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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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을 대표하는 두 장르인 “공포(恐怖) 소설”과 “추리(推理) 소설”은 분위기면에서 “무섭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지만, 무서움(恐怖)을 야기하는 주체가 주로 귀신, 악마 등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존재들인 공포소설과 달리 추리소설은 주로 “인간(人間)”이라는 면에서 서로 다르다. 추리소설이 무섭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주변에 추리소설이 무서워서 읽기가 두렵다고 말하는 분들이 몇 몇 분들이 있는 것을 보면 "추리소설은 무섭다"라는 명제가 결코 그릇된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 구분이 정확히 맞는 것은 아니어서 몇 몇 공포 소설들은 인간이 저지르는 흉악하고 끔찍한 범죄를 주제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저런 식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추리소설은 작법(作法) 원칙상 비과학적인 초능력이나 마법,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금기(禁忌)로 하고 있으니 두 장르의 접점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실재(實在)”가 아니라 우연이나 또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트릭에서 비롯된 오해(誤解)때문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분위기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한 공포로 전개되지만 결말에 이르러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는, 즉 과학적인 해석이 가능한 추리소설로써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공포와 추리가 결합된 “호러 미스터리” 소설을 여럿 만나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 시리즈와 제목이 “~것”으로 끝나서 <것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 전 권은 아니지만 시리즈별로 한 권 씩 - <속 항설백물어>, <산마처럼 비웃는 것> - 을 읽어봤는데,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 분위기와 절묘한 트릭과 반전이라는, 공포와 추리 두 장르적 재미를 한껏 보여주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멋진 작품들이었다. 이번에 만난 작품은 <도조 겐야> 시리즈의 서막을 연 첫 번째 작품인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원제 厭魅の如き憑くもの / 비채 / 2012년 9월)>이다. 책을 받아들고서 첫 느낌은 검고 붉은 색감과 그림으로 공포스러움을 부각시켰던 기존 작품들의 표지 - 그만큼 거북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 와는 다르게 하얀색 바탕에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인형처럼 예쁜 소녀가 그려져 있는 표지 때문이지 단순(simple)하다는 느낌이었다. 대신 공포감이 좀 덜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읽고 나니 전편 못지않은 공포와 기막힌 반전으로 이 시리즈가 왜 성공했는지를 절로 알게 해 주는 멋진 작품이었다.

 

궁벽한 산골마을인 “가가구시” 촌은 그 지리적 궁벽함에 걸맞게 일본 전통의 민속 신앙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마을이다. 마귀 계통인 흑의 기운을 상징하는 “가가치”가(윗집)과 전통 신도 신앙을 숭앙하는 백의 기운을 상징하는 “가미구시”가(큰신집)이 대립하고 있는 이 마을에는 선신(善神)인 산신(山神)과 악신(惡神)인 “염매(厭魅)”- 책 뒷표지에 ⓛ가위누르는 귀신 ②짚으로 만든 인형(제웅)을 매개로 삼는 주술의 일종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병에 걸리게 하려고 귀신에게 빌거나 방술을 쓰는 행위“라고 씌여 있다 -, 두 가지를 상징하는 “허수아비”들이 마을 곳곳에 세워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거나 귀신들림을 치료하기 위해 가가치 집안의 무녀(巫女)인 “사기리”를 찾아가곤 한다. 어느날 적대 관계라 할 수 있는 가미구리 가의 젊은 마님인 “가미구시 지즈코”가 딸 “지요”기 빙의(憑依)“ 되었다며 무녀를 찾아온다. 일흔을 넘겨 체력은 감퇴했다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은 여전한 사기리는 손녀딸이자 신을 몸에 받아들이는 손녀딸 “사기리” - 이 집안의 무녀들은 모두 “사기리”라는 이름을 쓰는데, 구별하기 위해 “리” 자 옆에 점을 찍어 표시한다. 그런데 이게 일본어 발음상으로 달라지는 표기인지 아니면 단순히 구분 목적인지는 모르겠다 - 와 함께 축귀(逐鬼) 의식을 펼치는 데 손녀딸 사기리의 입에서 “저 놈은 예사 마귀가 아니다”라는 말이 터져 나온다. 간신히 의식을 끝낸 사기리는 손녀딸에게 마귀를 봉인한 물건을 전통 의식에 따라 강물에 떠내려 보내라고 이르는데, 손녀딸 사기리는 축귀가 끝나면 늘상 해오던 일이었는데도 왠지 모를 공포를 느끼면서 치를 떨게 된다.

 

괴담(怪談) 수집가인 “도조 겐야”는 이무렵 가미구시가의 초대장을 받아 마을을 방문하게 된다. 시작부터 시골 특유의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을 톡톡히 맛본 도조는 두 가문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을 만나 취재를 시작하는데, 사람이 한 짓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괴이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평소 괴이담의 불가사의한 현상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버릇이 있는 도조는 마을의 이런 종교적 전통을 깨뜨리고 싶어 하는 가미구시가의 아들 “렌자부로”와 함께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그러나 괴기스런 살인 사건이 계속 이어지면서 마을에는 염매가 강림했다, 손녀딸 무녀 사기리의 죽은 쌍둥이 언니가 생령(生靈)으로 나타났다는 등의 소문이 퍼지면서 마을 전체가 공포에 떨게 된다. 과연 이 연쇄살인사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마을 전체를 떠도는 염매와 생령의 정체는 무엇일까? 책은 가가치가의 손녀딸 무녀 사기리의 일기와 도조 겐야의 취재 일기, 가미구시가의 청년 렌자부로의 일기, 이렇게 세 가지 시점으로 번갈아 전개되고,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이 수수께끼는 결말에 이르러서야 탐정 도조 겐야에 의해 베일을 벗고 마침내 그 속살을 드러낸다.

 

일본 현지에서 2006년 2월 이 작품이 출간된 이래로 지난 6년 여 동안 아홉 번째 시리즈 까지 이어졌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도조 겐야” 시리즈의 첫 출발점인 이 책은 그간 출간된 여느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처음 시작이 난감한 소설이다. 책 표지를 열면 별지 형식으로 가가구시 촌 지도와 함께 가가치가와 가미구시가, 두 가문의 가족관계도가 실려 있는데, 등장인물 수 만 해도 30 명이 넘고 마귀촌이라 불리는 가가구시 촌의 역사와 유래, 그리고 각 등장인물들 간의 얽히고 설킨 사연들이 워낙 방대하고 복잡해서 읽다 보면 인물 이름을 까먹어서 몇 번을 별지를 확인하고, 앞 페이지들을 들춰 보게 만든다. 특히 우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확연히 다른 일본 민속학적 전통은 쉽게 적응이 안되어 책 읽는 속도를 더디게 만든다. 그런데 이 고비(?)만 잘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페이지가 넘어간다. 기괴한 살인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돋는 공포 분위기에 절로 물들여져 가고, 빨라지는 호흡 속도에 맞춰 페이지 넘김 또한 절로 빨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은 페이지가 얼마 되지 않은데도 쉽사리 그 비밀이 드러나지 않자 절로 걱정이 들었다. 도대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의문거리를 어떻게 풀어낼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나의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머리를 후려치는 반전과 함께 도조 겐야의 명쾌한 추리 솜씨로 사건의 비밀을 단숨에 밝혀버리고, 짧은 후기를 남기고는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초반은 더디지만 갈수록 빨라지는, 그리고 결말에서는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휘몰아치는, 그래서 550 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결코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오히려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읽기였던 셈이다.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이유는 뭘까? 먼저 주인공인 도조 겐야라는 독특한 캐릭터부터 책 속 문구들을 통해 간단하게 짚어보자.

 

이 책의 탐정인 도조 겐야는 앞서 말한 대로 괴담 수집가이다. 그런데 명탐정이었던 아버지의 영향 탓인지 괴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고 해석하려고 든다.

 

괴이담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통 이야기 속의 불가사의한 현상을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멋대가리 없는 짓은 하지 않고 괴이 자체를 즐긴다. 겐야도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았지만, 가끔 괴이가 가져다 주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본인은 어디까지나 지적 호기심이라고 주장하지만) 추리를 하기도 한다. 게다가 괴이의 합리적 해석이 불가능함을 밝혀 거꾸로 괴이 자체를 긍정하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하니 하여간 성가시다.

 

괴이담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첫 번째 버릇과 이따금 괴이를 해석하고 싶어하는 두 번째 버릇, 그리고 꼭 합리적 해결을 본다는 보장은 없다는 세 번째 버릇(이를 버릇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는 결국 이 버릇들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터무니없이 기괴한 사건에 말려들어 심지어 위험에 처하곤 한다 - P.179

 

이렇듯 괴이를 해석하려는 버릇이 그를 사건에 말려들게 하고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가 가는 곳에는 늘 끔찍하고 기괴한 사건들이 예비 되어 있다. 물론 그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지만 어쩌면 그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건들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겠다. 살인을 몰고 다니는 명탐정 “누구”와 마찬가지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괴이를 무조건 해석하려고 드는 것만은 아니다. 괴이를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석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생각해보지 않고 괴이를 받아들이는 건 인간으로서 한심한 일이야. 그렇다고 인지를 뛰어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 인간으로서 오만한 거고 - P.266

 

세상의 모든 일은 흑백을 명확히 가릴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생각하기를 포기하면 안 돼.-P.273

 

즉 괴이를 일단 의심해보고 최대한 파헤쳐 볼 것, 그런데도 밝혀낼 수 없다면 - 자신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라면 - 쿨하게 인정할 것 이 바로 도조 겐야의 신조인 것이다. 꽤나 독특한 신조인 셈이다. 캐릭터의 독특함은 주인공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인원 수가 많아 초반에는 헷갈리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자리 잡혀가는 주변 캐릭터들 또한 하나하나가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이다. 즉, 이 책이 재미있는 첫 번째 이유는 독특하고 생동감있는 캐릭터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주인공의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다면 독자들은 다음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의 사건은 결국 도조 겐야가 그 비밀을 속 시원하게 밝혀낼 것이라는, 혹시 못 밝혀낸다면 도조 겐야처럼 쿨하게 인정해버리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힌트가 하나 있다. <도조 겐야> 시리즈는 앞에 “공포”라는 말이 붙기는 했지만 엄연히 “추리소설”인 만큼 반드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말로 끝맺을 것이란 것을.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 힌트를 깜빡깜빡하게 된다. 구전 동요나 전설에 맞춰 연이어 일어나는 괴이한 살인사건, 그리고 명탐정(도조 겐야)의 등장과 함께 아무리 불가능한 사건이라도 결국 해결된다는 어쩌면 지극히 뻔한 도식(圖式)을 따르고 있음에도 식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책 속 사건들의 기괴함과 공포가 그런 힌트를 깜빡깜빡 잊게 만든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작가는 공포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우선 도입부에서 지루하기까지 한 지역 전설과 유래, 인물들 간의 얼키고 설킨 관계 등 공포 분위기 조성용 소품들을 꼼꼼하게 배치한다. 이런 소품들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하나 둘 씩 서로 촘촘하게 맞물리게 되는데, 이런 결합이 서로에게 상승 작용을 일으켜 공포 효과를 더욱 고조시키고,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켜 나간다. 처음에는 그저 배경 설명이겠거니 하고 지나치기 쉬운 소품들이 결말에 이르러 부속품처럼 맞물려 전체의 그림이 완성되면서 비로소 작가가 독자에게 제시하는 일종의 단서들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결말에서 설명을 지루하게 늘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결말을 알고 나면 허망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명쾌하게 결말짓는다. 물론 독자들도 탐정처럼 단숨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힐 수 는 없지만 이번 작품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좀 시시할 수 있었겠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결말을 맺는다. 결말을 듣고 나면 절로 납득이 가는 그런 깔끔한 결말로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이 재미있는 두 번째 이유는 결말까지 읽을수록 점점 빠져들게 되는 공포 분위기와 명쾌한 결말을 꼽고 싶다.

 

감상글이 “참 재미있다”라고 한 문장만 쓰면 될 것을 글이 참 두서없이 지루하게 길어졌다. 아뭏튼 이 책, <산마처럼 비웃는 것> 감상글에서도 밝힌 것처럼 나에게는 공포소설과 추리소설의 장점만을 극대화시킨 최고급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었다. 너무 더워서 일부러 공포소설을 찾아 읽기까지 한 여름에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가을에 만나다 보니 살갗에 닿는 바람이 차갑다 못해 으스스하게까지 느껴지니 계절을 잘못 만난 셈이 되었다. 부디 다음 <도조 겐야> 시리즈는 여름에 만나보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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