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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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모르는 사람의 시간을 사용하되 그사람이 시간을 낭비 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것.‘
이 단편집의 저자인 유명작가 커트 보니것의 소설 창작원칙이라고 한다.
멋진 원칙이다.
다른 이들의 시간에 대한 존중과, 은연중에 결코 시간낭비로 치부되지 않을거라는 자기 작품에 대한
당당한 자신감.
그의 작품을 읽고나니 충분히 저런 말을 할 자격 있는 작가임을 인정하게 된다.

솔직히 그의 이름은 알고있었지만(그런데 커트 보니것, 커트 보네거트, 컷 보네것 등 출판사마다 다른 그의 이름 표기는 통일하면 안되는 건가요?ㅜㅜ),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된 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이다.
하루키의 책을 읽다보면 그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로 그의 이름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필력이나 작품에 대한 칭송도 여러번 언급되기 때문에 호기심을 갖게 될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심히 유감스럽게도 내가 애정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라 해서 그 작품이 반드시 내 취향과도 부합되진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은 터라 계속 읽어? 말아? 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이 책을 읽기로 한 건 한결같이 재밌다는 감상을 쏟아내는 독자들 서평의 힘이 컸다.
설마 이 많은 독자들이 모두 나와 다른 관점에서 소설을 읽는 건 아닐텐데, 대부분 일단 재밌다는 감상이 첫번째인 걸 보니 최소한 지루하진 않겠구나
라는 안전보장(?)의 확신이 있었던 거다.

다행히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고, 단편집 치곤 꽤 두꺼운 책임에도 순식간에 다 읽었을만큼 수록된 작품들 모두 편차 없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장점이라는 블랙유머.
유머에는 열광하는 나지만, 어설픈 유머는 차라리
성실한 지루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특히 블랙유머라는 건 유머라고 불리는 어떤 감각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조건들이 충족되어야한다고 믿기에 보니것 작품의 특징이 블랙유머라는 글을 읽고는
실망과 감탄중 어느 쪽일지 내심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결론적으로 엄청난 감탄과 찬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취향을 기준으로 한 만족도에 따른 거다), 폐부를 찌르는 서늘한 유머로 웃음 터지게 만드는 문장 대신 전체적으로 작품에 흐르는 분위기나 여지 없이 기대와 다르거나 앞서버리는 반전, 독자의 예상을 비웃듯 전혀 다른 길로 흐르는 전개 등에서 그의 유머감각(블랙유머 인정)은 빛을 발한다.
특히 오래전 화석에서 발견된 예술적 감성을 지닌 턱없는 개미들의 멸종 원인을 찾아낸 고고학자
형제를 시베리아로 유배 보내고, 그들의 연구결과를 거꾸로 편집해 공산주의의 당위성으로 만들어내는 러시아 관리의 이야기에서 그의 블랙유머는 정말 놀랄만큼 반짝인다.
연인이라 생각했던 바람둥이 음악가에게 버려진 앨런이란 소녀가 그의 다른 여자들처럼 절망이나 비난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6개월동안 예민한 음악가의 주변에 밤낮으로 꾸준히 소음을 일으킴으로써 그 소음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진 음악가가 그녀를(엄밀히는 그녀가 만든 소음들을) 잃지않기 위해 어쩔수 없이 그녀와의 결혼을 선택하게 만드는 웃픈 이야기에도,
평범한 주부였다가 이웃들의 위선을 소설로 써 유명작가가 되었지만 외톨이가 된 아내와, 아내의 소설 때문에 해고된 남편이 최악의 상태까지 몰려 서로를 미워하다가, 어느날 길을 지나던 외판원을 만나면서 자신들을 전혀 모르는 그에게서 위로받고 서로를 돌아보게 되며 예전의 애정을 회복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에도,
평범한 소시민 부부가 일년동안 모은 돈으로 결혼기념일 호사를 누리기 위해 찾은 식당에서 멸시를 당하고 살인까지 목격하지만, 그 식당의 주인이자 도시의 지배자인 범죄자에 의해 도리어 살인자로 몰려 쫒기다가, 결국 상상도 못했던 전개 속에 결국 악을 응징하고 소중한 일상을 되찾는 이야기에도..
작가 커트 보니것의 장점이라는 날카로운 블랙유머의 강력한 힘과 소설적 매력이 넘칠만큼 충분히 담겨져 있다.

다른 단편집들과 달리 책 제목인 ‘카메라를 보세요‘란 제목의 작품이 책의 거의 끝부분에서야 나오는 것도
신선했고, 이야기들 대부분이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도 아주 흥미로웠다.
거의 1세기 전에 태어나(1922년생이라니!)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재미있고 공감을 느끼게 해주다니..
예술이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적 감각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며 끄덕이게 된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조롱한 부자들의 안일함과 이기주의, 권력자들의 무자비한 탐욕과 위선, 순수학문까지 위협하는 체제의 부당함이 이 시대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서글프고 유감스럽지만,
소박한 일상이 주는 기쁨과, 따뜻한 관계를 통해 얻는 삶의 소중한 가치는 언제나 변함없이 지켜질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적지않은 위로와 격려가 된다.
장편도 이렇게 술술 읽히고 재미있을까?
그렇다면 다른 작품들도 설레는 마음으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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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지음, 강승희 옮김 / 천문장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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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엄마와 우리 자매는 정말 각별한 사이였다.
언니와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인 코레드와 아율라처럼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어느것 하나도 같은 점이 없는 거의 극과 극의 자매지만, 그래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작고 귀여운 외모에 누구에게나 너그럽고 선하셨던 엄마를 마치 우리의 동생처럼 또 자식처럼(죄송하지만 사실이다) 소중하고 애틋하게 그리고 열렬히 사랑했었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코레드와 아율라, 엄마의 심리가 좀체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소설
자체로는 신선하고 재미있어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솔직히 이 책을 고른 건 눈에 확 띄는 제목과 나이지리아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가 컸다.
뒤의 역자 후기에 보면 나이지리아 출신의 유명작가에게 그 나라에도 서점이 있느냐며 당신 책을 나이지리아 국민들도 사서 읽느냐는 무례한 인터뷰를 한 진행자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어쩌면 나 역시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해선 너무나 무지했던 독자 중 한명이었다.
나이지리아는 우리나라에선 아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두명이나 있는 나라란 사실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되었으니..
때때로 무지는 타인에 대한 존중도 잊게 한다는 걸 또한번 깨닫고 반성하게 되었다.

소설의 스토리는 제목에서 짐작되는 그대로다.
주인공인 언니 코레드는 남자친구를 죽였다는 동생 아율라의 전화를 받고 죽은 페미의 집으로 가서 살해 현장인 그 집을 청소하고 사체를 강에 버린다.
그런데, 페미는 아율라가 죽인 첫 남자가 아니었다.
벌써 세명째 남자친구를 죽여놓고도 죄의식은 커녕
인스타그램의 사진 업뎃에 열중하는 동생을 보며
코레드는 정말 아율라의 말대로 그가 폭력을 휘둘러
정당방위로 죽인 것인지 의심을 갖게된다.
그러던 중 접수계 간호사인 코레드가 남몰래 짝사랑
하고있던 훈남 의사 타테가 언니를 만나기 위해 병원에 온 아율라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게 되면서
코레드에겐 악몽같은 시간이 시작된다.
어린시절부터 마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서 사랑을 독차지 해온 아름다운 동생 아율라와 모든 순간 비교 당하며 처절한 무시와 좌절 속에 살아온 코레드.
어디서든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하고, 사랑 받는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하고싶은 것은 뭐든지 하고야 마는(살인까지도) 아율라의 뒤에서 늘 그녀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고 동생을 지키며 살아온 코레드였지만, 믿었던 타테마저 아율라에게 빠져 자신을 오해하고 비난하자 동생과 엄마의 부속품처럼 살아온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그와 동시에 언젠가 타테와의 만남이 지겨워지는 순간 그 역시 죽일지도 모르는 동생 아율라의 변덕과 충동을 너무나 잘 알기에 어떻게 그를 지킬수 있을지 고민 하는데..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코레드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유일하게 털어놓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사고로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환자 무흐타르 뿐이다.
가족들의 면회조차 거의 끊긴 그의 병실에 수시로 찾아가 자신의 고민들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으로
그나마 답답한 마음을 푸는 것.
그런데, 어느날 기적처럼 무흐타르가 깨어난다.
게다가 그동안 코레드가 고백했던 모든 이야기들을 전부 다 기억한다고 말한다.
설상가상, 타테는 아율라에게 청혼 할 거라며 다이아몬드 반지를 코레드에게 보여주고, 페미가 죽은 날 사체를 처리하던 코레드와 아율라 자매를 목격한
이웃의 증언으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린 코레드.
악마같은 아버지에게서 동생을 지키기 위해 비극을
선택했던 과거의 어느날 이후 가족의 해결사로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채 살아온 코레드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짝사랑하는 타테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풀기힘든 문제처럼 복잡한 사건이 쉴 새 없이 전개되는 소설이지만 문장들은 쉽고 간결하며, 한없이 복잡하고 불행할 것 같은 주인공 코레드의 심리는 우직하고 단순하게 흘러간다.
미모를 무기 삼아 살인에도 거침 없고 후회나 자책을 모르는 아율라와, 아름다운 딸 아율라에게만 관대한
엄마의 심리 역시 더없이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스토리는 심각하고 복잡하고 긴장의 연속임에도 가벼운 트렌디 소설을 읽는 것처럼 거침 없이 술술 읽힌다.
코레드가 자각 한대로 아율라는 이미 세명 이상의 남자를 죽인 연쇄 살인범이고 짐작했던 또다른 죽음이 이어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이야기는 질척대지도 처절해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마지막 문장을 읽고나면 그 결론이 아주
당연한 것으로, 지극히 타당한 결정이라는 합의가 내 마음에도 생기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미권 혹은 일본작가들이 썼다면
이 소설의 전개가 어떻게 흘러갔을지 상상 해보면
익숙한듯 쉽게 떠오르는 몇가지 (자극적인)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저 담담하게 코레드의 마음을 따라가며 요란스럽지 않게 가족의 비극과 범죄를
대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그런 면이 낯설면서도 아주 매력적이다.
매일 더없이 힙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인싸 친구만 보다가 수수하고 조용하지만 왠지 자꾸만 궁금해지는
낯선 친구를 알게된 신선함 같은 것이랄까..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도 중요하지만, 그 소재를 어떤 문체로 어떻게 변주해 가는 지가 소설의 정체성과 매력을 드러내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그와 더불어 영미권과 일본 등 익숙한 국가의 작가들 뿐 아니라 이제껏 많이 접해보지 못한 제3세계 국가의 작품도 많이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소설이 준 또 하나의 보너스.
일단, 나이지리아로 시작했으니 다른 아프리카 나라의 작가들도 시작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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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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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네권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사의 마지막 권.
이 책에선 1950년 노근리에서 미군이 피난중인 인근 주민들 300여명을 총살한 노근리 학살사건부터,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졌을 뿐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고 미국을 위해 움직이는 검은머리 미국인들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한미 FTA 협정,
내란행위 처벌법에서 시작되었지만 합법이라는 미명 아래 좌익결사조직을 말살 시키기 위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내란음모까지 처벌했던 악명 높은 국가보안법,
부일장학회와 경향신문사를 강탈해 정수장학회를 설립한 독재자 박정희의 탐욕사,
통혁당 간부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한 신영복과
불의의 시대 이야기를 거쳐,
민주화의 기수였으나 기득권 세력에 편입해 새로운
보수가 된 386세대의 몰락,
그리고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거쳐 여야가 바뀌었지만 정치권과 사법부, 언론과 재벌등 변하지 않은 봉건적 기득권 세력들로 인해 진정한 변화의 시대는 우리에게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직까지도 미국의 사과와 보상을 받지못한 노근리 사건부터 대통령 탄핵까지, 이 책 속의 역사적인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주권‘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독립국으로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미국이나 일본등의 강대국으로부터,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인권을 묵살하는 독재자로부터, 그리고 한때 정의를 향한 싸움의 선봉에 있었으나 이제는 또다른 기득권층이 되어 진정한 국가 발전을 막고있는 정치인들까지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세력들로부터 우리의 주권을 우리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다 아는 일들임에도 책을 읽는동안 수시로 분노가 치밀었다.
우리가 피해자임에도 국가 위상이 아직은 부족해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하는 현실,
자신들의 사익만을 추구하며 국가 발전을 막고있는 친일파와 숨어있는 친미 한국인들, 적폐 기득권 세력들..
우리의 주권을 당당히 지켜내고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고, 부족하나마 그 길에 작은 돌 하나라도 놓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 해본다.

분노가 답은 아니지만 무관심보다는 분노가 낫다.
주권자로서 우리의 주권은 우리가 지켜내자.
항상 깨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자.
대한민국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등 편가르기에서 벗어나 나의 이익이 아닌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한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이 주인인 나라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들려준 아픈 역사의 교훈을 절대
잊지말자.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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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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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출신이지만 ‘과학‘과 관련된 소설이나 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션같은 책이라면 언제든 격하게 환영.
이과 출신임에도 뭔소린지 도통 감도 오지않는 과학이론이 적지않게 나오지만, 이 책이 주는 감동과 재미는 그런 어려운 과학용어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좆됐다.‘
첫문장을 보자마자 이 소설이 재미있을 거라는 걸
단번에 알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당연히 틀리지 않았다.
독백의 주인공은 우주식물학자 마크 와트니.
그는 사고로 화성에 혼자 남게 되었고, 자신의 생존을 알게된 동료들이 구출하러 온다해도 4년이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그런데 그가 버틸수 있는 식량은 400일치 뿐.
그래서 저런 독백을 내뱉은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좆됐다고.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네버 없겠지만
내가 마크라면, 400일 버틸 식량만으로 최소한 4년을 혼자 버텨야하는 화성 표류자가 되었다면?
아무리 생각 해봐도 답이 없다.
난 평소에도 적게 먹는 편이니 400일동안 먹을 식량을 900일이나 1000일 정도까지는 나눠서 아껴 먹을수 있겠지만.. 그 다음엔?
아마 굶어 죽거나 그전에 이미 우울증과 외로움에 지쳐서 죽겠지.
그런데, 마크 와트니는 놀라운 선택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식물학자인데다 과학지식도 많이 가지고 있기에(물론 지식이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구조선이 올때까지 버틸수 있는 식량을 스스로 재배해 생존시간을 늘이기로 한 것이다.
그가 있는 곳은 지구가 아닌 화성인 까닭에 경험치나 자료 없이 벌이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죽음의 가능성이 항상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시도한다.
감자 한알을 심는데도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낯선 행성에서 그는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며 살아남아 버틸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무엇보다 감동스러운 건 인간이라곤 혼자 뿐인 낯선 행성에서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시도를 계속 하면서도 그는 늘 긍정적이며, 어떤 순간에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
˝난 화성의 왕이다. ˝(혼자 뿐이니 당연하지)
˝나는 이 행성 최고의 식물학자다.˝ (다른 학자는 없으니 당연하지)
라고 떠들어대며 놀라울 정도의 초긍정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고, 닥쳐온 위기를 극복 해낸다.
소설의 말미에 반전처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는데,
사실 마크에겐 언제든 쉽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절망이 훨씬 더 어울리는 상황에서 끝까지 희망과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고, 긍정적으로
현실을 견디며 생존의 시간을 스스로 늘려온 것이었다.

또다른 감동은 화성에 생존 해있는 마크의 존재를 알게된 후 지구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노력이다.
지구의 어느 오지가 아닌 우주의 행성에 혼자 남겨진
그를 구출해 돌아오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한다.
그것도 필사적으로.
당연한듯 마크를 구하기 위해 힘을 보태는 이들의 모습을 읽다보니 얼마전 신종 코로나 사태로 고립된 우한 지역의 교민들을 데려올 전세기 출항을 두고 벌였던 논쟁과 반대들이 떠올라 씁쓸해졌고,
‘그래. 국가는 이래야지.‘라는 감동이 느껴졌다.
물론, 단 한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 많은 인력과 돈과 기술과 시간을 쓰는 것을 낭비라고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당사자인 마크 와트니도 이렇게 물었으니까.
‘나같은 괴팍한 식물학자 한명을 구하기 위해 그 많은 것을 쏟아붓다니, 왜 그랬을까?‘
그의 질문에 대한 정답이 이어진다.
‘진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저자인 앤디 위어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단 한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를 설명하며 ‘정말 멋지지 않은가?‘라고 묻는
마지막 문장이 너무나 멋져서 눈물이 날것 같았다.

끝까지 나자신과 동료들, 인간의 선의를 믿고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낸 마크 와트니.
그리고, 그를 구출하기 위해 1년이란 시간동안 기꺼이 우주로 날아간 동료들과,
단 한사람의 생명을 위해 엄청난 자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국가.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현실에선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더 큰 감동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마크 와트니를 버티게 했던 초긍정 마인드와 유머의 힘,
그리고 국민 한사람도 소중히 여기는 국가의 원칙은
고단한 삶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희망이기에 버리고 싶지는 않다.

다시 한번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필수 원칙을 마음에 새기며 감상을 마무리 한다.
‘성격이 삶을 결정한다.‘
마크처럼 긍정적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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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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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인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우연히 읽고 내가 읽고싶었던 로맨스를 만났다며 흥분해서 주변 지인들에게 한동안 그 책을 권하고 다녔었다.
오랜만에 작가의 신작(그것도 작가의 장기인 로맨스!)이 출간되었다니 안 읽을수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전작인 ‘사서함~‘ 보다는 로맨스 소설로서의 만족감이 적어 아쉬웠지만, 전작에선 주인공 남녀 두사람의 사랑을 밀도 높게 그렸다면, 이번 작품은 주인공들 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응원하는 ‘관계‘의 이야기로서 따뜻한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주인공 해원은 미술학원에서 가르치던 학생의 태도에 상처를 받고 고향인 북현리로 내려가 펜션을 운영하는 이모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어느날 마을의 노부부가 살던 집이 ‘굿나잇 책방‘이라는 작은 동네서점이 되어있는 것을 발견한 해원은 호기심에 기웃거리다가 서점 주인인 은섭과 마주치는데,
사실 은섭은 해원이 기억하지 못하는 중고등학교 동창이었고, 몇년전 해원과의 인상적인 만남을 은섭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모 대신 펜션을 운영하려는 해원은 겨울동안 은섭을 도와 굿나잇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하고, 매주 한번씩 책방에서 열리는 북클럽에도 참여하게 된다.
자격제한이 없는 북클럽은 조금씩 인원이 늘어나고,
해원과 북클럽 회원들은 자신이 읽은 책을 함께 나누며 어느새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 속에서 옆집에 사는 해원과 은섭은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전작인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도 그랬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로맨스 소설이라면 대부분 등장하기 마련인 사랑의 라이벌이 없다는 것이다.
전작도 그랬지만 해원과 은섭의 사랑에 장애물로 등장하는 것은 끔찍한 과거로 인해 마음을 닫게된
해원의 흔들리는 마음 뿐.
하지만, 개인적으로 바로 그 점이 이 작가의 놀라운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연인들의 관계를 흔드는 것은 강력한 라이벌보다 일상의 작은 균열이나 소통의 부재, 각자의 피치 못할 상황들에서 기인한 갈등인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않을까?
나 아닌 한사람을 온전히 사랑함으로써 내게 오는 그의 세계를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그 자체로 엄청난 노력과 이해가 필요하며, 성숙한 자세로 사랑을 하기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나 스스로가 단단하게 설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은섭은 잔잔한 호수처럼 해원의 모든것을 다 품으려 하지만, 상처와 두려움이 많은 해원은 자꾸만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린채 가시를 세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주인공 해원과 은섭의 로맨스가 아니라, 굿나잇 책방에 모인
북클럽 회원들이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손에 키워진 외로운 아이 승호,
겉으로는 퉁명스럽지만 누구보다 의리 있고 정 많은
그야말로 츤데레 여고생 현지,
소녀같은 미소로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는 수정 이모...
나이나 성별, 가정환경, 직업등 이 사회에서 내세우는
어떤 기준도 없이 오로지 책 이야기로 만나 서로의 친구가 되고,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하게 된 이들의 모습을 통해 나 역시 위로와 격려를 받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은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잘 알기에, 이렇게 온통 선한 인물들로만 가득한 동화같은 마을과 사람들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는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이렇게 착하고 예쁜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만 모인 북현리같은 작은 마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그들을 응원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마음.
은섭과 해원도, 북클럽 회원들도 명여 이모도 모두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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