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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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書評)을 쓰기 시작한 지가 2년 반이 넘었다. 그 이전에는 책을 읽고 미니홈피에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 글과 함께 간단한 느낌만 몇 줄 정도 적었었는데, 자주 방문하는 작가 블로그에서 개최한 이벤트에 당첨되면서 서평 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감히 제목에 “서평”이라는 단어를 붙인 글들을 써오고 있지만 “서적에 대한 비평(批評)과 평가(評價)” 수준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개인적인 느낌을 적은 “독후감(讀後感)” 에 지나지 않아서 지금도 내가 쓴 글을 읽으면 부끄러워서 얼굴이 다 화끈화끈 거리곤 한다. 그래도 함량 미달의 독후감들이지만 글을 공개하고 있는 터라 내 글을 읽는 분들의 반응이 궁금할 수 밖에 없는데, 칭찬과 관심 댓글에는 어깨가 다 으쓱거리고 비판의 댓글 - 고마운 것은 비난까지는 해주시지 않는다^^ - 에는 절로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많은 분들이 부족한 내 글에 관심을 보내주시지만 그래도 가장 큰 힘이 되는 칭찬과 응원은 “책 읽는 것보다 당신 글들 읽는 것이 더 재미있다”라는 아내의 격려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아내는 나의 제 1호이자 유일무이한 팬(Fan)인 셈이다. 그러기에 아내의 응원만 철썩 믿고 부끄러운 줄도 이렇게 계속 서평을 올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서언이 긴 이유는 “일본 연애소설의 여왕”으로 불린다는 “아리카와 히로”의 <스토리셀러(원제 スト―リ?セラ― / 비채/2012년 7월)>도 사랑하는 사람의 글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부 이야기 때문이다. 물론 책에서는 글 쓰는 사람이 작가인 아내고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남편이라는 게 다르지만 말이다^^

 

Side A

같은 디자인 사무실에 근무하는 “그녀”는 자신만의 디자인을 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는 여느 젊은 직원들과는 달리 디자이너 보조 역할에만 충실하는 그런 어시스턴트 사원이다. 그럼에도 일처리가 적확하고 빠르며 야근과 숙직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를 정식 디자이너인 그는 눈여겨보게 된다. 어느날 그는 퇴근한 그녀가 남기고 간 USB에 담겨 있는 그녀의 글들을 읽게 된다. 놓게 간 게 있다며 다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글을 읽고 있는 그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만류하지만 그녀의 글에 흠뻑 빠진 그는 그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글들을 읽는다. 이렇게 그는 그녀의 글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팬 1호가 되었고, 둘은 결혼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남편인 그의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내어 자신의 글을 출판사 문학상에 응모하고 대상을 받으면서 전업 작가의 길에 오른다. 그녀가 발표하는 글들마다 크게 인기를 끌지만 그녀는 사고(思考)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르는 병인 “치사성뇌열화증후군”이라는 불치병에 걸리고 만다. 글쓰기도 중단하고 하루하루 조심스러운 삶을 살지만 결국 아내는 죽고 만다. 그에게 저작권료 상속권을 넘긴다는 유언장과 함께 자신의 글에 첫 팬이 되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남기고 말이다.

 

Side B

여성 작가가 죽는 소설(Side A)을 썼던 아내는 출간 분량을 맞추기 위해 이야기를 고민하던 중 남편의 권유로 작가의 남편이 죽는 이야기를 쓰게 된다. 그런데 이 소설처럼 남편인 그가 불치병에 걸리고 만 것이 아닌가. 자신의 글 때문에 남편이 죽게 되었다고 자책을 하는 아내. 그런데 실제는 소설과 조금씩 어긋난다. 소설에서 남편은 결국 죽고 말지만 현실에서 남편은 고통스럽지만 삶을 이어나간다. 역몽(逆夢: 실제 사실과는 반대인 꿈)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이처럼 작가인 아내와 남편과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이다. 두 편 다 작가인 아내가 쓴 글을 매개체로 서로 만나 결혼하고 남편은 아내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애독자라는 설정은 공통되지만, Side A에서는 작가인 아내를, Side B에서는 남편을 잃는다는 상황은 서로 다르게 전개된다. 두 편 다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연애 소설로써도 충분히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소설과 실제를 넘나드는 특이한 구성에 있다. Side A는 Side B의 작가가 쓴 글이니 말 그대로 “소설” - 그런데 Side A 말미에도 이 글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에 대한 물음이 나온다 - 일 텐데, Side B에서는 소설로 시작되지만 중반부터 소설 속 상황과 실제 상황이 중첩되어 버린다. 아내는 작가의 남편이 죽는 자신의 소설이 현실에서 일어나자 그런 글을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소설과는 반대되는 현실, 즉 역몽(逆夢)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일 따위는 내가 역몽으로 만들어주겠어. 내가 내 손으로 그를 죽이겠어. 신에게 빼앗기기 전에 내가 내 문장으로 그를 죽이겠어. 신이 있다면 어디 한번 받아보시지. 내가 당신에게 거는 싸움을. 나는 작가야. 요깃거리도 되지 않는 공상을, 진실성 없는 이야기를, 꿈을 이 세상에서 맛깔나게 조리하고 있지. 나는 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람이야. - P.187

 

이런 작가의 시도 때문이지 현실은 소설과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점점 병이 심해지기는 하지만 남편은 소설과는 달리 삶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그래서 Side B 최종 원고를 받아본 편집장은 Side A 말미의 편집장처럼 작가에게 소설 속의 일들 중 현실과 부합되는 일들을 언급하면서 어디까지가 사실이냐고 물어온다. 그러나 그건 중요치 않다. 이 소설은 팔려야 한다. 왜냐하면 역몽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도 편집장에게 원고를 보내기 직전까지의 모든 상황이 소설인지 아니면 Side B에서의 작가가 역몽을 일으키기 위한 과정인지가 분명치 않다. 즉, Side B 전체가 소설일 수 도 아니면 소설과 실제가 섞인 것 일 수 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의 배우자와 이별하는 상황은 같지만 Side A에서는 아내의 죽음으로 완결된다면 Side B에서는 남편의 죽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물론 시기가 더 늦어지고 소설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지만 소설처럼 죽게 된다는 슬픈 결말만큼은 현실에서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작가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겠지만 그 결말이 슬픔으로 끝맺음할 것을 알기에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가슴 한 켠에 잔잔한 여운과 함께 아련한 슬픔을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혹시 작가의 실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 책 소개글을 보니 실제 남편을 모델로 삼아 자전적 요소를 더해 쓴 이야기 인 데가 작가가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어보자 하고 계획해서 썼다고 하니 적어도 나에게는 작가의 의도가 100퍼센트 맞아떨어진 셈이 되었다. 물론 아리카와 히로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 뿐만 아니라 소설과 현실의 경계마저 착각해버렸으니 너무 과하게 들어맞긴 했지만 말이다^^ 아뭏튼 현실과 소설을 넘나드는 특이한 구성과 전개의 소설로써, 가슴 시리게 만드는 연애 스토리로써 재미와 감동을 함께 맛 볼 수 있었던 멋진 소설이었다. 또한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르는 요즈음, 더위를 잊겠다며 살벌하고 끔찍한 추리소설만 파대고 있는 나에게는 피폐해진 정서 순화(?) 차원에서도 안성맞춤인 소설로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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