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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ㅣ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자유로 귀신, 심야버스 괴담, 옥수역 귀신, 홍콩할매 등등 요즈음 들어 도시 괴담(怪談)들이 점점 다양해지고 그 수(數)도 더욱 많아지고 있지만 수많은 괴담 중의 대표 주자는 뭐니뭐니해도 “학교괴담(學校怪談)” 일 것이다. 학교괴담 속 학교에서는 자정(子正)만 넘기면 음악실의 피아노가 저절로 울리고, 복도에는 과학실 해골 모형과 유관순 누나 동상(銅像)이 걸어 다니며, 바람 한 점 없는 데도 교실에는 커튼이 태풍을 만난 듯 펄럭이고, 복도와 교실 뒷 편에 걸려 있는 그림 속 얼굴의 눈들은 붉게 타오른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공동묘지가 그렇게 많았었는지 모든 학교는 공동묘지 터 위에 지어졌고, 졸업 앨범에는 수 십 년 째 같은 얼굴의 학생이 찍혀 있는데, 이를 알아보는 학생 또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갇혀서 수업을 받게 된다. 이처럼 한두 가지 씩은 꼭 들어봤을 학교괴담의 기원은 어디일까? 그 기원은 각종 요괴 이야기가 발달했던 일본의 문화가 일제강점기 때 정비된 근대학교 제도와 접목되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고, 일본의 귀신 이야기 대부분이 물건에서 요괴가 탄생하는 것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 점도 그 근거라고 한다. 또한 한 때 유행했던 “분신사바” 괴담도 일본에서 비롯된 것이고, 마을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무덤가를 형성하였던 우리 조상들의 전통으로 볼 때 무덤가 위에 학교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고 우리 이야기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학교괴담, 넌 어디서 왔니?”, 2012/7/12, 한국콘텐츠진흥원 발췌) 최근에는 우리 전통 문화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니 이제 우리 문화화(文化化)되고 있는 듯 한데 아뭏튼 학교괴담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뭘까? 위에서 열거한 학교괴담 한두 가지 씩은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학창시절의 추억(追憶) 때문은 아닐까?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기쁨과 슬픔, 우정과 질투, 자유와 속박, 성공과 좌절, 상처와 치유 등 서로 상반된 감정들을 같이 맛보고 나누며 학창 시절을 함께 지냈다는 동질감 때문에 학교괴담에 더 많은 공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괴담 얘기를 늘어놓다 보니 역시나 서언(序言)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 이번에 소개할 책은 이런 학교괴담을 소재로 한 “방미진” 작가의 <괴담;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문학동네/2012년 7월)>이다.
‘연못 위에서 형제가 사진을 찍으면 둘째가 사라진대.’
‘연못 위에서 일 등과 이 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 등이 사라진대.’
‘연못 위에서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가 사진을 찍으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대.’
산비탈을 깎아 만들어 찻길에서 학교 정문까지 언덕길이 길게 이어지는 어느 고등학교 뒤편에 위치한 연못에는 위와 같은 괴담(怪談)이 떠돌고 있었다. 그저 아이들 사이에 떠도는 유치한 농담쯤으로 여길 수 도 있는 이 괴담이 본격적으로 떠돌게 된 데는 “서인주”라는 여학생이 시체로 발견되고 난 후 부터였다. 사인(死因)은 자살로 판명 났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괴담은 확대 재생산되어 떠돌아다니고, 아이들은 인주와 단짝이었던 지연과 연두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같이 성악을 전공했었기에 셋이서 어울려 다녔지만 타고난 음색에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던 인주를 시샘한 연두와 지연이 인주를 따돌리는 그런 관계였다. 여기에 자신의 제자이자 부유한 환경에 속물 근성의 어머니를 두고 있는 연두와 지연을 경멸하는 음악 선생님, 남자 하나 여자 둘이라는 트리플 연인 관계인 치한과 보영, 미래, 어릴적 부터 엄마의 과잉보호를 받는 언니 연두를 미워하는 연지, 인근 대학에 다니는 천재화가이자 연못에서의 인주의 죽음을 목격했던 치한의 형 요한, 연두를 스토킹하는 남학생 등 많은 인물 군상들이 서로에게 악의와 질투, 애정과 질시 등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품어내며 이야기를 엮어간다. 인주는 과연 자살한 것일까 아니면 누구에게 살해당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뜬소문에 불과했던 연못괴담이 진짜로 이루어진 것일까?
240 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 페이지 당 20 줄 내외의 듬성듬성한 줄 간격이라 한 두 시간이면 뚝딱 읽어낼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다 읽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이런 류의 학교괴담은 정석(定石)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여고괴담>에서처럼 입시경쟁에 내몰리면서 서로가 친구가 아니라 적(敵)이 될 수 밖에 없는 삭막한 학교 현실 속에서의 갈등과 시기, 미움, 질투,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비롯된 공포 상황의 연출을 기대해볼 텐데, 책 중반이 넘도록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주의 죽음과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인 연두, 지연의 관계에서 서로를 미워하고 질시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고, 주문(呪文)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위의 문구들과 음악실에서 죽은 인주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없진 않지만 그리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지도 않고 - 음악실에서의 상황은 친구의 죽음과 괴담을 연관시켜 생각하는 연두와 지연의 상상으로도 볼 수 있다 -, 결말에 이르러 드디어 드러나게 되는 괴담의 실체도 원인과 결과가 모호한 결말로 마무리되고 만다. 특히 결말에서 괴담이 이뤄져 둘째, 이 등, 두 번 째 아이가 사라졌는데, 그걸 의도한 아이들 기억에만 남아 있고 그들의 존재가 완벽히 사라진다는 설정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 교육의 모순과 심각성을 강조하는 사회파적 추리소설 경향을 따르던지, 아니면 반대로 학교 교육의 문제점은 그저 원인이나 배경 정도로만 설정하고, 공포에 포커스를 맞춰 원인과 상황 연출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그려내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을 텐데 두 가지 모두를 담아내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분들의 서평들 중 호평(好評)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오래되어 지금 학생들의 심리와 정서에 올곧이 감정이입하지 못한 내 이해력과 공감의 부족과 자기 맘대로 기대치를 설정해놓고 그 기대에 못 미친다고 금세 실망해버리는 나의 변덕스러움을 탓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아쉽지만 한여름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할 만한 공포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맞지 않았던 책이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니 이 글 때문에 책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는 없길 바래본다. 지금 학생들의 심리와 정서를 잘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분들과 학교괴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 봐도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