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대장 존 비룡소의 그림동화 6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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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책이다.
존 버닝햄이라는 유명작가가 쓴 책중에서도 알아주는 책이다.
다시 말하면 오랜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온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난 누굴까 가끔 생각한다.
어른들일까 아이들일까.
처음부터 이 책의 유명세를 모르고 읽었던 순수한 독자입장에서 이 책이 참 좋아서 살아남은 것일까
아니면 그림책을 읽고 해석하는 비평가들의 입담을 거친 후에 살아남게 된 책일까. 궁금하다.
나는 후자에 천원 건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이름과 성으로 끝나는 간단한 이름이 아닌 재판정에서나 불리는 중간이름까지 모두 불렀다는데 의미가 있단다. 그럼 이 책이 쓰인 그곳에서는 이 이름을 모두 부르고 있는 선생님의 심리를 잘 알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저 장면이 우리입장에서 [하동정씨 종갓집 18대손 정동철] 이라고 부른다면 그 느낌이 올까?  그 이름에 숨어있는 압력을 알아들을거 같다.  

이 책의 여러 장점들.
앞뒤 여면에 주인공인 아이가 썼을법한 반성문이 참 정겹다. 이렇게 지루하게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되새기고 있었던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나서 정겹다. 반성문을 A4 용지에 앞뒤 빽빽이 채워오라는 말이 어찌나 막막했던지 그 하얀 여백의 종이를 손에 쥐고 앉아 한숨 쉬며 앉아있던 시절이 확 떠오르게 하니까. 이렇게 어떤 글을 주며 쓰라는 것은 그래도 낫다. 하지만 이렇게 쓰던 저렇게 쓰던 쓰면서 반성하는 의미는 커녕 시간이 갈수록  선생님에 대한 원망과 처음에 나의 잘못이라고 느꼈을 법한 양심의 가책같은 것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짜증만 남았었는데 지금은 정겹기까지 하다니..내가 어른이 되어버린거다. 어릴적의 막막함보다 돌아가지 못하는 어린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아이들은 이것을 보면 '죽인다' 하며 비명 비슷한 괴음과 같이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는 거 같은데 말이다

몇년 전에 광주에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왔던 날이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들이 그날 임시 휴교를 했었다. 억울했었다. 나 어릴적에는 눈이 많이 왔다고 휴교한적은 없었는데..난 이런 추억도 못 가져보고.  학교 가는 길에 늦어도 될 합당한 이유. 그런 이유를 한번쯤 정말 가져보고 싶었다. 지금은 앞뒤 맞는 이유를 생각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 어린시절에 합당함보다는 늦어도 될 아무 이유. 아무 일. 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랬다.

무시무시한 개를 만나서 꼼짝 않고 얼음처럼 굳어 그 자리에 동상이 된다면..학교 앞에 뱀이 몽땅 풀려  집으로 돌아가야 되기를..(실제 초등학교 방과후에  뱀탕하는 집에서 뱀들이 한 푸대가 풀려 나왔던 적이 있었다. 아침이었다면 생각하며 서운해했다) 그런 감정들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의 상상을 이해할수 있게 만든다.그가 만든 상상속으로 들어가 같이 놀고 싶고 도망다니고 싶다.하지만 그 상황을 우리 아들이 사용한다면 엄마를 속였다는 거짓말에 몸 부르르 떨면서 이번 기회에 단단히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미 난 어른이니까..아들의 마음을 읽기보다는 깨달음을 얻을 기회라고 생각할거 같다. 좀 슬프네

나와 같은 선생님이 나온다. 상상을 하고 상상을 해도 물어주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
왜 그런 상상을 하는지 단지 거짓말쟁이라는 말로 그의 입을 막아버리고 만다. 드디어 아무 일도 없는 학교길. 허전하고 서운했다. 그 서운함에 다음 장을 넘기면 털북숭이 고릴라한테 잡혀가고 있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아..샘통이다. 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보다 그냥 서운했다. 드디어 패트릭이 어른이 되어버린건가. 상상하지 않고 다른이의 말도 믿지 않는 메마른 어른이 되어버렸나 싶어 서운했다.

-다음 날에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 어제의 그 일이 패트릭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고 반복적인 일상으로 넘어가는 것이 서글프게 한다.
패트릭이 어린시절이 끝나버렸다.
이렇게 서글프다로 끝나기까지 누구를 위한 책일까 생각했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때..내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서. 그림책 이론서를 읽으면서. 초등 1년에 유치원생인 우리집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애들에게는 이 책이 와 닿지가 않는거다.

처음에는 무슨 말이야..어리둥절했다. 기억에 남기는 한데 어떤 점이 이 책을 유명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내 보기엔 그저 그런데..그러다가 이론적인 지식으로 알고 난뒤에 보면 . 아 그렇구나 하게 된다. 존 버닝햄이 어떤 의도로 이렇게 저렇게 그리고 쓰고 했구나 한다. 내가 무식해서 이렇게 좋은 책을 모르고 별볼일 없다고 생각한건가..라는 생각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속담에 생각이 미치면 이렇게 좋은 책을 내가 몰라서 그랬다. 알고 아이들에게 읽어주워야지 한다. 딱 가르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그랬다가도 꼭 그림책이라는 게 이래야 하는 걸까. 이렇게 어리둥절하게 무슨 말이야 하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얻는게 있어야 좋은 그림책이라고 하는 건가. 지식이 있어야만 알수 있고 느낄수 있다면 그건 그림책을 보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지식을 알아야 하는 사람이 어른이라면 이 그림책을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하는 사람이 어른이라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어릴적에 갖지 못했던 배려와 이해받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고 그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풀어줄수 있다면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존 버닝행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아이들을 위한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평론가들이 좋은 책이라고 소개하고 설명해주는 것은 그 책을 통해서 어린시절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라는 거다.
아이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믿어주라는 거.
선생님이 고릴라에게 잡혀가는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좋아하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그 보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그런 어린시절의 모습을 이해하고 믿어주게 된다면  문제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을거 같다.  

좋은 책이라는 것에는 큰 의의는 없지만 이 책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고 그들이 즐거움을 얻기를 바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 책은 어른들이 먼저 읽고 알아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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