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 미처리 시신의 치다꺼리 지침서
김미조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독서에서 가장 기대하는 부분이 재미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재미 없는 책을
무조건 싫어하진 않는다.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는 재미는 좀 부족해도 다 읽고나면 저자가 하려던 이야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책도 있고,
읽기 힘들었던 책의 어떤 구절이나 내용이 계속 다시 떠오르면서 생각의 단상들을 던져주기도 하고,
어떤 책들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순간 뿌듯함이나 가슴 벅찬 감동, 혹은 어떤 깨달음으로 힘겨운 독서의 시간들을 행운이라 느끼게 해주기도 하니까.

그런데, 솔직히 이 책은 독서 감상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 지 모르겠다.
스토리나 전개방식에서 느껴지는 개인적 감상 차원의 재미와는 별개로, 대개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무슨 얘기를 하고싶었던 건지 알 수 있는데,
이 책은 저자가 무슨 의도로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이 죽은 존재가 되었음을 알게된 주인공이 ‘미처리 시신들의 뒤치닥꺼리‘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미발견 시신이 된 세명의 뒤치닥꺼리를 하는 와중에 자신이 죽은 이유를 알게 된다..
소설의 줄거리는 요약 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느낌이 드는 초반부만 잘 넘기면 글은 쉽고 간략해서 잘 읽히는 편이고 내용에 대한 이해도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소설에서 우리가 흔히 기대하게 되는 뛰어난 묘사력이나 공감, 감탄을 자아내는 어떤 것이 느껴지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다 읽고나면 그래서 뭐? 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 떠오르며 허탈한 기분마저 든다.

저자가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인가보다, 라는 짐작은 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취향과는
거리가 있기에 미안하지만 소설가로서 저자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진 않는다.
내가 쓰고싶은 글과 대중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글이 일치하지 않을때 작가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나서 하게 되는 건 이런 생각이다.
좋아하는 장르나 작가에 치우친 편협한 독서를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집었다가 역시 나는 어쩔수 없구나
하는 자각을 다시 하게 만든 책.
다음 작품에선 좀 더 독자들의 공감과 호응을 많이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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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티마 2021-01-04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고싶었던 얘기를 대신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바다그리기 2021-01-04 14:00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디오티마님 글을 읽고 다시 보니 작가분이 힘들게 쓰신 글을 너무나 쉽게 평가한 건 아니었나 하는 자각에 반성도 하게 되네요.
부족한 감상을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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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술술 읽힌다.
그렇게 순식간에 다 읽고나니 이 책의 저자인 장류진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것 같은 기분.
나같은 독자가 있으리란 걸 예감했던지 작가는 이 단편 속 인물들에 자신의 모습이 조금씩 들어있긴 하지만 자신과는 다르다는 방어막을 미리 쳐두긴 했는데..
어쩐지 그래서 더 작가와 싱크로율이 높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는 뭘까? ㅎㅎ

이 책의 최대 장점은 현실적인 공감이다.
책 속 단편들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내가 아는 사람들을 보고있는 것처럼 모든 상황들이 익숙하다.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준만큼 받을 수 있고 받은만큼 돌려줘야하는 사회의 기본 룰조차 몰라서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일도 다반사인 회사 동료,
열심히 뛰어 자신의 지시대로 성과를 낸 직원을 승진 시켜놓고는 알량한 자신의 인스타용 허세 과시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괘씸죄를 물어 승진을 취소하고 월급을 포인트로 주는 SNS 스타 회장님,
‘아메리카노 2천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고 들어간 손님에게 아이스는 4500원이라며 이탈리아인들의
핫커피 사랑에 대한 지식까지 과시하는 까페 사장님,
눈에 보이는 곳만 깨끗하게 청소하며 주인 몰래 요령을 피우고, 무례를 관심으로 포장해 사적인 영역까지 마음껏 침범하는 도우미 아주머니,
한때 긴장과 설렘을 오가며 썸을 타던 직장동료가 돌싱이 되었다는 소식에 그녀와 다시 새로운 로맨스를 꽃피우겠다는 욕망으로 그녀를 찾아가 젠틀한 매력을 어필하며 그녀와 밤을 보낼 기회만 엿보는 남자..
그들은 주변 곳곳에서 우리의 일상과 감정에 크고 작은 상처를 내는 낯익은 사람들이다.
부당한 회장의 갑질에도 반항조차 못하고 포인트로 구입한 물건을 중고거래 해 살아가는 힘없는 을,
눈치 없는 동료에게 싫단 소리도 못하는 마음 약한 후배,
커피 한잔도 머리 속 가계부의 잔액을 생각하며 구매 해야하는 사회 초년생,
생활에 치어 잠깐의 여유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하는 대학생..
이들 역시 내가 이미 지나온 길 어딘가에 서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겪은 부당함과 속터짐과 분노와 공포와 부끄러움들은 힘없고 어설펐고 교만했고 지쳤던 때의 나에게도 있었던 일들이다.
소설임을 알면서도 너무나 익숙하고 현실적인 그들의
모습이 나의 일처럼 느껴지기에, 어딘가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잠깐 훔쳐본 듯한 생생한 공감이 느껴진다.
(쓰고보니 바로 이 점 때문에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공감이라는 감정은
가끔 이렇게 대책 없는 확신을 낳기도 한다.^^)

책 속 단편들이 수기가 아닌 소설임을 알면서도 공감이 되다못해 마치 내가 겪은 것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생생한 심리 묘사를 바탕으로 한 저자의 뛰어난 필력 덕이다.
선하지만 눈치가 없고 사회적 룰에 맞출줄도 모르는
나이 많은 동료를 향한 분노와 거부감, 그와 동시에
꼭 그만큼의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인해 선뜻 그녀를
내치지 못하고 결국은 걱정하는 주인공의 심리는,
소위 한 집단에서 고문관이라 불리며 무시 당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천진함으로 나름의 삶을 즐겁게 꾸려가는 이들에 대해 우리 모두 한번쯤은 느껴본 적 있었던 그 이율배반적인 껄끄러운 감정들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만든다.
첫 출근날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흘러가길 바라지만 과도한 긴장과 불안, 허황된 기대와 설렘등
복잡한 감정들의 하모니로 매순간이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위태로웠던 그 마음은 또 어떤가.
내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도우미 아주머니에게도 연장자에 대한 예의로 눈치를 보게되고, 무례한 관심과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꼼수에 불쾌감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만 두겠다는 말에 애원조로 매달리게 되고 마는 굴욕적인 마음도,
하고싶은 일을 포기하고 그저 돈을 벌기위해 취직한 직장에서 4대보험, 연봉, 직원 혜택 등의 단어가 적힌 고용계약서를 쓰며 굴욕이나 비참함이 아니라 안도와 벅찬 행복으로 감사를 느끼는 을들의 서글픈 자각 등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우리가 삶 곳곳에서 만났던 감정들이 저자의 뛰어난 필력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느끼고 아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느낄수 있도록, 그것도 나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표현 해내는 건 결코 쉽지않다.
그런데, 이 단편집이 첫 책이라는 작가의 필력이 이정도라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마지막의 ‘탐페레
공항‘이었다.
여행중 경유지로 들렀던 핀란드 탐페레 공항에서 함께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다 헤어진 뒤
낯선 나라의 할아버지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보내주신 다정한 편지.
바쁜 일상을 핑계로 답장을 미루며 마음 속 한켠에
부담과 죄책감을 느끼던 주인공은 어느날 그 편지를
다시 보다가 도착 전에 사진이 구겨질까 걱정스러워
시리얼 포장지를 잘라 정성스럽게 붙였던 할아버지의
다정한 마음을 깨닫고 눈물을 터뜨린다.
지금이라도, 라는 간절함으로 편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고선 불안과 기대 속에 신호음을 들을 때
내 마음도 같이 두근거리며 불안했고 제발 아직 살아계시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전화를 받은 할머니의 반가운 답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감과 함께 울컥하며 정말 다행이다, 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지나간 순간은 우리에게 그리움과 후회라는 아픔을
남기지만, 되돌릴 수 있는 용기와 진심이 있다면
기적은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것.
독자들과 짜릿한 밀당을 벌이며 쥐락펴락 하다 마침내 해피엔딩을 던져주는 글, 멋지다!

쉽게 읽혔지만 감정의 희노애락을 제대로 경험하게 해준 책.
첫 작품의 만족도가 이정도라면, 하는 섣부른 기대로
다음 작품을 기다려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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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첫 챕터인 꽃게잡이 배 이야기를 다 읽기도 전에 깊은
반성이 밀려왔다.
(어떤 장르의 책을 읽어도(심지어 로맨스까지) 반성 할 점이 최소한 하나쯤은 떠오르는 걸 보면, 난 아무래도 반성에 특화된 성향이거나 그동안 엄청 엉망으로 살아왔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깨달음에 이 글을 쓰면서도 또 반성을 하고있다)
나름 예술가에 속하(고 있다고 믿)는 대중적인 창작 분야의 일을 막 시작했던 때부터,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은 거절할 수 있는 짠밥의 경력자가 된 지금까지 내가 걸핏하면 하던 말 중 하나가 ‘정 할 거 없으면 일용직(노동)이라도 하면 되지 뭐.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소위 일용직이라 불리는 노동에 내가 얼마나 무지 했었는지 깨달았고,
‘정 할 거 없을 때 육체 노동을 하기‘엔 내겐 체력도
요령도 경험도 지식도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단 하루도 그 현장에서 가치 있는 대접을 받으며 일당을 받을 능력이 전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노동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내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쉬운 선택지가 아니라는 걸 이 나이가 되도록 난 모르고 있었던 거다, 정말이지 너무나 한심하게도.

흔히 ‘노동은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이 말이
개소리라고 생각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말하면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버금가는 굳건한 경제적 사회적 수직적 지위 아래 갑과 을의 차별을 당연하게 인식하고,
‘노동은 가치 있다‘고 말하면서 땀 흘리는 육체노동자들을 멸시하고 당연한듯 천대하는 자본주의 사회.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에서 더 많이 일하고 더 위험하고 더 힘들면서 돈은 훨씬 더 적게 받는 노동은 점점 더 하층 지위로 내몰린다.
이 책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은 가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배우면서, 나와 내 가족은 그런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세상에서 어쩔수 없이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르포나 취재 형식의 관찰자 시점으로 노동 현장을
담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작가중 가장 많은 직업을 가져봤을거라 장담하는 저자가 직접 경험했던 우리나라 곳곳의 노동현장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담겨있다.
저자가 직접(그것도 생계를 위해) 경험했던 수많은 노동의 현장은, 저자의 뛰어난 문장력에 생생한 묘사력이 더해져 마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직접 겪은 일이라는, 누군가가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힌 진짜 삶이었다는 확실한 근거를 배경으로 가진 글의 힘은 이렇게나 강력하다.
‘삶의 바닥까지 내려가본 불행한 경험이 작가에겐 귀중한 창작의 자산이 된다‘는 표현이 적어도 이 책의 저자인 한승태 작가에겐 맞는 듯하다.

저자는 ‘종이에 쓰여있는 것은 모두 진실‘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탓에 기본월급 100만원이라 쓰인 전단지만을 믿고 꽃게잡이 배에 올랐다가, 살고 죽는건 하늘의 뜻이라고 믿는 선원들에게 구박 받으며 순식간에 생사가 갈리는 갑판에서 끔찍한 노동에 내몰리고,
우리나라 최고 매출을 자랑하는 강남의 주유소에선
운전석에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최악의 갑질을 서슴치 않는 고객들을 상대하며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
아산의 돈사에서 돼지똥을 치우는 동안 평생 했던 기도보다 더 많이 신을 불렀으며,
숨조차 편히 쉬기 힘겨운 비닐 하우스에선 누군가가 축복이라 부르는 햇빛조차도 어깨를 짓누르는 노동의 무게임을 깨닫고,
자동차 부품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며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새삼 저울질 하게 됐음을 고백한다.

책은 꽤 두껍지만 저자의 뛰어난 묘사력과 날카로운 비유,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인해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저자는 그저 자신이 경험했던 여러 노동현장의 사람과 일에 관해 담담하게 풀어놓을 뿐이지만,
꽃게잡이 배에서 시작해 편의점과 주유소, 돼지농장과 비닐하우스, 자동차 부품공장을 거치는 동안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이기주의, 갑과 을로 대변되는 계층 문제 등에 대해 슬그머니 분노가 치밀고,
최소한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중 받으며 가치 있게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 해보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이야기는 꽤나 진지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책 속의 문장들은 딱딱하거나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게 바로 블랙유머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카로운 묘사 속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질만큼 놀라운 유머를 감추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예를 들자면 이런 놀라운 문장들이 책 곳곳에 포진 해있다가 기습공격으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 양돈장 악취는 심각한 걱정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가슴 한편이 무거워지고, 조증 환자를 진정시키는데
효력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좀도둑질이나 일삼는 정치인들에게 사회봉사랍시고 꽁초나 줍게 할 게 아니라, 이런 똥 리어카를 끌게 해야한다.
- 선원들의 대화 주제는 선주가 얼마나 ‘좆같은‘ 놈인가와 일이 얼마나 ‘좆같이‘ 힘든가로 엄격하게 한정 되었다.
- 지방 젊은이들은 계속 서울로 몰려들고, 그 덕분에 지방 소도시들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가 SG워너비의 신곡을 연주하며 지나간 것같은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이 건물은 화재 발생시 투숙객들을 최대한 신속하게 질식사 시킬 수 있도록 설계된 것 같았다.
내가 완강기나 비상계단은 없냐고 묻자 고시원장은
내가 샹들리에는 어디 달려있냐고 묻기라도 한 것처럼 황당해했다.

이렇게 내심 감탄하며 속으로 웃게되는 글 뿐 아니라, 풉! 하고 입 밖으로 웃음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문장들도 많은데, 특히 고시원에서 화장실 사용을 두고 벌인 어느날의 싸움처럼 주변 사람들과의 일화
중엔 큰 소리로 웃게되는 이야기들이 적지않다.
이처럼 뛰어난 묘사력 속의 치밀한 유머 뿐 아니라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고 노동자를 무시하는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도 놓치지 않는다.
상위계급은 하위계급을 마음껏 욕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기 때문에, 자신은 이제껏 단 한번도 이 권리를 소홀히 하는 상위계급을 본 적 없다고 일갈하고,
자신이 감정노동자임에도 타인의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 되면 상대가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다는 확신으로 무례하게 대하는 을들의 이중성을 꼬집으며,
한국의 모든것이 서울에 있을뿐 아니라 많은 것들은 서울에만 있기에, 문화와 의료중 어느 쪽도 제대로 향유할 형편은 못되지만 가능성은 열어두고싶은 사람들이 서울로 몰리기때문에 ‘한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서울‘이라는 말로 지나치게 편중된 지역 발전의 불평등을 비판한다.
그저 작가로서의 호기심으로 발만 살짝 담군 것이 아니라 생활자로서 그 많은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을 가감없이 써내려간 그의
솔직함에 감탄했고,
설명을 목적으로 썼음에도 탁월한 묘사력으로 무장한 뛰어난 문장들이 가득하다는 점이 부러웠고,
이런 밑바닥 생활에도 주눅 들거나 자학하지 않는
당당함과 예리한 비판의식이 존경스러웠다.

책을 모두 읽고 서문을 다시 읽어보니 저자가
주장 했다는 제목인 ‘퀴닝‘이 출판사가 결정한 ‘인간의 조건‘보다 이 책에 더 어울리는 제목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무 능력도 없고 할 수 있는건 앞으로 한칸씩 전진하는 것밖에 없는 졸(체스에선 폰)이라도 끝까지 가면 어떤 것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체스의 룰 ‘퀴닝‘.
현실에선 흙수저로 태어나 금수저가 되는 일같은 기적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해도, 평생 졸로 살아야하는 우리에게도 퀸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가 한번쯤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 하나 정도는 가능한 세상이라면 용기 내서 열심히 살아볼만 하지 않을까?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존중받고 살 수 있는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졸도 성실히 땀 흘려 노력하면 언젠가 퀸으로 짠!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
기적일 뿐이라 해도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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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그해, 여름 손님》 리마스터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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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읽는 내내 머리 속에 계속 떠오른 생각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력이 이 세상을 온통 푸른 빛으로 가득 채우며 눈부시게 반짝이는 여름 풍경도,
찬란한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릴듯 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만나 조금씩 변해가는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열정도,
낯선 여름 손님을 따뜻한 고향의 마음으로 안아주는
엘리오의 가족과 친절한 이웃들도..
이 소설에는 아름답지 않은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눈물 나게 슬프다.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아름다움에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스며있음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깨닫게 된다.

주인공 엘리오는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열일곱살의 고교생.
가족들이 해마다 여름을 보내는 시골 마을 별장에는
대학교수인 아버지의 번역작업을 도우며 자신의 책을 집필하려는 손님이 오는데, 그해 여름엔 올리버라는 스물 네살의 대학교수가 초대됐다.
그가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엘리오는 올리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를 향한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에 휩싸인다.
모든 감각이 마치 올리버를 향해 열린듯 그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그의 눈빛과 미소와 체취와 사소한 말과 작은 몸짓 하나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하루 하루.
소설은 이처럼 여름 손님인 올리버에게 매혹된 소년
엘리오가 갑작스런 그 끌림의 정체를 모른 채 겪게되는 온통 그만을 향한 감정의 변화와,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어 나누는
두 사람의 짧지만 뜨거운 사랑,
예정된 이별 후 다가온 고통의 나날을 지나 20년 후
서로를 처음 만난 시골집 앞에서의 재회까지..
갑자기 찾아온 불꽃처럼 뜨거운 사랑의 감정으로 인해 대책 없이 흔들리고 아파하면서도 더없이 찬란한 황홀을 경험하는 소년 엘리오의 성장기를 섬세하고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올리버를 대상으로 한 엘리오의 상상과 욕망, 연인이 된 두 남자의 성 묘사는 꽤 노골적이다.
하지만, 동성애나 성 묘사의 수위같은 잣대는 이 소설을 평가하는 데 있어 아무 의미가 없다.
누군가에게 연정을 품게 되는 그 순간부터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찾아오는 내밀하면서도 격렬한 감정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기에,
빛나는 청춘의 한 시기에 이성이든 동성이든 누군가를 처절하게 갈망해본 사람이라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엘리오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리버가 떠난뒤 아들의 고통을 짐작하는
엘리오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은
아픈 청춘의 시간을 기억하는 우리에게도 큰 위로가
되어준다.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우정 이상일 지 모르지. 난 너희가 부럽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냥 없던 일이 되기를, 아들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랄거다.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일면 끄지도 잔혹하게 대하지도 마라.
무엇도 느끼면 안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건 시간 낭비야.˝
찬란한 청춘의 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
그 시절의 사랑은 죽을만큼의 고통을 함께 가져오지만 피하지 않을 가치가 있다는 것,
몸과 마음이 순수하게 반짝박짝 빛날때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기꺼이 누리고 즐기라는 것.
후회보다는 아픔을 남기는 게 낫다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이런 멋진 아버지를 둔 엘리오가 한없이
부러웠고, 상처 받을까 두려워 시작도 하지 못했던
내 청춘이 떠오르며 저렇게 멋진 어른이 내 옆에 있었다면 내 삶도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했다.
이 소설이 그저 단순한 퀴어소설로 치부되지 않고
명작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그것, 엘리오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했던 삶의 진리가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짧기에 더 아쉬운, 찬란하게 빛나는 여름처럼
지나고 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청춘의 한 시절,
온 마음으로 그의 존재를 받아들여 내 안에 가득 채우고 나의 모든 진심을 다해 그를 사랑하는 것.
어쩌면 누군가의 삶에는 영원히 오지 않을 뜨겁고
순수한 열정의 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고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소설은, 지나버린 찬란한 한때를
향한 아름답고 슬픈 그리움의 향수인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을 돌고 돌아 20년 후 첫만남의 장소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그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엘리오의 바람대로 올리버는 자신의 이름으로 엘리오를 불러줬을까?
(사랑하는 이를 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이토록
설레고 섹시한 거였다니..^^)
엘리오가 좋아했던 올리버의 말로 두사람에 대한 나의 바람을 대신한다.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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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읽는 내내 머리 속에 계속 떠오른 단어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력이 온 세상을 온통 푸른 빛으로 가득 채우며 눈부시게 반짝이는 여름 풍경도,
찬란한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릴듯 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만나 조금씩 변해가는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열정도,
낯선 여름 손님을 친절한 고향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탈리아 가족과 이웃들도..
이 소설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눈물 나게 슬프다.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아름다움에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스며있음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깨닫게된다.

주인공 엘리오는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열일곱살의 고교생.
가족들이 여름을 보내는 시골 마을 별장에는 해마다 대학교수인 아버지의 번역을 도우며 자신의 집필을
하려는 손님이 오는데, 그해에는 스물 네살의 미국 대학교수 올리버가 초대된다.
그가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엘리오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때부터 온통 그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엘리오의 감정이 펼쳐진다.
모든 감각이 올리버를 향해 열린 것처럼 그만을 보고,
그의 몸 곳곳을 살피고, 그의 체취와 눈빛과 말과 발걸음 소리와 습관까지 온통 자신을 사로잡는 그의 그의 모든 것에 집중하는 엘리오.
소설은 여름 손님인 올리버에게 매혹된 소년 엘리오가 그를 향한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온통 그만을 향하며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어 후회 없이 사랑을 나누는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들, 그와의 이별 후 겪게된 아픔의 나날을 지나 20년 뒤 그와 처음 만났던 집앞에서 다시 재회 할때까지, 갑자기 찾아온 불꽃같은 사랑의 감정 앞에 대책 없이 흔들리는 소년 엘리오의 성장기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리고 있다.

올리버를 대상으로 한 엘리오의 상상과 욕망, 연인이 된 두 남자의 성 묘사는 꽤 노골적이다.
하지만 이성애냐 동성애냐 하는 구분과 성 묘사의 수위 같은 것들은 이 소설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누군가에게 연정을 품게 된 순간부터 겪게되는 그 모든 내밀한 감정들의 흐름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기에, 이성이든 동성이든 빛나는 청춘의 한 시절에 누군가를 처절하게 욕망 해본 사람이라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그 뜨거운 감정에 공감하지 않을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올리버가 떠난 뒤 아들 엘리오의 감정을 눈치채고 있던 아버지가 해주는 위로의 말이 우리에게도 큰 위안을 주며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다.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우정 이상일지 모르지. 난 너희가 부럽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냥 없던 일이 되기를, 아들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랄거다.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일면 끄지도 잔혹하게 대하지도 말아라.
순리를 거슬러 빨리 치유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뜯어내기 때문에 마음이 결핍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할 때 줄 것이 없어져버려. 무엇도 느끼면 안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건 시간 낭비야.˝
찬란한 청춘의 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
그 시절의 사랑은 죽을만큼의 고통을 함께 가져오는
것이라 해도 피하지 않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
몸과 마음이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반짝반짝 빛날때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기꺼이 누리고 즐기라는 것.
후회보단 아픔을 남기는 게 낫다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이런 멋진 아버지를 둔 엘리오가 한없이
부러웠고, 상처 받기싫어 시작도 하지 않았던 내
청춘의 기억들이 떠오르며 나에게도 저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기도 했다.
이 소설이 그저 단순한 퀴어소설로 치부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것, 아버지가 엘리오에게 알려주고 싶어했던 삶의 진리가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짧아서 더 아쉬운, 찬란하게 빛나는 여름의 한때처럼 지나고 나면 다시는 오지않을 청춘의 한 시절,
온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여 그의 존재를 내 안에 가득
채우고, 모든 생각과 마음과 몸으로 온통 그만을 뜨겁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
어쩌면 누군가의 삶에는 한번도 오지 않을 그 순수한
열정의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고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소설은 지나버린 그때를 추억하게 하는 아름답고 슬프고 아쉬운 그리움의 향수인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을 돌고돌아 20년전 첫 순간의 장소에서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그후에 어떻게 됐을까?
엘리오가 바란대로 올리버는 자신의 이름으로 엘리오를 다시 불러줬을까?
(사랑하는 이를 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이렇게나 설레고 섹시한 일이었다니..^^)
엘리오가 좋아했던 올리버의 말로 두사람에 대한
나의 바람을 대신하련다.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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