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아멘 아멘 - 지구가 혼자 돌던 날들의 기억
애비 셰어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 10명 중 3명(유병률 27.6%)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했고, 6명 중 1명(15.6%)은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으며 최근 1년간 자살시도자만 10만 8,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이데일리, 2012.7.13.기사 발췌). 그 정도가 차이가 있을 뿐 전국민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올 정도- 기사 제목이 “정신질환 공화국 대한민국” 이다 - 로 심각해진 원인은 무엇일까? 수십 수백 개의 원인 분석 기사들 중에 “고(苦)가 많은 현실”이 원인이라는 글에 눈길이 간다. 공해, 실업, 과당 경쟁, 과로, 가정불화, 치안불안, 정치사회 불신 등등 괴롭고 고통스러운 현실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져 정신 질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러한 심각성을 고려해 정신건강검진을 확대 시행하고 지원을 늘린다고 하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이 치유되지 않는 이상 큰 실효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만 같다. 서두부터 유쾌하지 않지만 남이 아닌 나의 얘기일 수 있는 정신질환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번에 읽은 책이 현대인의 대표적인 정신질환 중 하나라는 “강박증(强迫症,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을 앓은 작가의 경험담을 털어 놓은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바로 “에비 셰어”의 <아멘 아멘 아멘(원제 Amen Amen Amen / 비채 / 2012년 6월)>이 그 책이다.

 

 

 5학년으로 올라간 첫째 주 어느 날 아빠의 여동생이자 영원한 나의 영웅인 “시몬” 고모가 동맥류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죽음은 우리에게 필요한 휴식이고 깊은 잠에 드는 것과 같다는 엄마가 말씀하셨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죽음에 대해 이해를 할 나이는 아니어서 그런지 아직 젊고 생기 있는 사람이 일주일 만에 영영 사라졌다면 좀 더 납득이 가는 설명이 필요했다. 나는 고모의 죽음에 슬픔보다는 나쁜 짓을 저지르면 나쁜 일이 생기고, 진짜 나쁜 짓을 저지르면 죽는다는 사실과 함께 하-님 - 유태인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온전히 부르면 불경하다는 생각에 축약해서 부른다고 한다 - 만이 인간이 죽는 이유와 시기를 아시는 유일한 존재이고,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만이 영원한 잠에 들어서 떠도는 동안 하늘에 계신 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이해한다. 얼마 뒤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나는 조금씩 이상 행동을 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알 수 없는 기도를 올리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못과 같은 날카로운 조각들을 주워 모으며, 자신의 의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즉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저 고모와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충격으로 어린 시절 잠시 잠깐의 이상 행동, 즉 일종의 성장통인 줄만 알았던 이런 강박증은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어서도 점점 더 심해져만 간다. 유일한 버팀목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함께 기도하고 자신을 다독거리는 바로 어머니였다. 여기에 또 다른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게 된다. 바로 몇 몇의 남자들과 사랑을 하지만 실패하고 만나게 된 남편 “제이”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딸이다. 엄마는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것이다. 그녀는 이런 강박증을 결국 극복해냈을까? 책에는 완치되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남편과 딸로 인해 충분히 극복해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 주며 끝을 맺는다.

 

 

 어린 시절부터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중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인생 역정과 함께 자신을 평생 괴롭혀 온 강박증에 대하여 솔직하게 털어놓은 자전적인 소설 - 책 분류가 소설로 되어 있는데 엄밀하게는 자서전(에세이)가 맞을 것 같다 - 인 이 책, 그 과정이 지루하지 않고 자못 감동적이긴 하지만 사실 큰 감흥을 느끼지는 못하였다. 내가 남성이어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이나 어머니와의 사랑에 대해 둔감한 탓도 있을 테고, 다행히(?) 내가 작가와 같은 강박증을 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여담이지만 인터넷에 나오는 강박증 자가 테스트를 해보니 나는 정상이라고 한다. 물론 몇 가지 간단한 질문으로 정확한 테스트가 되진 않겠지만 말이다 - . 처음에는 그저 사춘기 시절 앓고 지나가는 성장통 쯤으로 그려질 줄 알았는데 장년이 돼서도 쉬이 떨쳐 내지 못하고 갈수록 심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강박증이라는 병의 심각성과 치유의 어려움(難治)에 꽤나 놀랍기도 했다, 또한 주인공(작가)이 앓고 있는 강박증의 수준이 전문적으로는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책에 나와 있는 내용만으로는 심각한 수준 같은데, 장년이 되도록 특별한 치료가 없었다니 그녀의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의 무신경에 살짝 화가 나기도 했다. 물론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신과 상담을 받아왔고, 성인이 되어 의사들의 진료를 받으면서 약을 복용해왔으니 작가 입장에서는 치료를 받아온 것이겠지만 책이나 TV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정신질환은 병원에 강금당해서 치료받아야 한다는 내 잘못된 선입견을 탓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주문(呪文)처럼 끊임없이 외워대는 기도나 길거리에서 못이나 날카로운 것들을 주워 모으는 그녀의 결벽증적인 행동들,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다는 망상증(妄想症) - 주변의 죽은 사람들 이름을 살인 목록에 올려놓기도 한다 - 이라면 제대로 치료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녀의 인생이 책에서처럼 굴곡지고 힘들지는 않았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경험이 오늘날 유명 희극 배우로서, 그리고 정신적, 심리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강연과 연극 제작을 하는 사회활동가로서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이긴 하지만.

 

 

 이처럼 대외적으로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가 자신이 강박증 환자였다는 것을 내밀한 속살을 털어놓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과연 어떤 이유에서 이런 책을 쓰게 된 것일까? 아마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강박증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자신처럼 방치해두지 말고 하루 빨리 치료받으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여기에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희망과 용기의 격려도 포함해서 말이다. 정신질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병을 솔직히 인정하고 늦게나마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된 작가에게 진심으로 경의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우리나라 상황에도 분명한 경종(警鐘)을 울리는 책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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