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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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김지혜라고 부를 수 있을법한 소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젊은이들을 대표하듯
88년에 태어나 흔한 이름으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서른을 맞은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대기업 입사를 꿈꾸며 수없이 도전 했으나 무수히 많은 낙방 끝에 대기업 DM사의 문화사업 자회사라고 할 수 있는 디아망 아카데미에 인턴사원으로 입사 한
88년생 김지혜.
그녀는 강사들의 강연을 위한 자료 복사와 허드렛일을 하며 혹시나 정직원이 되어 본사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 의지해 무료한 삶을 버티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카데미의 유명 강사인 박교수에게 그가 두고 간 핸드폰을 전해주러 간 지혜는 그곳에서 박교수에게 미성년자 성추행 전과에도 여전히 성적 자료 짜집기 강의로 명성을 누리며 제자의 작업 성과를 가로채고 보수도 지불하지 않는 박교수의 후안무치를 큰소리로 비난하고 사라지는 한 남자를 보게 되는데..
며칠후, 그 남자 규옥이 새로운 인턴사원으로 아카데미에 출근하게 된다.
지혜는 인턴사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강의 중 하나인 우쿨렐레 강습을 얼결에 규옥과 함께 듣게되고,
수강생인 기러기 아빠 남은과 시나리오 작가 무인과의 술자리에 합류하게 되면서 사회의 주류에서 조금씩 어긋난 채 외롭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친해지게 된다.
일년이나 노력해 만든 양념장의 비법을 유명인에게 빼앗기고 삶의 의지를 잃은 채 살던 중년의 남은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 당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무인의 고백을 들은 날, 조용하던 규옥이 더이상 이렇게 스스로 체념한 채 순응하지 말고 잘못된 사회에 우리만의 메세지를 던지면서 놀자는 제안을 한다.
각자의 마음 속에 비슷한 분노를 담고 있던 그들은 공터의 빈 벽에 유명 작가가 그려놓은 교만한 낙서 벽화(그래피티) 위에 자신들의 낙서를 덮어버리는 일부터 시작해, 남은의 레시피를 댓가도 없이 가로채 요식업자로 성공한 후 국회의원이 된 의원에게 엿과 함께 달걀을 투척하고 도망치는 등 자신들만의 놀이를 펼치며 잘못된 세상을 조롱한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친구가 되어 삶의 힘겨움을 위로 받으며 친해지는 동안, 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규옥을 마음에 품게 되지만..
한편으론 그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틈만 나면 다른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며 더 나은 삶을 향한 비상의 꿈도 놓지 못한다.
그러다 규옥이 벌인 상사 김부장에 대한 항의의
나비효과로 정직원이 된 지혜는 첫 임무로 공윤이라는 유명인을 다음 학기 강사로 초빙하는 일을 맡게 되고, 노력 끝에 간신히 섭외에 성공한다.
그런데, 그녀를 만난 자리에서 공윤이 고교시절 자신에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던 동명이인의 옛동창 김지혜A임을 알게되고 경악한다.
세련된 언변과 화려한 외모로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얻는 공윤은 예전처럼 지혜를 함부로 부리며 친근함을 가장한 조롱으로 지혜의 일상을 다시 지옥으로 만들기 시작하고..
상사들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를 피하기 위해 정진이라는 유령 친구까지 만들만큼 힘겹게 일상을
버텨왔던 지혜는 옛친구로 인해 다시 또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야기는 쉽게 읽히고, 이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고 싶어 몸부림 치면서도 자신만의 자아는 지키고 싶다는 이율배반적인 주인공 지혜의 심리도 충분히 공감된다.
부와 권력으로 인한 부당한 힘에 분노 하면서도 그
주류의 세계에 입성하기 위해 젊음을 온통 바치고 있는 지혜와 같은 젊은이들이 이 사회엔 얼마나 많은가.
규옥의 지적처럼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그 부당한 힘에 스스로 굴복하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럽지만,
결국 무인처럼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 나약함이 비겁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있다.
그렇기에, 규옥처럼 법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이슈가 되지않는 정도로만,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부당한 힘에 잔펀치라도 날리겠다는 그 소심한 용기가 더 대단해보였다.
두렵지만 잠자코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소심한 반항,
작은 외침들이 조금씩 커지면 언젠가 큰 파도가 되어
잘못된 것들을 바꿀 큰 힘을 갖게 된다는 걸 격동의 광장 역사를 통해 우린 충분히 배웠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응원하며 읽었기에 이전과는 조금 다른 또다른 주류의 세계에 안착한듯 보이는 지혜의 모습에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변화하며 또다른 선택의 순간들을 거듭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삶이겠지.
그래도 결국 규옥과 지혜가 다시 만나 뭔가 희망적인 로맨스의 여지를 다시 남기게 된 결말만큼은 로맨스
지향자로서 아주 다행스러웠다.^^
비록 한때일 뿐이라 해도 이 외로운 삶에서 사랑만큼
우리를 위로 해주는 건 없으니까.
땀 흘린 레시피를 빼앗겼던 아픔을 딛고 우동가게를 차렸다는 남은 아저씨도,
스스로 저작 권리를 포기한 댓가로 새로운 글을 쓸 수 있게 된 무인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고 조금 더 가까워질 기회를 갖게된 규옥과 지혜도,
모두가 이젠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기를..
그럼에도 부당함에 스스로 굴복하지 않기 위해 함께 즐겼던 그 놀이와 마음은 잊지않고 살아가기를.
‘단지 의자는 의자일 뿐‘이라는 걸 마음에 항상 새기고 진짜 잘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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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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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이면 실내는 봄일까, 가을일까, 겨울일까?
어쩌면 가을과 겨울과 봄 그 어딘가, 여름이 아닌 그 시간일까?
모든 생명력이 최고치로 부풀어 올라 찬란한 햇살 아래 온통 초록으로 싱그럽게 빛나는 여름.
그 계절을 문밖에 둔 채로 가을과 겨울과 봄을 견디며
지나가고 있는 쓸쓸한 이들의 얘기가 소설 속에 가득하다.
소중한 이와의 준비되지 않은 이별,
한때 너무나 소중했으나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이 되어버린 존재를 놓아야만 하는 고통,
갑자기 닥쳐온 상실의 허무함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내며 견뎌야 하는 그 무용의 시간들...
모두의 아픔이 담담하게 서술 되어 있어서 더 아프고
안쓰럽다.

얼마전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거침 없이 흘러가는 물줄기처럼 현란하게 나아가는 문장을 보며 진짜 작가구나, 라는 뜬금 없는 자각을 했었는데,
이 소설집을 읽으며 그것과는 조금 다른 김애란 특유의 소설적 문장들에 반했다.
(두근두근 내인생은 솔직히 별로였는데, 이 책에는 좋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읽는 내내 감탄 연속.
아무래도 난 단편을 훨씬 좋아하는 성향인 건가?)
아이들의 노래를 아직 맛 경험이 적은, 죽은 동물을 덜 먹어본 맑은 혀로 부른다고 표현하고,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이란 문장으로 상대의 영민한 이해심을 향한 감탄과 반발의 감정을 동시에 담아내고,
‘청결에는 청결의 관성이, 얼룩에는 얼룩의 관성이 있음을 실감했다‘는 문장으로 아이의 마음에 난 상처의 얼룩을 발견한 엄마의 자각을 표현하는
예리한 감각의 필력이 놀라웠다.
‘콩의 고소함이나 깨의 풍미와는 비교가 안되는 포식자의 고소함, 남의 살을 먹고 사는 생물의 깊은 고소함이, 은빛 몸통 주위로 황금빛 공기 방울이 풍요롭게 자글거린다‘ - 갈치가 구워지는 모습을 이런 빛나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작가에게 어떻게 감탄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처럼 박제 해두고 빈약한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을때 꺼내 읽고싶은 문장들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래, 이런 게 소설이지.. 라는 새삼스런 깨달음.

마지막 편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녀의
편지를 읽다가 결국 터진 눈물로 엄마를 생각하며 울고야 말았다.
마음이든 실체든 내 곁에 있을 것임을 믿었던 사람과의 이별은 우리의 모든것을 바꾸어 놓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말은 그래서 더없이 잔인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는 막막함으로 그 시간을 오롯이 버텨내는 것밖엔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런게 삶이라는 걸 상실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걸 뼈저리게 공감하는 마음으로, 날것의 고통스런 감정은 한번 걸러내어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
그 아픈 마음들이 오래 오래 기억 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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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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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듯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 드는 책.
최근 들어 당연한 분야로 여겨지고 있는 사회과학
서적인 이 책의 제목 ‘사회적 원자‘는 우리들, 인간을 의미한다.
물리학에서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
마찬가지로 사회를 이루는데 최소단위이자 기본 요소이기도 한 인간 역시 원자라는 전제 하에, 사회에서 자주 혹은 가끔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 사회적 원자인 인간들의 행동 방식을 물리학적 해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을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 해왔고, 동물에겐 없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높은 지능으로 인해 최상위 생명체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한 기본 개념 위에서 발전해온 지금까지의 사회학은 인간의 높은 이성과 자유의지를 모든 이해의 전제로 삼았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상들, 심지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이상한 패턴들에 대해서조차 인간의 합리성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해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이전 사회학의 전제 자체부터 잘못 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똑같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물질일 뿐이며, 모든 물질이 그렇듯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라는 것.
그러므로 세계의 여러 사회에서 나타나는 경제, 사회, 문화적 모든 현상의 답은 물리학의 법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일으키는 사회현상의 이해를 물리학의 법칙에서 찾아야 한다니!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어이 없는 비약같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저자의 이 논리는 이미 과학자들과 사회학자들 모두에게서 인정받은 것이며, 물리학의
법칙으로 인간 사회 현상의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고 한다.

책은 9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인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부터 이전의 사회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인간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상들을 소개하고, 그 패턴을 일으킨 인간이라는 원자들의 특성을 물리 법칙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해준다.
매 챕터마다 각 주제에 맞는 명언으로 시작하고, 사회학적으로 인상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들(인종 전쟁, 주가폭락, 빈민가 재건 등)에 대한 인간들의 행동 패턴과 심리변화, 경향 등을 물리 법칙의 관점에서 알려주고 있다.
이 모든 이해의 출발은 인간이 우리 생각보다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존재가 아니며, 원자들처럼 단순하고 쉬운 패턴으로 행동 한다는 것.
그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소개한 사회과학자들의 여러 실험 결과들은 정말 놀랍고 흥민진진하다.
특히,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지만(몇년전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친절하고 선한 쪽으로 자기 조직화 하고 서로를 모방하며, 개체수가 많아져 집단으로 갈수록 더 선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결과는 성선설을 믿는 내게 큰 위로와 안도감을 주었다.
그외에도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지를 보여주는 1.1달러 계산법과 숫자게임,
부의 불펑등을 정확히 설명 해주는 수학 수치,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 모방능력을 드러내는 설명키 힘든 폭동과 전쟁,
집단 안전성 때문에 어제까지 이웃이자 친구였던
이들을 살해하고도 죄책감이 없는 사람들과
그런 인간의 마음을 색깔의 분리만으로도 자극해
폭동과 전쟁을 부추기는 악한 정치가들에 대한
사례들은 저자의 주장처럼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약하고 불안하며 단순한 존재인지를 이론의 여지 없지 인정하게 만든다.
또, 인간이 물리학적 법칙에 충실히 따르는 원자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 해주는 여러 실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흥미를
배가 시킨다.
정재승 박사의 ‘열두 발자국‘을 읽을때도 그랬지만 인간의 심리 테스트 실험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 있는듯.^^
(특히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속임수나 악행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니. 역시 인간은 정의로운 존재인 거다. 성선설 만세!)
가장 인상적이었고 통쾌했던 건 수학적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려는 경제학자들의 편견과 무능함을 지적하고,
돈의 분배 실험을 통해 경제학 전공자들이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했음을 꼬집으며 국가정책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조언하는 현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그와 반대로, 세상의 부가 소수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물리 법칙과 그것을 증명하는 수학공식이 있다는 부분에선 빈익빈 부익부가 사실이었음을 다시 확인 했기에 어쩔수 없이 서글퍼졌고..

결국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과 사회적 패턴들은 인간의 고귀하고 높은 이성으로 인해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원자로 구성된 물질인 인간의 자기 조직화와 모방욕구, 선을 추구하는 DNA 등의 단순한 몇가지 조건들이 물리 법칙에 의해 서로 작용 함으로써 일어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회과학 논리다.
이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은 너무나 불안정하고(자유의지라는 말로 포장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비합리적인 존재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먼지나 티끌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뿐인 우리가 높은 이성으로 지구를 정복한 최상위 포식자라는 착각에 빠져 함께 사는 환경을 파괴하고, 동식물을 멸종하게 만들며 심지어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있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짓인지..
물리학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이 책을
읽고 그들 중 하나인 나는 인간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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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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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얼마나 중요한 독서의 조건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책.
읽는 내내 외국어에 대한 나의 아이러니한 짝사랑의 경험을 쓴 것처럼 너무나 비슷한 저자의 이야기에 ‘아니,이럴수가‘ 라는 심정으로 감탄과 놀라움을 오가며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책의 두께는 얇지만, 결코 얕지않은 주인공의 문학적
감수성으로 만들어진 문장들에 감탄하고, 중간 중간 지뢰처럼 등장하는 유머에 웃음이 터지고, 지난 옛 기억이 저절로 소환되는 너무나 비슷한 경험들에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잠기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지? 진짜 신기하네.. 라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 하면서..

고백 하자면 나 역시 외국어를 향한 오랜 짝사랑과 열패감을 아직까지도 떨치지 못한 채 마음 한쪽에
숨겨두고 때때로 혼자 꺼내어 만지작거리며 살고있다.
중학교부터 시작해 수십년동안 도전과 포기를 되풀이 하면서도 여전히 먼 외국어일 뿐인 영어,
대학시절 전공 서적의 빈약함을 극복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로(사실은 허세와 겉멋을 충족하고픈 욕심으로)
시작해 겨우 1년 정도(그나마 집중해 제대로 공부한 건 고작해야 5~6개월 정도) 배워놓고는 그 언어를 1도 모르는 동행들에게서 원어민 같다는 칭찬도 가끔 들으며 실력이 들통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어설픈 실력이 전부인 일본어,
저자처럼 제2 외국어로 불어와 독어 중 하나를 의무적으로 택해야 하는 고교시절을 지나온 덕분에(여고인 우리 학교에선 이과는 독어, 문과는
불어가 불문율처럼 되어있어 선택의 자유는 없었지만) 말 그대로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운 독일어.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독어, 일어,
포르투칼어 등 수많은 외국어를 오간 저자와 달리
나의 외국어는 저 세가지 뿐이고 딱히 다른 외국어에
대한 열망은 없다.
하지만, 먼지가 켜켜이 앉은채 책장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전들과 초급 회화책들, 문법과 단어 교재들을 이사 때마다 고민하면서도 결국 버리지 못한 채 주기적으로 다시 도전하고 또 포기하는 과정을 계속하고 있는(아마 죽을 때까지 이럴듯) 나이기에,
외국어에 대한 저자의 애증과 열망, 자괴감을 오가는
그 복잡다난한 감정들이 너무나 익숙하고 내 것처럼
공감 될 수밖에.

‘외국어 하나를 알게되는 건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갖게되는거다‘
몇년 전 번역 앱이 있는 시대에 굳이 힘들게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냐는 화제가 나왔을 때 한 선배가 했던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 수십년간 배운 영어로 여행이나 외국인과의 가벼운 대화는 가능하지만 주기적으로
영어를 배우겠다고 돈을 쓰고 시간을 들이는 나와 주변 지인들을 생각하면 그 선배의 말이 맞는 거 같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며 원하는 최종 결과물은 단지 며칠간의 여행에서 누릴 편리함이나 잠깐의 얕은 소통이 아니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공감과 깊은 이해가 아닐까?
번역앱으로 내 의사를 전달하고 그의 답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무리 빨리 진행된다 해도 그건 결국 번역된 기계음을 통한 의도 전달에 불과하니까.
문명의 발달로 도시의 편리함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줌에도 퇴직 후 전원생활, 귀농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것처럼 외국어 앱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인간의 대화는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면서 상대의 목소리와 표정을 통해 주고 받아야
오해 없는 완벽한 이해가 가능하고, 그런 대화의 작은 순간들이 쌓여 친밀함과 애정의 상호관계가 형성 된다는 건 절대 변할 수 없는 삶의 진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발전된 외국어 앱이나 학습 수단이 등장한다 해도 외국어를 향한 우리의 짝사랑과 애증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감히 자신한다.

한때 식음을 전폐하고 밤을 새워가며 일드에 빠진 채 밤마다 그의 연인 혹은 지인이 된 꿈을 꾸게 만들었고 그의 대사를 자막 없이 이해 하겠다는 열망으로 다시 일본어 책을 뒤적이게 만들었던 배우 기무라 타쿠야를 향한 뜨거운 동경,
‘데어 데스 뎀 덴 디 데어 데어 디 다스 데스 뎀 다스..‘
지금도 툭 치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오는 독어의 첫 관문이자 가장 큰 봉우리인 관사에 대한 좌절감,
번역된 문장 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좋아하는 작가의
원문을 그의 언어로 읽겠다는 포부를 안고 낯선
외국어에 기꺼이 도전하게 만드는 한때의 문학열,
차갑고 불친절하지만 매번 다시 가게되는 프랑스처럼
듣기좋은 샹송과 노래와 시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프랑스어에 대한 기묘한 연정은 마치 내가 쓴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내 마음과 똑같아 소름이 돋았고, 반복되는 도전과 포기로 자책하는 저자를 보며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라는 동질감으로 꽤 여러번 안도했으며, 외국어와 낯선 세상을 향한 그녀의 열정에 지나간 어느 시절의 뜨거웠던 내 마음이 떠올라 가슴이 조금 저리기도 했다.
뜨겁고 친절하고 정 많은 스페인 사람들을 닮은 스페인어와 어떤 속박의 문법 규칙도 없다는 체코어 이야기에선 이제껏 단 한번도 관심 가져본 적 없는
그 두 언어에 지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생기면서 한번
배워볼까? 하는 어이 없는 의욕까지 생겨버렸다.

휴가가 주어지거나 일과 일 사이에 여유있는 기간이 생길 때마다 혼자 외국여행을 다니는 게 당연한 일정이었기에 저자 만큼이나 내게도 외국어는 늘
미처 다 풀지 못해 마음을 짓누르는 오랜 숙제같은
존재였다.
특히 말을 기본으로 하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아 살고있는 내게 말을 통해 낯선 타인을 이해하고
친밀해지는 단계를 거쳐 그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과정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이 유한한 삶에서 조금 더 많은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외국어는 절대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이와 예전처럼 영민하지 못한 뇌활동과 약해진 체력,
바쁜 일상 등을 핑계 삼아 그 숙제를 깊숙이 숨겨두고 외면한 채 살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동안 여러번 느꼈던 깊은 공감과 오랜 옛추억의 향수와 기억들이 다시 내 마음에 반짝 하고 불을 켠 기분.
저자처럼 수많은 외국어를 다 섭렵하기엔 내공도
용기도 열정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초급 이상의 문턱까진 가본(거라고 믿는) 영어와 일어 정도는 제대로 공부해서 목표하는 수준까지 도달하고싶은 욕심과 의욕이 마구 타오른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저자도 나도 알듯이 이건
늘 되풀이 되는 과정이다. 좌절의 단계로 가느냐 뿌듯함의 단계로 가느냐는 결국 나의 몫)
일본 식당에서 일본어로 편하게 주문하고 싶어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서 일급 자격을 땄다는 이적같은 넘사벽 성과까진 아니라도 이미 오래 전에 빼둔 칼로 하다못해 무라도 잘라봐야겠단 의지,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단 조심스런 각오.^^

분명 외국어를 소재로 쓴 책이지만, 어떤 산문보다
재미있고 재치있고, 훌륭한 문장을 읽는 즐거움까지
주는 보석같은 책.
이제 자막 있는 영화라도 중국어와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포르투칼어, 체코어가 나오는 작품을 볼 때면 그들의 대사를 좀 더 주의 깊게 마음 열고 몰입해 들으며 보게 될 것같다.
아뭏든 외국어, 정말 오묘하고 매력적인 세계임은 두 말 할 필요없이 분명하다.
그점을 다시 느끼게 해준 이 책을 그래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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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해빙 -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
이서윤.홍주연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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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근 뇌과학에 관심과 흥미가 생겨서 정보를 찾다보니 초능력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엄청난 에너지와 잠재적 힘을 가진 신비한 뇌를 우리 인간들은 평생동안 아주
일부밖에 쓰지 못한다는 주장이 흥미로웠다.
‘부자가 되는 비밀‘을 알려준다는 이 책을 읽고나니
구루라는 서윤이 깨달았다는 삶의 비밀도 결국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긍정과 자기확신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전 열풍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 ‘시크릿‘과 비슷하다는 독자들의 평도 결국 자기최면에 가까운
긍정과 자기확신, 미래에 대한 믿음이란 그 논리 때문인것 같다.
누구나 아는 얘기를 늘어놓았을 뿐이란 악평도 결국
요즘 긍정의 힘에 대해 우리가 많이 들어서 익히 알고있기 때문일듯 하고.
10대 때부터 부자들의 구루로 유명했고, 재벌들과 정치인, 부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애타게 찾고 의지한다는 서윤이란 인물에 대한 저자의 신뢰와 동경이 너무 대단해서(신격화라는 어느 독자의 평에 동의하고싶을 정도), 오히려 부자가 되는 비결이라는 ‘해빙‘의 객관성과 합리적인 효과에 대한 믿음을 반감 시킨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책을 써서 공개 했으니 사실이긴 하겠지만, 정말 이렇게 젊고 아름답고 성숙한 의식을 지닌 현자(?)가 있다는 게 사실일까? 하는 의문과 의심이 책을 읽는동안 계속 드니까.

책의 제목이기도 한, 부자가 되는 비밀이자 수단인 ‘해빙‘은 사실 쉽고 평범하다.
해빙(having) 이란 단어의 뜻 그대로 지금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고 감사하며 돈을 소비하는 순간 불안과 긴장, 자책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말고 소비의 진짜 기쁨과 만족을 위해 돈을 사용하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없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미래가 아니라 항상 소유하고 부족함이 없는 미래를 진심으로 믿으며 편안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내가 한치의 의심이나 불안 없이 믿는 사실은 엄청난 에너지가 되어 미래까지도 자신이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
해빙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며, 해빙을 제대로 잘 하기위한 여러가지 실행 요소들을 구루 서윤과 저자의 대화를 통해 챕터별로 소개하고 있다.
결국 해빙은 내가 지금 가진 것에 집중하고 감사하며 즐기고, 앞으로 더 많이 가지게 될 나의 미래를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으며 기다리라는 것.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구루 서윤과 저자의 운명같은 인연의 스토리와 함께 예지자같은 서윤이 들려주는 해빙의 방법과 그 가르침(?)대로 행하며 행운을 얻게되는 저자의 기적같은 경험들이 수기처럼 펼쳐지니 책은 술술 읽히고 책장은 금방 넘어간다.
중간중간 서윤의 도움으로 성공한 부자들의 이야기도
사례로 등장하지만 사업가, 정치인 식의 익명으로만 등장하는 그들의 이야기도, 서윤과의 인연을 통해 온갖 행운을 다 경험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도 솔직히
너무 영화나 소설같아서 어쩐지 신뢰가 가진 않는다.
하지만, 익숙한 얘기임에도 현재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내 마음에 집중하며 나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노력이 행운을 부르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것,
절망과 긴장,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떨치고 곧 다가올 행운과 성공의 미래를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으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최악을 대비하는 자세로 살려고 했던 내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우리 뇌는 원래 짧은 단어로만 인식하고 각인하니 짜증 난다, 불안하다 등의 부정적 단어(짜증, 불안)는 가능한 한 쓰지말고 편안하지 않다 라는 식의 표현으로 바꾸어 긍정적 단어(편안)를 뇌에 각인시켜 나의 에너지를 긍정형으로 바꿈으로써 행운을 끌어 당기라는 것과,
행운은 노력과 덧셈이 아닌 곱셈 관계이기에 아무리 큰 행운이 와도 노력이 0이면 결과는 0일 수밖에 없으므로 나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해빙의 비밀은, 지금 내가 가진 것과 나의 내면에 집중하며 감사하고,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조금의 의심이나 불안, 긴장 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성공을 확신하고 추호의 의심 없이 믿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렇게 실천한다면 성공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ㅎㅎ)
솔직히 몇몇 독자들의 서평처럼 누구나 다 아는 얘기 같기도 하고, 딱히 이 책에서만 발견한 남다른 비법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막연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실천을 위해 딱히 노력하진 않았던 긍정적 마음가짐과 자기확신 등에 대한 행동 욕구를 갖게 된것은 분명 수확이긴 하다.
(읽은 뒤에 바로 해빙 일지를 썼다는 건 안비밀.^^)
삶의 큰 전환기인 토성의 리턴 주기에서 첫번째 전환점이라는 30세는 이미 지났지만, 두번째 주기인 58~60세까진 아직 여유가 있으니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을 뇌에서 완전히 내보내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단어들로만 가득 채워야겠다.
저자인 홍기자님처럼 돈이 계속 들어오고 행운이 찾아와 진짜 부자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긍정적인 사고로 평온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일상을 살게 된다면 그것도 행복한 삶 아닐까?
그 얘기가 그 얘기인 계발서 중 한권으로 치부 할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효과를 증명하는 건 결국 나의
의지와 실천에 달린거겠지.
그러니 진짜 성공을 향해 어디 한번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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