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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의 아이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1
낸시 파머 지음, 백영미 옮김 / 비룡소 / 2004년 11월
평점 :
오늘 쓰지 않으면 영영 안쓸거 같아 눈 비비고 쓴다.
도서관책이기도 하고 .
내가 산 책이 아니라 더 재미있게 보았다.
조금은 미래의 일.
'클론'과 '이짓'
클론은 참을 수 있다. 그렇게 하는 행위가 참을만해서라기 보다 '이짓'의 변화가 난 더 무섭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변해버렸다는 것.
동물보다도 못한 사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 무섭다.
본능도 존재하지 않는 사이보그다. 그나마 사이보그는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는 않을 거 같다. 그네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집단으로 반항도 하던데 말이다.
어제까지 보통의 사람처럼 살던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건으로 만드는 행위가 소름끼친다. 다시 보면 내가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움직이는 것을 바라고 있다. " 책가방 챙겨야지" " 이 닦고 잠잘 시간이다" " 이거 쓰레기 좀 버려주세요" 내가 말을 했을때 이의제기 없이 바로 제꺼덕 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내가 바라는 바가 '이짓'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소름끼쳐하는 그 면이 내 안에 있다.
이렇게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지금 방문밖에 널어져 있는 옷가지 내가 5분 전에 큰 소리 친거다. " 입은 옷 걸어나라" 하고. 근데 아직까지 그대로 그자리에 널부러져 있다.지나가면서 한마디 하고 싶은 거 귀찮아서 가만있다. 소리지르느라면 또 시간 가고 그럼 내가 나가기 전에 이것을 다 못 쓰니까.
잔소리하는 것도 시간 감정 에너지를 쏟아야 가능 한 거다. 그네들이 쉽게 '이짓'을 만드는 것이 가장 최소의 비용을 들여 효율적으로얻고자 함이다. 귀찮아 하는 이 마음이 기계적으로 가능해져서 나타난거 아닌가.
공부잘하게 하는 집중력을 키우는 약들이 이거 한 면이 아닌가 . 먹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만..좀 산만하고 머리가 나쁜게 약을 먹어야 할 병이 되어버린거다. 총명탕이라고 하는 거 큰애 먹여보았다. 1년을. 그 약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약을 먹을 동안 집중 교육을 시켜보라며 의사가 권했다. 서울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집중교육? 기억나는 거 없다. 별 볼일 없다. 결국 돈 만 버린거다. 아니 돈보다는 거기에 기운빼느라,약을 과신한 탓에,선택을 잘못한 탓이다. 다 내 탓으로 돌아오는 죄책감까지. 약보다는 아이를 어떻게 돌보느냐에 달린 것을 멀리서만 찾은거다. 알아도 어렵다.
이야기 또 멀리 간다.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클론'을 만들고 뇌를 살려 온갖 희노애락을 다 겪도록 만든다. 클론의 운명은 정해졌다.
그렇다면 인간답게 몇년이라도 살게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아니면 클론으로 살다가 죽는 게 더 나을까?
클론으로 살아도 그렇게 시설에 가두고 묶어놓지 않는다면 그네들을 어느 숲이나 공간에 풀어놓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조금 더 그네들 나름의 생존력이 있어서 살수 있을까?
뇌가 없으니 살 능력이 없다면 묶여 있을때 고통도 없을거 같은데 그건 아닌거 같다. 너무 복잡하게 들어가지는 말자. 제대혈이네 뭐네 다 감자 걸려 나오듯 나올수 있어 안 들어간다
마트가 그곳을 탈출해 나가면서 끝이 났더라면 하는 아쉬움 남는다. 너무 결론을 내고 싶어했던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던 건가. 지나치게 행운이 따르는 결말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과연 마트는 그곳을 자신의 처음 생각했던 거처럼 잘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경호원들은 각각 다른 나라에서 데리고 와야 겠다는 그의 생각이 걸린다. 그와 비슷한 나라가 될수도 있겠다.
어떤 삶이 더 나을까?
선택하라고 한다. 어느쪽으로 갈건지를 잘 선택하라고 한다. 어떤 삶이 진짜 더 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