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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20년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어요. 공무원들도 당시엔 우리가 이곳에 살도록 묵인하고 방치했죠. 그런데 시대가 변하다 보니까 옆에 타워팰리스도 생기고 지하철 구룡역도 생긴 거예요.
이렇게 되니까 개포동 주민들은 우리가 애초에 여기서 살았던 게 잘못인 것처럼, 우리가 없이 사는 게 잘못인 것처럼 우리를 바라봐요."
달터마을 주민 최윤숙(가명, 56)씨의 말이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눈에 선한지 그의 눈은 물기로 가득했다. 달터마을은 1986년 인근에 개포고등학교가 지어지면서 그곳에 있던 250여 가구가 개포동 산 156번지로 이주해 조성된 마을이다.하지만 달터마을은 그 실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하 생략)-인터넷 기사 펌글
도시 개발이 진행될 때마다 거론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의 터전을 목숨처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이라는 대도시 곳곳에서 일어났던 비일비재한 사건들. 그것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으며, 또한, 우리네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처럼 취급되는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생성이 되었는지 칼럼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노익상은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통해서 10년 동안의 녹취한 자료로 우리에게 생생하고 현장감있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되는 가난한 사람들, 주류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혹은 잊혀진 사람들의 주거로 사용되는 다양한 형태의 집들은 60년대 산골 태생인 나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낯설지 않다는 것은 그런 주거형태를 정물처럼 보고 자라왔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지, 그 주거형태가 의미하는 이 땅의 민초들의 삶들이 가지는 지난한 역사를 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적 발자취는 이어져 왔다.
농경문화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바로 한 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고 사는 정착문화를 들 수가 있겠다. 정착문화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주중에서도 바로 주, 집이었음은 당연한 일이었고,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인구수에 비해서 주거면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우에는 집에 대한 소유욕이 더 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로부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말한다. 주거문화에 해당하는 살림집의 경우에도 역사적으로 양반이나 가진자의 주거형태를 거론한 저서들은 이미 많이 나와있으나, 저자는 다큐멘타리 작업을 통해서 제 땅과 집을 떠나 살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지난했던 삶을 주목하게 되었고, 이러한 관심은 가난한 이들의 살림집에 대한 기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벼농사 지역의 집성촌 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강가 외딴집이나 외주물집, 분교, 차부집 등에 대한 기억이 많다. 어린시절, 마을 어르신들의 이해못할 수근거림 속에서도 안쪽 마을아이들은 마을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집의 자손들과 잘 어울렸지만,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 그 아이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이거나 조금 나은 경우에도 중학교를 졸업하면 성공을 약속하며 대도시로 떠나갔고, 그 기억을 이후로 그 아이들을 본 적은 없다. 다만, 바람결에 경기도 어딘가에서 산다더라, 혹은 운좋게도 다리불편한 방직공장 사장아들과 결혼해서 팔자를 고쳤다더라, 등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자라오면서 내가 가진 조건이나 환경이 가진 자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러나,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보면서 평범해 보였던 나의 성장기는 얼마나 축복받은 울안의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울 밖의 소외된 삶을 살아왔던 지난 시절 친구들의 얼굴이 스치며 이제서야 온전히 친구들의 삶을 이해한 기분이었다.
<가난한 이의 살림집>은 잊혀져 가는 근대 이후의 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참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저자가 직접 걸어서 전국의 산야를 뒤져가며 소외된 사람들의 살림집을 직접 방문해서 같이 먹고 자면서 녹취한 기록들은 말 그대로 민초들의 기쁨과 눈물의 생생한 현장이어서 다큐멘타리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경제논리에 의해, 정치논리에 의해 우리네 시민들의 살림집이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기분은 때로는 참담하기도 하고 절망스럽기도 했으며, 정글속 동물들의 약육강식이 연상되는 그야말로 목숨붙이고 살아간다는 것의 지엄함과 숭고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40대인 나는 그나마 이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젊은 친구들이 이 책의 내용을 소설속의 이야기처럼 느끼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우려가 된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정도로 생각할 수 없는 인생살이들이 등장하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잊혀진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을 해서 그렇지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풍요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시절이 우리에게는 있었다.
뭐든지 알고 보면 그전에 보았을 때 가졌던 느낌하고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강가집, 외주물집, 외딴집, 문화주택, 그리고 간이역, 분교, 차부집, 여인숙....내가 색다른 것에 대한 동경이나 호기심을 가지고서 경험했던 것들이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고 보니 무지는 죄악이라는 생각이 얼핏 뇌리를 스친다. 저자의 섬세하고도 애정어린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