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 - 단 하나의 사건이 역사를 바꿨다
김종성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역사에 가정(만약)이란 없다”

 

 

워낙 유명한 말이니 뜻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도대체 이 말을 누가 했을까 궁금해서 한 시간 여 동안 인터넷 검색해보니 결과는 누가 한지 “모른다”였다. 인터넷에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 <역사란 무엇인가>의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는 명언을 남긴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 ~ 1975)” 등 근현대 유명 역사학자들이 이 말을 했다고 하고 있지만 그 출처를 명확하게 언급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저 말도 출처가 불명확해 “누가 말 했다더라” 라고만 알려져 있는 유명인들의 명언(名言)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뜬금없이 저 말의 출처가 궁금했던 이유는 이번에 읽은 <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 단 하나의 사건이 역사를 바꿨다(김종성 저/지식의 숲/ 2012년 8월)가 바로 이런 역사의 금기(禁忌)인 역사의 가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벌어진 30 가지 사건을 소개하면서 그 당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상상해보는 이 책,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세상의 이치(?)라고 꽤나 즐겁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작가는 들어가는 글 <지나간 역사도 움직일 수 있다>에서 서두에서 말한 “역사란 가정이 없다”라는 의미는 역사에서의 가정이 지난 역사가 되돌려지는 것은 아니므로 무의미할 수 도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가정을 하지 않으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으며 이모저모로 가정해 봐야만 역사에 대한 지식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닥칠 유사한 상황에 대한 대응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점은 개인의 역사에도 적용되는데, 자신의 과거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보다는 이제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끔 되돌아보고, 거기에 지난날을 분석하고 이것저것 가정해 보는 사람이 인생을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공동체의 지나간 역사를 꼼꼼히 따져 보고 이것저것 상상해본다면, 역사에 대한 우리의 통찰력은 한층 더 심오해지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은 한층 더 명확해질 것이고, 작가가 본문에서 제시하는 서른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를 추리해보면, 인간의 뇌파에 담긴 정보를 직관적으로 파악해서 과거를 읽어낸다는 무속인 이상의 정보를 갖게 되어 우리 민족의 미래를 읽는 능력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역사에 대한 가정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과거를 올곧이 이해하고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요약해볼 수 있겠다.

 

 

본문에 들어서면 작가는 조선시대 30가지 사건을 조선을 바꾼 반전의 “순간”, “죽음”, “여인”, “남자”, “세계사” 이렇게 다섯 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은데 다 소개할 수 는 없고 가장 궁금했던 "요동정벌"에 대해서만 담아본다.

 

 

우선 첫 번째 글이자 조선 건국의 출발점인 위화도 회군(1388년)에 대해 소개해 보자. 이성계(李成桂)의 “4대 불가론”으로도 유명한 이 위화도 회군 사건은 아직까지도 논쟁꺼리로 남아있는 유명한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위화도 회군 사건을 처음부터 요동정벌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경우와 요동정벌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경우 이렇게 두 가지 경우의 수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먼저 요동정벌 명령이 없었다면 고려 왕조는 훨씬 더 장수할 수 있었을까? 작가는 한민족 왕조의 평균 수명이 중국 왕조들보다 상당히 긴 점(고구려·백제 900년, 신라 천년, 가야 520년, 조선 500년), 고려가 요(遼),금(金),원(元) 등 강력한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외교력과 군사력으로 충분히 극복했을 정도로 체력이 튼튼했던 점, 그리고 고려 말기 신돈과 같은 개혁 사상가와 신진 사대부의 등장 등 왕조를 지탱할 만한 새로운 지배층의 등장으로 위기 극복한 필요한 능력을 보유했던 점 등 당시의 세 가지 상황을 설명한다. 이를 토대로 작가는 위화도 회군 같은 돌발 변수 없이 고려 왕조가 원(元)·명(明) 교체기를 극복했다면 고려 왕조는 훨씬 더 오랫동안, 적어도 17세기 명(明)·청(靑) 교체기까지는 유지했을 것이며, 임진왜란은 고려군과 일본군의 대결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반대로 이성계가 요동정벌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경우에는 요동에서 패했거나 승리, 두 가지 중 하나였을 텐데 패했다면 이성계의 몰락으로 이어져 상대적으로 최영 정권의 공고화를 가져왔겠지만 승리했다면 신진사대부의 지지를 받는 이성계의 위상이 더 높아져 양 측의 무력 대결은 이성계의 승리로 귀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고, 결국 위화도 회군보다 고려는 훨씬 더 빨리 멸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성계가 회군(回軍)하지 않고 요동을 정벌했다면 만주 벌판이 우리 땅이었을 텐데 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는데, 비슷한 시기, 정확히는 10년 후인 1398년, 정도전(鄭道傳)이 추진했던 “요동정벌”은 가능했던 일이었을까? 작가는 조선 3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李芳遠)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1398년)에서 정도전이 승리해서 이방원을 죽였다는 가정에서 이야기를 출발한다. 당시 동아시아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원의 잔존 세력인 "북원(北元)"이 외몽골 지역에 여전히 위협적인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만주 동부 지역은 여진족 군소집단들이 지배하고 있어서 명의 지배력이 미친 만주 서부는 상당히 위험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당시에는 수도가 남경(南京)에 위치하고 있어서(북경(北京) 천도는 1421년) 주력부대가 수도 근처인 남쪽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명은 요동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을 뿐 더러 당시에는 북경의 연왕(燕王) "주체"(훗날 제3대 영락제)와 황태손인 주윤문(훗날의 해제)가 대립하는 관계여서 중앙군이 연왕의 관할지를 지나 요동에 파병하기란 불가능했고, 연왕 또한 황태손과 대치하면서 자기 세력을 약화시키는 싸움일지도 모르는 요동 전쟁에 군사를 동원하기가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런 정세를 종합해볼 때 조선이 요동을 공략한다 해도 명나라가 최선을 다하기는 힘들었고, 그래서 정도전의 요동 정벌은 승리(!)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정도전이 이방원을 꺾고 압록강을 넘었다면 발해 멸망 이후 상실한 고토 만주를 되찾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당시의 요동정벌의 승리 가능성만 언급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그 후로 요동을 우리 땅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까? 답은 역시 작가의 글 속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북원은 15세기 초 사실상 멸망하고 만주의 여진족들 또한 세력이 흩어져 버리고 말며, 연왕 주체는 내전 끝에 1402년 세 번 째 황제(영락제) 자리에 올라 북경으로 천도해서 명의 전성기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조선군이 요동을 점령했더라도 불과 십 수 해 만에 명과 부딪혀야 했을 테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철수해야 하지 않았을까? 다만 명과 조선의 관계는 사대(事大) 관계가 아니라 좀 더 불편한 관계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30가지 사건들 중 조선 건국 초반의 “요동 정벌”에 대한 가정만 소개했는데, 책에는 이외에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가정들이 많이 담겨 있다.

 

 

작가는 나가는 글 <앞으로는 어떤 반전이 일어날까?>에서 이렇게 서른 가지의 소재를 놓고 조선시대 역사를 이리저리 재구성해 본 이유는 각종 변수에 따라 조선역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 이런 작업이 꼭 조선 역사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 전체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역사가 어떤 변수에 의해 어떻게 발달하는가를 이해함으로써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전체 시기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며, 이를 통해 미래의 역사 발전에 대한 예측력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라고 말한다. 보다 더 많은 한국인이 역사 속에서 지혜를 얻고 그런 지혜를 바탕으로 보다 더 밝은 한국의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보며, 각계각층이 미래에 대한 예측력을 높인다면 그것 역시 국제 경쟁력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글을 끝맺는다.

 

 

몇 몇 가정에는 살짝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이 책의 작가 “김종성”님은 <오마이뉴스>의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코너와 전작인 <한국사 인물통찰(2010)>을 통해 역사 이야기를 결코 가볍지 않으면서도 맛깔나고 재미있게 풀어 써서  좋아했던 작가였는데 이렇게 책으로 다시 만나니 반가움마저 들었다. 어차피 이 책이 역사적 새 학설을 주장하는 논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역사 에세이라고 할 수 있으니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이 그저 재미있게 읽거나 또는 작가와 다른 생각이라면 눈살 한번 찌푸려주거나 아니면 책을 집어 던지는 정도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누구나 다 한번은 궁금해 했을 역사에서의 “만약”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것 만큼은 나름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왕 이렇게 역사의 가정을 시도해 본 이상 이 책에서 언급한 30가지 이상으로 궁금해 하는 역사적 사건을 다뤄보면 어떨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조선이 일본보다 먼저 개항(開港)을 했다면” 과 같은 궁금증 말이다. 내용들이 “가상역사소설(또는 대체역사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역사 전문가가 가정해본다면 더 개연성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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