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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그해, 여름 손님》 리마스터판 ㅣ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12월
평점 :
아름답다.
읽는 내내 머리 속에 계속 떠오른 생각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력이 이 세상을 온통 푸른 빛으로 가득 채우며 눈부시게 반짝이는 여름 풍경도,
찬란한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릴듯 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만나 조금씩 변해가는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열정도,
낯선 여름 손님을 따뜻한 고향의 마음으로 안아주는
엘리오의 가족과 친절한 이웃들도..
이 소설에는 아름답지 않은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눈물 나게 슬프다.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아름다움에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스며있음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깨닫게 된다.
주인공 엘리오는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열일곱살의 고교생.
가족들이 해마다 여름을 보내는 시골 마을 별장에는
대학교수인 아버지의 번역작업을 도우며 자신의 책을 집필하려는 손님이 오는데, 그해 여름엔 올리버라는 스물 네살의 대학교수가 초대됐다.
그가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엘리오는 올리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를 향한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에 휩싸인다.
모든 감각이 마치 올리버를 향해 열린듯 그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그의 눈빛과 미소와 체취와 사소한 말과 작은 몸짓 하나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하루 하루.
소설은 이처럼 여름 손님인 올리버에게 매혹된 소년
엘리오가 갑작스런 그 끌림의 정체를 모른 채 겪게되는 온통 그만을 향한 감정의 변화와,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어 나누는
두 사람의 짧지만 뜨거운 사랑,
예정된 이별 후 다가온 고통의 나날을 지나 20년 후
서로를 처음 만난 시골집 앞에서의 재회까지..
갑자기 찾아온 불꽃처럼 뜨거운 사랑의 감정으로 인해 대책 없이 흔들리고 아파하면서도 더없이 찬란한 황홀을 경험하는 소년 엘리오의 성장기를 섬세하고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올리버를 대상으로 한 엘리오의 상상과 욕망, 연인이 된 두 남자의 성 묘사는 꽤 노골적이다.
하지만, 동성애나 성 묘사의 수위같은 잣대는 이 소설을 평가하는 데 있어 아무 의미가 없다.
누군가에게 연정을 품게 되는 그 순간부터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찾아오는 내밀하면서도 격렬한 감정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기에,
빛나는 청춘의 한 시기에 이성이든 동성이든 누군가를 처절하게 갈망해본 사람이라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엘리오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리버가 떠난뒤 아들의 고통을 짐작하는
엘리오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은
아픈 청춘의 시간을 기억하는 우리에게도 큰 위로가
되어준다.
˝너희 둘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어.
우정 이상일 지 모르지. 난 너희가 부럽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냥 없던 일이 되기를, 아들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랄거다.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일면 끄지도 잔혹하게 대하지도 마라.
무엇도 느끼면 안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건 시간 낭비야.˝
찬란한 청춘의 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
그 시절의 사랑은 죽을만큼의 고통을 함께 가져오지만 피하지 않을 가치가 있다는 것,
몸과 마음이 순수하게 반짝박짝 빛날때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기꺼이 누리고 즐기라는 것.
후회보다는 아픔을 남기는 게 낫다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이런 멋진 아버지를 둔 엘리오가 한없이
부러웠고, 상처 받을까 두려워 시작도 하지 못했던
내 청춘이 떠오르며 저렇게 멋진 어른이 내 옆에 있었다면 내 삶도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했다.
이 소설이 그저 단순한 퀴어소설로 치부되지 않고
명작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그것, 엘리오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했던 삶의 진리가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짧기에 더 아쉬운, 찬란하게 빛나는 여름처럼
지나고 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청춘의 한 시절,
온 마음으로 그의 존재를 받아들여 내 안에 가득 채우고 나의 모든 진심을 다해 그를 사랑하는 것.
어쩌면 누군가의 삶에는 영원히 오지 않을 뜨겁고
순수한 열정의 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고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소설은, 지나버린 찬란한 한때를
향한 아름답고 슬픈 그리움의 향수인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을 돌고 돌아 20년 후 첫만남의 장소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그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엘리오의 바람대로 올리버는 자신의 이름으로 엘리오를 불러줬을까?
(사랑하는 이를 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이토록
설레고 섹시한 거였다니..^^)
엘리오가 좋아했던 올리버의 말로 두사람에 대한 나의 바람을 대신한다.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