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파랑새 그림책 93
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강도은 옮김 / 파랑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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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하는 맛

 

여우

마거릿 와일드 브라운

 

붉은여우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올려다보는 동자의 서슬이 강렬하다. 귀는 둥그스름하지만 하늘을 향해 서 있고

앞다리 가늘지만 꿋꿋하게 버티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를 노려다보는 가운데 까만 까치 한 마리 여우를 향해 시선 집중해서 애절한? 사랑하는? 눈빛으로 보인다. 까치가 여우를 사랑하나?

이상스럽지만.

여우라는 글자 또한 까만 배경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뭔가로 긁은 듯한 선들이 많은 황토색 배경에 이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이면이...붉다. 여우가 가진 색보다 더 붉은 황토색으로 보인다. 에너지가 넘친다.

파레트에 물감도 잔뜩 물기도 잔뜩 섞여서 붓이 아닌 도구로 색을 덜어내어 그리면서 그리고 싶은 형태들의 가장자리를 만들었을까? 이 색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면 손가락으로,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비벼보고 싶다. 만져보고 손가락사이로 색들이 삐져나오는 기분을 상상하고 싶다. 생명을 잔뜩 품고 있을 거 같다고 해야하나. 이 붉은 빛이, 색이 나를 쿵쿵 뛰게 한다.

 

개가 까치를 물고 뛴다. 잡아 먹으려나? 까치는 놀라는 눈치다. 가장자리에 아까와 같은 붉은 빛으로 마무리 되었다. 가운데는 흰빛들이 설치듯이 지나가고 있는 밍밍하지만 밝아지는 황토빛이다. 유화의 느낌이 난다. 두껍게 바른 유화들을 죽죽 그려대고 있는 작가가 그려진다.

이 붓터치가 설레나?

 

. 둥그스름한 바위들이 크고 작게 자리잡고 그 사이에 나무기둥? 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이파리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지만 숲속에 물가다. 거기로 새를 물고 달려오고 있다.

 

개가 까치는 물고 가고 그 뒤를 여우가 뛰어가는 모습이 있다. 까치를 서로 잡아먹으려는 모습들인가?

 

<큰 불로 새카맣게 타 버린 숲을 개 한 마리가 달리고 있었어. ...> 왼편에 글들이 있다.

한 방향이 아닌 세로로 방향을 돌려 읽거나 바로 보거나 글을 쓴 판을 다르게 만들어서 짜깁기 한 거처럼 보인다. 왜 이렇게 했을까? 글씨가 손글씨다. 어떤 서체도 아니다. 원작을 한면 보았다. 원작은 더 글씨가 어수선하게 펼쳐져 있다. 더욱 왜 이런 방식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큰 불로 날개를 다친 까치를 개가 물고 동굴로 데려간다. 잡아먹으려고? 했더니 날개 다친 까치가 날지 못할거라고 움츠러들자 개는 <‘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그래도 산다는 건 멋진 일이야!’> 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까치는 개가 살던 동굴에 박혀 숨어버린다. 메마르지는 않은 갈색으로 전체를 깔았다.

 

<우리 강가로 나가자. 내 등에 올라타. 그리고 네가 본 걸 내게 말해 줘...>

점점 커지는 슬픔으로 까치가 동굴을 나서자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리던 개가 까치를 등에 태우고 강물로 간다. 물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을 까치는 본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은 개와 날개 다친 까치. 그림은 강가에 비치는 개와 까치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까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다. 눈들이 다 빨갛다.

 

<개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어..> 마음을 내어주는 까치와 개는 서로의 눈이 되어주고 날개가 되어줄 수 있도록 푸른빛 속으로 힘차게 달렸다. 하늘을 나는 것처럼.

<날아라 , 날아! 내가 너의 눈이 될어 줄 게 너는 나의 날개가 되어 줘.>

그렇게 마음으로 친구가 되는 이들로부터 바람이 까치의 깃털 속으로 스며들어가면서 까치는 기분이 좋아진다. 뭐라해야하나? 이 색들을 흙색? 이라고 할까 개가 달리는 공간에 색이 청록색이 깔린 흙색같다. 그 개가 지나쳐 온 그곳들은 좀더 다갈색처럼 보인다. 개 잔등에 올라탄 까마귀. 그들은 한몸처럼 다닐거같은..

 

<개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매일 이곳저곳을 달렸어. ..여우의 눈빛은 왠지 불안해 보였어. 진한 붉은 색의 여우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났어. 여우의 눈빛은 왠지 불안해 보였어. 활활타오르는 불길...> 혓바닥을 슬쩍 내밀고 까치를 돌아다보며 웃고 있는 개의 모습이 익히 알던 개의 모습이 떠오른다. 충성스럽고 애교스러운 그래서 인간들과 같이 살고 있는 개의 모습이 보인다. 그 오른편에 여우 한 마리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세로로 길게 늘어져 있다. 왠지 불안한 눈빛이란다. 그다지 불안해 보이지는 않지만 응시하고 있는 여우는 보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라고 쓴다. 숲을 태운 큰불을 떠오르게 하는 글이다. 까치가 여우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로 읽힌다. 바들바들 떨었다. 왤까? 다시는 날지 못하게 만든 이 떠올라서일까? 아니면 여우의 불안한 눈빛때문인가? 붉은 빛이 많은 그림들에서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는 말에 어울리게 초록빛이나 연두빛이 조금씩 나타난다.

 

< ‘어서와. 우리와 함께 지내자.’ ..> 노란빛? 의 눈을 가진 여우가 개의 보이지 않는 쪽으로 다가가 <..너희가 달리는 걸 보았어. 정말 특별해보이더라...> 라고 말한다. 특별해 보이더라는 말에 무게가 실린다. 여우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무엇 때문에..?

까치는 자신에 상처입은 날개를 여우가 보지 않도록 숨기듯이 하고 발톱에 부리는 새우고 여우를 바라본다. 개와 까치의 중간에 여우가 기다랗게 그려져 있다. 개와 까치의 공간이 여우로 인해 분리되는 듯하다.

 

<..어느새 동굴 속은 여우의 냄새로 가득 차 버렸어.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였지>

여우의 왼쪽눈이 더 광을 내듯이 노란빛으로 정면을 보고 있다. 강렬한 눈빛이다. 두 눈만 클로즈업 시켜놓았다. 눈을 이렇게 클로즈업 시키는 것. 나를 보고 있는 거처럼 보인다. 눈빛에 느낌이 가득 차 있다. 글은 여우의 냄새로 가득 차 있다고 쓰고 그림으로는 눈빛이 가득하도록 강렬하게 그렸다.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란다. 이상하다. 질투와 외로움은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둘의 사이좋음을 질투하고 그래서 상대를 배려하고 보살피는 모습에 외로움을 느끼는거 같다. 그럼 분노는 어디에서 온 걸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 둘에게 화가 나는 걸까? 외로우니 슬프고 슬프니 화가 나서 일까? 여우가 특별해 보인다고 할 만큼 둘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자신도 그 안에 일원이 되고 싶은 감정이 들었을까?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에게 다가갔으나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되어서일까? 계속 자신을 경계하는 까치를 여우는 아나보다. 그들에 사는 곳에서 그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가봐도 어렵다. 왼편에 어둠속에 잠긴 보금자리가 숨어 있고 그 앞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빛이 어디에선가 있는지 아래녁에 바위가 빛을 반사하고 있다.

 

<여우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야.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조심해...나는 개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바람보다도 더 빨리..나랑 함께 가자. > 까치가 여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고 있다. 어떻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라고 말할수 있을까? 무엇을 보았길래..?

여우는 왜 까치에게 같이 떠나자고 하나? 잡아먹으려고? 신체 건강하지 않은 둘을 잡아먹는건 그다지 어려웁지 않다. 그럼 잡아먹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나? 그렇다면 여우가 좋은 아이라고 말하는 개는 왜 그렇게 단정짓나?

 

<하늘을 나는게 어떤 건지 기억해? 진짜로 나는 것 말이야..> 개보다 빨리 달린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던 까치는 자신의 기억을 깨우는 여우의 말에 움직인다. 자신의 지난날. 날개가 다치지 않았던 자신의 몸으로 직접 날던 시간들이 일깨워지면서 까치는 여우를 따라 나선다

중요한 부분이다. 처음부터 여우를 경계하면서 개를 절대 떠나지 않겠다던 까치가 마음을 바꾼다. 무엇 때문에? ‘하늘을 나는 것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날수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까치는 개를 떠난다. 화려한 시절이라고 해야할까? 인간들이 잘 하는 왕년에..내가 말이야를 떠오르게 한다. 잠이 깬다.

 

<...드디어 내가 날고 있어. 진짜로 날고 있다고!...> 왠지 시원해보이기도 한 몸이 거꾸로 뒤집어진 까치의 모습이 불안한 그림이다. 대각선으로 여우의 붉은 몸둥이rk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리고 노란눈빛의 여우가 뒤집어진 까치는 회심의 미소를 짓듯이 보고 있는 모습도 점점 들어온다. 날으듯이 화면 가득이 여우가 뛴다. 여우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잡아먹는거 훨씬 쉬울텐데...

 

<...이글거리는 붉은 사막까지 달려갔지..> 여기도 붉은 사막이란다. 이 그림이 좋았다.

직선으로 뻗은 듯한 여우의 몸과 나는 거처럼 훨씬 커 보이는 까만 까치. 붉은 빛이 나는 사막으로 날으듯이 달려가는 여우. 죽어도 상관없겠다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까치는 비록 자신이 직접 날지는 못하더라도 여우덕분에 나는 거처럼 날았다고 위안이 될까? 이러고 나서 여우에게 잡아 먹혀도 괜찮을 거 같은 기분이다.

위쪽에 종이를 바느질해서 붙여 놓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저것 뭘까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 벼룩이라도 털어 내듯 까치를 떨어뜨리고여우는 까치는 지긋하게 바라본다. 노란 눈의 여우가 까치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라고. 여우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사라진다. 분노와 질투와 외로운 냄새를 풍겼다고 했다. 그래서 외로움을 까치에게도 개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었던건가? 둘 사이에 오직 침묵만이 흘렀을 때 까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우는 외로움 때문에 이 둘을 갈라놓고 싶었던 걸까? 여우가 까치를 잡아먹을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

 

<..까치는 이글거리는 붉은 사람 한 가운데 홀로 남겨졌어. ..온몸이 불에 타서 재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어.> 그랬다 . 왼쪽 아래에 까치는 멍한 듯 붉은 해를 바라보며 서 있다. 붉은 빛이 여전히 많은 사막그림이다.

 

<그 순간 까치는 혼자 남겨 두고 온 개가 생각났어. >그림을 조금 세밀하게 본다면 개가 보일까? 하고 들여다 보지만 깊다.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조심조심, 비틀 비틀, 폴짝폴짝, 까치는 친구가 있는 곳을 향해 멀고 먼 여행을 시작했어>왼편 위쪽에 붉은 가장 붉은 빛을 등에 지고 까치는 이동한다. 멀고 먼 여행길을.

 

마지막 이면지에 처음에 펼쳐진 붉은 빛으로 가득차 있던 그곳이 청록색의 나무들이 서 있는 이제는 하얀구름과 파란하늘색으로 여느 숲이 있다. 처음의 그곳이 불타오르는 숲으로 그려놓은 붉은 빛이었나 보다.

 

개와 여우는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충성스런 이미지의 개는 날개를 다친 까치를 도와주고 일어나기를 말없이 기다렸다가 까치와 같이 살아간다. 자신이 생각하는 눈이 보이지 않아도 살아가는 건 멋지다고 위로를 한다. 구해주고 위로하고 기다리고 살아가고 있는 개는 한결같게 보인다. 불안한 눈빛으로 다가온 여우는 특별해보인다는 칭찬? 과 함께 그들의 보금자리로 들어온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 가운데로 들어온다. 자신을 의심하는 눈빛을 거두지 않는 까치에게 개를 배신하자고 계속 유혹한다. 물러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돌변하지도 않은채 계속 유혹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지체없이 떠난다. 교활하고 꾀가 많다고 생각하는 여우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간다. 그에 비해 까치는 나는 새라것 외에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설날에 까치? 외국그림책인데 그곳에서도 까치는 이런 이미지일까? 까치는 힘들고 슬픔에 빠져 어쩔줄 몰라했지만 개와 살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잘 살아가다가 여우로 인해 불안해하고 움츠러든다. 여우의 시선에 힘들어하고 의심하다가 결국 개를 배신하고 여우와 같이 떠난다. 세상을 다시 나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말한다. 그랬다가 혼자 남겨졌을 때 처음 날개를 다친 불타오르는 숲에 몸을 다친 그날을 연상하는 거처럼 온몸이 타서 재가 되어버린것만 같다고 아파한다. 하지만 까치는 길을 나선다. 자신이 배신했던 개를 떠올리며 비틀거리며 길을 나선다.

 

의외의 결말. 여우가 까치를 잡아먹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외로움에 대해 말을 하고 떠난다. 외로움. 여우는 처음부터 개와 까치를 떼어놓기 위해 다가온 것일까? 불안한 눈빛이라는 여우였다. 여우는 특별해보이는 이들을 질투해서 일까 아니면 그들 속에 속해있고 싶어서 일까? 특별해보이는 그들과 같이 있으면 자신도 특별해질거 같은 바램으로 왔을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기엔 여우의 눈빛이 다르게 보인다. 뭔가를 아는 듯한, 질문하는 듯하면서도 갈망하는 듯한. 참 묘하게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눈빛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처음부터 다가온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니 깨고 싶은 질투일까? 얻지 못해서 분노하고 화가 나면 떠나면 되는데 떠나지 않고 곁을 떠나지 않으니 급기야는 깨버리고 싶은 질투심이 일어나고 그 질투심으로 인해 외로워지는 걸까?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라는 문장에 여우의 심정을 알고 싶다. 여우의 이미지는 처음 내게 있던 이미지이긴 하나 여우의 눈빛이나 저 문장이 여우의 복합적인 감정변화가 느껴진다. 이럴수 있을까? 저럴수 있을까? 하는 불안정한 정서가 느껴지는 여우. 제목을 여우로 잡은 것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일까?

나는 여우에게 감정적 이입이 더 크다. 까치의 선택이나 배신에 감정이입이 되기보다 여우의 눈빛이나 그렇게 까치를 버리고 떠나버리는 여우의 마지막 모습이 더 기억에 남고 감정적으로 흔들려서다. 특별한 두 친구를 바라보는 자의 외로움이나 그로 인한 질투와 분노를 더 많이 기억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 불릴만한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런 상황에 고마움을 느꼈을까? 몰랐을거다. 몰랐으니 고마움도 없다.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한 장치의 여우가 나왔다고 하기에는 ...

 

일부러 왼손으로 글씨는 쓰는 방법. 수고로움을 선택했을 때는 무엇인가 목적한 바가 있었을때다. 불안함과 불편함? 여우가 가진 불안함이라는 정서를 나타내는건가? 까치가 여우에게서 느끼는 불안함? 그럼 개는 불안해하지 않나 돌아보면 개는 그렇지 않다. 불안함을 읽는 우리에게 느끼도록 하는 장치일까? 불안함도 있지만 불편함도 있다. 그냥 왼손으로만 쓴게 아니라 방향도 자주 바꾸었다. 불안한 글씨체를 편하게 읽게 하지도 않았다. 책을 이리저리 틀어서 읽도록 했다. 쉽거나 빠르게 읽지 않고 일정의 불편함을 안고 읽게 하고 싶은 장치일까 싶다.

 

친절하게 자신을 일으켜준 개를 배신하고 여우를 따라나선 까치.

개를 떠나 날으는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때가 아닌 오래전 기억에 날으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배신을 하고 떠난다. 다른 무엇에 대한 애정이나 갈망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자기에 대한 애정이 까치를 변하게 한다. 자기를 버리지 못한다. 어찌보면 까치로서는 그럴수 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난 너를 배신하는게 아니야. 나를 찾기 위함이고 나를 알기 위해서 떠난거야라는. 까치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다쳤으니 슬프고 슬픈데 위로를 해주니 받아들이고 안정을 찾으니 자신을 찾고 싶어지는. 그렇구나. 까치는 현실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그러나 마지막에 까치는 멀고 먼 여행을 떠난다. 혼자남은 개를 생각하면서. 이 대목에서 까치가 내리는 선택에 희망을 그리는 거 같고 마지막 이면지 그림이 맞물려 잘 들어간다. 그럼 나는 그런 상황에 까치와 같은 희망을 그리는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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