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1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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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위기론이 거론될 정도로 침체되었던 인문학(人文學)이 요즈음 “대세(大勢)”로 불린다고 한다. 대학들과 주요 지자체들, 시민단체 등에서 개설하는 인문학 강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고, 취업시장에서 찬밥 신세였던 비인기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도 경영자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채용이 조금씩이지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문학 열풍을 가장 잘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출판시장인데, 인터넷 서점에서 “인문학”을 검색해보면 수십 권의 신간이 올라와 있고, 몇 몇 책들은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인문학이 인기가 있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해 묻고 답하는 학문, 곧 삶의 학문인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김덕기]인문학을 보는 사회의 이중성> 발췌, 중도일보, 2012.10.3.), 또한 기업환경이 기존 정보산업을 넘어 창조산업 중심으로 바뀌며 효율성 중심의 경영이 가지는 한계가 드러났고, 인문학이 더 요구되는 것은 그것이 융합이라는 새로운 시대 패러다임의 핵심 아이콘이기 때문(<프리즘]독서, 그리고 인문학> 발췌, 이티뉴스, 2012.10.15.)이라고 한다. 즉 인문학 열풍은 “시대의 요구”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인문학에는 어떤 학문들이 있을까? 인문학의 분야로는 언어학과 문학, 역사학, 철학, 종교학, 여성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사철(文史哲. 문학/역사/철학)로 요약되기도 한다(위키백과 발췌). 너무 방대하고 이름만 들어도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어려운 학문들 일색이다. 철학을 예로 들면 우선 지역적으로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되고, 서양 철학의 경우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알아야 될 철학자 이름들과 이론들이 수백 개는 족히 될 것이며,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용어와 이론들 천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쉬운 공부 없다고는 하지만 어디부터 공부를 시작할 지 영 난감하기만 한, 그래서 시작도 못하고 포기하기 일쑤인 학문이 바로 인문학인 것 같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근 인문학 열풍에 힘입어 인문학 입문서(入門書)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주현성 저/더좋은책/2012년 10월)>이 바로 그런 인문학 입문서이다.

 

 

저자는 서두의 “한 권의 책으로 인문의 기초 여섯 분야를 꿰뚫는다”에서 인문학 인기의 이유를 앞에서도 언급한 인문학의 창조성과 실용성, 게임, 영화 등 문화 콘텐츠 속에 담겨있는 다양한 인문학적 해석코드, 그리고 인간의 지적 욕망을 든다. 그런데 인문학은 꽤 다양한 기초 상식이 있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만만해 보이지 않은 학문이며, 그동안 많은 교양 입문서가 나왔지만 매우 산발적이거나 한 분야의 지식에만 치우쳐 있어, 인문 교양에 욕심을 내는 초심자들에게는 꽤 긴 길을 돌아가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인문서를 읽는 즉시 바로 소화할 수 있는, 그런 체계적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기획했다고 말하면서, 이 책에서 다룰 인문 교양의 주제로 “심리학”, “회화”, “신화”, “역사”, “철학”, “글로벌 이슈”, 이렇게 여섯 가지 주제를 제시한다. 저자의 기획 의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저자가 제시한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고개가 약간 갸우뚱거려졌다. 역사(歷史)와 철학(哲學)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인문학의 주요 학문이고, 신화(神話)는 역사학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으며 글로벌 이슈는 시사(時事)성 있는 주제이니 맞다 싶은데, 심리학(心理學)과 회화(繪畵)가 의외였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사회과학(社會科學)”, 회화는 “예술(藝術)”로 분류되지 않을까?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인문학의 범주(範疇)에 대해 이견(異見)이 많고, “자연과학(自然科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회과학, 예술까지 총망라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니, 심리학, 회화도 광의적인 의미에서 인문학의 분야로 봐도 맞을 것 같았다.

 

 

본문에서는 앞서 말한 여섯 가지 주제를 차례대로 다루고 있다. “1장. 인간의 영원한 화두, 마음ㆍ심리학” 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자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자 심리학의 아버지요 창시자로 생각하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 1832~1920)”를 심리학의 아버지로 인정한다고 한다 - 에서부터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뇌과학(腦科學, brain science)”과 “경제 심리학(經濟心理學,psychology of economic behavior)”을 소개하고. “2장. 눈으로 확인하는 지식의 지형ㆍ회화”에서는 인상파(印象派, Impressionism) 양식의 창시자인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에서부터 현대 미술계의 중심인 “뉴욕파(New York School)”의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 1987)”까지 소개한다. 이처럼 주로 근·현대의 심리학자들과 미술가들을 소개한 1,2장과는 달리 “3장. 은유로 가득한 또 하나의 인간 역사ㆍ신화”에서는 신화(神話)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리스 신화”와 “4장. 세계를 이해하는 기초 지도ㆍ역사”에서는 서양 세계사(世界史) 전체, 즉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의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를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철학은 인문학의 대표 학문답게 가장 많은 장을 할애했는데 현대 이전과 현대로 나누어 “5장. 역사를 움직여온 지식 동력ㆍ현대 이전의 철학”, “6장. 현재와 미래를 재구성하는 대화의 장ㆍ현대의 철학”에서 소개한다. 마지막 장인 “7장. 앞선 교양인의 궁극적 관심사ㆍ글로벌 이슈”에서는 이슈의 중심이 되고 있는 “세계화”에 포커스를 맞춰 유효수요 확대를 주장했던 경제학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와 반대 개념인 “통화주의”를 주장하고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만든 경제학자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 ~ 2006)”의 이론을 소개하고, 세계 분쟁의 주무대인 중동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의 세계의 화약고들를 이야기한다. 책에는 이런 설명글들과 함께 페이지 곳곳에 삽화와 도표들을 배치하여 시각적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문은 현대 철학을 다룬 “6장. 현재와 미래를 재구성하는 대화의 장ㆍ현대의 철학”이었다. 현대 이전 철학은 학창시절 세계사(世界史) 수업과 철학 입문서로 가장 유명한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 그리고 몇 몇 철학 관련 교양서들을 통해 나름 지식이 있었는데, 현대 철학은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현대 철학에 대해 공부해 볼 요량으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좌파들의 반항> 등을 읽었었는데, 너무 어려운 책들을 골랐는지 읽다가 포기했던 아픈 경험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Karl Marx, 1815~1883)”부터 명칭만큼은 숱하게 들어봤지만 그 뜻을 모르고 있었던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tialism), “구조주의(構造主義, Structuralism)”, “기호학(記號學, Semiotics),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까지 현대 철학자들과 철학 사조들을 일목요연하게 관통해볼 수 있었다는 점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개괄적인 소개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현대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학자들과 이론들을 공부해야하는지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철학 부문은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신화”와 “역사” 부문은 아쉬움이 남는다. 책에서는 그리스신화와 서양 세계사를 연대기 순으로 요약하는 수준에 그치는 데, 철학처럼 학문으로서 “신화학(神話學, Mythology)"과 ”역사학(歷史學, Historiography)“의 방법론이나 학자들을 소개했으면 어땠을까? 신화학도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자연신화학, 인류학적 비교신화학, 구조주의적(構造主義的) 신화분석 등 다양한 학파와 이론이 있으며, “프레이저( James George Frazer, 1854~1941)”,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 등 이론가로써 또는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학자들이 많이 있다고 하며, 철학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학문이라고 하는 역사학은 더욱 더 다양하고 많은 이론들과 학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인문학 입문서로서 후속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면 다른 학문들에 비해 학문적인 지식과 정보가 생소한 신화학과 역사학을 다뤄주길 바래본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인문학 공부를 어려워하는 초보자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쉽고 친절한 기초 입문서이자 일반 상식(常識)으로 읽어도 충분히 좋을 책이었다. 관심 있는 학문은 이 책으로 전반적인 가닥을 잡은 후에 강론(講論)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철학부문을 공부할 때는 꽤나 유용할 것 같다. 그나저나 서두에서 인용한 <[김덕기]인문학을 보는 사회의 이중성>, 중도일보, 2012.10.3.) 기사를 더 읽어 보면 인문학이 열풍이라고는 하지만 인문학의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한다. 대학이 취업준비를 위한 기관으로 전락하면서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은 비인기 학문 - 이글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취업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숫자가 매우 미미하여 피부로 체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 으로 전락했고, 인문학자들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즉 대학 안에선 사라져가는 인문학이 바깥에선 열풍인 상호 모순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다는 인문학 열풍도 우리나라에서는 한 때 유행에 그칠지도 모르겠다. 학문 연구가 기본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문학도 그 중요성은 갈수록 커져 가지만 연구 시설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아직까지 노벨상 하나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기초과학(基礎科學)”과 같은 운명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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