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그림책은 내 친구 2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논장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앤서니 브라운

앞표지와 뒷표지를 활짝 펼쳐 보면.
그림책이 펼쳐진채 어두운 터널로 여자아이가 들어가는 뒷모습이 보이는 앞면과 덮어진 책이  있는 터널이 보인다.
앞면의 펼쳐진 그림책..한참 들여다보아도 어떤 그림책인지 모르겠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인거 같기도 한데..
꼼꼼하게 그림을 그리는 앤서니브라운이기에 이 그림에도 무언가의 의미가 있을텐데..어떤 동화인지 짐작을 못하니 알수 없다.
단지..마법사가 여왕처럼 보이는 여자에게 무어라무어라 협박? 을 하고 있고 커튼 너머로 요정이 그 광경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다.
영화의 시작 5분이 중요하듯이 표지..무척 신경쓰고 그렸을텐데..
이면지의 왼쪽은 둥글게 곡선으로 채워진 꽃무늬 벽지 같고
오른쪽은 발갗게 구은듯한 벽돌의 담벼락같다.
그리고 꽃무늬에는 표지 뒷면에 있던 책의 앞면이 보여진채 놓였다.

비슷한 면이 전혀 없는 공차기를 즐겨하는 장난꾸러기 오빠와 공상하기를 즐기며 책을 좋아하는 여동생의 이야기다.
비슷한점이 없는 남매가 어느날 '터널'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서로 안아줄수 있는 어떤 감정의 교류를 느끼게 되는 이야기다
꽃무늬 모양의 벽지에 여동생과 벽돌무늬의 배경으로 오빠.
그들의 성격을 뒷 배경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부드럽고 얌전한 동생과 장난이 심하고 바깥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오빠.

그들이 잠자는 밤을 들여다 보는 페이지가 참 재미있다.
별들이 반짝이는 벽지인듯한테..오빠는 흐릿하게  파란 물감이 튄듯 보인다. 그 안에서 깊이 잠이 들었다. 작은 화면속에 그림으로.
그에 비해 오른쪽에 여동생방은 커다란 페이지 전체에 그려져 있다.
밤을 무서워 해서 작은 집모양 전등을 켜져 있고 꽃무니의 자잘한 벽지에는 '빨간두건'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 그림속의 여자아이가 입은 빨간두건이 여동생의 옷장에도 걸려 있다.  왜 걸려 있을까?  삐긋이 열린 옷장에는 꼭 누군가의 팔이 나온듯 으시시하다.
침대밑에는 신발 밑 바닥이 보이는데 꼭 누군가 침대밑으로 기어들어가 있는 듯 이상한 포즈다. 반대편에는   뭔가 이야기가 숨어있는 듯한 노끈이 보인다
여동생의 방에는 곧 무슨일이 일어날것만 같은 방이다
여기저기에 무언가 튀어나오려는..밤을 무서워한다는 그녀가 읽었던 책에서 나온 괴물들이 금방이라도 나올듯 하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괴물인가? 그 괴물에 오빠도 들어있나? 
아마도 이 방은 여동생의 꿈속인것 같다. 그 꿈속에서 일어날수 있는 그녀의 모든 상상인가보다

터널속으로 들어간 오빠와 오빠를 찾으러 들어가는 여동생
그 터널속의 나무들이 무언가 암시하고 그 암시가 점점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변화가 환상적이다. 영락 '빨간두건'의 모습이 나타나고 숲속 작은집도 보이고..
아이들과 이 페이지에서 많은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수 있을것 같다.
사방군데 숨어있는 동물찾기에도 좋다.

여기에서 그림의 크기로 두려움이 점점 커져가는 여동생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작은 숲속그림에서 온통 양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그림이 두려움의 크기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무섭다 무섭다 하면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유리창을 잠깐 흔들고 가는 바람에도 소스라쳐 숨이 안 쉬어질때가 있다
무서운 마음으로 귀와 내 촉각들이 곤두서있기에 내가 아는 모든 두려움이 일시에 찾아온다.
그럴때 옆에 있는 누군가..갓난아이만 있어도 그 아기가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그렇게 빨간외투를 걸친 동생이 두려움에 도망치는데 오빠가 있었다.  딱딱하게 돌로 변해버린 오빠가..굳은 오빠의 존재만으로도 여동생은 일시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다. 벌써 두려움을 잊은채 오빠를 안고 눈물을 흘린다.   네개의 작은 그림으로 오빠와 동생이 점점 밝아져가는 화면으로 두려움도 심술도 사라져 가는 걸 보여준다

오빠를 안고 우는 동생을 다시 안아주는 모습이 누군가는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한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면지에는 벽돌무늬에 책과 공이 같이 그려져 있다. 오빠와 여동생의 화해를 말하고 있나 싶다.
여기서 저 책은 처음부터 중간중간 그리고 마지막에..여동생이 읽어나가는 속도와 이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가 같다.  페이지 넘어가는데 보인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쓰는 인간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은 인간들을 조금 무시하는 거 같다고.  여기 이책에서도 오빠는..놀기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일뿐이다.
밤을 무서워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여동생은 용기를 내어 오빠를 구한다.  내가 너무 어거지일까?
첫 페이지에 책만 있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책과 공이 나온점을 연결해보면 그게 어거지만은 아니다.   앤서니브라운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야 어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용기를 얻을수 있다고 은근히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다. 
그래도 책을 읽으라는 거니까 걍 받아들이고 싶다. 가도 정말 책이 싫다면 그건 어쩔수 없지 않은가..몸을 움직이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사람과의 관계맺기를 배우기를 원한다면 그게 훨씬 자연스럽고 맞다면 그럴수 밖에.

책이 모든 삶은 아니다.  단지 조금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말이 있어야 삶이 있고 삶이 있어야 글이 있다. 라고 한다
글이 있기전에 삶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삶은 없이 글만 있다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그건 아마도 기계와 같을것 같다.

그렇다면 브라운은 여동생에게 글 이전에 삶을 보여준것일까?
오빠에게는 책인 글을 준걸까?
마지막 페이지의 나란히 놓인 책과 공이 그런 뜻인가?
사소하게 시작했는데 이것저것 엮어보는 재미가 많아졌다
(내가 똑똑해지고 있는것인지 할일이 없는것인지..)

 
짧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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