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이 진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5
미야모토 테루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가 참 멋스럽다.

파랑이라는 색감에서부터 청춘이라는 단어가 절로 생각나고, 곧 이 책이 청춘의 성장소설쯤 되리라는 것은 쉽개 눈치챌 수가 있다.

성장소설이 주는 재미는 다른 게 아니다.

나처럼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대의 사람에게는 성장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추억여행이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여러 책을 읽다가도 중간에 한번씩 꼭 성장소설을 끼어넣는 것은 지난 시간에 대한 즐거운 반추의 시간을 갖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살에 때에 젖어 그저 물흐르듯 살아가는 현재 나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기 위함도 있다.

2년 전만해도 내가 이토록이나 일본소설을 즐겨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동안 접한 일본소설은 성장소설과 추리소설이 대부분이었는데, 산뜻한 전개와 소재의 다양성은 독서의 재미를 더해줄 뿐 아니라, 문화적 동질성에 따른 감정이입으로 인해 비슷한 듯 다른 맛을 느낄 수가 있어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특히 성장소설은 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청춘들의 열정과 고뇌를 다룬 내용이 많았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파랑이 진다>도 대학 테니스 동아리를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의 얼개가 짜여져 있다.

누구나 인생에는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시절이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은 비슷한 경험과 추억을 남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국의 청년들이 이십여년 전 나의 대학시절로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하게 해주었다. 그만큼 누군가에게나 있을 법한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제법 두툼한 책 전반에 아주 일상적인 모습을 띤 채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그 담담한 맛이 매력적인 이 소설은 그만큼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그 담백한 여운이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해준다.

1982년에 발표되었다는 이 소설이 오랜 시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신기하게도 80년대 학번인 나의 대학 경험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여 매우 기꺼운 시간이었다.

순수한 영혼의 평범한 청년인 료헤이, 그리고 그가 운명의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부잣집 공주인 나쓰코, 테니스장을 묵묵히 만들고 테니스부를 이끌어가는 황소처럼 듬직한 가네코, 고교시절 테니스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으나 유전적 정신병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안자이, 테니스에 있어서 왕도가 아닌 패도를 주장하는 구다니의 뜻밖의 모습, 학업을 다 마치지 않은 채 사회에 먼저 뛰어드는 하야마, 야쿠자의 정부와 위험한 사랑을 하는 노래하는 걸리버, 료헤이를 좋아하면서도 의사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난 유코....

이들이 펼쳐내는 대학시절 4년의 시간은 각자에게 상처를, 영광을, 우정을, 사랑을, 그리고 삶의 성숙을 남긴다.

젊음속에는 사랑이라는 감정만이 있는 것은 아닌데..우리가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늘 언제나 좀 더 사랑할껄, 하는 아쉬움이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한다. 그 때 이랬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

그러나, 아직은 미성숙하고 순수하기만 한 그 시절에는 그 때의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나쓰코와 료헤이, 그리고 유코의 엇갈림처럼 말이다.

 

파랑이 진다....

방황과 불확실성, 시행착오, 넘치는 열정, 그리고 순수...그런 것들로 점철되는 파랑이라는 청춘이 가지는 상징성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스러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파랑이 져 또다른 색깔의 인생이 펼쳐질지라도 파랑일 때 진하게 푸르렀더라면 더 깊어지는 갈색이나 따스해지는 노랑같은 삶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새로운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을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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