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인 지난 6월에 “할런 코벤”의 <용서할 수 없는>을 읽고서 할렌 코벤에 대한 낯설음은 이제 끝났고, 그의 팬이 되었다라고 감상글을 쓴 적이 있었다. 두 권 밖에 읽지 않았는데도 이런 감상을 남겼던 이유는 스릴러 소설로서의 긴장감과 재미, 그리고 묵직한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그의 스타일이 내 입맛에 딱 맞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할런 코벤”은 나에게 작가 이름만으로 선뜻 책을 선택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 출간된 신작 <숲(원제 The Woods/비채/2012년 10월)>을 받아들고서 작은 흥분과 함께 설렘까지 들었던 이유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기대감과 설렘을 100% 충족시켜주는 멋진 소설이었다.

 

20 년 전 숲에서 여름 캠프에 참가했던 4 명의 청소년이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중 2 명의 남녀는 시체로 발견되지만 2 명은 피 묻은 옷가지만 발견되었을 뿐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은 캠프장 상담원이었던 “웨인 스튜벤스”로 이 살인 사건 외에도 여러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연쇄살인범이었음이 밝혀져 무기징역형에 처한다. 그러나 그는 여름 캠프장 살인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끝내 2명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딸을 잃은 한 아버지는 토요일마다 숲에 들어가 죽은 딸의 시신을 찾기 위해 땅을 파헤치고, 여동생을 잃은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몰래 지켜본다. 20 년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앨 꼭 찾아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20 년 전 여동생을 잃고 땅을 파헤치던 아버지를 지켜보던 아들인 “폴 코플랜드”은 장성해서 에식스 카운티의 검사가 되었다. 사랑했던 아내와는 사별하고 여섯 살 난 어린 딸과 살고 있는 그는 딸의 학예회에 참석했다가 낯선 형사 두 명의 방문을 받는다. 한 남자가 피살되었는데 주머니에서 그의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가 나왔다며 시신을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형사들을 따라 시체공시소로 간 그는 깜짝 놀라고 만다. 시신은 20 년 전 살인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자 자신의 여동생 “카밀”처럼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던 “길 페레즈” 였던 것이다. 그런데 연락을 받은 페레즈의 부모는 시신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20 년 전 사진을 꺼내본 코플랜드는 페레즈 부모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의문에 빠진다. 한편 20 년 전 여름 캠프장 주인의 딸이자 당시 코플랜드와 사귀었던 “루시”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대학교 학생 과제물을 읽고 깜짝 놀라게 된다. 20 년 전 코플랜드와 자신이 숲 속에서 밀회를 나누던 장면을 그대로 그려낸, 즉 20 년 전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던 날 밤의 일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루시는 그날 이후 만나지 못했던 코플랜드에게 연락을 하고, 둘은 그날의 사건의 진실을 캐기 시작한다. 과연 20 년 전 그 숲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왜 20 년 만에 코플랜드와 루시에게 그날의 사건이 들춰지게 되는 것일까?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20년 전 그 사건은 조금씩 그 베일을 벗게 되고, 마침내 충격적인 반전과 함께 그날의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

 

전작인 <아들의 방>, <용서할 수 없는>에서 맛보았던 할렌 코벤 스타일, 즉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결코 눈길을 뗄 수 없는 긴장감과 스릴 넘치는 사건과 반전의 연속,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쉽게 책을 덮지 못하게 만드는 여운을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맛볼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에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20 년 전 과거에 벌어진 살인사건에 숨겨진 진실의 정체와 그리고 과연 그 진실이 어떻게 밝혀질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북유럽 소설 열풍을 불러온 “스티그 라그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도 1부에서 수 십 년 전에 벌어진 소녀의 실종사건을 다뤄 큰 관심과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20년, 그저 사건과 무관한 일반 사람들에게는 전혀 기억도 나지 않을 긴 시간이겠지만 사건의 관계자들, 특히 가족들에게는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30년이 훌쩍 지나버린 전 모 재야인사의 의문사가 다시 화제가 되는 이유도 그의 죽음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아직도 슬퍼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20 년 전 “그 사건”의 당사자들이었던 코플랜드와 루시에게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로 계속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결코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상처가 20 년이 지난 후에 다시 생채기가 난다면 그 아픔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거기에 그간에 알려졌던 진실이 송두리째 뒤집혀 버릴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면 주인공인 두 사람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독자들 또한 궁금증이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비밀은 당시 사건의 살인범으로 수감 중인 “웨인 스튜벤스”나 어느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주인공인 코플랜드와 루시, 20년 만에 다시 나타난 페레즈와 그의 부모, 캠프장 주인이자 루시의 아버지인 “아이라 실버스타인”, 심지어 딸이 살해된 후 보상금을 가지고 가출했던 코플랜드의 어머니와 딸의 시신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당시 사건의 관계자 “모두”에게 숨겨진 비밀 - 물론 비밀의 경중은 서로 차이가 나지만 - 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충격적인 진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독자들은 경악하게 되고, 긴장의 고삐를 더욱 바짝 조일 수 밖에 없어진다. 그래서 이런 궁금증과 놀라움은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 넘김을 더욱 숨가쁘게 만들어 버리고, 결말의 충격과 반전으로 놀란 가슴과 여운은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자꾸 책을 펼쳐보게 만든다. 결국 전작들과 똑같은 경험을 이 책에서 다시한번 고스란히, 아니 더 충격적으로 재현된 것이다.

 

할런 코벤은 이 책에서 누구라도 궁금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과거 사건 속에 숨겨진 진실이라는 탁월한 소재 선택 능력과 함께 어느 한 구절 소홀히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그만의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력으로 긴장감과 스릴 넘치는 사건과 반전을 촘촘히 배치한다. 여기에 “휴머니즘”이라고 일컬어지는 작가 특유의 메시지, 즉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가족애라는 미명하에 왜곡되고 감춰진 진실이라는 묵직한 생각꺼리와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까지, 자신만의 장점들을 어느 하나 빠짐없이 꼼꼼히 담아내어 이 멋진 소설을 완성해냈다. 여느 정형화된 스릴러 소설들의 스타일과 전혀 다르지만 확연히 차별화된 긴장감과 재미, 여운을 선사하는 할런 코벤만의 스타일에 이 책을 읽고 난 후 “역시 할런 코벤!”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오고, 할런 코벤에 대한 나의 기대와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면 너무 호들갑스럽고 과장된 감상일까? 먼저 읽은 독자들의 서평들 또한 호평들인 것을 보면 역시 내 감상이 과히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아뭏튼 할런 코벤, 앞으로도 이름만 들어도 즐겁고 설레이는 작가로 계속 기억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