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의 여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1941).

사실 난 그녀의 작품이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나에게 그저 “박인환”의 시(詩) <목마와 숙녀>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이름 정도로만,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녀의 대표 소설인 <세월(The Years/1937년)>도 소설이 아닌 “시(詩)”로 알고 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해 “철저히” 무지(無知) 했었다. 그런 그녀를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원제 The Hours / 비채 / 2012년 8월)이라는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묘하게도 그녀의 대표 소설과 같은 제목으로 말이다. 책을 읽기 전 그녀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문학적으로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와 함께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 기법의 개척자로 평가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적 의붓오빠들의 성적 학대가 그녀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성(性)과 남성, 심지어 자신의 몸에 대해서까지 병적인 수치심과 혐오감을 지니게 만들었고, 결국 1941년 강물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작품보다 그 생애 때문에, 특히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로 인해 더욱 유명해져서, 그로 인해 생겨난 일종의 전설, 또는 편견은 아직까지도 그녀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한다(네이버 캐스트, “버지니아 울프” 발췌. 2009.3.28.). 과연 이렇게 간단치 않은 삶을 산 그녀를 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그려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프롤로그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던 1941년 그녀는 남편 “레너드”와 언니 “바네사”에게 짤막한 편지 한 통 씩을 남기고 집 인근의 강으로 가 입고 있던 밍크 코트 주머니에 돌을 집어 넣고 강 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그녀가 흘러 내려간 강 다리 위에는 출정하는 군인들의 행렬과 그들을 지켜보는 소년과 엄마가 있었다.

 

본문으로 들어서면 1923년의 “울프 부인(버지니아 울프)”와 1949년 “브라운 부인(로라 브라운)”, 1999년 “댈러웨이 부인(클래리사 보건)”, 이렇게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세 여인의 어느 특별한 “하루”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펼쳐진다. 이 세 여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로라 브라운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애독하며, 클래리사는 연인인 “리처드”에게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을 쓰다가 자신의 언니인 “바네사”와 조카들의 방문을 받고 밤에는 불현듯 런던행 기차를 타기 위해 역(驛)으로 나오지만 남편에 의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손에는 쓰지 못한 기차표를 쥐고 말이다. 로라 브라운은 남편의 생일을 위해 어린 아들과 케잌을 만들지만 자신의 일상에 돌연 짜증이 나서 아이를 이웃집에 맡겨두고는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도로변 모텔에 들어가 <댈러웨이 부인>을 읽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온다. 클래리사는 옛 연인이자 지금은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막상 파티의 주인공인 리처드는 영 불안정하고 위태위태하기만 하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세 여인은 묘하게도 서로 오버랩이 되고 그녀들의 심리는 마치 흔들리는 거울에 맺힌 상(像)이 두 개, 세 개 겹쳐 보이는 것처럼 불안하게 흘러가기만 한다.

 

유려한 문체, 세 여인의 심리에 대한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 등 “모던&클래식” 이라는 시리즈 명칭에 걸맞게 현대판 고전 소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문학적 수준이 높은 작품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활자(텍스트)는 눈에 들어와 페이지는 계속 넘어가는데 이야기(서사)의 맥락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여인의 하루를 그렸다는 것은 알겠는데, 각자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주변 인물들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고, 특히 세 여인의 심리 변화들에 공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활자와 이야기가 서로 겉도는 느낌이 들어 몰입이 되지 않았고, 결국 기계적인 페이지 넘김만 이어지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야 말았다. 다시금 이해해보려고 앞 장의 “작품 소개”와 맨 뒷장의 “작품 해설”을 몇 번 씩 읽어봐도 머릿 속에 이미지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로라 브라운의 어린 아들 리처드가 클래리사의 연인 리처드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도 “작품해설”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으니 책을 참 건성으로 읽은 것이다. 그래서 책을 다시한번 찬찬히 읽어볼까 하다가 차라리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이 작품을 만나보면 더 이해하기가 쉽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작품 소개”에도 나와 있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스티븐 달드리”가 감독하고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가 주연한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 2003)>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작품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책과 영화를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영화는 책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담아냈다. 영화도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으로 시작하고, 서로 다른 시간대의 세 여인의 하루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는 것이나 각자에게 일어나는 일들까지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런데 책에서는 세 여인의 이야기를 페이지를 별도로 분할해서 교차로 보여준다면, 영화에서는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으로 보여준다. 즉 아침에 세 여인이 침대에 일어나는 장면을 연속 장면으로 보여주고, 버지니아 울프가 델러웨이 부인이 꽃을 사러간다고 첫 문장을 읊는 장면에서 바로 현실의 클래리사가 꽃을 사러가겠다고 독백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이처럼 세 여인의 이야기가 마치 동시대에 일어나듯이 서로 얽히고 설켜 진행 - 도입부에 시대와 장소를 자막으로 안내하지만 이후로는 등장인물의 옷차림으로나 알 수 있을 뿐 시대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 - 된다. 이런 영화의 구성을 보면서 그제서야 세 여인의 이야기가 시간대만 다를 뿐 어쩌면 서로 같을 수 도 있다는, 즉 각자의 하루 일상에 서로가 오버랩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영화에서는 책보다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가 좀 더 부각된다. 책에서는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 했지만 남편 때문에 가지 못한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과 집으로 돌아와 식탁에서 런던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하지만 영화에서는 기차 역사 내에서 남편과 거친 언쟁을 벌이고, 책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리처드와 클라래사의 불안정한 관계도 영화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책보다 이야기와 갈등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영화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이 책과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이 잡혔다.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세 여인이 느끼는 삶에 대한 무게와 고통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표면적으로는 행복해보이지만 그 행복이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져 버리는 유리잔처럼 불안하고 위태위태하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도 그저 나름의 피상적인 감상일 뿐 이 책은 성별(性別)에 따라, 자신이 처한 환경과 겪어온 삶에 따라 달리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다른 독자들의 감상이 어떤지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책과 영화가 될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이게 책 감상인지 영화감상인지 종잡을 수 가 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아뭏튼 푹 빠져 들 정도로 재미있지도 않고, 공감도 쉽게 되지 않았지만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아 자꾸만 책을 들춰 보게 되고 영화까지 보게 만든 묘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 책과 영화를 한번씩 더 볼 참이다. 그런 후에야 좀 더 명확하게 이미지가 그려지고 책에 대해서 올곧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보게 될 분들은 꼭 영화도 함께 보시기를 당부드린다. 책으로 영화를, 영화로 책을 서로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사족 하나, 영화에서 분명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니콜 키드먼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등장해서 못 본 것인가 싶었는데,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로 제 7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2003)을 수상했다고 하니 주연인 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배역으로 나오는 것일까? 인터넷 검색하면 바로 나오겠지만 여기서는 밝히지 않겠다. 직접 영화에서 찾아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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