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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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을 통해서만 들어왔던 테오의 책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가 삼성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 '방문했습니다'에서 슬쩍 '찾아왔습니다'로 바뀌고 표지의 디자인과 약간의 내용편집이 함께 했다고 한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 관련도 없는 권리의 소설 <눈오는 아프리카>가 떠올랐다.

아프리카와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눈과 펭귄이라니.

<눈오는 아프리카>는 그 내용을 알지 못하니 거론할 바 못되지만, 테오의 아프리카에 찾아온 펭귄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인생의 길을 정해진 코스로만 가기보다는 때로는 예기치 못한 길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 새로운 만남이 그려내는 유쾌한 반전....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소모되어가는 '나'를 새롭게 해주는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시종일관 존대말로 건네오는 테오의 케이트타운소식은 더위에 지친 나에게 신선한 청량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테오가 전해준 소식에 의하면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볼더스비치에는 진짜로 펭귄이 살고 있었다.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춥기도 하기에 펭귄이 살 수 있다고 한다. 사진속 귀여운 펭귄의 다양한 모습은 새로운 느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단 한 마리의 연인만이 존재한다는 자카드 펭귄의 이야기는 매우 아름답기까지 하다.

랑가방 레스토랑에서의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요리이야기, 아틀란티스 샌듄으로 불리는 일종의 사막에서의 보드타기, 와인과 함께 먹는 양고기 브라이 구이 파티, 참치이야기, 실 아일랜드의 물개이야기, 크루거의 사자왕 쟈카와의 소통, 유럽에까지 유명한 와인 농장, 좌우로 호수와 바다가 있는 셋지필드, 번지 점프로 이름높은 블루크랑스 브리지, 캠스베이 해변, 백인들은 결코 가지 않는 하라레와 꿀룰레 마을 등.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왜 테오가 국내 1호 여행테라피스트인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오오,,,역시 아프리카 이야기는 달랐다. 생생하고 야생의 기운이 넘치고 거친 바람이 부는 그곳. 그러나, 단진 보여지는 모습만이 다른 것은 아니었다.

 

'우월이 아니라 다름의 차이

돈을 많이 버는 것과 한가해지는 것과의 차이

부자가 되는 것과 자유로워지는 것과의 차이

과정을 견디고 미래를 즐길 것인가와 과정 자체를 즐길 것인가의 차이

다름.

그뿐.'(84P)

 

테오를 통해 만나 본 아프리카는 전혀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의 순수한 맛을 가득 풍겨주는 아주 이색적이고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곳이었다. 지상낙원이 있다면 바로 테오가 만나본 그곳, 그 땅이지 않을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의 수도 적지만, 그만큼 돈을 쓸 일도 적은 케이프타운 사람들의 삶. 그래서 무욕한 사람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를 온통 지배했던 감정은 바로 자유로움이다. 책의 전반에 흐르는 평화로운 기운과 자유의 느낌은 복잡한 현실의 나를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아주 특별한 여행을 한 기분이 가득 차오른다. 먼곳으로 떠남이 아닌 향함의 여행을 말하는 테오. 그와 함께 하였기에 기꺼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던 것이리라.

내 안의 아프리카의 피가 흐르는가,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으로 가득한 그 곳이 참 그립기만 하다.

나도 모르게 사무실 창 밖 펼쳐진 하늘을 향해 나즈막히 속삭여 본다. 테오처럼. "여행아, 네게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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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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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눈동자로 짐작되는 것의 붉기가, 제목글자의 붉은 색이 마치 흐르는 피를 연상시키는 듯한 불길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베일.

베일을 걷어낸  저 너머 우리가 결코 바라보아서는 안 될 그것, 은 과연 무엇일까?

전혀 짐작이 안 되는 책 한권을 마주하는 기분이 참 그렇다. 저자나 제목만으로 책의 내용을 대충 유추해보곤 하던 기존의 책읽기에서 한참은 동떨어진 느낌이 마치 베일로 감싸여진 신비한 셰계처럼 다가온다.

오츠이치라는 작가는 내게는 매우 생소하지만, 책날개에 소개된 바에 의하면 이 시대 최고의 천재작가로 추앙받을 뿐 아니라, 일본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열광팬들이 있다 하니 이 분야에서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여름이면 다양한 귀신놀이나 괴기물이 판을 친다. 영의 세계라는 소재는 드라마나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받게 되는 콘텐츠인 것이다.

<베일>에 실린  첫번째 단편인 <천제요호>는 그동안 이 분야의 책을 몇 권 접하진 않았지만, 기존의 습득한 정보속에서도 결코 찾을 수 없는 아주 새로운 괴기이야기이다.

요즘도 중고등학생들은 그런 놀이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십년도 더 되는 우리때에는 쉬는 시간이면 귀신놀이을 했었다. 이른바 불특정 혼을 부르는 놀이,라고나 할까?
하얀 종이위에 샤프를 올려놓고 마음을 모아서 귀신을 부르면 그 혼이 샤프에 실려서(샤프가 갑자기 요동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알려옴)우리의 질문에 대답하는 놀이, 말이다.

<천제요호>의 첫 장면은 바로 그런  놀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책에서는 샤프펜슬대신 동전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몸이 약한 야기는 코쿠리상(초혼술의 일종-영혼을 불러 질문하고 대답을 얻는 형식)놀이을 통해 사나에라는 사악한 여자영혼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나에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계약을 하게 되고, 이 약속은 야기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된다. 비록 영원한 생명을 얻었지만, 사나에에게 인간의 육신을 조금씩 빼앗기며 점점 동물이 되어가는 야기,

그는 가족과 친구와 살던 마을을 떠나서 고독하고 외로운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고, 어느날 길에 쓰러진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쿄코를 만나게 된다.

야기와 쿄코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내용이 번갈아가며 이 소설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쿄코의 친절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잠시 영위하지만, 이내 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철저히 동물로서의 본성을 자각하게 되는 야기, 그러나 야기는 쿄코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본인이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그녀곁을,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소설은 처음에는 무시무시한 괴기이야기로 읽혀졌으나, 차츰 야기의 모습은 끝없는 욕망덩어리인 인간의 어떤 유형을 풍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터무니없이 개인의 추악한 욕망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바로 이성이 있는 인간이 아닌 동물로서의 삶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삶은 지극히 고독하고 쓸쓸하며 아무 의미없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두번째 단편인 < A MASKED BALL>는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이뤄지는 기묘한 낙서를 중심으로 그 내용이 펼쳐진다.

우에무라는 교칙위반인 담배를 피우기 위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검도장 뒤에 있는 남자화장실을 자주 이용한다. 그리고 타일벽의 낙서를 통해 이 화징실을 이용하는 자들이 자기 외에도 정자체, K.E, 2C, V3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들 다섯은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낙서를 통해서 학내의 사건과 자신의 문제를 풀어놓는다.

그러던 중, 정자체의 낙서에서 학교안의 '악'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을 때마다 음료수자판기사건, 자동차사건, 등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다가 우에무라는 정자체의 낙서에서 2학년 여학생 미야시타를 노린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학교 안의 비밀스러운 사건을 만드는 정체모를 괴한을 유인하고자 꾀를 내는 우에무라. 그러나, 우에무라 일행은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정자체가 노린 것은 우에무라였던 것이다. 과연 정자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츠이츠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나, 평이한 전개속에서도 시종일관 책에서 시선을 못 떼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한권을 언제 읽었나 싶을 정도로 쉽게 읽혀졌다. 그러면서도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가볍지 않은 주제까지 담아내는 오츠이츠의 소설은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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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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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행의 계절, 떠남의 계절, 여름이 한창이다.

이 계절에는 머리 위로 태양은 비록 뜨거워도 살갗을 스치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에도 먼 곳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동하기 마련이다.

옆자리 동료들이 번갈아 가며 다녀온 곳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라도 할라치면 떠나고 싶어하는 욕망은 더욱 강해지게 마련,

허나, 시원한 사무실에서 꿈꾸었던 욕망은 사무실 밖을 나서는 순간 이내 사라지고 만다.

이도 나이탓이려나......

해마다 여름휴가를 계획하며 낯선곳에서의 즐거움에 설레었었던 시간들이 이제는 귀찮게만 느껴지고 그 절차까지도 번거롭게만 다가오니 말이다.

허나, 이번 여름에는 영상포엠<내 마음의 여행>이 있어 멀리 떠나지 못함이 그닥 아쉽지는 않았다.

1권의 주제가 '그리움'이라면 이번 2권의 주제는 '희망'에 대해서 우리에게 영상시를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읽어가다 보니, 내 추억탓인가, 왠지 희망보다는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가슴을 헤집어 놓는다.

TV를 통해서는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기에, 1권을 놓쳤으나, 워낙에 평이 좋아서 이 책은 주저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었다.

총 4장으로 나뉘어 희망여행으로 이끄는 글들은 말 그대로 한편의 시가 되어 우리의 지리한 일상에 한 줄기 바람으로, 한 숨결의 따듯함으로 그렇게 다가와 준다.

1장에서는 '생을 꿈꾸는 그 붉은 뜨거움'이라는 주제아래 전북 고창, 전남 보길도, 강원 양양, 경기 양평에서의 그리움, 추억, 희망을 들려주고 있으며,

2장에서는 '무욕의 삶이 흐르는 풍경'이라는 주제아래 충남홍성.청양, 경북 울진, 전남 신안, 경남 창원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3장에서는 '낡은 서랍을 열었다. 기억과 꿈의 뒤척임'이라는 주제하에 전남 여수, 전북 운주, 경북 봉화, 서울 충무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4장에서는 '꽃 꺾는 고개에선 그대 생각, 눈물 한 방울'이라는 주제로 전남 광양, 충남 서천, 충북 괴산, 강원 화절령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 장의 주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표현이지만, 여행지에서마다 풀어놓은 단상들 또한 멋진 한 편의 시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각 단락마다 TV 상영시 사용되었던 음악까지 '손지명의 음악여행'이라는 코너로 수록되어 있어 음악감상과 더불어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여름 다른 이의 여행담이 부러울소냐...

 

여행지중 여러곳들은 나 또한 부단히 추억의 발자취를 남겼던 곳이기도 하고, 더러는 내 살던 곳도 눈에 들어온다.

누추하고 남루하기도 했던 내 이웃들의 일상의 삶들이 영상포엠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을 보며, 처음에는 다 거짓이야, 라는 속엣말이 올라왔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성실한 노동과 함께 살아가는 이 땅의 민중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또 어디있겠는가, 하는 강한 긍정의 마음이 솟구친다.

 

"서로 마주한 채, 혹은 어깨를 기댄 채

그저 한세상 흘러가면 그걸로 족하다고....."(247p)

 

이 책을 통해 둘러 본 우리 나라 산천 곳 곳의 소박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의 삶에 대한 위대함과 그 일상성의 가치에 대해서 조용히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도 이 땅에서 목숨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릿수 만큼 그 개개인의 고통과 삶의 무게 또한 무거울 지라도 묵묵히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그 순일한 경건함 속에서 다시 희망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한장의 아름다운 사진을 통해 눈으로 보는 시와 글로써 이해하는 시적 감성은 절묘하게 어우러져 두고두고 꺼내봐야 할 책으로 내게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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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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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임거정.

벽초 홍명희의 임거정을 꼭 읽어보라시던 대학때 교수님이 생각난다. 당시 교수님은 소설속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우리 옛언어의 우수성에 대해서 침이 튀기도록 열심을 다해서 말씀하시곤 했다. 한마디로 교수님이 우리에게 강조하던 것은 <소설 임거정>은 우리말의 보물창고,라는 것이다.

그리고 졸업 후 취업을 하고 받은 첫 월급으로 모출판사의 임거정 열권을 받아들었을 때의 기쁨을 기억한다.

그리고 10권의 이 대하소설을 난 2회 읽었다. 한번은 처음에, 두번째는 큰아이를 갖고서 태교용으로 말이다.

 

걱정스런 짓을 많이 해서 외조모가 걱정아, 걱정아, 부르다가 이름으로 굳어 버렸다는 임꺽정.

임꺽정은 장길산이나 홍길동, 의적 일지매같은 도적들과는 좀 다르다. 아주 가끔은 의적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소설 임거정>에서 장길산류의 스토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청석골의 칠두령을 중심으로 마이너리그의 이상적인 삶을 살아낸 그 이야기를 경험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임꺽정의 시대적 배경은 연산군에서 중종을 거쳐, 인종에서 명종으로 이어진다.

소설 <임거정>안에는 우리말의 보고,라는 장점 외에도 조선시대의 패션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상세히 묘사되어 있고,

또한, 시대적 배경에서 눈치챌 수 있겠지만, 각종 사화와 장군, 학자, 승려, 장군, 명기 등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족적과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상세한 묘사 등, 따로 역사공부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뿐인가. 민속학에 대한 자료도 풍부하고, 조선의 풍속을 생생한 언어로 재현시키고 있으며, 살벌한 장면 곳곳에도 넘치는 해학과 유머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까지 절감하게 한다.

 

지식인공동체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일원인 고전평론가 고미숙님은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전에 고미숙님이 재해석해서 집필한 <열하일기>와 관련된 저서들에 기존독자들의 평이 매우 우수해서, 저자의 이력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기대를 크게 했다.

저자의 이력과 현재의 삶의 자세를 살짝 들여다보고 유추해본 본 결과, <임꺽정, 길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에서 보여지는 청석골 사람들의 삶의 가치관과 동류로 느껴졌다.

이 책은  홍명희의 소설<임거정>을 텍스트로 하여 재해석한 작품이지만, 비록 소설 <임거정>을 읽지 않았다 하여도 이 책만으로도 충분히 소설<임거정>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소설적인 서사구조로 접한다면 더 재미가 있다는 점이 다를 뿐.

그러나, 2번씩이나 읽은 나도 고미숙님의 <임꺽정, 깅 위에서 펼펴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익숙하면서도 아주 새롭고 흥미로운 책읽기였으며, 저자의 시선을 따라서 나도 모르는 새 내 삶의 가치관을 점검해 보는 아주 귀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읽다가 무릎을 칠 만큼 와 닿는 귀절이 많아서 내 마음에도 줄을 긋고자 책귀절에 줄을 그었건만, 나중에는 그 줄치는 행위가 너무 빈번해져 번거로울 지경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좋은사람들'이어서 좋은 친구들이 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솔직하게 가장 진솔한 모습을 보였기에 '좋은 친구들'일 수 있었다는 칠두령의 삶의 가치관. 길 위에서의 가치관. 진정한 연대의 가치관, 이 땅의 마이너리그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키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해답이 여기 있었던 것이다.

 

시종일관 깊이 공감하는 나는 마이너리그에 속한 사람이었단 말인가..그렇다면 또 어떠하리..진짜 삶은 기꺼이 나로부터 출가하여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에 있을진대. 앞으로도 기꺼이 길 위의 삶, 연대의 삶을 추구하고 또한 살아내리라.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를 따라가다 보니 기억 속에 묻혀있던 칠두령의 호쾌하고도 뱃속 시원해지는 서사가 속속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2번의 읽기에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설이 주는 메시지를 고전평론가인 저자가 십분 안내해줬으니 이제 다시 한번 읽기를 해야 할 참이다.

밀린 책이 많다지만 아무래도 이 기분이 가시기 전에 책장에 꽂혀 있는 <소설 임거정>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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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비 독살사건 - 여왕을 꿈꾸었던 비범한 여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
윤정란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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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과 왕비는 여염의 가시버시와는 엄연히 다르다.

그들은 다정한 부부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각자 자신의 정치적 세력을 등에 업은 냉혹한 정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왕과 왕비의 정치적인 기반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고, 왕비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는 왕의 신하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왕을 폐서인이키는 것은 정변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왕비는 정치적인 기반이 없으면 언제든지 왕이나 신하에 의해서 그 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7명의 왕비들은 조선 500년 동안 추존되었거나 책봉되었던 왕비 총 44위중에서 정치적으로 독살당했다고 결론지어지는 왕비들만 추려내었다. 저자가 역사의 변방에서 그 한가운데로 불러낸 왕비들은 작은 혁명을 꿈꾸었거나 자신도 모르게 혹은 의도하지 않은 채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당했던 여성들이다.  견고한 남성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당시 조선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그들의 비범했던 꿈을 접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그 비극적인 관점을 현실감있게 풀어놓고 있다. 

 

사가에 있을 때부터 원대한 꿈을 실현하고자 철저히 계획되고 절제된 삶을 살았던 소혜왕후 한씨는 <내훈>을 지어 여성들에게 유교적 여성관을 지키라고 주장하였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을 통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써만 이용하였고, 결국은 절대권력을 꿈꾸는 연산군에 의해서 그녀의 꿈은 꺽이고 만다.

 

성종의 아내이자 소혜왕후 한씨의 손주며느리, 그리고 악명높은 연산군의 모후인 폐제헌왕후 윤씨. 그녀의 사사죄목은 왕의 권력을 넘보았다는 것이다. 정숙, 신실, 근면, 검소, 겸손 등 갖은 미사여구로 칭송받던 윤씨는 후궁에서 왕비로 책봉된 지 단 7개월 만에 흉악, 포악, 패역, 오만한 여성이라는 누명(?)을 쓰고서 사사된 것이다. 윤씨의 드라마틱한 이 인생의 여정에는 신숙주라는 정치적 배경의 생성과 소멸과 깊은 관계가 있다.

 

삶을 살해당한 왕비, 인목왕후. 선조의 계비이자, 영창대군의 모후인 인목왕후.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49세의 선조에게 시집을 온 인목왕후는 철저히 남성위주의 이데올로기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스스로 권력을 가지지 못한 채 왕비라는 위치가 오히려 군왕과 신하들에게 이용되기만 했을 뿐, 철저히 권력에 희생당했던 인목왕후의 삶을 돌이켜보면 조선조 왕비중 이렇게 비극적인 왕비가 또 있을까 싶다.

 

19세기 말까지 부정적인 평가로만 일관되었던 광해군은 오늘날 명과 청의 중간에서 탁월한 외교실력을 보인 '실리외교'왕으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광해군과 그의 부인 유씨가 무속을 믿고 의존해야만 했던 비극은 세자 시절, 명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에서 연유한다.

 

시아버지에 의해 제거된 새로운 세계관의 소유자, 소현세자빈 강씨.

강씨는 그녀의 아버지 강석기가 서인이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간택되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없는 나라의 세자부부는 청의 포로가 되고, 이 사건은 훗날 인조와 세자와의 간극을 벌리게 된다.

유학을 숭상하던 조선과는 달리 실리주의를 추구하던 청에 있는 동안,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세자빈 부부는 인조의 박대를 받게 되고, 결국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조에 의해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대부들, 역사의 새 물결에 저주를 내리다, 희빈 장씨

숙종때는 그 이전 시대보다 신분제의 공고함이 많이 흐려지던 시기이다. 또한,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설화가 많이 남아 있는 시대이기도 한데, 하층민 출신들의 신분 상승에 대한 열망, 백성들이 새로운 세계를 강력히 희망하는 내용들이 그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희빈 장씨는 역관 아비와 천민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천민인 그녀의 왕후 책봉은 조선의 신분제를 뒤흔든 상징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숙종은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당파를 이용하고, 사대부들은 천한 신분의 사람들이 그들과 같이 기득권을 향유하는 것을 두고볼 수 없었기에 민씨의 복귀를 도모하며, 장씨를 폐위에 앞장서게 된다. 결국 그녀를 죽인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사대부들과 이들에게 세뇌당한 백성들 뿐 아니라 신분제 그 자체인 것이다.

 

7명의 왕비 중 유일하게 황후로 거론되는 명성황후 민씨.

저자는 그녀를 진정한 국모가 되지 못했던 황후라고 규정한다.

사실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그 평가가 아직도 여러가지로 엇갈린다. 한미한 집안의 딸이었기에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왕비로 간택되고 이후 흥선대원군과의 대결구도에서 고종을 보좌하여 외줄타기 하듯 당시의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풍미했던 명성황후는 유교적 여성관에 기인한 탓에 민중적 기반을 갖지 못하여 결국은 을미사변의 참변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서양인, 일본인들은 정치적인 역량이 뛰어난 여성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자신의 생존권마저 외국에 의탁했던 그녀는 백성들의 외면으로 죽음과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겉으로 보기에 왕비의 삶은 매우 화려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을 보다 상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냉혹한 권력의 암투속에서 하루하루 긴장을 풀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왕비의 자리. 이에 왕비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그 자리를 굳건히 하고자 팔을 걷어붙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결국은 화무십일홍이 아니겠는가...영원한 것은 없다. 이런 관점에서 왕비들의 스러짐은 어쩌면 세월의 흐름속에서 당연한 것일 뿐이다. 단지 여성이었다는 이유로 그런 결과에 이르렀다는 저자의 해석은 좀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된다.

여튼, 흥미로운 역사 재조명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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