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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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문에서 미국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상처(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역사적 사건 -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건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 으로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1963년)”, “월남전 패배(1975년)”, 그리고 “9.11. 테러(2001년)”를 꼽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중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자 미국 본토 한복판인 뉴욕에서 발생한 “9.11. 테러” 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지만, 장년층과 노년층에게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꼽은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미국 역사상 최연소(43세)이자, 20세기에 태어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 경제 불황과 냉전, 핵전쟁의 공포 등에 시달리는 미국인과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제시한 리더로 평가(네이버 캐스트에서 발췌)받는다는 그의 암살은 미국인들에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코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의 암살 사건은 20세기 최고의 음모론(陰謀論) 사건으로 꼽히고 있으며 지금도 미제(謎題)로 분류된 대표적인 미스터리 사건이라고 하는데, 그를 암살한 범인으로 알려진 “오스왈드”가 사건 발생 이틀 후 암살당하고, 오스왈드를 죽인 범인 또한 구치소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으며, 지난 50 년 동안 수많은 수사와 조사가 있었음에도 암살 사건의 배후에 대해서 숱한 설(說)과 억측(臆測)만 있을 뿐 여전히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그 어떤 허구의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기막히고 불가사의한 케네디 암살 사건과 SF 소설의 단골 소재이자 가장 인기 있는 소재인 “시간여행(時間旅行, Time Travel)"이 결합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기막힌 소재를 이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꼽히는 ”스티븐 킹“이 소설로 꾸민다면? 이런 작품이라면 어느 보험 광고 멘트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당연히 “무조건” 읽어줘야 하는 소설일 것이다. 스티븐 킹의 신작 <11/22/63(황금가지/2012년 11월)> - 제목이 바로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날인 1963년 11월 22일이다 - 이 바로 그 소설이다.

 

인간적인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이혼당한 35세 교사인 “제이크 에핑”은 학교 수위로 불편한 다리와 어눌한 말투 때문에 놀림을 당하는 “해리 더닝”의 리포트를 읽고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아버지에게 엄마와 형제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자신 또한 불구의 몸이 되어 버린 그의 애달픈 삶이 그만 그를 울컥하게 만든 것이다. 어느날 그가 자주 가는 식당 주인인 “앨”이 그에게 식당으로 찾아와 달라는 전화를 걸어온다. 어제도 만났던 터라 별 생각 없이 식당으로 찾아간 그는 수척해진 앨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만다. 어제까지도 건강하고 혈색이 좋았던 앨이 하루 만에 얼굴에 핏기를 잃고 살이 쑥 빠진, 거기에 폐암 말기 환자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앨이 제이크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더 기가 막히다. 식당의 식품 창고에 1958년의 과거 시대(정확히는 1958년 9월 9일 11시 58분)로 연결되는 타임 터널이 있고, 자신은 그 터널을 통해서 과거로 여러번 들어가서 과거를 바꿨던 경험이 있으며, 1963년에 벌어질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막기 위해 과거에 체류하다가 그만 폐암에 걸렸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시간 여행은 다시 한번 타임 터널에 들어가면 다시 “리셋(Reset)"되는 묘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즉, 바뀌어 버린 과거가 다시 한번 타임 터널에 들어가면 원상복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 여행에 대해 설명을 마친 앨은 이제 자기는 죽을 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으니 제이크가 암살 사건을 막아달라고 부탁해온다. 도저히 믿기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하루 만에 변해 버린 앨의 모습에 반신반의한 제이크는 테스트 형식으로 타임터널을 통해서 과거로 향한다. 바로 해리 더닝에게 벌어진 끔찍했던 사건을 막기 위해서이다. 우여곡절 끝에 해리 더닝의 비극을 막은 - 완벽하게 막지는 못했지만 - 제이크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두달여를 과거에서 지내다 왔지만 현재에서 시간은 단 2분만 흘러 있었고, 현재는 제이크 덕에 바뀌어 있었다. 즉 해리 더닝은 더 이상 말더듬이에 다리를 저는 수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쉽지만 월남전에서 전사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제이크는 앨의 요청을 쉽게 수락할 수 가 없었다. 과거 여행을 통해서 앨이 말한 것처럼 과거는 스스로 바뀌길 원치 않으며, 과거가 변화에 저항하는 강도는 어떤 행위에 따라 미래가 얼마나 달라지는가에 정비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앨은 제이크에게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막아달라는 간절한 메시지를 남겨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앨의 자살에 제이크는 그의 바램을 들어주기로 결심하고 다시 한번 타임 터널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좀 더 명확하게 해리 더닝의 과거를 바꾸고, 앨이 몇 번 바꾸었던 과거 - 사냥꾼이 사슴으로 오인해서 발사한 총알에 역시 불구가 되어 버린 소녀 - 를 그 또한 바꾸고는 1958년의 과거에서 살아간다. 1963년 그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과연 제이크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막을 수 있을까? 바뀌기를 거부하는 과거의 “고집”은 제이크에게 어떤 시련과 고난을 안겨줄까?

 

총 2권 중 기(起)와 승(承)에 해당하는 1권만 읽었지만 이 1권 만으로도 스티븐 킹 다운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이 책의 재미를 몇 가지 꼽자면 우선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과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의 기발함을 들 수 있겠다. 특히 시간여행은 그동안 만나본 SF 소설이나 영화와는 다른 설정이 눈에 띄는데, 1958년이라는 동일 시간대로 이동한다는 점, 대개 시간 여행 모순(Time Travel Paradox) 해결 장치인 “평행우주(平行宇宙)” 개념을 채택하지 않고 과거의 변경이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정 - 동일우주론 쯤으로 부를 수 있을까? -, 그리고 다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면 모든 것이 원래로 돌아가는 상황(Reset)이 참 독특하다. 물론 모순점도 없지 않지만 - 시간여행의 가장 큰 모순이 바로 작은 변화가 치명적일 수 도 있는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인데 이 책에서는 이 부분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 어차피 현실에서 불가능한 시간여행을 작가가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면 그만 일 것이며, 스티븐 킹이 전문 SF 소설 작가가 아닌 공포, 스릴러 소설 작가라는 점에서도 일부 부족한 면은 눈 감아줄 만 하다. 오히려 주목할 점은 작가가 그려낸 1958년에서 1963년까지의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재현(再現)일 것이다. 작가가 1947년생이니 당시를 겪어봤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냈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시 말투나 유행했던 패션, 자동차, 여관, 모텔 등 당시의 생활 여건 들, 그리고 당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신문기사들과 그 시대 사람들의 평가 등은 단순한 기억과 경험을 통해서 그려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작가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조사한 자료들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내가 미국인도 아닐뿐더러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았지만 글 만으로도 당시의 모습과 생활상을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머릿 속에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묘사와 설정이 상당히 디테일하고 정교하다. 이렇게 디테일한 설정은 그만큼 현실감과 사실성을 부각시키는 훌륭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역시 최고의 이야기 꾼으로서의 스티븐 킹의 이야기 구성과 전개 솜씨일 것이다. 1권에서는 주인공 제이크가 학교 수위인 해리 더닝의 리포트를 읽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마침내 과거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1958년 과거로 떠나 1961년까지 살아가는 모습까지 그려지고 있는데, 아직 본격적인 암살 사건이 시작되지도 않았음에도 긴박감과 스릴이 느껴질 정도로 몰입감과 재미를 고조시킨다. 근래 들어 스티븐 킹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들이 만만치 않은데 자신의 주 전공 분야 - 공포, 스릴러 - 가 아닌, 어찌 보면 생뚱 맞을 수 도 있는 “시간 여행”을 이렇게까지 능수능란하게 구성해내고 기막힌 재미와 스릴을 담아낼 수 있다니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말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기존의 작품들에서 독자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젖어들어 마지막에는 자력(自力)으로는 절대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공포 분위기 조성과 이야기 전개가 그만의 장점이라면 이 책 또한 “공포”를 뺀다면 초반에는 다소 지루하지만 중반에 넘어가면서 갈수록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마지막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다음 권에 계속” 이라는 마지막 문구가 그렇게 아쉽고 얄미울 수 없게 만드는 그 만의 마력(魔力)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 이야기를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맛깔스럽게, 그리고 마지막 한 줄 까지 집중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작가가 또 어디 있을까?

 

이렇게 기막힌 소재와 스티븐 킹만의 재미와 스릴을 여실히 맛볼 수 있는 이 소설은 그래서 그의 오랜 팬인 나에게는 더할나위없이 반갑고 소중한 작품이다. 최근 그의 아들인 “조 힐”의 소설도 읽어 봤는데, 그 소설도 참 재미있고 스티븐 킹 느낌이 들어 참 좋았지만 아직은 아버지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이 소설이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 2 권이 무척 기대되는 소설이다. 이 감상글 서두에서 기막힌 소재라고 칭했으면서도 막상 별로 다루지 않았던 “케네디 암살 사건”이 2 권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빤한 작가라면 결국 과거의 심한 저항 때문에 제이크가 암살 저지를 실패하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스티븐 킹 예전 소설들을 보면 독자의 예상을 철저히 깨뜨리는 충격적인 반전 또한 그의 장점이기도 하니 2 권에서는 어떤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로 깜짝 놀라게 만들지 잔뜩 기대가 된다. 그래서 아직 1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오랫만에 스티븐 킹의 재미를 한껏 맛볼 수 있었기에, 그리고 2권이 더 기대되기에 아낌 없이 별 점 만점을 주고 싶다. 스티븐 킹 만의 절절하고 무시무시한 공포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에 실망하겠지만 그만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敍事)의 마력을 다시금 맛보고 싶다면, 그리고 그의 건재를 다시금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은 딱 안성맞춤일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이 초대하는 놀랍고도 환상적인 시간여행에 다들 동참해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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