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복받은 작가중의 한명인 저자가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지난 20여년간 글을 쓰며 깨달은 소설 작법에 관해 참으로 친절하게, 상세히 알려주는 책.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의 분량에 비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마치 입구를 찾기 어려울만큼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한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작정하고 나온 지인이 태풍처럼 몰아치는 수다에 정신 없이 휩쓸렸다 깨어난 기분이랄까..
(쓰고보니 그와 만나 수다를 떨면 밤도 가뿐히 새울 수 있을 것같은 느낌적인 느낌^^)

개인적으로 그의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이 좋고, 단편보다는 산문이 월등히 더 좋다.(고 생각한다)
곳곳에서 지뢰처럼 불쑥 나타나는 그의 유머가 좋고, 걸리는 곳 없이 줄줄 읽히며 공감되는 내용의 흐름도 좋고,
무엇보다 맛깔나게 수다 떨 줄 아는 재주를 가진 지인과의 만남처럼 힘들이지 않아도 시간이 훌쩍 가는 매끄러운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좋다.
(장편소설로 가면 신기하게도 이런 산문의 장점들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나에겐 그렇다)
특히 이 책은 그런 그의 산문적 장점들이 가장 집약적으로 뭉쳐져 만들어진 작품같은 느낌.

다 읽고난 첫 느낌은 소설이라는 건 아무나 쓸 수도 없고 써서는 안되는 거구나, 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이다.
(소설을 잘 쓰고싶은 이들을 위한 소설작법 안내 책의 감상이 이런 비관적인 결론이라니. ㅜㅜ)
책 속에 펼쳐진 그의 모든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동의가 되지만 머리로 안다고 해서 반드시 할 수 있는건 아닌데다가,
일단 올바른 인간이 된 후에 ‘왜‘와 ‘어떻게‘를 비롯해 많은 것을 치열하게 고민해서, 성실하게 제대로 된 문장을, 그것도 지칠만큼 여러번 써야만 하는 것이 소설이라니..
‘내 인생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이야‘라는 자신감 넘치는 고백들을 여기 저기서 수없이 들으며 사는동안 소설을 내심 우습게 알게 되었나보다 하는 자각과 함께 반성이 밀려오고, 언젠간 나도 한번.. 이라는 막연한 계획으로 꼽아오던 소설에 대한 섣부른 로망을 그만 접어야하나 라는,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쓸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 엄청난 부작용(?) 외엔 그간 내가 읽은 김연수 작가의 책들 중 베스트3 안에 넣을 수 있겠다 싶을만큼 좋은 내용과 문장으로 가득한 훌륭한 산문집.
여러번 수정했다는 고백을 하긴 하지만, 감탄이 나오는 문장들과 마음에 새기고픈 글들이 정말 많아서 책에 메모를 절대 하지않는 원칙을 깨지않기 위해 포스트잇으로 책장이 빽빽해져버렸다.
다작 하는 작가이고 그의 책을 많이 읽은 독자임에도
이 책을 읽고서야 폴 오스터가 한 말에 그도 해당되는 작가라는 데 동의하게 됐다.
‘작가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중 단명하는 직업 1위라지만
선택된 자들에게만 허락된 재능 없인 결코 얻을 수 없는 작가라는 이름.
그런 면에서 작가들에게 재능은 천형일까 축복일까..
한동안은 산문을 읽는 것을 자제해야겠다.
그의 현란한 문장과 비교되어 어떤 산문도 한동안 밍밍하게만 느껴질것 같으니.
독자에게 이런 감상을 느끼게 만드는 그의 작가적 재능이 그저 부럽고 부럽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07-19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이랑 작가 단편 딱 한 권 읽어봤는데, 단편보다는 산문이 월등히 더 좋다.(고 생각한다)에 동의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밤의 기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하늘연못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전장에서 다리를 잃고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15세 소년의 성장을 그린 소설.
전쟁통에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나버린 엄마,
다리를 잃은 고통을 핑계로 매일 술에 의지한 채
점점 더 망가져가는 아빠.
어른의 보호 아래 자라야 마땅할 나이에 사창가에서 아버지를 돌보며 삶의 희망보다 절망과 체념에 더 익숙해져 가는 소년의 고통스런 날들이 마음 아프다.
패전 후 모든 것을 체념한 태도로 비관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은 섬세하게 묘사된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과 대비되어 더욱 서글프게 느껴진다.
다음 세상을 이끌어갈 세대로서 성장 해가는 아이들에게 아무 관심도 책임도 보이지 않는 어른들,
그런 비루한 일상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않고 미지의 미래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소년은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전쟁이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비극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고통과 인내의 시간들을 견디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담담하지만 힘있는 문장으로 들려주는 소설.
비록 소설이지만 ‘천벌 받아 마땅하다‘는 주민들의 말을 통해 전범국 국민으로서의 자각과 반성을 드러내는 작가의 용기가 반가웠고,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책장을 덮었다.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땅이 통일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하고 앉아있네 3 -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 스낵 사이언스 Snack Science 시리즈 3
원종우.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격식이나 품위와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먼 제목부터 완전 취향저격.
제목 그대로 과학을 쉽게 알려주는 인기 팟캐스트의 내용을 책에 실었다. (진행은 앉아서 할테니 과학하고 앉아있는 게 맞다. 누가 이런 기막힌 제목을..ㅋㅋ)
이과 출신이고 고교시절 성적이 상위권이었음에도 물리나 화학, 미적분 등의 단어만 들어도 거부감이 마구 솟아오르는 내가 과학이론이 궁금해 책을 샀다는 건 정말 해가 서쪽에서 뜰 일.
그만큼 기대가 큰 책이었다는 거다.

어쩌다 보니 최근에 테드창과 김초엽, 황모과 작가등의 과학소설을 연달아 읽게 되었는데, 양자역학을 소재로 한 단편들이 자주 나와 내심 궁금하던 참이었다.
지난주 ‘뉴턴의 아틀리에‘를 읽다가 저자인 유지원씨가 공저자인 김상욱 교수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부분을 읽고는 바로 주문했다.
요즘 읽었던 다른 인문학 도서들에 비해 현저히 얇은 책 두께도 두려움 없이 읽게 만들었던 요인.^^
팟캐스트의 방송 내용을 정리한 책인만큼 대화체로 기술되어 있는데다 최대한 비전공자들을 위해 쉽게 설명 되어있어서 이제껏 읽은 어떤 책보다 양자역학의 개론을 무리 없이 이해한 느낌을 준다.
전에는 양자역학이란 그저 영화나 소설의 흥미로운 소재 중 하나인 평행세계 이론의 바탕이 되는 과학 원리라는 뜬구름 잡는 정도의 어설픈 이해였다면, 우주를 이루는 모든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부터 시작된 김상욱 교수님의 ‘콕 집어 알려주는‘ 설명을 통해 양자역학이 어떤 원리인지, 신비스럽고 불확실한 동시에 가장 정확하고 예측 가능한 모순적 이론이 왜 그토록 중요한 과학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는지, 아인슈타인은 왜그렇게 양자역학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반대 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얇은 책 한권을 통해 이세상 어떤 과학자도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는 잘난척을 할 수 있게 된거다.
(게다가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잘 몰랐던 슈뢰딩거의 고양이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등에 대한 뒤늦은 이해까지..)
자신이 아는 것보다 남에게 설명하는 것이 백배 천배 어려운 일이라는데, 그런 의미에서 김상욱 교수님은 정말 대단한 물리학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뉴턴의 아틀리에‘를 읽는동안 물리학자가 어떻게 미술에 이렇게나 조예가 깊고 남다른 통찰력까지 지녔을까 감탄을 넘어 질투가 날 지경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보니 어떤 학문을 지극한 경지까지 통달한
고수들은 다른 분야의 높은 경지에도 쉽게 오를 수 있다던 말이 떠올랐다.
모국어 외에 두가지 이상의 외국어를 터득한 사람은 열개 이상의 외국어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논리. (그저 부럽고 부러울 따름)
양자역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물리학자가 되고,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탐구를 넘어 다양한 장르의 지식까지 터득하는 그 열정, 더불어 자신이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효과적인 설명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학을 보다 쉽고 친근하게 알리려는 학자적 노력이 한없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양자역학 사랑에 영향을 받은 때문일까?
왜 그렇게 많은 소설들과 영화, 드라마들이 양자역학의 원리에서 비롯된 평행세계와 다중세계의 이야기들에 빠져있는지 너무나 이해되고, 나 역시
그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고싶다는 욕심이 마구 마구 샘솟고 있는중.
뭔가를 어설프게 아는 교만이 이렇게나 무섭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과학이 이렇게 쉬울 수 있는 거라면 아직 어설프게 알고있는 다른 이론들도 하나씩 다 공부 해볼까? 하는 무서운 의욕도 자꾸 커지고 있다.
일단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부터 전부 독파 해야겠다.
이래서 독서는 개미지옥이라고 할 수밖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나의 행진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말랑말랑했던 사춘기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소녀들의 성장소설.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후 엄마와 헤어져 부유한 이모 집에서 중학교에 다니게 된 토모코와 이모의 딸인 미나가 함께 보낸 몇년동안의 시간들이 사춘기 소녀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역자 후기에 나오는 글처럼 보통 가난으로 친척집에 얹혀 살게된 소녀에겐 차별과 무시, 학대의 3종 세트 고난이 펼쳐지는 상황이 예상 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독자들을 비웃듯 지나치다 싶을만큼 따뜻하고 아름다운 내용으로 진행된다.
그 흔한 악인 한명 없고, 모든 인물들은(심지어 이모네 대저택에서 키우는 애완 하마조차) 착하고 따뜻하며,
스토리 역시 갈등이나 충격적인 사건 없이 잔잔하고 평화롭다.

착하다는 말이 언젠가부터 칭찬이 아닌 의미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이야기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고 충격적일만큼 강렬한 전개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 소설은 착하고 따뜻한 이야기도 얼마든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 해준다.
혹시라도 미나가 잘못 될까 불안했던 마음 때문에 조마조마 했던 것만 빼면, 읽는 내내 몽글몽글 소녀의 마음이 되어 행복했다.
이런 좋은 소설들이 더 많이 사랑받고 더 많이 나오기를 응원하며 저자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강창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암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한 아내 대신 음식을 만들게 된 요알못 남편의 요리 이야기.
자신이 만든 음식만 먹을 수 있게 된 아내를 위해
웬만한 요리사 뺨칠만큼 재료를 손질하고 깊은 육수를 내고, 정성스럽고 복잡한 과정들을 거쳐 만들어낸 그만의 조리법들이 담담하게(몇스푼, 몇꼬집 하는 식의 흔한 계량도 없이) 펼쳐져 있다.
책 소개를 읽을때 예상했던 아내의 투병 과정이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별의 이야기는 없다.
그저 아내가 먹고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요리법을 알아내고, 좋은 식재료들을 찾아 장을 보고 애정과 기도를 담아 정성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그의 하루 하루들이 담백한 요리처럼 펼쳐져 있을 뿐.
그럼에도 추천의 글부터 마음이 울컥 해지고,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한 문장으로도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스런 상황들이 익히 짐작되어 읽는동안 몇번이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내가 떠나는 날의 이야기도 없다.
그저 아내가 떠난 후 남겨진 그가 이젠 자신을 위해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며 다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날들의 레시피가 담백하게 이어질 뿐.
그리고 그렇게 버텨가는 어느날의 이야기로, 그 흔한
미래에의 희망이나 기대에 관한 마무리 문장 하나 없이 책은 끝난다.
그래서 정말 좋다.. 고 느낄 수 있었던 책.

사실 이 책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 그 엄청난 슬픔을 감당해낼 수가 없어 죽음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대로 사서 읽던 때에 사둔 책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가 죽음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그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아 몇번이나 꺼냈다가 다시 책장에 넣어둔 채
숙제처럼 바라보기만 했었다.
읽고나니 그때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차라리 다른 책들보다 조금 더 위로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처럼 죽음도 우리와 밀접한 삶의 한 모습이고, 결국 우리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고있는 거니까.
엄마를 보낸 후 잠도 잘 수 없고 먹을수도 없던 시간이 지난 후 나를 가장 아프게 한 것중 하나는,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잠이 온다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순간에 슬픔을 잠시 잊기도 하는 나의 본능이 너무 혐오스럽다는 거였다.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조금은 나를 덜 자책하며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아직은 내 속에 가득한 슬픔 때문인지 몇번은 가슴이 먹먹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읽어야 했고,
담담히 지나가버린 아내와의 이별 장면이 짐작되어
눈물이 흘렀고, 담백한 문장 속에서 남겨진 이의 아픔이 느껴져 시린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그래도 이분은 참 행복한 이별을 하셨구나.
난 엄마를 위해 사랑 가득 담긴 음식 하나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는데.. 그 자책으로 한동안은 또 마음이 좀 많이 아플것 같다.

간절함이 가득하지만 넘치지 않는다.
담담하게 레시피와 음식 얘기를 하고 있지만 위로와
감동을 준다.
고통과 아픔은 최대한 감추고 있지만 스민듯 배어있는 잔잔한 슬픔으로 읽는 내내 응원하게 된다.
담백하지만 진실한 산문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책.
저자와 아드님이 오래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그리고, 당장 냉장고 정리를 하고 이제부턴 좀 더 제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겠단 다짐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