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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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2011년 9월) 쯤 놀라운 추리소설 한 권을 만났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을 “존 버든”의 데뷔작인 <658, 우연히>가 바로 그 작품이었다. 숫자 맞추기 트릭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치밀하고 정교한 트릭과 플롯,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이라는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를 올곧이 한 책에서 모두 맛볼 수 있었던, 트릭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놀이라도 하고 싶었던 그런 소설이었다.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후속 작품인 <눈을 뜨지마>가 언제쯤 출간될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가 어느새 조바심마저 나기 시작한 무렵인 꼭 1년 만에 드디어 기다리던 후속 작품이 출간되었다. 바로 <악녀를 위한 밤(원제 Shut Your Eyes Tight / 비채 / 2012년 8월)>이 그 작품이다. 그런데 제목이 이상하다. 영어 원제목(原題目)은 분명 “눈을 뜨지마” - 정확히는 “눈을 감아줘”가 맞을 것 같다 - 인데 한국어 제목은 표지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신(裸身)의 여인 그림에 맞춰 다른 제목으로 바뀌어 버렸다. 뭐 어떠랴. 제목의 의미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새겨 보면 될 테고 기다리던 “데이브 거니” 시리즈 - 책의 주인공의 이름을 시리즈 명칭으로 땄다 - 이니 말이다. 이런 기다림 때문이었는지 전작보다 한층 두꺼워진 분량 - 전작이 588 페이지, 이번 작품이 무려 643 페이지이다 - 에 부담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책에 고개를 푹 박고 정신없이 책읽기를 시작하였다.

 

“맬러리 살인사건” - 전작인 <658,우연히>의 바로 그 사건이다 - 이 일어난 지 1년 남짓 지난 지금 “데이브 거니”에게 동료 형사였던 “잭 하드윅”이 또 다른 살인 사건 한 건을 의뢰해온다. 바로 넉 달 전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 사건으로 응석받이 부잣집 아가씨 “질리언 패리”가 유명한 정신과의사인 “스콧 애슈턴” 박사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된 끔찍한 사건이었다. 범인은 정신과의사의 정원사였던 멕시코 청년 “헥터 플로레스”로 추정되는데, 이 정원사는 자신의 오두막에 그 시체와 잘린 목을 버려두고는 오두막에서 140 미터 떨어진 숲 속에 그녀의 피가 묻은 칼 하나를 떨어뜨린 후 평소 불륜관계로 알려진 이웃집 유부녀와 함께 깜쪽 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엽기적인 살인 사건의 수사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신부의 어머니인 “밸 페리”가 하드윅을 통해서 사건 수사를 지금은 은퇴했지만 뉴욕 경찰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형사였던 거니에게 의뢰해온 것이다. 1년 전 자신 뿐만 아니라 아내 “매들린”까지 위험에 빠뜨릴 뻔했던 사건 때문에 망설였지만 2주 동안만을 조건으로 의뢰를 수락한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드러난다. 범인은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사라졌을까? 젊은 신부와 범인은 어떤 관계였을까? 자른 목을 몸을 향하게 테이블 위에 놓아둔 의미는 무엇일까? 터무니없기만 한 살인 사건이지만 거니는 스콧 애슈터가 운영하는 성(性)이상자 전문 치료 학교이자 한 때 질리언도 입원했었던 학교의 졸업생들 중 실종된 여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지지부진하던 수사는 활기를 띠게 된다. 그러던 중 거니가 자신의 작품을 고가(高價)에 사겠다는 미술품 수집상을 만난 자리에서 약물에 의해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고, 질리언의 시체처럼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 놓여 있는 인형이 자신의 침실에서 발견되면서 1년 전 사건처럼 거니와 매들린은 신변에 큰 위험을 느끼게 된다. 아내를 피신시키고 다시 사건 수사에 뛰어든 거니는 하드윅과 함께 사건의 발단이 된 곳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모든 사건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이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 소개는 생략한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데이브 거니”,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전편보다 스케일과 기괴함 면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사건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편처럼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끄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결혼식 날 목이 잘린 신부의 시체에, 신부의 피가 묻은 칼 한 자루 남겨 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결혼식 촬영을 위한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수백 명의 하객(賀客)들이 운집해 있는 곳에서 벌어진 이 살인사건은 전작 못지 않게 난해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살인이다. 이때부터 탐정 거니와 범인, 엄밀히는 작가와 독자와의 두뇌 싸움이 시작된다. 추리소설 마니아 답게 책을 잠시 덮어두고는 이 사건이 어떤 얼개로 전개될까 추리해보는 데, 역시나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책 페이지가 거듭되면서 거니의 추리를 토대로 몇 번을 시도해보지만 역시나이다.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까지 60 여 페이지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범인의 정체나 수법이 밝혀지지 않는다. 과연 어떤 식으로 결말을 내려나 싶어 불안감마저 들기 시작할 때 드디어 뇌리를 망치로 쿵 때리는 것처럼 강력한 반전과 함께 결말로 이야기를 휘몰아 가는데 그 속도가 눈과 머리가 미처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그 세기(강도) 또한 엄청나다. 결국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이야기는 끝이 나버리고, 다 읽었는데도 영 어리둥절하기만 해서 100 여 페이지 전으로 다시 책을 넘겨 찬찬히 뜯어보고 나서야 모든 결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 책의 트릭과 플롯도 전편 못지않게 치밀하고 정교하며, 어떤 면에서는 그 세기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반칙은 아닌 것이 결국 범인은 등장인물 중의 한 명이라는 법칙을 따르고 있고, 트릭 또한 시간(알리바이)을 역전시키는 고전적인 기법을 따르고 있는데, 다 읽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는, 결국 작가와의 두뇌 싸움에서 보기 좋게 져 버린, 기분 좋은 패배를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트릭을 밝힐 수 는 없지만 저번 작품에서도 제목에 힌트가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원제인 “눈을 감아줘”라는 말에 힌트가 있다. 책 뒤 표지에도 적혀 있는 것처럼 드러난 물증에 눈을 감고 증언에 귀를 닫아야만 비로소 진실이 보이는 반어법적인 제목에 말이다. 트릭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정교한 지는 직접 느껴들 보시기를^^

 

이번 작품에도 주인공 “데이브 거니”는 친구인 하드윅이 “셜록”이라고 놀릴 정도로 천재적인 두뇌 솜씨를 발휘하지만, 저번 작품보다는 한층 더 한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작품에서 남편이 놓치고 있는 단서들을 콕콕 짚어 내어 남편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어 앞으로 “부부 탐정”으로의 활약까지 기대하게 만든 아내 “매들린”은 이번 작품에서는 전혀 수사에 참여를 하지 않고 거니를 꽤나 힘들게까지 한다. 남편의 은퇴 후 한적한 전원주택에서 평온한 안식을 꿈꾸던 그녀의 바램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뻔 한 지난 번 사건의 충격 때문에 이번에도 끔찍한 살인 사건을 맡아버린 남편에게 크게 실망을 하고 사사건건 불편한 시선과 멘트들을 건네더니만 결국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욕설까지 퍼붓고야 만다. 읽으면서는 일견 남편을 이해해주지 않고 심적으로 힘들게 하는 매들린이 야속(?)하게까지 느껴졌었는데, 다 읽고 나니 그녀의 걱정과 우려가 결코 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범인이 건넨 약물을 탄 와인을 마시고 한나절 동안 기절해 있어 연락불통이 된다면, 범인이 부부의 침실까지 들어와 끔찍한 협박용 인형을 남겨 둔다면, 남편이 범인에게서 총을 세 방이나 맞고 2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할 일련의 상황들을 직접 겪는다면 도대체 어느 아내가 좋아할 수 있을까? 결말에서 “나 하마터면 당신을 잃을 뻔 했어” 라고 말하여 그녀의 얼굴에 스친 절박한 무언가, 거니가 이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어떤 것이 이 사건 내내 아내 매들린이 느꼈던 심정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부부탐정”은 커녕 가정이 깨지지 않은 것을 다행히 여겨야 할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도 현역 형사들과 검사의 시기와 질시는 전편보다 더 심해졌지만 거니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아내 매들린의 이런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다만 전 편에서는 자식을 잃었던 아픔도 거니에게는 크나 큰 “트라우마” 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렇게 자주 언급되지는 않는다. 하긴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도저히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건을 해결하고, 아내와 현역 형사들과의 갈등을 견뎌내는 데도 거니에게는 무척 벅찼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편보다 주인공 데이브 거니에게는 더 힘들고 어려웠던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대체적으로 빠른 속도로 읽히는데, 워낙 분량이 많다 보니 잠깐 잠깐 지루한 대목들이 없지 않으며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다 보니 인물 이름이 헷갈려서 몇 번을 앞 페이지를 들춰보곤 했다. 간단한 등장인물 목록이 한 장 정도로 서두에 실려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든다. 또한 트릭과 사건의 결말에서도 너무 종반에 휘몰아치듯 일괄 해결하는 바람에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아 끝 부분을 다시금 읽게 만든 점 등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이런 아쉬움도 재미로 모두 용서가 되지만 말이다^^

 

 이것저것 늘어놓다 보니 역시 감상글이 주저리주저리 길어지고 말았다. 아뭏튼 결론은 전편인 <658, 우연히> 못지않게 스릴과 재미 만점의 소설이라는 것이다. 좀 더 비교하자면 트릭은 전편이 좀 더 기발했고, 사건과 반전의 충격과 세기는 이 책이 좀 더 세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정도 재미와 스릴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올해 들어 읽은 추리소설 - 스릴러, 액션 등 유사 장르 모두 포함하여 -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뭐 그렇다고 연말에 시상식을 할 건 아니지만 말이다^^ 데뷔작과 속편을 연이어 빅 히트 시킨 작가 “존 버든”의 후속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 작가 소개글을 찾아보니 이런 이 작가, 나이가 칠순(1942년)이다. 요즘이야 “백세장수(百歲長壽)” 시대라지만 이건 후속 작품보다 작가의 건강을 바라는 게 우선일 것 같다. “기도합니다. 위대한 작가 존 버든이 부디 장수하시기를” 라는 스페인 독자처럼 말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가 한 스무 편 정도까지는 계속될 수 있도록 작가가 건강하길 바란다면 너무 욕심일까?^^ 아뭏튼 1년 후 쯤에나 다시 만나게 될 데이브 거니 시리즈 3권은 즐거우면서도 꽤나 고통스러울 기다림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벌써부터 드는 것 만큼은 어쩔 수 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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