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
읽는 내내 머리 속에 계속 떠오른 단어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력이 온 세상을 온통 푸른 빛으로 가득 채우며 눈부시게 반짝이는 여름 풍경도,
찬란한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릴듯 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만나 조금씩 변해가는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열정도,
낯선 여름 손님을 친절한 고향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탈리아 가족과 이웃들도..
이 소설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눈물 나게 슬프다.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아름다움에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스며있음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깨닫게된다.
주인공 엘리오는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열일곱살의 고교생.
가족들이 여름을 보내는 시골 마을 별장에는 해마다 대학교수인 아버지의 번역을 도우며 자신의 집필을
하려는 손님이 오는데, 그해에는 스물 네살의 미국 대학교수 올리버가 초대된다.
그가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엘리오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때부터 온통 그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엘리오의 감정이 펼쳐진다.
모든 감각이 올리버를 향해 열린 것처럼 그만을 보고,
그의 몸 곳곳을 살피고, 그의 체취와 눈빛과 말과 발걸음 소리와 습관까지 온통 자신을 사로잡는 그의 그의 모든 것에 집중하는 엘리오.
소설은 여름 손님인 올리버에게 매혹된 소년 엘리오가 그를 향한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온통 그만을 향하며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어 후회 없이 사랑을 나누는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들, 그와의 이별 후 겪게된 아픔의 나날을 지나 20년 뒤 그와 처음 만났던 집앞에서 다시 재회 할때까지, 갑자기 찾아온 불꽃같은 사랑의 감정 앞에 대책 없이 흔들리는 소년 엘리오의 성장기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리고 있다.
올리버를 대상으로 한 엘리오의 상상과 욕망, 연인이 된 두 남자의 성 묘사는 꽤 노골적이다.
하지만 이성애냐 동성애냐 하는 구분과 성 묘사의 수위 같은 것들은 이 소설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누군가에게 연정을 품게 된 순간부터 겪게되는 그 모든 내밀한 감정들의 흐름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기에, 이성이든 동성이든 빛나는 청춘의 한 시절에 누군가를 처절하게 욕망 해본 사람이라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그 뜨거운 감정에 공감하지 않을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올리버가 떠난 뒤 아들 엘리오의 감정을 눈치채고 있던 아버지가 해주는 위로의 말이 우리에게도 큰 위안을 주며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다.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우정 이상일지 모르지. 난 너희가 부럽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냥 없던 일이 되기를, 아들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랄거다.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일면 끄지도 잔혹하게 대하지도 말아라.
순리를 거슬러 빨리 치유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뜯어내기 때문에 마음이 결핍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할 때 줄 것이 없어져버려. 무엇도 느끼면 안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건 시간 낭비야.˝
찬란한 청춘의 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
그 시절의 사랑은 죽을만큼의 고통을 함께 가져오는
것이라 해도 피하지 않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
몸과 마음이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반짝반짝 빛날때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기꺼이 누리고 즐기라는 것.
후회보단 아픔을 남기는 게 낫다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이런 멋진 아버지를 둔 엘리오가 한없이
부러웠고, 상처 받기싫어 시작도 하지 않았던 내
청춘의 기억들이 떠오르며 나에게도 저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기도 했다.
이 소설이 그저 단순한 퀴어소설로 치부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것, 아버지가 엘리오에게 알려주고 싶어했던 삶의 진리가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짧아서 더 아쉬운, 찬란하게 빛나는 여름의 한때처럼 지나고 나면 다시는 오지않을 청춘의 한 시절,
온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여 그의 존재를 내 안에 가득
채우고, 모든 생각과 마음과 몸으로 온통 그만을 뜨겁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
어쩌면 누군가의 삶에는 한번도 오지 않을 그 순수한
열정의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고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소설은 지나버린 그때를 추억하게 하는 아름답고 슬프고 아쉬운 그리움의 향수인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을 돌고돌아 20년전 첫 순간의 장소에서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그후에 어떻게 됐을까?
엘리오가 바란대로 올리버는 자신의 이름으로 엘리오를 다시 불러줬을까?
(사랑하는 이를 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이렇게나 설레고 섹시한 일이었다니..^^)
엘리오가 좋아했던 올리버의 말로 두사람에 대한
나의 바람을 대신하련다.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