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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깐뎐 ㅣ 푸른도서관 25
이용포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0월
평점 :
제목부터 호기심이 가득 일게 한다. 표지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옛 고전의 향이 풍기는 게 과연 무슨 내용일지 얼른 읽고 싶어진다.
첫 시작부터 첫 문단 전에 나와 있는 시의 연대가 언젯적에 지어진 시인지만을 알게 할 뿐이었다. 태어나서부터 영어를 사용하게 되고 한글이 낯선 언어가 되는 한글 창제 600주년이 되는 2044년에는 영어가 한글보다 더 편하게 통용되는 언어가 되어 버린다.
가정이긴 하지만 영어만을 제일로 치는 우리의 현 교육시스템을 바라보고 있자니 꼭 그렇게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제니는 자신이 세살 때 세계 여행을 떠난 친 엄마가 어떤 페루인과 만나 사랑에 빠져 자신과 아빠를 버리고 떠났기에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근본적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제니는 친 엄마의 페루 남편의 전처 아들인 캐빈에게서 낯선 천 조각을 받게 된다. 그것은 한글로 된 최초의 시가 적혀 있는 천이었고 함께 붙어 있던 작은 칩을 통해 천에 얽힌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니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면서도 연락을 끊어 버린 마음을 이해하지만 제니의 엄마는 어찌 보면 낭만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세살 아기를 두고 세계 여행을 떠나는 모습과 그 여행에서 만난 팬플 룻 연주자에게 한눈에 반해 자신의 가정을 버리는 것도 평범하지 않은 모습처럼 보인다.
연산군 10년 폭군 왕정 아래 갑자사회로 불어오는 피비린내가 민심을 흉흉하게 하고 그 가운데 주막집 딸 뚜깐이는 나이 열여섯이 됐건만 아직도 동네 아이들의 골목대장 노릇을 도맡아 하며 장날 어미의 심부름을 나섰다. 장 구경을 하는 도중 포졸의 불심건문에 덩치가 우람한 더벅머리 통각의 봇짐에서 괘서가 발견되고 자신은 모르고 주웠다고 발뺌하는 청년을 보고 웃는 뚜깐이와 총각의 실랑이 끝에 뚜깐이에게 사타구니를 걷어차인 총각은 어영부영 풀려난다.
늦은 밤 병졸에 쫓기던 복면을 한 괴한을 만나 놀라고 뚜깐네 주막에 들어오는 낮에 만난 더벅머리 총각과 샌님 같은 남정네가 바로 그 괴한임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아는 뚜깐을 협박하지만 뚜깐이는 그들에게 자신도 끼워 달라고 떼를 쓴다. 새로 일행이 된 세모 돌이와 그들 일행은 그동안 괘서를 붙이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활동을 몰래 하였던 것이다. 바로 위에 있던 언니가 시집가서 고생만 하다 죽은 사실도 그렇고 뚜깐이는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며 살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런 뚜깐이에게 샌님은 글을 가르쳐주기로 한다. 열여섯만 되도 과년한 나이라 불리던 시절 뚜깐이처럼 자유분방한 모습은 주막집 딸이긴 하지만 자유로운 신분이기에 가능하였을 것 같다.
어려서 함께 놀기도 했던 서진 도령을 좋아하는 뚜깐이는 자신에게 눈독을 들이는 못된 중인 패거리들과 함께 다니는 서진 도령에게 실망한다. 어느 날 허름한 차림의 범상치 않은 노인이 샌님일행의 사부라 하여 찾아오고 그들은 서진 도령의 아비 집인 최 역관집에 묵게 된다. 길밖새라는 이름을 가진 사부인 신비한 노인은 제자들에게 한문 이름을 버리고 나라말 이름을 지어주고 한문서책을 나라글로 번역하는 일을 함께 한다. 나라말로 글을 짓는 일이야말로 가장 값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부를 뚜깐은 예사로운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글을 배우기로 한 날 근휘 일행은 뚜깐을 농락하려 하지만 더벅머리 바우뫼 일당에 혼쭐이 나서 도망가고 그날 밤 만난 서진 도령에게 뚜깐은 몸을 허락한다. 나라말 서책을 모두 태우라는 임금의 어명이 내려지고 그걸 피해 산 속 암자에서 샌님에게 글을 배우던 뚜깐은 어느 날 자신의 스승인 샌님 뜰에 봄이 목욕하던 모습을 보고 여자임을 알게 되고 근휘 일당에 당할 뻔 한 스승을 돕는다. 뜰에 봄의 불행한 과거를 알게 되며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서진의 아이를 갖게 된 걸 털어놓으려 하지만 결국 이야기하지 못한다.
근휘일당이 나라말 서책을 은닉하고 괘서를 난발하였던 사실을 관가에 고발하고 뚜깐이를 겁탈하려는 순간 뚜깐이 모친이 나타나 대항하다 목숨을 잃는다. 뜰에 봄 일행은 모두 관졸에 쫓기다 뜰에 봄과 세모돌이가 죽는다. 병든 사부가 눈을 감기 전 뚜깐이에게 새로운 해문 이슬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신분의 차이에 따라 구별되어지던 조선 시대에 양반보다 훨씬 못한 중인이어도 더 낮은 신분에게는 양반 못지않은 처신을 하며 군림하였던 시대상을 보며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비굴한 못난 인간의 모습을 느낀다. 뚜깐이란 인물과 우리글을 보호하고 육성하려 했던 조선 시대 의식이 깨어 있던 사람들의 세계가 실제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꼭 그런 사실이 있었을 것만 같다. 목숨을 걸고 나라말을 지키려 했던 과거와 우리 한글이 하찮게 여겨지고 잊혀지는 미래의 이야기가 상반되기만 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야 말로 우리 것을 가장 잘 보존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책의 곳곳에 나오는 사투리는 정말 정감 있고 사실감 있게 표현되었다. 재미도 동반되어 도중에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다. 뚜깐의 후손인 제니가 뚜깐의 의미있는 시를 읽게 되어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는 마지막 부분은 결코 한글이 가진 매력이 사그라지지 않을 거란 희망과 기대를 하게 된다.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인걸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