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인. 그 언명은 마치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고통의 고지로 들린다. 그러니까 이 말을 정식화하면 이렇다. 타인의 고통. 그러니까 타인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나누었던 전쟁에 관한 편지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문은 이미 넘어갔다.) 그 편지는 (당시에 휘기한) 전쟁 현장을 담고 있는 사진 하나를 지시하며 남/녀라는 차원을 '우리'로 환원하는 무언가를 -그 편지, 그 사진, 그녀, 그가- 이야기한다. 전쟁. 나를 수 없는 전쟁이 건너야 했던 상상력의 심연을, 사진은 전쟁이라는 현장으로 나른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그 사진이, 그 편지가, 그녀가, 그가 '우리'라고 불렀던- 우리에게는 궁색하고 진부하지만 늘 논란의 대상이자 주목받는 사물이다.
"우리의 상황은 (울프와는) 완전히 정반대이다. 카메라를 매개로 전쟁을 알게 되는 오늘날의 상황에는 (고통과 폐허를 담은) 지독히 친숙하고, 지독히 유명한 이미지를 피해갈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 1936~37년 겨울 때까지만 해도 잔혹한 사진들은 별로 없었다. 울프가 『3기니』에서 ('우리'에 대해) 언급한 사진들에 담긴 전쟁의 공포는 그때까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듯싶다."(45-46)
그것은 마치 쾌락을 암시하는 듯 행동한다.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65) "이런 이미지를 쳐다볼 수 (없는 것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 (그러니까) 움찔거린다는 것 자체도 일종의 쾌락이다."(67) 우리는 사안을 보지 않는다. 관능적인 에로티시즘(eroticism)의 사건을 본다. "특히 연출됐다는 사실에 우리가 적잖이 당황하게 되는 사진들은 개인이 겪는 가장 최고의 순간, 특히 사랑과 죽음을 기록한 듯이 보이는 사진들이다."(85) 그것들은 적잖은 희열을 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그 사진이, 그 편지가, 그녀가, 그가 '우리'라고 불렀던- 우리에게는 궁색하고 진부하지만 늘 논란의 대상이자 주목받는 사물성을 생산한다. "이미지의 도저히 참기 어려운 리얼리즘을 비난하면서도, 몇 마디 말과 함께 이 사진들이 자아내는 멜로드라마에 저항하지 못한다."(99) 전쟁. 그것은 리얼리즘의 피사체가 섬광처럼 영원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무대였다.
(2) 타인. 그것은 사진이 자리할 공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사진은 타인의 자리인 것이다.
주검들뿐만 아니라, 적나라한 얼굴을 공개하는 것도 늘 엄격하게 금지되어 왔다. 가드너와 오셜리번이 찍은 사진들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땅에 등을 댄 채 누워 있는 연방군과 남부동맹군 병사들의 얼굴이 너무나도 뚜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때 이래로, [미국의] 주요 출판물들은 수많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전장에 쓰러져 있는 미군 병사들의 모습을 사실상 (공공연하게) 두 번 다시 보여준 적이 없었다(처음에는 군부가 검열을 통해서 이런 일을 막았다). (pp.108-109)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던 그런 품위 차리기"들, "사상자들은 늘 숙여져 있거나 뭔가에 덮여 있지 않으면, 얼굴이 안 보이는 쪽으로 돌려져 있"는 한껏 격실을 차린 그런 사진들. 그것은 사진의 공간이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를 표징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니까 "사진 배경이 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이국적이면 이국적일수록, 우리는 죽은 자들이나 죽어 가는 자들의 정면 모습을 훨씬 더 완전하게 볼 수 있다."(109)
이런 사진들이 보여주는 광경에는 이중의 메시지가 있다. 이 사진들은 잔악하고 부당한 고통, 반드시 치유해야만 할 고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러니까 반드시 치유해야하지만) 이런 고통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믿게 만든다. (110)
한편으로는 "…(이)들이 겪고 있는 상이한 고난과 그 고난을 불러온 상이한 원인을 한데 뭉그러뜨려 버린다. 어떤 고통을 전 세계적인 것으로 다룸으로써 실제보다 과장되게 만들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이 훨씬 더 많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게다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고통이나 불행은 너무나 엄청날 뿐만 아니라 도저히 되돌릴 수도 없고 대단히 광범위한 까닭에 아무리 특정 지역에 개입을 하고 정치적으로 개입을 하더라도 그다지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 버리는 막연함을 '포착'한다. (122) "사진은 사진을 흉내내기 마련"이며, 그 "친숙함은 현재, 그리고 얼마 안 된 과거를 둘러싼 우리의 감각을 형성해 놓는다."(129,130) 피사체의 향연. 걸레 조각처럼 난자당한 채 매달려서도 여전히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그 끈질기게 역동하는 생명력의 향연. 생에 대한 희열. "… 고통의 관점, 즉 타인의 고통에 관한 관점이다. 이 관점은 고통을 희생에, 희생을 정신적 고양에 결부시킨다. 따라서 고통을 뭔가 잘못된 것이라거나 불의의 사건, 혹은 일종의 범죄로 여기는 감수성, 즉 고통을 고쳐야할 무엇, 거부해야 할 무엇,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무엇으로 여기는 현대의 감수성에는 낯설기 그지없는 관점이다."(149-150) 타인은 고통이다. 고통은 유일하게 우리를 매개하는 관점이며, 따라서 타인은 고통이다. 일치를 볼 수 없는 고통이라는 입장을 유일하게 참조할 수 있는 '나'가 아닌 영역, 그곳이 타인이며, 타인은 고통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어떤 사람의 고통에 견주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이다."(166) 타인은 고통을 제공한다.
그렇게 모두는 타인이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