분을 많이 언급하고 있다.

덕분에 막연히 감만 잡고 있었던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남편과 친구들의 고민이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눈치챌 수 가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사교의 유용한 팁이 되어주었다. 그들을 제대로 이해해주는 이전보다 더 멋진 여자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거 같다. 

어떻게 보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소에 느껴왔던 남성들의 이면을 엿본 거 같기도 하지만, 작가의 글솜씨는 알고 있던 내용조차도 아하, 하고 무릎을 치고 싶을 정도로 절묘하게 꼬집어주는 맛깔스러운 맛이 나서 책을 읽는 동안 참 재미났다.

그런가 하면, 룸살롱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서 결론적으로는 저자도 그런 문화를 좋아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가는 경우도 있다고 변명하지만(그렇다, 여자인 내가 보기에는 변명이다), 역시 남자들끼리 통용되는 서로 봐주기의 심리게임이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이 부분에 이르러 이태껏 웃으면서 지지의 웃음을 보내던 내 얼굴근육이 잠시 굳어버렸다.

상당히 쿨하고 열린 사나이처럼 느껴지는 저자도 결국은 남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저자 정도의 의식을 가진 남자는 남편으로서 훌륭하고 좋은 남자에 속하는 (책속에 드러난 것으로만 평하자면) 것이니 남자들과 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유흥문화에 대한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것인가. 한국남성들의 유흥문화에 대한 시각이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해보며 말이다.

'목소리 때문에 이혼한다'라는 코너는 읽는 순간, 깨닫는 것이 많았다. 싸움의 내용보다는 '대화의 방식과 목소리'가 이혼을 결정짓는 관건이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 것이다. 깨달았으니 실천을 해야지..앞으로는 남편과의 대화나 전화통화시 좀 더 다정하고 절차를 밟는 대화를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목소리톤을 낮추고 조심스럽게.......

 

'자리와 함께 늙는 사람'과 '세월과 함께 늙는 사람'에 대한 의견은 나에게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런 고민은 사회적 위상으로 자리매겨지는 남성에게 더 큰 고민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직장맘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도 늘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남편의 우울증 진단법 14가지는 앞으로 기회되면 간간히 남편에게 대입하여 체크해봐야겠다. 여성우울증에 비해서 남성우울증은 쉽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데..남편과 살아가는 아내들은 그것이 쉽게 취급할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다만, 그 원인에 대해서 이토록 상세히 알지 못했을 뿐이다. 사회속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연구도 활발히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저자는 소심맨과 걱정맨을 위해서 아주 간단하고 유쾌한 처방전을 써준다. 그것은 바로 '아님 말고'와 '인생 뭐 있어?'라는 아주 심플한 알약. 이 두 가지 색깔의 말은 '파이팅'처럼 뭔가를 독려하고 잘 싸우라는 말이 아니라 덜어내거나 내려놓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짐이 너무 많은 남자들에게 언제까지 무한정으로 힘을 내라고 독려하겠는가. 방향을 살짝 틀어서 잠시 쉬어간다면 삶을 좀 더 가볍고 유쾌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다지 좋지 못한 패를 갖고도 역전의 한방을 노리며 열심히 화투를 치고 있는데, 계획하지도 않은 상황이 발생되는 고스톱판의 나가리판같다.

 

같이 사는 남자를 지금보다 더 잘 이해해 보고자 선택한 이 책, 도움이 아주 안 된 것은 아니지만, 기대했던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이 책의 내용상의 문제점이 아니라 이미 불혹을 넘긴 나의 삶의 이력탓이 그 첫번째 원인이요, 때로는 나보다도 남이 더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듯이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는 세상의 반인 남자의 심리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음이 그 두번째 이유이다.

그러나,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외로운 이 땅의 남성들이여!

현재 그대들의 오락가락하는 마음의 정체를 잘 모르겠으면 이 책을 꼭 한번 만나보시라.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뇌와 마음속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퇴근하지 않은 남편에게 돌아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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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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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이 아프도록 회자되던 그 유명한 <용의자 X의 헌신>의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그리고 그의 책 중에서도 가가 형사 시리즈는 꼭 한번은 만나 봐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까지 들게 할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

여기서 '가가'가 누구인가 했더니 명탐정 홈즈처럼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품속에서 만들어낸 형사캐릭터의 이름이었다. 저자는 이 가가 교이치로를 주인공으로 하여 추리소설을 7권 출간하였는데, 그 중에서 <잠자는 숲>은 '가가형사 시리즈 2권'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다.

이번에 나온 신간인 <졸업>, <잠자는 숲>,<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내가 그를 죽였다>, 외에도 <악의>,<거짓말, 딱 한 개만 더>,<붉은 손가락>등이 바로 가가 형사 시리즈에 해당하는 작품군이다.

여러 시리즈 물 중에서도 특히 <잠자는 숲>은 초록빛 바탕에 핑크빛으로 발레슈즈를 신고 있는 발모습의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아주 매혹적으로 나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밀린 책이 이미 여러 권 내 앞에 놓여 있어 가슴에 압박감이 상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록빛 표지의 이 책을 받아든 순간, 결코 외면하지 못한 채, 그 유혹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부득이하게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난 후, 늦은 밤 이 책과 함께 침대에 든 순간의 짜릿함이라니....바야흐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나를 이끌어 만나게 해 줄 미지의 세상에 대한 벅찬 기대감으로 인해 너무도 행복했다. 그 시간은 한 여름의 더위도 잠시 잊어버릴 정도의 마력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사오카 미오다. 그녀는 다카야나기 발레단 소속의 장래가 촉망되는  발레리나다. 미오가 '하루코가 사람을 죽였다'라는 한통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하루코는 미오의 오랜 단짝친구이자 발레리나인데 그녀는 자신의 행위가 사무실을 무단침입한 한 남자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한다.

사건의 현장을 찾아간 미오에게 남다른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담당형사인 가가 교이치로.

여러 가지 상황과 불충분한 정황으로 단순사건으로 처리될 즈음, 또 다시 발생하는 살인사건.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발레단의 연출가이자 마스터인 가지타 야스나리. 과연 두 사건은 관련이 있는 것일가. 아니면 무관한 것일까.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왠지 숨죽인 채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다카야나기 발레단 단원들의 모습에 의문을 갖고 끝까지 추적하는 가가형사. 한편, 그 와중에도 가가형사의 미오에 대한 마음은 점점 깊어만 간다. 가가형사는 그 전 해에 <백조의 호수>공연을 관람하고 흑조역할을 했었던 미오에게 이미 매료되었던 것이다.

두 사건이 미궁 속을 헤메고 있는 와중에도 발레단원들은 여전히 연습에 몰두한다. 곧 무대에 올려질 <잠자는 숲 속의 미녀>공연이 아니어도 발레를 하는 사람들의 삶은 오로지 연습, 또 연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연습과정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그 세계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매우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막상 밖에서 보던 것처럼 그들의 삶이 마냥 아름답고 환상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자신들의 꿈, 이상을 향하여 끝없이 희생하고 매진하는 발레리나들의 모습은 자못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히가시노는 하루코의 무죄를 증명하고자 노력했던 야기유 고스케까지 살해의 위험에 노출되는 사건을 통해 독자를 다시 긴장시킨다.그러면서 점점 소설을 그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뭔가 범인이 윤곽이 어슴프레하고 잡히기는 했으나, 그 이유까지는 추리해내지 못한 나는 역시 추리소설에 있어서는 초보였다.

 

미오의 동료이자 선배인 모리이 야스코의 자살로 인해 소설은 사건의 해결을 보이는가 싶더니, 마지막에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히가시노의 매력인가 싶다.

추리소설의 재미도 있지만,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더 엄격한 정형과 절제미를 강조하는 발레리나들의 사랑관과 인생관, 세계관을 통해서 보여주는 그들의  삶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을 단순히 추리소설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를 깊은 잠에서 깨웠던 건 바로 왕자님의 입맞춤이었듯이 미오를 새롭게 깨워주는 가가형사의 입맞춤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동화속 공주, 그리고 이 책속의 발레리나들만이 아니었다..나 또한 추리의 멋진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깊이 깊이 숲속에서 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히가시노 게이고를 이제서야 만난 것이 너무도 아쉽다. 그러나, 한편 이제라도 만난 것이 그 얼마나 다행인지..

과연 그의 명성은 허언이 아니었다. 이번 여름은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그의 작품은 모두 찾아서 읽어보리라..계획만으로도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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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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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두 권의 책을 만났다.

<여자가 우울하게 하는 것들>과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권의 책에서는 트라우마가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여자가 우울하게 하는 것들>에서는 임상을 통해서 어린시절 여성들이 겪었던 성폭행이라는 트라우마가 이후의 그녀의 삶을 어떤 식으로 변형시키고 또한 우울증을 불러오는가에 대해서 서술해놓고 있으며,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에서는 책 속의 등장인물들의 상처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또는 직시하면서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번에 만난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의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이면서 심리적 외상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EMDR Training을 수료하여 국제EMDR협회 공인 치료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24편의 영화속 주인공들의 트라우마를 통해 인간삶속의 다양한 원인의 트라우마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단지 예술성에 입각한 감상으로만 그쳤던 영화들을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조명하게 되면서 들여다본 인간의 이야기들은 새롭고 놀라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잠깐 트라우마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로 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심리적 외상을 의미한다. 이는 빅트라우마에 해당하는 전쟁, 재난, 천재지변, 불의의 사고, 강간, 아동기 성폭행 등과 같이 개인의 일상을 넘어서는 커다란 사건이 있는데 이러한 경험들은 개인의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가치와 관점을 뒤흔들어놓는 엄청난 충격을 준다 . 또한 스몰트라우마는 각 개인의 삶에서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일상에서의 경험,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서 놀림당한 경험, 왕따경험, 창피스러웠던 경험, 발표할 때 실수한 경험들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경험들 역시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믿음을 갖게 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충붆 발휘하지 못한 채 불만족스럽고 위축된 삶을 살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영화와 함께 트라우마의 양상들을 친절히 설명해준 뒤, 곧 이어서 의학적, 심리학적인 관점으로 풀어놓은 다양한 트라우마에 대한 배경지식은 자신과 타인의 상처에 대한 객관적인고 과학적인 이해를 도와준다. 

기존의 서적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내용으로는 공동체 트라우마에 대한 것으로서,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이라는 트라우마와 분단의 트라우마는 우리가 꼭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 극복의 문제는 개인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기존의 비슷한 책에서 받았던 충격과는 그 내용이 다른 충격을 받았다. 기존의 책에서는 내 상처의 크기나 또는 관계맺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코드로만 적용했던 트라우마들이 이 책에서는 한 지인의 상황을 속속들히 이해하는 과정으로 작용했기 대문이다.저자는 '트라우마의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정서적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자신들의 부적응적 행동까지도 포용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 때 비로소 안정감과 연결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작년에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배를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 계약직으로 취직을 할 수 있게 힘을 썼고, 그 이후 그 후배의 모든 행동은 곧 나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압박감으로 인해 직장안에서의 후배의 부적응적 행동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알게모르게 그녀를 다그쳤던 내 행동들이 뒤늦게 깊은 회한으로 밀려온다. 빨리 아픔에서 헤어나오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내 행동이 상당히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녀에게 또 다른 아픔으로 힘겹게 한 것은 아닌지.. 난 정말 미안했다.

"오점 없는 인생이여, 트라우마에 돌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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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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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팩션형 역사물이 출판계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을 쓴 저자 이수광은 우리나라에서 그런 팩션형 역사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소위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러나, 그의 기존의 저술 목록의 면면을 살펴보니, 제목은 상당히 익숙한 것들이 많이 보이나, 아쉽게도 만나 본 책은 이번이 처음인 거 같다.

2009년 10월 26일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하고 대한민국의 주권을 세계만방에 알린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 사실을 알았다. 올해가 우리 민족에게는 기념비적인 해라는 것을.

불과 100여 년 전의 일도 우리는 서서히 기억속에서 잊어가고 있다. 안중근 뿐이겠는가. 이토록이나 세계인들이 존경하고 칭송하는 그의 역사적 의미도 잃어가고 있는데, 하물며 이름도 없이 조국을 위해 낯선 타국에서 한그루의 나무나 풀로 산화해갔을 목숨들이 한, 둘이겠는가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와 기행, 그리고 팩션을 아우르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도서, 로서 3년에 걸쳐서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의 현장답사를 통한 치밀하고도 사실적인 자료조사와 함께 인간 안중근의 삶과 내면세계를 역사적 근거에 기초하여 팩션으로 담아내고 있다.

 

저자가 2007년 7월에 속초항에서 러시아령 자루비노로 향하는 페리호의 갑판풍경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저자, 즉 나는 역사 속의 안중근의 발자취를 찾아나서는 9박 10일의 여정을 기행문형식으로 단락을 지어 서술하고 있다.

기행문답게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곳곳의 사진들은 100년 전의 사건의 생생한 현장을 오늘, 이 자리로 끌어내주는 역할을 해준다.

대한제국 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 독립대장.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하던 당시의 공식 직책이다.

하얼빈에서의 의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곧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경찰의 외교적 입장으로 인해 일본에게 넘겨진 후, 여순지방법원에서 6번의 재판을 통해 사형을 언도받고 여순감옥서에서 사형집행일을 하루 앞둔 1910년 3월 25일에 살아온  지난 날을 회고하는 것으로 팩션은 시작한다.

이렇게 저자의 기행과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적인 회고형 팩션은 교차적으로 배치되어 독자의 이해와 재미를 도운다.

독립지사와 우리민족의 뜨거운 애국심과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러시아, 중국의 여러 지명들, 즉 연변, 블라디보스토크, 훈춘, 회령, 용정, 단동, 대련, 두만강, 해란강, 얀치헤, 등등은 박경리님의 토지를 통해서도 익히 들었던 이름들이어서 그 감회가 남달랐다. 만주벌판에서 벌이는 독립군들의 지난하고도 열정적인 투쟁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 중, 특히 홍범도 장군은 얼마 전 조정래선생님의 강연회에서 언급하셨던 이념의 문제로 대한민국에서는 김좌진장군의 업적만을 거론할 뿐, 홍범도 장군은 그 역사적 의미가 축소되었다, 는 바로 그 의병투쟁활동을 접할 수 있어서 참으로 반가왔다.

 

오늘날 현대의 우리는 흰티셔츠 가득 체게바라의 얼굴을 유행처럼 입고 다녔던 것처럼, 안중근 의사의 단지 도장 또한 한동안 자동차의 엉덩이를 장식하고는 했다.

비록 내가 그 대열에 같이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깊은 뜻보다는 단지 멋스러움으로만 인식하지 않았나 하는 부끄러움이 고개를 든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안중근 의사가 1909년 2월에 얀치헤에서 동지 11명과 함께 단지동맹을 맺은 이유, (즉 나약해지는 마음을 추스리고자, 먼저가 의병동지에 대한 죄스러움, 그리고 좀 더 강력하고 새로운 투쟁을 모색하고자)를 가슴 깊이 곱씹어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문구가 가슴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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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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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① 주로 쇠붙이를 녹이는 데 쓰는 단단한 흙이나 흑연 따위로 만든 우묵한 그릇. <동의어> 감과(坩堝).

          ② ‘흥분·감격 따위로 여러 사람이 열광적으로 들끓는 상태’의 비유.

 

사전을 찾아 보니 '도가니'는 위의 두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순식간에 책을 다 읽고서 기껏 한다는 일이 사전을 찾아보는 일이었다. 그러고도 한동안 어쩌지를 못하고 그저 마음이 어수선하기만 하다.

 

사실 이 책을 주말에 읽고자 마음먹고 챙겨두었으나, 막상 그 첫장을 넘기기가 두려웠다. 이미 살짝 알려진 내용으로 볼 때, 그닥 쉽게 그리고 마음 편하게 읽힐 거 같지가 않아서였다. 그러나 소파 한 귀퉁이에 놓여진 채 내 신경을 거스르던 책을 주말 늦은 밤에 기여코 손에 들고 말았고, 이내 잠까지 미뤄둔 채 순식간에 '도가니'속에 빠져버렸다.

공지영의 소설이 지니는 미덕인 가독성이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다만, 소설의 전개와 문맥 전달의 가독성에도 불구하고 난 자주 이 책을 읽다고 덮곤 했다. 그것은 미리 예상되는 사건의 줄거리를 결코 만나고 싶지 않아서이다.

저자가 말했다시피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기에 소설에서 말해주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맞닥뜨리는 세상은 학창시절에 배웠던 '정의가 승리한다', '사필귀정' 같은 말들은 그 말을 사용하는 자에 따라서 진리가 되기도 하고, 쓰레기통에 처박혀야 할 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늘 수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 너머에 시커멓게 웅크리고 있을 어둠의 세계, 공포의 세계, 위선과 가증과 폭력의 세계를 늘 가늠해보곤 했다.  그러나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았다. 그리고 힘도 들었다.

 

언제가부터 장애인을 표현하는 용어로 '장애우'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그 용어를 쓰는 측에서는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동등한 친구,라는 의미를 노골적으로 표현으로써 이미 친구가 아닌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운연한 기회에 정작 장애인들은 보통사람들이 선심쓰듯 골라서 내뱉는 '장애우'라는 표현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내 생각이 옳았다고 여긴다. 특별히 그것을 의식하고 꼬집어 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결핍이다. 더 마음을 내어서 그들을 이해하는 척 할 필요도 없고, 그들은 따로 특별한 대접을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은 말한다, 그저 우리는 사람이라고, 기뻐할 줄 알고, 모욕을 느낄 줄도 알며, 서로 마음을 나눌 줄도 아는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단지, 육신에 장애가 있다는 것이 다를 뿐. 

 

공지영이 이번 소설에서는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문제와 그리고 가진 자가 약자에게 무차별적으로 해대는 성폭행을 포함한 갖은 폭압에 대한 문제를 들고 나왔다. 작가는 어떤 신문기사 한 줄을 보고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가니>를 쓰는 동안, 많이 아프고 신열에 들뜨고 고통스러웠다는 저자의 고백은 작품이 산고의 고통이라는 흔한 표현에 기댄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왜냐하면 나 또한 못지 않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난 살아오는 동안 대체적으로 정의나 약한 자, 의 편에 서있는 줄 알았으나, <도가니>를 읽어가는 동안, 무진시의 이기적이고 가진 자들의 집단인 경찰, 교회, 시민, 시의원, 건설업자, 병원장 사모님, 등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에서 나의 자화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점검해본다. 나는 과연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165p

진실은 말이야, 그걸 지키려고 누군가 몸을 던질 때 비로소 일어나 제 힘을 내는 거야. 211p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거짓말이다. 246p

언제나 공포는 상상할 때 더 크다는 것을 말이다.269p

자본이 소화시키지 못하고 자본에 패배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야만에마저 패배당한 그런 인간이 될지도 모르지.281p

 

"삶과 현실은 언제나 그 참담함에 있어서나 거룩함에 있어서나 우리의 그럴듯한 상상을 넘어선다."(작가의 말)

자꾸만 느슨해지는 나의 삶에 긴장을 주어야 겠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내 블로그 대문에 걸린 글을 빌어서..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하여 오늘도 싸운다는 서유진처럼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나의 삶, 그 삶을 위해 오늘도 난 비록 작은 투쟁일지라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굳게 믿고 실천하는 자의 것이기에. 그리고 안개는 뜨거움으로 가득한 태양이 뜨기만 시작해도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하기에. 우리는 단단한 쇠붙이도 녹이는 열기가득 채운 도가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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