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자풍 1 - 쾌자 입은 포졸이 대륙에 불러일으킨 거대한 바람 쾌자풍 1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이우혁 작가는 데뷔작인 <퇴마록(1994)>부터 최근작인 <바이퍼케이션(2010)>까지 모든 작품을 읽어 본, 나에게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더불어 “유이(唯二)”한 전작주의(全作主義)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을 찾아 읽는 이유는 신화(神話), 역사, 판타지, 초능력, 스릴러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소재와 장르 소설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을 계속 읽다보니 설명문이 지나치게 많고, 이야기 전개가 늘어지는 한계 때문에 실망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어느 작품을 읽어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는, 즉 나에게는 검증된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을 챙겨 읽고 있다. 2년 만에 새로 나온 그의 신작 소설 <쾌자풍 1(해냄/2012년 8월)>을 선뜻 선택한 이유도 바로 “이우혁”이라는 이름 석 자가 주는 신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연 그는 나의 이런 신뢰를 이번에도 지켜 줄 수 있었을까?

 

중국 명(明)나라 홍치제(弘治帝) 2년(1489년), 고위 관료들이 잇달아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황실(皇室)을 지키는 최고의 정예무인들인 금의위(錦衣衛) 소속 무사인 “남궁수”와 “엽호”는 시랑 염승필의 피살 현장에 조사를 나왔다가 사건 정황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탁견을 선보여 현장 수사를 지휘하던 제독 동창(東廠) “유온”에 의해 발탁된다. 제독 동창은 그들에게 사건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명령하면서 조선에 밀사로 파견한다.

 

한편 조선 북쪽 변방 고을인 의주(義州) 위화(威化) 마을 말단 포졸(捕卒) “지종희”는 고을 이방인 형네 집에 얹혀 살면서 압록강 너머 난전(亂廛)을 드나들며 술 꽤나 퍼마시고 뒷돈을 챙기며 <수호지(水湖志)>의 양산박(梁山泊) 108 호걸들을 본 따서 맺은 의형제들이 108명을 훌쩍 넘겨 버린 한량(閑良)이다. 하는 짓은 영 무뢰배이지만 그래도 매사 반듯하고 도리를 지키는 형의 영향 - 엄밀히는 아침마다 하는 놀이인 손바닥 쳐내기에서 자신을 날려 보내는 형이 무서워서이지만 - 을 받아서인지 적당한 수준에서만 뒷돈을 챙기고 폭력을 휘둘러도 사람 목숨을 해할 정도까지는 아닌, ‘사람으로서의 선’을 지킬 줄 아는 녀석이다. <춘추(春秋)>를 공부하라는 형의 성화를 피해 난전으로 넘어온 지종희는 국경 수비대에서 노닥거리다가 갖은 고생 끝에 조선 땅에 다다른 남궁수와 엽호를 만나게 된다. 만나자 마자 활을 싸대고 화포를 들이 밀어내는 난리법석 끝에 지종희는 남궁수와 얼렁뚱당 의형제까지 맺게 되고, 그들을 난전으로 데려간다. 난전에 들어선 그들을 사람들이 에워싸더니 칼을 들고 들어왔다며 누명을 씌우고는 단체로 폭행을 가하기 시작한다. 무기를 휴대할 수 없다는 규칙에 애검(愛劍)을 지종희에게 맡기고 적수공권(赤手空拳)인 상태로 들어온 터라 둘은 변변히 무공 한 번 펼쳐 보지 못하고 속절없이 구타당하고 만다. 속사정은 바로 지종희식 의형제 길들이기였던 것이다. 조선에 입국도 하기 전에 천하에 몹쓸 놈 때문에 굴욕과 고초를 겪은 남궁수와 엽호는 고위 관료 살인범을 추적하는 조선측 동행인으로 지종희를 지목한다. 이렇게 중국 전역에 쾌자 바람(快子風)를 일으킨 지종희의 일대 모험이 시작된다.

 

책을 받아들고서는 전작들에서 선(善)과 악(惡)의 대결, 종말론(終末論), 우리 민족과 외세와의 대립 등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들을 다뤄왔던 이우혁이 이번에는 우리나라 전통 웃음 코드인 “해학(諧謔)”을 들고 나왔다니 조금은 엉뚱하다는 생각이 앞섰었다. 그런데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이우혁 작가에게 원래 이런 면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해학을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여 내어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을 정도로 참 재미있었다. 특히 천하의 몹쓸 놈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 지종희의 엽기 행각들이나 명문 무림세가인 남궁세가(南宮世家)의 종복(從僕)으로 남궁수와 엽호를 수행하는 “아칠”의 행동들은 작가가 코미디적 요소를 아예 작심하고 연출했다는 것을 여실히 느껴볼 수 있었다. 또한 설명문도 간략해졌고, 이야기도 비교적 빠르게 전개되어 앞서 언급한 그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것으로 느껴졌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영웅문(英雄門)>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대만의 무협 작가 “김용(金庸)”의 <녹정기(鹿鼎記)>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무협소설의 신(神)이라 불리는 김용과 어떻게 비교가 되냐고 김용의 열성 팬들은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지만, 김용 작가가 충의(忠義)를 강조하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천하제일 사기꾼이라는 전례없는 주인공을 등장시킨 <녹정기>로 작품 세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은 이우혁 작가가 이 소설로 그동안의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가볍고 유쾌한 주제로 전환했다는 점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였는지 어쩌면 이 작품이 이우혁의 작가생활에서 어떤 분기점(分岐點)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시리즈 첫 권이니 너무 성급한 판단이겠지만 그래도 유쾌함과 즐거움을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우혁 작품은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라는 나의 기대를 다시금 충족시켜준 참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쾌자풍 시리즈, 첫 권부터 이렇게 즐겁고 유쾌하게 출발했으니 이어질 작품들에서는 또 어 떤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사건들로 나를 즐겁게 해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래서 이우혁 작가는 앞으로도 계속 나에게 전작주의 작가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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