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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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열 건 넘게 스팸 메일이나 메시지, 전화들을 받는다. 받는 족족 스팸(Spam) 메일과 번호로 등록하고, 스마트폰 장만하면서 10여 년 동안 써왔던 전화번호도 바꿨지만 어떻게들 알아내는지 며칠 있으면 바뀐 번호로 다시금 스팸 메시지들이 날아오기 시작해서 결국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 정도라면 내 개인정보는 완전히 공개되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잠시라도 인터넷에 접속을 하지 않으면 갑갑증이 생겨버리는 현대 사회에서 IT, SNS와 담을 쌓고 살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가급적 내 신상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꽤나 주의를 하고 있지만 철저한 보안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자랑하는 대형 통신사나 포털 서비스의 해킹 사고가 그렇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 도둑이 훔치려고 작정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옛말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렇다보니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사이버 범죄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데, 최근 이런 사이버 범죄의 심각성을 정면으로 고발한 스릴러 소설 한 편을 만났다. 바로 “스릴러의 제왕”이라 불린다는 “제프리 디버(Jeffery Deaver)”의 신작 <도로변 십자가(원제 Roadside Crosses / 비채 / 2012년 7월)>이 그 책이다. 작가 이름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는 이 작품으로 처음 - 영화로는 “덴젤 워싱턴”,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본 콜렉터(1999)>로 만나본 적이 있다 - 만나 보게 되었다.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처음 만나는 작가에 대한 낯섦을 여전히 느끼면서 회색빛 음산한 배경과 대비되는 총천연색의 꽃들로 장식된 십자가가 이색적인 표지를 열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책은 한적한 외곽 도로를 순찰하던 경찰관이 도로변에 놓여 있는 십자가를 발견하게 되는 6월 25일 월요일 장면에서 시작한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을 위한 기념비 쯤으로 여긴 경찰관은 십자가를 뽑을까 하다가 괜히 뽑았다가는 추모객들이 돌아와 새 십자가를 꽂아놓을 게 뻔하다는 생각에 차로 돌아온다. 그런데 오늘 날짜를 확인하다가 순간 십자가 판자 원판에 투박하게 적혀 있던 날짜가 내일 날짜인 6월 26일 화요일이었음을 깨닫지만 추모객이 잘못 적어 놨겠거니 하고 금세 잊어버린다. 그날 밤 밤늦게 귀가 중이던 여고생 “태미 포스터”가 납치되어 자신의 차 트렁크에 갖혀 익사할 뻔한 사고가 발생하고 캘리포니아 연방수사국(CIB) 수사요원인 “캐트린 댄스”가 이 사건을 맡게 된다. 댄스는 이 사건이 몇 주 전 졸업파티에서 돌아오던 두 여학생이 차량 전복 사고로 목숨을 잃었던 사건에서 그 차를 운전했던 남학생 “트래비스”에게 쏟아지던 인터넷 악성 댓글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트래비스의 집을 찾아가지만 가족들의 방해와 트래비스의 완강한 부인(否認)으로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트래비스가 그날 밤 자취를 감춰버리고 새로운 도로변 십자가가 발견되고는 또 다른 여학생의 납치 사건이 발생한다. 두 여학생 다 트래버스에 대해비난 악플을 달아 왔다는 공통점이 있고, 십자가에서 트래버스의 범행임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댄스와 동료들은 트래버스를 추격하지만 그의 행적은 오리무중인 채 도로변 십자가는 계속 발견되고, 심지어 살인 사건까지 일어나게 된다. 이제 도로변 십자가는 “살인 예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트래버스의 범죄는 자신에 대해 악플을 달았던 사람들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악플들이 실려 있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지역 주요 현안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이슈 메이커가 되는 “제임스 칠튼”의 블로그에 글을 올린 사람들로 확대된다. 경찰의 블로그 폐쇄 요구에도 언론 자유 운운하며 거절했던 칠튼의 집에 권총을 든 괴한이 침입한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기 바랍니다.)

 

역시 스릴러의 제왕이라 불릴 정도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스릴러 소설들에서 흔하게 만나보게 되는 공식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우선 범인의 정체에 대한 반전(反轉)을 들 수 있겠다. 초반에는 범인의 정체가 너무 일찍 밝혀져 맥이 빠져 이 작가 이렇게 일찍 범인을 밝혀 놓으면 남은 분량을 어떻게 채우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들어나는 증거들도 그렇고 이야기 전개도 중반까지는 모두 트래버스가 범인이 분명하다는 논조로 몰아간다. 그런데 블로그 운영자 제임스 칠튼의 살인 기도를 정점으로 이야기는 순식간에 반전된다. 트래버스는 희생자였을 뿐 범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결말 부문에 이르러 다시 한번 범인의 정체에 대한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총 두 번의 반전으로 깜짝쇼를 하는 작가, 어느 인터뷰에서 “디버 씨, 이번 책에서도 완전히 속았습니다! 눈 밝은 독자들이 이렇게 말해줄 때 가장 기쁩니다.”라고 했다더니 역시 독자를 쥐락펴락할 줄 아는 유능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고 하겠다.

 

두 번째는 사건 전개에 있어서 마지막 장면에서 그 결말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고 다음 장(章)으로 넘기는 구성을 들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제임스 칠튼의 살인 기도 장면에서도 마지막 장면에서 총성(銃聲)이 울리고, 칠튼이 죽었는지는 묘사하지 않고 그 장면을 끝내고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며, 몇 페이지를 더 읽고 나서야 비로소 결말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다음 장을 바로 열어보는, 즉 독자들이 책에 눈을 떼지 못하고 시선을 계속 집중하게 하는 방식은 스릴러 소설들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일종의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는데, 역시나 작가도 이 작품에서 여러 장면에 걸쳐 즐겨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매력적인 여주인공 “캐트린 댄스”에 대한 설정을 들 수 있겠다. 소개글을 읽어보니 이 주인공, 작가의 대표 시리즈라는 “링컨 라임” - 앞서 말한 영화 <본 콜렉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시리즈에서 조연(助演)으로 활약해왔고, 전작인 <잠자는 인형>에서 주연으로 데뷔한 캐릭터라고 한다. 캐트린 댄스는 이 작품에서 “동작학 전문가”라는 독특한 능력을 보여주는데, “억제된 감정은 거의 언제나 몸짓으로 드러난다” 라는 작품 속 문구처럼 범인의 동작을 관찰해서 심리적 상태나 거짓말 유무를 밝혀내는 그런 능력으로 보여진다. 일종의 프로파일링(Profiling) 기술로 보이는데 조금은 생소하고 몇 몇 장면에 등장하지만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전작을 읽어본 어느 분 글에서 전작에 비해서 이번 작품에서는 동작학적 능력이 그리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평가한 것을 보면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독특한 능력과 그녀만의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미궁처럼 자꾸 꼬여만 가는 복잡한 사건 속에서 범인의 숨은 의도를 간파해내고 마침내 사건의 모든 비밀을 밝혀내는 과정이 억지스러움이나 과장됨 없이 적절하게 그려지고 있다. 또한 댄스에게 일종의 시련이라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사건 또한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바로 안락사(安樂死) 혐의를 받고 있는 어머니가 바로 그 사건이다. 어머니 사건은 도로변 십자가 사건 때문에 밤낮없이 매달려 있는 그녀에게 사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시선을 분산케 하는 시련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여기에 FBI 수사관이었던 남편을 사고로 여의고 자녀들에게 느끼는 연민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남성 동료와 트래비스 컴퓨터 해킹과 온라인 댓글 분석을 통해 수사에 참여했던 교수와의 로맨스 등 그녀의 개인사 또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즉 사건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꺼리를 던져 주는 그런 캐릭터인 것이다. 역시나 이런 설정도 스릴러 소설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책의 재미는 어떨까? 위에서 말한 스릴러 소설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으니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다고 600 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술술 읽힐 정도로 참 재미있다. 다만 너무 스릴러 공식에 충실한 나머지 전개와 결말에서 다소 느껴지는 식상함과 초반에서 도로변에 살인을 예고하는 십자가가 등장한다는 설정에서 뭔가 “스티븐 킹”식 공포와 초자연적인 설정을 기대했었는데, 설정은 기발했지만 단순 범행 예고 설정에 그친 점은 개인적으로 아쉽게 느껴졌다. 분명 재미있는 책이었지만 딱 내 기대 수준 정도의 기발함과 반전을 맛볼 수 있는, 즉 기대를 뛰어넘는 충격을 맛보기에는, 또한 제프리 디버라는 작가 특유의 색깔을 맛보기에는 다소 부족한 그런 책이었다고 할까? 물론 이 책 한 권만으로 그의 내공을 진단하기에는 너무 성급할 것 같다. 제프리 디버라는 작가, 이 책으로 낯섦이 가신 만큼 자주 만나볼 필요가 있는 그런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책장에서 고히 잠들고 있는 전작인 <잠자는 인형>부터 깨워 읽고 그의 대표작들인 <링컨 하임> 시리즈를 차근차근 만나봐야겠다. 이렇게 즐겨 찾아볼 작가를 추가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 충분히 읽어볼 재미와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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