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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올해 3월, 악몽(惡夢)을 꾸게 만들 정도로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겼던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일곱 번째 권인 <스노우맨> - 국내에서는 시리즈 중 이 책이 첫 출간 작품이었다 - 을 읽고서 “스티그 라그손”의 <밀레니엄>과 함께 서구 스릴러 소설의 평가 기준이 될 것이며, 후속작이 기다려지는 작가 중 1순위가 바로 “요 네스뵈”가 될 것이라는 감상글을 올렸던 적이 있었다.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주변 지인들에게 입소문을 퍼뜨렸고, 몇 몇에게는 책을 구입해서 선물도 했었는데, 첫 반응은 너무 두껍고(624 쪽), 노르웨이 이름과 지명이 어렵다는 시큰둥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반응도 한 목소리였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는 - 다들 “너무”라는 수식어를 꼭 붙였다 - 소감과 시리즈라는 데 후속권은 언제 나오느냐는 질문이었다. 출판사 카페를 드나들면서 출간 소식을 주고 받으며 기다린 지 8개월 만에 드디어 기다리던 해리 홀레 시리즈의 신작을 만나게 되었다. 한층 더 두꺼워지고(780 여 쪽) 제목 또한 더욱 강렬해진 <레오파드(원제 The Leopard : Panserhjerte / 비채 / 2012년 10월)>이 바로 그 책이다. 지인들은 출간하자마자 책들을 구입해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오늘 몇 페이지까지 읽었다며 짧은 감상들과 스포일러 - 정작 나는 아직 읽기 시작도 하기 전인데 말이다 - 를 주고받으며 책에 열광했고, 며칠 만에 다들 읽고는 내게 보내온 반응들 또한 전작인 <스노우맨>과 마찬가지였다. 책 “너무 너무” - 이번에는 “너무”가 하나 더 붙었다^^ - 재미있고, 다음 책은 또 언제 나오느냐고.
보통 감상글을 적을 때는 줄거리 소개를 하고 감상을 적곤 하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책 읽기를 늦게 시작해서 그만큼 감상글도 늦게 올리게 되었고, 이미 인터넷 서점들에 감히 내 허접한 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고 훌륭한 서평들이 많이 올라와서 기존의 감상글 형식으로는 중언부언(重言復言) 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아직 <스노우맨>을 읽지 않은 후배에게 <스노우맨>과 이 책을 선물하면서 조언(?)으로 해준 “레오파드 읽는 방법(讀法)”으로 감상을 대신하고자 한다.
전작인 <스노우맨>을 읽지 않고 이 책을 바로 읽어도 되나?
<레오파드>는 시점(時點)이 전작인 <스노우맨>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후이다. 책은 주인공인 “해리 홀레”가 스노우맨 사건 때문에 가운데 손가락과 연인을 한꺼번에 잃고 홍콩의 뒷골목에 숨어 살고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책 속에는 스노우맨 사건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고, 등장 인물들 또한 전작에 이어 나오는 인물들도 몇 몇 있어 <스노우맨>을 읽지 않았다면 홀레가 전 사건으로 입은 심신(心身)의 깊은 상처(트라우마)나 등장인물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웠던 장면인 바로 해리가 병원에 갇혀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스노우맨을 찾는 장면 - 연쇄살인범을 만난다는 게 반갑다는 게 이상하겠지만 워낙 전작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범인인지라 그의 후일담을 접하는 게 마치 드라마 주인공을 다시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 이었는데, 이 또한 전작을 읽었던 분들이라면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전작인 <스노우맨>을 꼭 먼저 읽기 바란다. 전작도 만만치 않은 분량이던데 언제 다 읽느냐고? 다음 조언에도 언급하겠지만 한번 잡기 시작하면 단숨에 읽게 될테니 분량은 전혀 걱정마시길. 그래도 부담이 된다면 다른 독자들의 <스노우맨> 서평도 많이 올라왔으니 그 글이라도 먼저 읽어보길 바란다.
분량이 너무 많아 언제 다 읽을지 걱정되고 갖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워. 그리고 노르웨이 이름과 지명이 영 낯설기만 하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전작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처음 대하는 분들은 웬만한 책 두 권 분량에 미리부터 겁을 먹게 되고, 낯설기만 한 노르웨이 이름과 지명, 단어들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전작을 읽을 때 그런 부담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전혀 걱정하지 마시라. 시작이 어렵지 시작하고 나면 그런 부담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히 사라지고 말테니 말이다. 우선 노르웨이식 낯선 인명과 지명은 조금만 읽다 보면 금세 익숙해진다. 어차피 노르웨이어보다는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를 자주 접한다고 해도 우리말이 아닌 이상 낯설긴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그리고 줄거리를 요약하기 힘들 정도로 페이지를 꽉꽉 메우고 있는 많은 사건들과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 그리고 치밀한 심리묘사들은 조금만 읽어도 탄력이 붙어 분량에 대한 부담감이나 지루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페이지를 쉴새없이 넘기게 만든다. 그렇게 숨 가쁘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남은 분량이 읽은 분량보다 적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깜짝 놀라게 될 것이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는 그 분량도 너무나도 짧다는 생각이 들어 1~2백 페이지가 더 계속되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다음 책은 언제 나오는 거야 하는 조바심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책을 주로 출퇴근 시간과 밤에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읽는 터라 처음 이 책을 받아들고서 들고 다니면서, 또한 누워서 읽기가 만만치 않은 8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와 다른 책들에 비해 줄 간격도 빽빽하고 작은 글자 크기 - 많은 분량을 한 권에 편집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 또한 영 부담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종이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자책(e-book)을 구매해서 이번에 장만한 전자책 기기에 담아서 읽었다. 글자 크기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기기 자체가 책(800g)의 1/4 밖에 되지 않은 무게(215g)인지라 휴대는 물론 누워서 읽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고, 전자책 기기는 특성상 한 페이지씩 읽을 수 있어 오히려 종이책보다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어서 가독성(可讀性) 또한 만족스러웠다. 아직은 종이책 특유의 읽는 맛을 훨씬 즐겨하지만 그래도 가격도 종이책보다 싼 데다가 휴대에도 부담이 없으니 여러모로 이 책처럼 분량이 많은 책은 전자책으로 읽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물론 전자책 기기 값이 아직은 부담되는 가격이긴 하지만 말이다.
살인 장면이 너무 잔인하다는데........
좀 잔인하다는 평은 인정한다. 전작인 <스노우맨>에서는 여인의 머리를 잘라내 눈사람 머리로 장식하는 장면이 나오며, 이번 책에서는 “레오폴드의 사과”라고 작은 공 모양의 장치를 입에 물리고 줄을 잡아당기면 24개의 바늘이 튀어 나와 얼굴을 꿰뚫어 피가 목 안에 고여 익사(溺死)하는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 거기에 여인의 목에 밧줄을 걸고 풀장 다이빙대에서 밀어 목이 잘리는 장면이나 불로 등판에 화상(火傷)을 입히는 장면 등 잔인한 장면들이 여럿 나온다. 이렇게 장면만 보면 너무 끔찍하고 잔인한데, 막상 읽어 보면 작가가 공포소설 만큼 구체적이고 상세하고 묘사하고 있진 않아서 그다지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개인마다 잔인함을 느끼는 정도는 다를 테니 너무 잔인한 장면은 그 대목만 살짝 스킵해도 좋을 것 같다.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책의 분위기에 몰입하려면 조금은 참아보는 것은 어떨까?
읽어보니 해리 홀레, 허점도 많고 영 성격이상자 같은데?
미국 FBI 연수를 다녀오고, 호주에서의 연쇄살인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으며, 노르웨이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인 “스노우맨” 사건도 해결했던 화려한 경력이 보여주듯이 노르웨이 현직 형사 중 가장 유명한 형사인 “해리 홀레”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단서를 척척 찾아내고 범인의 숨통을 죄어가는 수사 능력은 여느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 탐정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탁월하고 뛰어난 능력을 선보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는 전작에서도 그러더니 이번 편에서도 작은 단서를 확대 해석해서 범인을 오판(誤判)하는 실수도 여러번 저지르며, 범인에게 죽임을 당한 뻔한 위기도 여러 번 맞이할 정도로 허점을 많이 노출한다. 그래도 사건을 해결했으니 수사 능력만큼은 인정해주자.
그렇다면 개인적인 성품이나 사생활 면은 어떨까? 스노우맨 사건 때문에 손가락을 잃고, 사랑했던 연인마저도 떠나가 버린 그는 홍콩으로 도피해 와서 - 원래는 뉴질랜드로 가려고 했는데 기내(機內)에서 술을 너무 마셔 홍콩에 강제로 내려졌다 - 아편을 피워대고, 경마 도박을 하는, 말 그대로 “폐인”으로 살아간다. 스노우맨 사건을 모방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며 자신을 찾아온 여형사에게 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귀국을 거부하지만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는 금세 마음을 고쳐 먹고 귀국길에 올라 여차저차해서 살인사건을 담당하게 되지만 역시나 삐딱한 성격은 여전하다. 자신이 속한 강력반과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는 “크리포스” - 우리 식으로 하면 강력사건 전담 특별 조직 쯤이라고 할까? - 와 사사건건 부딪혀 상사를 곤란하게 만들기 일수이고, 홍콩에서 귀국하면서 몰래 들여온 아편을 피워대다가 크리포스 수장(首長)에게 협박을 당하기도 하며, 알코올 중독자 경력을 십분(?) 살려 술에 진탕 취해 크리포스 수사원들 회식 장소에 가서 행패를 부리다가 두들겨 맞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정의(正義)롭지 만도 않은, 오히려 지극히 이기적이기까지 한데, 눈사태에 갇혀 사경(死境)을 헤맬 때 살릴 가망성이 높은 동료 남자 형사는 버려둔 채 연인이 된 여형사를 먼저 구해는 바람에 동료 형사가 죽게 되고, 결말에서 범인과 대치하는 장면에서 연인이 아닌 다른 여성 인질 - 그것도 그녀의 어머니께 구해오겠다고 약속한 - 에게 총을 쏴서 결국 그 인질과 범인을 함께 사살(射殺)하기까지 한다. “선택”이야 해리의 자유라지만 비난받을 만한 그런 선택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강력반 반장이라는 직책이 무색할 정도로 성격이 여린 면도 있어서 위독하신 “아버지” 때문에 폐인 생활을 접고 다시 돌아오고, 스노우맨 사건으로 자신 곁을 떠난 연인과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그녀의 아들을 못 잊고 애타 하지만 그녀에게 연락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며, 결말에서 자신을 정리해볼 시간을 달라며 다시 홍콩으로 떠나지만 어찌보면 새롭게 시작한 사랑을 책임지기 싫어 도피하는 것으로 오해살 만하다. 이쯤 되면 어느 분이 말하신 “다크 히어로” 수준을 떠나서 “사회 부적응자”, “인격 파탄자”, “성격이상자” 등 비난이 쏟아질 만 하다.
그런데 오히려 해리의 이런 “인간적인” 면이 추리소설 속의 천편일률적인 정형화된 캐릭터에서 벗어나 그를 더 현실감있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괜한 고집을 부리고, 상사들과 사사건건 부딪히기도 하지만, 작은 상처에도 아파하고, 때로는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그의 모습에서 소설이나 드라마 속의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너무나도 인간적이기 때문에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플롯과 트릭의 기발함과 정교함이나 충격적인 반전이 아니라 바로 주인공 “해리 홀레”라고 생각한다.
다른 스릴러 소설하고 비교해보면 어때? 예를 들면 <밀레니엄> 시리즈하고 비교해 보면 말야.
추리·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올해 많은 작품들을 만났다. 그동안 써 놓은 감상글들을 읽어 보니 호들갑을 떤 감상글들이 여럿 눈에 띄인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몰입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고 그만큼 재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미의 경중을 비교하는 것은 작가들에게 실례이고, 또한 개인 취향이 다를 수 도 있으니 다른 책들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말기로 하자. 다만 이미 언급했으니 <밀레니엄> 시리즈와 비교해본다면 서두에서도 밝힌 것처럼 “동급(同級)”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밀레니엄> 시리즈는 작가가 안타깝게도 사망해서 이제 더 이상 만나볼 수 없지만 이 “헤리 홀레” 시리즈는 이 책에 이어 아홉 번째 작품인 <유령 The Phantom>까지 나왔다고 하니, 국내에는 <스노우맨>과 이 책, 두 권 밖에 출간되어 있지 않다니 만날 기회가 더 많다는, 그래서 즐거움과 재미를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리 홀레” 시리즈에 점수를 좀 더 주고 싶다.
이 글 시작할 때는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역시나 주저리주저리 글이 늘어졌다. 내 감상도 서두에서 언급한 지인들이 반응처럼 “너무 너무 재미있다”, “후속권은 빨리 만나보고 싶다”로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어느 독자분 말씀대로 올해 추리·스릴러 소설은 <스노우맨>으로 시작해서 <레오파드>로 끝을 맺는, 나에게는 “해리 홀레” 시리즈로 시작과 끝을 함께 할 수 있었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그래서 올 한 해 읽었던 스릴러 소설에서 하나 만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스노우맨>과 <레오파드>를 추천하고 싶다. 앞으로도 이어질 “해리 홀레” 시리즈, 조바심나지 않게 좀 더 빠르게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보며 두서없는 이 감상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