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지음, 강승희 옮김 / 천문장 / 2019년 3월
평점 :
돌아가신 엄마와 우리 자매는 정말 각별한 사이였다.
언니와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인 코레드와 아율라처럼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어느것 하나도 같은 점이 없는 거의 극과 극의 자매지만, 그래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작고 귀여운 외모에 누구에게나 너그럽고 선하셨던 엄마를 마치 우리의 동생처럼 또 자식처럼(죄송하지만 사실이다) 소중하고 애틋하게 그리고 열렬히 사랑했었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코레드와 아율라, 엄마의 심리가 좀체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소설
자체로는 신선하고 재미있어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솔직히 이 책을 고른 건 눈에 확 띄는 제목과 나이지리아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가 컸다.
뒤의 역자 후기에 보면 나이지리아 출신의 유명작가에게 그 나라에도 서점이 있느냐며 당신 책을 나이지리아 국민들도 사서 읽느냐는 무례한 인터뷰를 한 진행자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어쩌면 나 역시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해선 너무나 무지했던 독자 중 한명이었다.
나이지리아는 우리나라에선 아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두명이나 있는 나라란 사실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되었으니..
때때로 무지는 타인에 대한 존중도 잊게 한다는 걸 또한번 깨닫고 반성하게 되었다.
소설의 스토리는 제목에서 짐작되는 그대로다.
주인공인 언니 코레드는 남자친구를 죽였다는 동생 아율라의 전화를 받고 죽은 페미의 집으로 가서 살해 현장인 그 집을 청소하고 사체를 강에 버린다.
그런데, 페미는 아율라가 죽인 첫 남자가 아니었다.
벌써 세명째 남자친구를 죽여놓고도 죄의식은 커녕
인스타그램의 사진 업뎃에 열중하는 동생을 보며
코레드는 정말 아율라의 말대로 그가 폭력을 휘둘러
정당방위로 죽인 것인지 의심을 갖게된다.
그러던 중 접수계 간호사인 코레드가 남몰래 짝사랑
하고있던 훈남 의사 타테가 언니를 만나기 위해 병원에 온 아율라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게 되면서
코레드에겐 악몽같은 시간이 시작된다.
어린시절부터 마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서 사랑을 독차지 해온 아름다운 동생 아율라와 모든 순간 비교 당하며 처절한 무시와 좌절 속에 살아온 코레드.
어디서든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하고, 사랑 받는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하고싶은 것은 뭐든지 하고야 마는(살인까지도) 아율라의 뒤에서 늘 그녀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고 동생을 지키며 살아온 코레드였지만, 믿었던 타테마저 아율라에게 빠져 자신을 오해하고 비난하자 동생과 엄마의 부속품처럼 살아온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그와 동시에 언젠가 타테와의 만남이 지겨워지는 순간 그 역시 죽일지도 모르는 동생 아율라의 변덕과 충동을 너무나 잘 알기에 어떻게 그를 지킬수 있을지 고민 하는데..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코레드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유일하게 털어놓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사고로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환자 무흐타르 뿐이다.
가족들의 면회조차 거의 끊긴 그의 병실에 수시로 찾아가 자신의 고민들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으로
그나마 답답한 마음을 푸는 것.
그런데, 어느날 기적처럼 무흐타르가 깨어난다.
게다가 그동안 코레드가 고백했던 모든 이야기들을 전부 다 기억한다고 말한다.
설상가상, 타테는 아율라에게 청혼 할 거라며 다이아몬드 반지를 코레드에게 보여주고, 페미가 죽은 날 사체를 처리하던 코레드와 아율라 자매를 목격한
이웃의 증언으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린 코레드.
악마같은 아버지에게서 동생을 지키기 위해 비극을
선택했던 과거의 어느날 이후 가족의 해결사로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채 살아온 코레드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짝사랑하는 타테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풀기힘든 문제처럼 복잡한 사건이 쉴 새 없이 전개되는 소설이지만 문장들은 쉽고 간결하며, 한없이 복잡하고 불행할 것 같은 주인공 코레드의 심리는 우직하고 단순하게 흘러간다.
미모를 무기 삼아 살인에도 거침 없고 후회나 자책을 모르는 아율라와, 아름다운 딸 아율라에게만 관대한
엄마의 심리 역시 더없이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스토리는 심각하고 복잡하고 긴장의 연속임에도 가벼운 트렌디 소설을 읽는 것처럼 거침 없이 술술 읽힌다.
코레드가 자각 한대로 아율라는 이미 세명 이상의 남자를 죽인 연쇄 살인범이고 짐작했던 또다른 죽음이 이어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이야기는 질척대지도 처절해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마지막 문장을 읽고나면 그 결론이 아주
당연한 것으로, 지극히 타당한 결정이라는 합의가 내 마음에도 생기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미권 혹은 일본작가들이 썼다면
이 소설의 전개가 어떻게 흘러갔을지 상상 해보면
익숙한듯 쉽게 떠오르는 몇가지 (자극적인)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저 담담하게 코레드의 마음을 따라가며 요란스럽지 않게 가족의 비극과 범죄를
대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그런 면이 낯설면서도 아주 매력적이다.
매일 더없이 힙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인싸 친구만 보다가 수수하고 조용하지만 왠지 자꾸만 궁금해지는
낯선 친구를 알게된 신선함 같은 것이랄까..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도 중요하지만, 그 소재를 어떤 문체로 어떻게 변주해 가는 지가 소설의 정체성과 매력을 드러내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그와 더불어 영미권과 일본 등 익숙한 국가의 작가들 뿐 아니라 이제껏 많이 접해보지 못한 제3세계 국가의 작품도 많이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소설이 준 또 하나의 보너스.
일단, 나이지리아로 시작했으니 다른 아프리카 나라의 작가들도 시작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