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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ㅣ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평점 :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 독서의 조건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책.
읽는 내내 외국어에 대한 나의 아이러니한 짝사랑의 경험을 쓴 것처럼 너무나 비슷한 저자의 이야기에 ‘아니,이럴수가‘ 라는 심정으로 감탄과 놀라움을 오가며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책의 두께는 얇지만, 결코 얕지않은 주인공의 문학적
감수성으로 만들어진 문장들에 감탄하고, 중간 중간 지뢰처럼 등장하는 유머에 웃음이 터지고, 지난 옛 기억이 저절로 소환되는 너무나 비슷한 경험들에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잠기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지? 진짜 신기하네.. 라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 하면서..
고백 하자면 나 역시 외국어를 향한 오랜 짝사랑과 열패감을 아직까지도 떨치지 못한 채 마음 한쪽에
숨겨두고 때때로 혼자 꺼내어 만지작거리며 살고있다.
중학교부터 시작해 수십년동안 도전과 포기를 되풀이 하면서도 여전히 먼 외국어일 뿐인 영어,
대학시절 전공 서적의 빈약함을 극복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로(사실은 허세와 겉멋을 충족하고픈 욕심으로)
시작해 겨우 1년 정도(그나마 집중해 제대로 공부한 건 고작해야 5~6개월 정도) 배워놓고는 그 언어를 1도 모르는 동행들에게서 원어민 같다는 칭찬도 가끔 들으며 실력이 들통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어설픈 실력이 전부인 일본어,
저자처럼 제2 외국어로 불어와 독어 중 하나를 의무적으로 택해야 하는 고교시절을 지나온 덕분에(여고인 우리 학교에선 이과는 독어, 문과는
불어가 불문율처럼 되어있어 선택의 자유는 없었지만) 말 그대로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운 독일어.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독어, 일어,
포르투칼어 등 수많은 외국어를 오간 저자와 달리
나의 외국어는 저 세가지 뿐이고 딱히 다른 외국어에
대한 열망은 없다.
하지만, 먼지가 켜켜이 앉은채 책장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전들과 초급 회화책들, 문법과 단어 교재들을 이사 때마다 고민하면서도 결국 버리지 못한 채 주기적으로 다시 도전하고 또 포기하는 과정을 계속하고 있는(아마 죽을 때까지 이럴듯) 나이기에,
외국어에 대한 저자의 애증과 열망, 자괴감을 오가는
그 복잡다난한 감정들이 너무나 익숙하고 내 것처럼
공감 될 수밖에.
‘외국어 하나를 알게되는 건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갖게되는거다‘
몇년 전 번역 앱이 있는 시대에 굳이 힘들게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냐는 화제가 나왔을 때 한 선배가 했던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 수십년간 배운 영어로 여행이나 외국인과의 가벼운 대화는 가능하지만 주기적으로
영어를 배우겠다고 돈을 쓰고 시간을 들이는 나와 주변 지인들을 생각하면 그 선배의 말이 맞는 거 같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며 원하는 최종 결과물은 단지 며칠간의 여행에서 누릴 편리함이나 잠깐의 얕은 소통이 아니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공감과 깊은 이해가 아닐까?
번역앱으로 내 의사를 전달하고 그의 답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무리 빨리 진행된다 해도 그건 결국 번역된 기계음을 통한 의도 전달에 불과하니까.
문명의 발달로 도시의 편리함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줌에도 퇴직 후 전원생활, 귀농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것처럼 외국어 앱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인간의 대화는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면서 상대의 목소리와 표정을 통해 주고 받아야
오해 없는 완벽한 이해가 가능하고, 그런 대화의 작은 순간들이 쌓여 친밀함과 애정의 상호관계가 형성 된다는 건 절대 변할 수 없는 삶의 진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발전된 외국어 앱이나 학습 수단이 등장한다 해도 외국어를 향한 우리의 짝사랑과 애증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감히 자신한다.
한때 식음을 전폐하고 밤을 새워가며 일드에 빠진 채 밤마다 그의 연인 혹은 지인이 된 꿈을 꾸게 만들었고 그의 대사를 자막 없이 이해 하겠다는 열망으로 다시 일본어 책을 뒤적이게 만들었던 배우 기무라 타쿠야를 향한 뜨거운 동경,
‘데어 데스 뎀 덴 디 데어 데어 디 다스 데스 뎀 다스..‘
지금도 툭 치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오는 독어의 첫 관문이자 가장 큰 봉우리인 관사에 대한 좌절감,
번역된 문장 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좋아하는 작가의
원문을 그의 언어로 읽겠다는 포부를 안고 낯선
외국어에 기꺼이 도전하게 만드는 한때의 문학열,
차갑고 불친절하지만 매번 다시 가게되는 프랑스처럼
듣기좋은 샹송과 노래와 시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프랑스어에 대한 기묘한 연정은 마치 내가 쓴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내 마음과 똑같아 소름이 돋았고, 반복되는 도전과 포기로 자책하는 저자를 보며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라는 동질감으로 꽤 여러번 안도했으며, 외국어와 낯선 세상을 향한 그녀의 열정에 지나간 어느 시절의 뜨거웠던 내 마음이 떠올라 가슴이 조금 저리기도 했다.
뜨겁고 친절하고 정 많은 스페인 사람들을 닮은 스페인어와 어떤 속박의 문법 규칙도 없다는 체코어 이야기에선 이제껏 단 한번도 관심 가져본 적 없는
그 두 언어에 지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생기면서 한번
배워볼까? 하는 어이 없는 의욕까지 생겨버렸다.
휴가가 주어지거나 일과 일 사이에 여유있는 기간이 생길 때마다 혼자 외국여행을 다니는 게 당연한 일정이었기에 저자 만큼이나 내게도 외국어는 늘
미처 다 풀지 못해 마음을 짓누르는 오랜 숙제같은
존재였다.
특히 말을 기본으로 하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아 살고있는 내게 말을 통해 낯선 타인을 이해하고
친밀해지는 단계를 거쳐 그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과정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이 유한한 삶에서 조금 더 많은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외국어는 절대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이와 예전처럼 영민하지 못한 뇌활동과 약해진 체력,
바쁜 일상 등을 핑계 삼아 그 숙제를 깊숙이 숨겨두고 외면한 채 살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동안 여러번 느꼈던 깊은 공감과 오랜 옛추억의 향수와 기억들이 다시 내 마음에 반짝 하고 불을 켠 기분.
저자처럼 수많은 외국어를 다 섭렵하기엔 내공도
용기도 열정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초급 이상의 문턱까진 가본(거라고 믿는) 영어와 일어 정도는 제대로 공부해서 목표하는 수준까지 도달하고싶은 욕심과 의욕이 마구 타오른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저자도 나도 알듯이 이건
늘 되풀이 되는 과정이다. 좌절의 단계로 가느냐 뿌듯함의 단계로 가느냐는 결국 나의 몫)
일본 식당에서 일본어로 편하게 주문하고 싶어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서 일급 자격을 땄다는 이적같은 넘사벽 성과까진 아니라도 이미 오래 전에 빼둔 칼로 하다못해 무라도 잘라봐야겠단 의지,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단 조심스런 각오.^^
분명 외국어를 소재로 쓴 책이지만, 어떤 산문보다
재미있고 재치있고, 훌륭한 문장을 읽는 즐거움까지
주는 보석같은 책.
이제 자막 있는 영화라도 중국어와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포르투칼어, 체코어가 나오는 작품을 볼 때면 그들의 대사를 좀 더 주의 깊게 마음 열고 몰입해 들으며 보게 될 것같다.
아뭏든 외국어, 정말 오묘하고 매력적인 세계임은 두 말 할 필요없이 분명하다.
그점을 다시 느끼게 해준 이 책을 그래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